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의 마을버스 종점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산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채 되기 전에 ‘서울연탄은행’이라는 노란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11월 8일 원주밥상공동체(대표 허기복 목사)에서 전국으로 치면 6번째요, 서울에는 최초로 중계본동에 ‘서울연탄은행’이 들어섰다. 연탄이 필요한 사람은 자유롭게 가져가고, 또 누구나 채워놓을 수 있는 연탄은행의 이용방법이 친절하게 적혀있다. 인구가 많은 서울이니 연탄은행을 이용하는 이들도 지방의 연탄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연 최고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몇 분 간격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주민들이 작은 손수레, 자전거, 오토바이, 심지어 비닐봉투에까지 연탄을 담아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용 방식은 여느 연탄은행과 마찬가지로 가구당 하루 한 번, 최대 5장의 연탄만을 가져갈 수 있다. 서울연탄은행에서만 매일 300여 장 이상의 연탄이 따뜻함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추위에 떨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봉사를 하려면 제대로 한다’는 신념 하에 서울연탄은행은 정기적으로 직접 배달 봉사도 감당한다. 그런데 배달과 은행관리를 담당하는 건물이 안 보인다 싶더니, 바로 서울연탄은행 맞은편에 있는 백성세탁소에 있는 전병종 총무와 유동님 집사 부부(노원순복음교회)가 그들이다.

세탁소에 들어서니 전 총무와 유 집사는 연탄은행 경영하느라 세탁소 일은 거의 포기한 듯해 보인다. 이들은 현재 연탄을 수해 받을 가구를 조사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유인즉 너무 많은 이들이 연탄을 이용해 확보된 5만 장의 연탄으로 이번 겨울을 나기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 정말 필요한 이들을 조사해서 보급하기 위해서란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에게 주고 싶지만, 아주 가끔 양심불량 주민도 있다고 살짝 귀뜸한다. 그래서 동사무소로부터 생활보호대상자들의 명단을 받고, 모든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여 정말 필요한 이들의 목록을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부부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마을 위쪽에서 원주밥상공동체의 허기복 목사가 내려온다. 허 목사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 이 곳을 찾는다. 직접 연탄을 배달도 하고, 가정방문도 한다. 허 목사는 내려오면서 “할머니들을 만나니 눈물이 나 혼났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허 목사와 유 집사는 동네 분들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하다가 유 집사가 “목사님 이제 동네 사람 다 됐어요”라고 한다.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연탄은행 앞에서 얘기하는 동안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허 목사와 유 집사에게 인사를 건넨다. 유 집사는 “수퍼마켓이나 길거리를 다닐 때 모두들 반겨주셔서 너무 보람을 느낀다”며 “별로 한 것도 없는데…”라며 겸손해 한다.

▲ 서울연탄은행을 꾸려가는 봉사자들(왼쪽 두 번째부터 유동님 집사, 전병종 총무, 허기복 목사).

허기복 목사는 서울 상계동과 수유리 등지에서 꾸준히 연탄요청이 들어오자 지난 9월부터 서울지역에 연탄은행 자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허 목사는 총 1천700세대 5천명이 살고 있는 이곳 산동네를 조사한 결과 연탄이 필요    원주 밥상공동체 대표  허기복 목사 한 가구가 300세대임을 확인, 이곳에 연탄은행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교회나 단체가 없어 고민하던 중 주민들의 추천으로 백성세탁소 사장님을 알게 됐다. 평소에 남을 위한 봉사를 많이 해 오셔서 주민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했다. 전 총무는 망설임 없이 승낙했고, 빨래 건조터로 사용하던 공터를 연탄은행 부지로 내 놓았다. 연탄은행을 세우는 데 어느 정도 비용을 주겠다고 하니 “돈 줄 거면 나 안 합니다!”라며 사양했다고 한다.

허 목사가 전 총무와 유 집사를 칭찬하자 전 총무는 “쓸데없는 얘기”라며 목사를 말린다. 전 총무는 “세탁소 일 때문에 밤늦게까지 작업하다보니, 솔직히 자유시간이 없지만, 우리 몇 명이 봉사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내가 얻는 게 많다”며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주민들의 반응을 들을 때 힘이 절로 나 피곤할 줄 모르고 지낸다”고 말한다.

허 목사와 두 일꾼이 이틀 뒤 있을 배달작업에 대한 계획을 상의한 후 허 목사는 또 서둘러 원주로 내려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노을이 깔려 어둑해진 산동네에서 ‘원주밥상공동체’라고 써 붙여진 노란색 승합차가 마을을 내려가는 모습 뒤로 몇 명의 주민은 손수레를 끌고 사랑의 온기를 담아가려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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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곳간 열어 사랑 나눠야”
    허기복 목사 / 원주 밥상공동체 대표 

원주 밥상공동체(www.babsang.or.kr) 대표 허기복 목사는 원주의 세 군데에 이어, 춘천, 금산, 서울에 연탄은행을 세웠고, 12월에 들어서 공주와 부산 두 곳에도 연탄은행을 세웠다. 밥상공동체는 연탄이라는 매개체로 전국 방방곡곡에 사랑의 온기를 전달하고 있다.
“연탄은행은 사업이 아닙니다. 이웃을 보듬는 일이죠. 자칫 사회적으로 유행의 조짐이 보여 걱정이 됩니다. 일회성, 이벤트성의 사업은 지양해야 합니다.”

허 목사는 아직도 발 벗고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지금까지 교회가 사회를 위해 예언자적 역할을 충분히 잘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사회의 혹평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 교회야말로 초대교회로 복귀해서 창고를 풀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교회를 거대하게 만든 교회보다 이웃을 향해 진정한 크리스천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큰 교회라고 한다.
“연탄은 향수가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삶의 절박함 속에서 찾은 것이 연탄이죠. 연탄이 누구에게나 향수가 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