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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택 집사/ 너무 많이 주시는 하나님
2001년 07월 01일 (일)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병택  집사/ 미국 뉴저지주 체리힐장로교회

   
▲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한 이병택 집사(왼쪽에서 두번째)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 집은 예수와는 거리가 먼 집안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남묘호랑계교를 너무나 열심히 믿으셨기에, 우리 자식들은 그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예수 믿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좀더 정직하게 표현한다면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우리 식구들 모두는 “예수 믿는 것들이 죄는 더 짓고 나쁜 짓은 다하고 다닌다“ 면서 욕을 했고, 어쩌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비리라도 발견하면 “예수쟁이들은 다 저렇다니까“ 하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우리 나름대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우리 삼 형제와 부모님, 이렇게 온 식구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재산도 모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형제간에 우애 있게 잘 살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교만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고, 어쩌다 전도하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당신들 앞가림이나 잘하쇼. 나는 예수 안 믿어도 당신들 보다 더 착하게 살고 있소“ 이렇게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이민 와서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같은 업종을 하는 사람으로 새벽 시장에서 만났는데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되어 이민 생활의 괴로움을 술과 노래로 달랬습니다. 그 친구가 바로 신현국 목사님이십니다. 지금은 서로 목사님. 집사님 하면서 깍듯이 부르지만 그때는 ‘이놈아, 저놈아‘ 였습니다. 그 친구도 그때는 예수를 믿지 않았기에 우리는 죽이 맞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놀리며 핍박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삼 형제는 각기 결혼을 했고 같이 하던 가게를 정리해서 서로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탁소로, 둘째는 그로서리(편의점) 셋째는, 우리가 했던 청과업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세탁소를 하면서 친구와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고 그러다 한 이삼 년 정도는 아예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때때로 궁금하기도 했지만 가게 일 때문에 연락을 취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 친구가 예수를 믿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신학대학을 다닌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또 “지 까짓게 변하면 얼마나 변했을까“ 하고 솔직히 비웃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우리 가게를 물어물어 찾아왔습니다. 소문대로 그 친구는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이민 생활에 찌든 얼굴이 아니라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화스러운 얼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친구는 필라델피아 칼리지 오브 바이블이라는 대학에 다닌다고 했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무리 한국에서 영문과를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그 나이에 영어로 대학과정을 어떻게 따라 갈 수 있으며, 또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학비며,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도 그 때는 이미 결혼을 해서 처자식이 있었습니다.

찾아 온 친구는 나를 전도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너 나 잘해, 야, 임마! 네가 대학 졸업하고 목사가 되면, 내가 장로 되어 너 교회 지어 줄게“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나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너는 이제 하나님께 붙들린 거야. 아마도 너는 나에게 꼭 교회를 지어 주게 될 거다. 하나님께서 지금 네가 한 말을 꼭 기억하고 계실테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나의 조롱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전도를 해왔습니다. 말 그대로 피나는 전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사망 길에서 생명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친구는 처절할 정도로 열심히 전도해 왔습니다. 거의 매주 두 세 번은 찾아 와 듣지도 않는 말씀을 전하다가 돌아갔고 어떤 때는 기도원에 갔다 오는 길에도 들렸습니다. 그렇게 끈질기게 전도하는 친구가 어느 때는 귀찮고 어느 때는 얄밉고 또 어느 때는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저놈이 나한테 전도를 하면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교회에서 프리미엄이라도 받나? 무엇 때문에 저렇게 힘을 들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그렇게 열심히 전도를 했지만 그 무렵 우리 집 분위기는 예수 믿기에는 더 나쁜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더욱 더 남묘호랑계교를 열심히 믿으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셨기에 우리는 날마다 찾아오는 친구를 매정하게 돌려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만약 우리 어머니를 전도하면 내가 교회를 나가마.“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나는 그를 따돌리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는 그날부터 우리 어머니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동생네 가게에서 소일거리로 야채 다듬는 일을 도와주고 계셨는데 친구는 그곳에 매일 찾아가서 ‘어머니 저 왔습니다‘ 하며 인사를 했고 어머니는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너나 가서 목사 돼서 목사질이나 잘해. 나는 우리 본전님께 잘해야 되니까, 이제는 오지 마라 제발“ 하시면서 핍박을 했습니다 막내 제수씨도 덩달아 “여기 안 오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바빠서 죽겠는데 왜 자꾸 오세요“ 하면서 문전박대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친구는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하루 종일 걸리는 길을 찾아 왔지만 환영은커녕 쫓겨나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그 친구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믿는 일만 아니면 너무나 좋은 친구인데 왜? 예수를 믿어 가지고 우리 식구들에게 천대를 받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교회 한번 나가줘라. 저놈 매일 오는 것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한번만 교회에 가서 그놈 얼굴이라도 세워 주고 와.“
이렇게 나는 미안한 마음을 아내에게 밀어 붙였습니다. 아내도 그 친구가 불쌍했던지 마지못해 생전 처음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내를 교회 문 앞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는 파킹장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내 할 도리를 다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한번 가주었으니까 ‘이젠 되었다‘ 하고 의기양양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 한번 가주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지칠 줄 모르고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설득하고. 설명하면서 전도하고 또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바위에다 계란 던지는 것이 나았지 내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만큼 친구의 전도도 더 열심이었습니다. 나 같으면 포기를 해도 여러 번 했을 터인데도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내가 진저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아니라 내가 한번 나가주면 저 친구가 안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큰마음을 먹고 날짜를 잡아 교회를 갔습니다.

그날 친구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저 친구를 드디어 교회로 인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했지만 나는 난생처음 간 교회라 어색해서 안절부절 했습니다. 교인들은 잘 오셨다고 환영해주었지만.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믿음 없이 나가는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환영해 주는 교인들을 뒤로 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내가 했던 말. “저 사람들 내가 헌금 많이 낼 것 같은가 보지 저렇게 환영 해주니 말야.“

그리고는 우리는 교회를 잊었습니다. 그 친구 얼굴 봐서 한번 나가주었으니까 할 일 다 한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매일 찾아오던 친구도 목사안수를 앞에 두고 있던 차라 찾아오는 것이 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사업터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직원 하나가 목을 메고 자살을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공장 문을 열었을 때 목을 메고 자살한 그 주검을 목격한 나는 그 죽음이 너무나 처참하여 실신할 뻔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무서움 때문에 공장에 가기가 싫었습니다. 공수특전단 출신인 내가 갑자기 무서움증에 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매일 울었습니다. 감당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고 나중에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아파했습니다. 나는 의지 할 곳이 필요했지만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여보! 혹시 신목사님 이라면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신목사님께 전화 라도 한번 해볼까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친구는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친구를 떠올리고 난 후로는 마음이 평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얼마나 많이 핍박을 했던 친구였습니까?  얼마나 골탕을 먹인 친구였습니까? 그런데 내가 힘들다고 하니 한걸음에 달려 왔습니다.

사정 얘기를 다들은 친구는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분인가 2분인가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나는 마음이 너무도 평안해졌습니다. 인간에게서 느껴 보지 못했던 그런 크나큰 감동이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큰기침을 서 너 번 해도 이미 하나님 은혜에 감동한 나는 통제불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나를 이 환난 속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그토록 애쓰시며 나를 부르셨던 하나님. 내가 못나서 결국은 매를 맞고 아파서 찾아야 했던 하나님. 그런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크신 은혜로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영혼 가득 체험했습니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던 아내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체험을 하면서 마음에 평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우리 부부는 난생 처음 교회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이미 은혜를 체험한 우리는 더 이상 어색함도 안절부절도 없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찬송이지만 힘껏 부르며 우리 부부는 울었습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체면 같은 것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체면보다는 하나님 은혜가 더 좋았습니다. 눈물로 예배를 드렸고 친구 아니 목사님께서도 설교 도중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 지금쯤 하늘에서 큰 잔치가 열렸을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한 생명이라고 했는데 한 생명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하나님께 나왔으니 잔치가 벌어져도 아주 크게 벌어졌을 것입니다.“

설교하시는 목사님도 우셨고 나도 울고 아내도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목사님을 도구로 쓰시면서 우리를 그토록 부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강팍하고 완악하니까 도구를 사용하셔도 엄청나게 강한 도구를 사용 하셨습니다. 만약 목사님께서 포기 하셨더라면 우리는 이 사랑과 이 평화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고 그리고 그때 그 좌절과 절망과 두려움과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전도해 주신 친구 신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나 같은 인간도 버리지 않고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세상에 예수 안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불교도, 남묘호랑계교도 그리고 술고래도. 깡패도 모두다 전도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끝까지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완악하고 강퍅한 것을 녹여낼 사건을 만들어서라도 돌아오게 하십니다. 저는 나 같은 사람도 예수 믿게 되었으니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다 예수 믿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처음 믿기 시작한 초신자들이 다 그러하듯 나 역시 전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나 가족들 앞에서 주책스러울 만큼 나는 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Newjersey. Mantua 라는 곳은 한국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자연히 전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미국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면 큰길거리 한복판에 서서 큰소리로 전도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섬기는 교회가 한인교회다 보니 늘 아쉬움만 가지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웃보다 더 급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대단한 열성으로 남묘호랑계교를 믿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서 믿는 사람이라면 괜히 치를 떨었던 우리 형제들에게 먼저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가족들과 인연을 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우리 가족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무렵 어머님은 40년 동안 앓아 온 지병인 당뇨병이 무척 심해져서 숨쉬기조차 힘들어하셨고 눈도 실명직전이었고 거기다 합병증으로 신부전증까지 앓게 되어 일주일에 3번을 투석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집에는 매일같이 남묘호랑계교를 믿는 사람들로 붐볐고 어머니는 여전히 본전님께 매달리며 치성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그 길이 당신께서 낫는 길이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님 앞에서 예수는 입에도 담을 수 없어서 나는 어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예수를 믿고 천당가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어머님을 지배해 온 사탄이 어머님을 쉽게 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본전님을 믿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다급해졌습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기에 목사님과 상의를 한 후 어머니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아버님을 설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 어머니 편이시며, 예수 믿는 사람 핍박이라면 어머니 못지 않게 완강하신 아버님은 그래도 아들이 예수 믿고 잘됐다니까 조금은 누그러지신 편 이셨기에 나는 아버님부터 설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참으로 놀라운 고백을 하셨습니다. 벌써 오래 전 그러니까 50-60년 전에 아버지는 이미 세례를 받으셨고, 아버님 외할아버님이 장로님이어서 그 영향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녔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도 결혼 초에 아버님과 몇 년간 교회에 다니셨는데 그 때 내 위의 두 형이 죽고 누나가 죽자 어머니는 당신께서 교회를 다녀서 자식이 죽었다면서 그때부터 교회를 증오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이 흉이 될까봐 말씀을 안 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버님 고백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한번 자녀 삼은 영혼은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다가 이제 때가 됨에 나를 도구로 삼으셔서 아버님, 어머님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저 예수 믿고 얼마나 잘 됐습니까, 예수 믿고 얼마나 평안한지 아시지요. 그러니까 아버님도 예수 믿으세요. 이제는 예수 믿고 나중에 천당가시면 그곳에서 만나야 하잖아요. 아버님이 예수 믿어야 자식들도 잘 살수 있어요.

재물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평안하면 만사형통이 됩니다. 아버님이 예수를 믿어야 어머니도 믿을 것 같습니다“ 하고 생전 처음 아버님께 예수 믿는답시고 설교를 했습니다. 부모님들의 가장 약한 것은 자식 잘 된다는 것이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우선은 아버님 마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그래, 내가 예수 믿어서 모두가 편하다면, 자식들이 잘 된다면 예수 믿자“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오래 동안 떠나있던 아버님이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날부터 남묘호랑계교에서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아버님 명령 하에 내쫓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식들까지 나와서 본전님께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어머님이 돌아가시는데 식구들이 저러면 더 빨리 돌아가신다고, 빨리 어머니를 모시고 본전님께 나오라면서 자식들이 어머니를 죽이고 있다고, 악을 악을 쓰며 악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악담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어머님만이 여전히 못마땅해 하셨지만 그래도 세례까지 받으신 아버님의 설득이 많이 통했던지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하루는 나는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는 마음으로 어머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나 예수 믿는 것 아시지요? 그리고 예수 믿어서 잘 된 것도 아시지요? 어머니도 이 좋은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어보니까 참 좋습디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셔서 천당 가시면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어머니 지금 예수 안 믿으시면 천당 못 가요, 그러면 어머니 저희들 다시 보실 수 없습니다“ 하고 간곡히 말씀드리면서 혹시 어머니께서 화를 내시고 쓰러지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을 하며 살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어머님이 눈에 눈물을 글썽이시며 “그래 네가 믿어서 잘되었으면 그 예수는 진짜 예수인가 보다. 네가 믿는 예수 나도 믿자, 내가 예수 믿어서 너희들도 편하고 나도 편하면 믿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멘“ 하고 큰소리를 치고는 내친 걸음에 어머니 방에 있는 불당을 치워야 할 것 같아서 “어머니 제일 먼저 저 불당을 치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치울테니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어머님은 “그래 그렇게 해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몇 십 년을 당신의 신으로 모시고 매일 빌던 불당을 하루 아침에 버린다니 어머님이 무척 힘드셨으리라 나는 생각되었지만 강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 방에 들어가 불당을 치우려고 하는데 그 순간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두려움이 한순간 기분 나쁘게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목사님께 전화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큰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면서 불당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 전능하십니다“고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그 불당을 모조리 치우시고는 “이것은 내가 가져가겠습니다. 이것 아무것도 아닌 나무 상자지만 그래도 두려워 하실것 같아서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하시며 우리 마음을 잘 알고 계신 목사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불당을 치우고 그 자리에 십자가를 걸어 놓았습니다. 할렐루야!

어머님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셨고, 날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와 말씀을 주시며 어머님을 위로하셨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어머님이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세례를 받을 준비를 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세례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세례를 주시는 날 “어머니, 예수님 믿으시지요?“ 하고 목사님께서 물으시니까 어머님은 기력이 없는 힘든 목소리로 그러나 힘을 다하여 “예“ 하셨습니다. 순간 나도 울고 아내도 울고 우리 모두는 울었습니다. 목사님은 목이 메이시어 말씀을 제대로 못하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으신 후 목사님은 오실 적마다 “어머님 오래 못사십니다. 마음에 준비를 하십시오“ 하셨는데. 조금은 기분도 나쁘고 한편으로는 ‘설마‘ 또 한편으로는 그럴까,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아무도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가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투석을 하시는 과정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고 목사님이 기도하시고 가신 그 다음날 어머님은 돌아가신 것입니다. 새벽에 나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서 얼굴을 보았습니다. 주무시는 듯이 평안한 모습 그대로 가셨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죽는다고 했는데 어머님은 천국 가는 것이 기쁘셨는지 너무도 평안했습니다.

어머님 장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독교식으로 치루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모두들 “어머님이 언제 예수 믿으셨어요?“ 하고 물어 보셨고, 목사님께서 그 동안 어머님께서 예수 믿게 된 경로를 말씀하시면서 우셨고 나도 울고 듣는 모든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다만 한 무리 울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남묘호랑계교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 형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버님도 예수 믿고 보는 사람들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시고 다니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핍박하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우리 집안이 몽땅 예수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옛날에는 조상 제사 안 지내는 예수쟁이들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시던 우리 아버님이 어머님 돌아 가신 지 1년 첫번째 제사로 목사님을 모셔다가 추모예배를 드렸고, 1년에 서너 번 있었던 제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 추모예배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버님은, 보는 사람마다 “예수 믿어 보시오, 우리 아들 예수 믿고 그 못된 성격 고치고 복 받고 사는 것 보시오, 예수 믿으면 참 좋대요“하며 전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 화재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이 집사의 세탁소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 부부가 믿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도록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업은 날로 날로 번창해서, 남들은 일이 없어서 문을 닫는데 우리는 일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받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은 우리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타운은 한국사람이 우리밖에는 없는 동네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를 왔을 때 우리는 어디를 가나 구경거리였습니다. 가까운 필라델피아나 근처 딴 동네는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유독 우리 동네는 한국 사람은커녕 타민족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차별도 심했고, Shopping을 해도 어디를 가도 구경거리였습니다. 이사를 할까?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사업터도 있고 또 한국 사람이 없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 교육에 더 나을 듯 싶어 주저앉았던 것입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있는 동네에는 아이들이 몰려다니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야기되었습니다. 아시안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놀리는 거였습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아이들이 받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혀서 날이면 날마다 학교 교장에게 찾아가 책상을 치며 항의도 해보고 별 짓을 다해보았지만 학교장에게 사과문만 받았지 정작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놀리는 아이들 집에 쫓아가 따지고, 엄포를 놓고, 학교에 찾아가 항의를 하고 말 그대로 전쟁이었습니다.

그 즈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항의도 엄포도 모두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민 온 부모 때문에 죄 없는 우리 아이들이 희생물이 되고 있다면서 어른도 견디기 힘든 저 스트레스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뭐든지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도록 가르쳤고, 또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었습니다.

지금은 세월 탓도 있겠지만 어쩌다 학교 모임에라도 가면 모두가 우리를 압니다. Hi! Mr. Mrs Lee! 하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림을 받던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 칭찬을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활동도 잘하고 그래서 지금은 모두들 대환영을 해줍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여기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인정도 받고 친구들도 많아졌고 아이들 나름대로 이겨나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우신 하나님이십니까? 나의 작은 입술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 전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할렐루야!

환난 날에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리라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는 가운데 사업은 날로 번창해졌습니다. 전에는 꽤 큰 가게로 여겼지만 이제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작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밴으로 배달하던 것이 이제는 트랙터 Truck으로 배달을 해야 할 만큼 일거리가 많아 쩔쩔 매게 되었습니다.

또 내가 하는 사업은 많은 기계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라서 일이 많아지면서 기계도 더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장이 작아서 도무지 새로운 기계를 설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빌딩을 늘리려 해도 우리가 있는 지역이 주택지 한가운데 있었으므로 더 이상 상업용 건물은 증축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믿기 전 같았으면 제 성격에 허가를 내주지 않는 Town Ship에 날마다 찾아가서 항의하고. 따지고 싸우면서 화풀이를 했을 것이지만 이제는 따지지 않아도 싸우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계시기에 그 분께 그 문제를 맡기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98년이 지나고 99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지난해에 주신 복을 감사하며 새해 소망 감사헌금을 드렸을 때 목사님께서 새해 기도 제목을 잊지 말고 써내라고 했습니다. 매년 하던 일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더욱더 신중을 기해서 써넣었습니다

1. 가족의 건강을 올해도 지켜주시고
2. 사업 터에 빌딩을 증축할 수 있도록 여건을 허락해 주시옵고.
3. 올 한해도 굳은 믿음으로 교회 일 할 수 있도록.

이런 기도제목을 써서 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4월이 지나고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친구 신 목사님께서 다른 교회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못난 나를 위하여 늘 눈물로 기도하시고, 참으로 많은 사랑을 베푸셨던 목사님께서 가신다니 나로서는 굉장히 힘들었고 섭섭했지만 더 좋은 곳으로 가신다고 하니까 작별을 고했습니다.

신 목사님은 5월 13일날 GEORGEA. ATLANT로 가시고 우리 교회는 새 목사님이 오시면서 한바탕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고 지나간 것 같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신 목사님 가시고 그 다음주부터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간에 우리 공장 옆에 사는 이웃들이 간간히 불평은 했지만 그런대로 잘 넘겼는데 이웃들의 불평이 불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Town ship 에 고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커가면서 많은 배달 트럭이 수시로 드나들고 그것으로 인하여 소음도 많아져서, 늘 미안했기에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연말연시나 특별한 날에는 잊지 않고 카드와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잘 지내오던 이웃들이 고발까지 한 것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며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한번 고발이 들어가면 어김없이 거금의 벌금을 내야했고 전화 항의가 들어오면 무엇을 항의하는지 알지 못한채 미안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나는 Town ship 을 찾아가서는 우리가 증축을 하면 주변환경도 깨끗해지고 또 이웃들도 좋아할 것이니 허가를 내달라고 거의 때를 쓰다시피 매달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주민들의 언성이 높은데 더 늘리면 더 시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늘릴 수도 없고, 일은 자꾸 많아지고, 벌금은 날이면 날마다 내야 되고, 이웃과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는 초죽음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소음도 줄이고 차량통행도 줄이지 않으려면 딴 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감을 줄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주실 때는 분명히 그 물질로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인 교회를 지어야 하며, 주신 물질의 만 분에 일이라도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사명이 내게 있다고 믿었기에 그 명령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만약을 대비해서 건물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금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벌어 놓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건물 값도 만만치 않고 또 그 많은 기계를 다 옮기려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감을 줄이고 주저앉기로 결정을 한 후 Town Ship 에 가서 사정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일을 줄여 주위 환경에도 신경을 쓸 테니 그냥 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서 조건부 승낙을 얻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닌 것을 나는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인 나는 그것을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일감을 줄이고 주위 환경에 신경 쓰면서 조건부에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 가게에서 한국사람 한 명을 새로 고용을 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가정이 깨지고 오갈 데가 없다고 사정을 하는 바람에 불쌍한 사람 돕는 심정으로 일을 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가족과 떨어져 마땅한 거처도 없이 떠도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내 딴에는 좋은 일 한답시고 공장 바로 옆에 집을 마련해 기숙사를 만들어 침식을 제공해 줌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법 성실하던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저 사람 성격이 이상하고 무서워서 같이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니 우리도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지켜본 결과 더 이상 딴사람과 같이 있게 해서는 안될 것 같아 그 사람을 불러놓고 당신은 이런 곳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니 좀더 좋은 곳으로 가서 일해 보라고 좋은 말로 타이르며 나가줄 것을 당부해야 했습니다. 그 동안 수고 많이 했다며 마지막 주급을 준 것이 99년 7월 2일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토요일에 공장에 가보니 아직 그 사람이 가지 않고 있었지만 오늘 내일로 가겠지 하고 예사로 여겼습니다. 7월4일은 주일이자 미국 독립기념일이라 모두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고 여름은 절정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날도 어김없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필라델피아에 계신 아버님을 뵈러 갔습니다. 막 도착하자 전화가 왔고, 전화 목소리는 너무도 다급하게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네팔 메니져가 Boss! Fire. fire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놀래서 어쩔 줄 모르고 허겁지겁 달려갔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우리 공장까지 30분이 채 안 되는 거리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가까운 하이웨이로 들어서자 벌써 온 동네에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사방은 운전이 불편할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고 소방차 소리도 요란했습니다 아내는 차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주여! 만 외치고 있고. 내 귓가는 갑자기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이시여! 제발 불을 좀 꺼 주십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불을 좀 꺼 주십시오.

공장에 도착하니 공장은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물건들 그 많은 기계가 시커먼 연기와 시뻘건 불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기절하고 나는 할말을 잊은 채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많은 소방대원들이 침착하게 불을 끄고 있었지만 너무 늦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 가게는 포기하고 딴 곳으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소중한 시간과 우리 가족의 피와 땀이 서린 그 공장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심정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나는 하나님밖에는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어쩝니까? 하나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상황을 어찌 해야 합니까? 나는 불타는 공장 앞에서 털썩 주저앉아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침착해야 한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는다. 더 힘들어진다.‘ 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기 전에 불같은 성격이었습니다. 화가 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있는 대로 부숴버리고 집어던지고 이렇게 난폭하게 해야 성질이 풀렸던 아주 못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황당한 현실 앞에서 나는 의외로 침착했습니다.

그때, 우리 공장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이 하나 둘 TV News를 보고 듣고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너는 그 한국 사람을 조심 했어야 해. 그 사람이 너에게 앙심을 품고 너를 죽이려고 어제 하루종일 총을 사러 다녔는데 어쩐 일인지 총을 사지 못하니까 불이라도 지르고 나간다면서 절대로 이대로는 못 간다며 악을 썼는데 진짜 불을 지른 거야.“ 모두들 이구동성 그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나는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분노하는 마음으로 혹시 그 사람이 아직 여기 있지 않을까 하고 살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팔짱을 끼고 여유 있게 불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눈이 뒤집혔습니다

“내가 저것을 죽여 버릴 것이다. 저놈을 잡아 저 불 속에 집어넣을 거야“하고 흥분을 못 이겨 뛰어갈 찰라에 나는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네가 죄인을 벌하지 말라, 심판은 내가 한다.‘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내 성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새파랗게 질려서 달려 왔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저놈은 내가 벌할 일이 아니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야“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놀라고 있었습니다. 그 절실한 순간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힘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 사람이 방화했다는 물적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말만 믿고 옛날 그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그 사람을 불 속에 집어넣었더라면 나는 더 큰 어려움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임하셔서 참음과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는 불이 타는 공장 앞에서 슬픔보다는 은혜에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어려움을 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언가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하시고 이 힘든 과정을 통과하라고 주시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12시간을 태우고 완전히 잿더미로 변한 공장을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지자고 잿더미 앞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보험회사로 전화를 했습니다. 보험 회사와 통화하는 동안 나는 또 한번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혀야 했습니다. 십 몇 년 전에 아주 작은 가게였을 때 들어 두었던 그 보험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기계 값만 해도 백오십만불이 넘는데 십오만불 때. 그 보험 그대로 있었습니다.

너무도 화가 나서 보험회사와 싸우고는 전화를 끊은 후 다시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이제는 어쩐다 어쩔꼬, 하고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잊고 있는데 또 하나님께서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 이것은 모두 내 잘못이다, 내가 그 동안 한번도 보험을 확인도 안하고 보험비만 내고 있었던 내 잘못이다. 이것은 모두 내 잘못이다‘ 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저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물질의 덧 없음을 보여주신 하나님! 내 가족을 지켜주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며 기도한 후 평정을 되찾고는 차근차근 풀어가기로 했습니다.

우선 건물 보험비로 건물을 장만해야 할 것 같아 그 다음날부터 건물을 보러 다니는데 하나님의 역사를 또 느꼈습니다. 워낙 급한 상황이다 보니 이것저것 보러 다닐 여유가 없어 그전에 건물을 사러 다닐 때에 보아두었던 건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건물 중에 마음에 들었던 건물이 있었는데 그때는 너무 큰 것도 같고 값도 맞지 않아서 포기한 건물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해서 물어 보니 아직 팔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급한 김에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전에 그 건물을 미리 보게 하시고 내 마음속에 있게 하시고 팔리지도 않게 두었다가 가장 필요한 때에 쓰게 하신 것입니다.

많지 않은 보험비와 융자를 토대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계를 넣고 공장을 지으려면 적어도 6개월은 걸리는데 당장 단골손님들이 문제였습니다. 매일 배달을 해야 하는데 공장이 없으니 일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님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있었기에 밤 시간을 이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남의 공장을 찾아보았습니다. 다행히 한군데 거의 망할 것 같은 공장을 찾긴 했는데 문제는 사용료를 너무 많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익은커녕 그저 손님들 떨어지지 않게 지킬 수만 있으면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니 무조건 들어가서 밤에만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밤일을, 나는 낮에는 새 공장 짓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아내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임대 받은 공장 주인으로부터 온갖 잔소리와 멸시와 무시를 당하면서도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 뜻이 있음을 믿고 우리에게 닥친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녁밥 한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이리 저리로 시달리고 나는 나대로 자금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동안에 Credit 이 좋아서 여기 저기 융자가 가능했습니다. 세탁공장 기계는 기계 하나가 큰 것은 백만불이 되는 가격이다 보니 보험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마련한다는 것은 힘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처럼 힘든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있을 것을 믿고 아내는 새벽기도에 가서 울며 매달렸고 나 역시 매일 기도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하나님이 아니 계셨더라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소망과 희망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기도하며 일을 처리해나갔습니다. 그렇게 불이 난 지 6개월이 조금 안 된 12월초에 드디어 우리는 공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예전보다 4배나 큰 건물에다 기계는 8배 크게 늘려 Open을 했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찬 순간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엄청난 비용을 들여 새 공장을 지었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동안 많은 손님들이 떨어지고 겨우 큰손님 한군데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동안 떨어졌던 손님들에게 전화를 하고 괜찮다면 다시 와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손님들이 차일 피일 미루면서 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늘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 해주시고 불이 났을 때 그 먼 곳에서도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그리고 하루에 한번은 꼭 전화로 위로와 기도를 하시는 신 목사님께서 “집사님 개업감사예배 안 드렸지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다리고 계신 듯합니다.

빨리 시간을 내어 간단하게나마 감사예배를 드리십시오“하며 개업감사 예배를 드릴 것을 권면해 오셨습니다. 그제서야 우리부부는 아! 하고 입을 벌리고 할말을 잊었습니다. 믿음만 있었지 믿음에 연륜이 없다보니, 또 너무 다급한 나머지 또 너무 좋은 나머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는 엉뚱한 일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던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우리는 개업예배를 서둘렀습니다. 특별히 신목사님께서 Atlanta 에서 오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예배 전에 나에게 흰 봉투 하나를 건네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루기 위해 아마도 그 동안 숱한 어려움을 주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며 건네준 봉투에는 우리 부부가 써넣었던 새해 소망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 기도 제목에 사업터 증축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 이것이었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억하고 계셨구나. 우리는 우리가 한 기도도 잊어버리는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기도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구나. 얼마나 감사한지. 주책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나는 잠시 그곳을 피해야 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사랑하는 친구 신 목사님, 처제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 형님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 우리 교회에 목사님 이렇게 네 분 목사님이 오셔서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때가 2000년 2월 초였으니까 미련하게도 Open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개업감사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후 우리는 놀랍도록 부어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날로날로 번창하는 사업은 아마도 우리가 세운 기계사이즈만큼 8배는 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믿는 사람만 보내주셔서 서로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말하기로 우리 공장이 미국 동부에서 제일 큰 세탁공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덤으로 사는 목숨
그때는 11월 마지막 주였을 것입니다. 일이 많이 밀려서 아내를 미리 보내고 나는 12시까지 일을 하다가 공장을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습니다.  Highway 를 빠져 나오는데 갑자기 집 채 만한 물체가 내 차로 달려들었습니다, 순간 피하려고 핸들을 돌리며 클랙슨을 울리는데 “꽝“ 하고 내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나는 ‘주여!‘를 외치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경찰이 나의 뺨을 때리며 나를 깨우고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정신없이 불빛을 비추며 돌아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경찰은 나에게 쉴새 없이 뭔가 묻고 있었지만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누워있는데 아내가 새파랗게 질려서 달려왔습니다. 그때는 나도 정신이 들어 대강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니 특별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손으로 온몸을 더듬어 보았더니 상처는커녕 긁힌 자국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큰 사고라, X-ray도 찍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집으로 가도 좋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차 부수러기며 파편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고 현장에 갔다가 내 차가 어디에 있으며, 누가 나를 받았는지 알기 위해 경찰에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형사가 “당신 이 차 주인이냐?“ 고 물으면서 “안 죽고 살아 있었느냐?“ 고 했습니다

목사님께 연락을 한 뒤 경찰이 알려 내 차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안 죽고 살아 있었느냐면서 차 상태를 보니 사망 아니면 중상인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찾아 왔느냐고 놀랬습니다. 도대체 내가 당한 사고가 어떤 사고였단 말인가? 나는 내 차를 보는 순간 그제야 그들이 놀랬던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차가 완전히 두 동강이가 되어 한마디로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던 것입니다. 산 지 두 달도 안 된 새 차가 종이 짝처럼 구겨져 있었습니다. 미국의 스쿨버스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탱크처럼 육중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한데 그것이 받았으니 그만큼 망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급하게 집사님을 들어 올리셨나봅니다. 차가 이렇게 부서졌는데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기적입니다“ 하시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아! 하나님께서 내가 부딪치는 순간 그곳에  함께 계셨구나!

다음 주일 감사헌금을 내고 사고 난 몸으로 찬양대회까지 참가해서 그 기쁨을 온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미 죽어야 할 몸,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사탄의 올무에서 건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고, 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건져 주셨고, 그리고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셔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민 생활 20여 년 동안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을 것 같습니다. 내가 잘나서 받은 것이 아니라 거저 받은 것이므로 저도 받은 은혜를 거저 나누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는 제목이 있다면, 미국 동부에 한인들을 위한 양로원과 수도원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을 세울까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말도 안 통하는 미국 양로원에서 미국음식을 먹고 죽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좋은 시설과 함께 신앙을 심어주어 모두들 천국가게 하는 그런 값진 일을 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내게 허락하신 기업을 성실히 경영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신앙의 연륜이 짧아서 더 많이 배우고 쫓아가야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교회에서도 열심을 다해 섬기고 싶습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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