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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장로/ 감옥안의 구원 파노라마
1998년 02월 01일 (일)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박효진 장로/ 서울 명문교회, 전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 대대장

 나는 술이 만취가 되서 탁자를 짚고 일어서려 했다. 그 때 구석에 있던 수족관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빛 속에 고기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그 수족관에 볼을 댄 체로 안을 들여다 보니 세상에, 그 상황에서 눈물이 다 쏟아졌다. 만취된 가운데서도 눈물이 줄줄줄 쏟아졌다.

 "고기야, 니는 내보다 낫네. 니는 나같은 고민도 없고 괴로움도 없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살다가 때가 되서 죽으면 그 뿐이지. 나는 직장에서는 간부고, 교회가면 집사고, 집에 가면 남편이고 아빠고, 누가 봐도 그럴 듯해 보이는데 내 자신은 나를 잘 알잖아. 양파 껍데기보다 더 많은 껍질로 쌓여서 벗겨도 껍데기고, 또 벗겨도 껍데기고 마지막까지 벗겨내도 마침내 껍데기인 내 자신, 아내와 자식도 사랑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내 자신이 괴롭다."

 수족관을 붙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직원들이 부축해서 나를 끌고 나왔다. 직원들은 아마 내가 실신한 줄 알았던 것 같다. 자기들끼리 이런 얘기를 했다.

 "야, 이 박주임, 이거 완전히 갔다. 이제 술주정하다가 하다가 고기 붙들고 술주정을 하네."
 속으로 또 눈물이 나왔다. '아니다. 너희들은 모른다. 너희들은 내 마음을 모른다. 너희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   

 그 때가 86년도 말이었다. 집사 생활 만 8년 딱 차가던 시절,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껍데기 같은 인생을 살며 방황하던 내 인생의 처량한 단면이다. 

 나는 교회 집사 생활을 통틀어서 구년했다. 구년.... 우습게도 집사 생활 9년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꿈 속에서도 느껴보질 못했다. 그 9년 동안에 나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외면했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존재는 내게 있어서 상상 속의 하나님, 인간의 머리 속에 만들어 놓은 이념의 하나님, 종교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그래서 교리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이었다. 굳이 하나님에 대해서 논한다고 하면 우리 나라에 단군신화가 있듯이 이스라엘을 세운 건국신 여호와, 그 이스라엘의 건국신화가 우리 나라에 흘러 들어와 종교로 정착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인도에서 발상한 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듯이, 이스라엘의 건국신화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되었고 그 추종자가 많아지니 예배당이 많아진 것이 아니냐? 결국 법당과 교회당에 차이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일관된 나의 마음이었다. 집사 생활 벌써 9년이 될 때까지도 겉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어서 은혜로운 집사인 척, 하나님 잘 믿는 집사인 척 살았던 모습이다. 내가 그렇게 사니 자연스럽게 다른 성도들도 다 나같이 사는 줄 알았다.

 '저 사람도 실제로는 나하고 똑같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교리상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마치 수학의 공리와 같이, 뭐,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없다?
 당시에 다니던 직장은 경북 청송에 있는 청송감호소(구치소-재판을 받을 때까지의 미결수가 머무는 곳, 교도소-형이 확정된 사람이 형을 사는 곳, 감호소-상습적 전과자들의 보호 감호를 집행하는 곳)였다. 신앙이 없는데다 특수한 직장환경으로 인해 내 영혼이 황폐하던 시절이다.

 초임간부 시절에 이곳에서 생활했는데, 와서 보니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통이 넘었다. 나도 나름대로 배짱도 있다고 해서 들어왔지만 청송감호소에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일반 교도소에서는 전과 3-4범만 되도 큰소리를 뻥뻥친다. 대단한 존재다. 그런데 청송 감호소에 가면 별 3-4개는 현미경으로 찾아봐도 없을 지경이다. 5-6범 정도가 일반적이다. 대한민국의 전과자 중에서도 전과자들만 골라 놨으니까 5-6범 해봐야 교회로 말하면 초신자 정도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초급간부 생활을 한 것이다. 세상이 감당못할 사람들이라 날이면 날마다 사고를 쳤다. 지금도 잊지 못할 몇몇 재소자들이 있다.

 초급 간부로서 처음 발령을 받아 갔을 때 독방(한 평이 채 되지 않는다)을 죽 돌아보던 중에 일어났던 일이다. 잠깐 독방에 대해 설명을 하면, 독방은 사고를 치고, 도저히 다른 사람과 융화하지 못하고 둘만 있어도 물고 뜯고 싸우는 성격 파탄자들, 인격 파산자들을 어쩔 수 없이 가둬 격리를 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은 거의 매일 난리가 났다.

 이런 곳을 또 매일 순시하는 것이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래도 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는 한다. 교도관과 수용자 간에 최소한의 예의는 있으니까. 그들은 누웠다가도 교도관들을 보면 일어나 앉아서 인사를 했다.

 "갱생!",

 인사구호가 '새롭게 살자'는 뜻의 '갱생'이다. 이렇게 인사를 주고 받으며 중간 쯤 갔는데 한 사람이 일어나서 몸을 굽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나를 보고 당연히 '갱생'할 줄 알고 나도 미리 '갱...'하고 손을 올리다가 멈췄다. 보니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떡하니 앉아서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냥 그 곳을 지나치려 하다가 머릿 속에 그 잔상이 남았다. '조금 전에 얼핏 보았던 눈빛이 보통 눈빛이 아니다. 분명히 시비를 걸며 도전하는 눈빛이다.'

 그대로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서서 그 감방 앞에 섰더니 재소자가 아까보다 눈에 힘을 더 주고 노려보는 것이었다. 철창이 가로막혀 있으니까 나도 질세라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둘의 눈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보는데 감방 안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건방지게도 "뭘 보우?"라고 물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한다는 소리가 "너 본다, 왜?"였다.

 나도 질세라 대답을 하자 이 때부터 눈싸움은 끝나고 말싸움이 벌어졌다. 티격태격하다가 욕은 재소자가 아니라 감독자인 내가 먼저하게 되었다.

 내가 "나쁜 놈...운운."하자 재소자가 "왜, 욕하냐?"며 덤볐다. 따라서 싸움은 마른 장작에 휘발류 뿌리고 불을 붙인 듯 달아 올랐다.

 하나님을 알았던 때였다면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나는 힘의 논리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누가 더 강하냐? 누가 더 욕을 해도 더 세게 하냐?'라는 식으로 제압하려 한 것이다.

 그 친구는 감독자인 내가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열이 받아서 자기 머리를 벽에 받기 시작하는데 역도산이 박치기 하듯 그냥 막, '쾅, 쾅' 받아댔다. 그것도 잠시 "나, 죽는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와서 말리기 시작했다. 그 재소자와 나를 말릴 때에야 비로소 나는 못이기는 척하고 돌아오려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재소자를 붙들고 직원들이 사정을 하는 게 내 귀를 자극했다.

 "야, 야, 제발 니가 좀 참아라. 저 주임이 온 지 얼마 안 되서 아무것도 모른다."

 아 이게 무슨 거꾸로 된 일인가?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나. 나 보고는 참으란 소리 한 마디도 안하고 그 길길이 뛰는 전과 6범 보고 참으라고 하다니....

 보안과에 앉아서 하도 어이없어 나름대로 분을 삭이고 있는데 비상벨이 울렸다. 불길하게도 위치를 보니 조금 전 싸웠던 그 감방이다. 기동 타격대와 함께 출동을 했다. 달려가 보니 그새 이 녀석이 바느실로 자기 눈을 꿰매 버린 상태였다. 그것도 잘 보이라고 까만 실로 꿰맸다. 일부러인 듯했다. 그리고는 피를 똑똑 흘리고 앉아 있었다. 본격적인 길들이기를 시작한 것만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 흉악범들이 눈 꿰멘다는 얘기는 듣기는 들었지만 보기는 처음이었다. 사지가 덜덜 떨려왔다. 속에는 매스꺼운게 막 올라오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감독자였다. 감독자답게 그를 말리고 점잖게 다그쳤다. 그러자 이 친구 하는 말이 "세상 꼴도 보기 싫고 당신 꼴도 보기 싫어 꿰맸시다"는 거였다. 나도 질 수 없어서 한마디 덧붙였다.

 "임마, 아무리 사람이 꼴 보기 싫어도 니 눈깔을 니가 꿰매냐?."
 "화 나니까 자꾸 말 시키면 입도 꿰맬거요.!"

 나는 속으로 '설마 입이야 꿰매겠냐' 싶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 마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대(竹)못을 딱, 집어 들었다. 보아하니 대나무 젓가락을 부러뜨려서 화장실 시멘트 바닥에 갈고 갈아 초대형 이쑤시게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걸 갖고는 입을 잡고 산적 꿰듯이 푹 찌르니 볼 것도 없이 쑥 들어가 버렸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했다. 그 안에서 사람보기 싫다고 자기 눈 꿰매고, 말하기 싫다고 자기 입 찌르는 건 보통이었다. 이러니 직원들이 와서 오히려 나를 타박을 놓는다.

"주임님, 왜 자꾸 건드려서 사고치게 만듭니까? 이리 와 계세요."

 나를 한쪽으로 몰아 놓고는 또 그 재소자에게 사정을 했다.

 "야, 야 니가 좀 참아라. 왜 그러냐?"

수인들과의 전쟁
 그런데 이 재소자의 예는 주일학교 수준 밖에 안 되었으니 얼마나 기가막힌 노릇인가. 중고등부 수준 쯤 되면 마구 배를 짼다. 칼이나 유리로, 수틀렸다 하면 째는 것이다. 북북, 다 찢어서 피범벅을 만들었다. 그나마 기술껏 껍데기만 째면 다행인데 어떤 사람들은 복강까지 째버린다. 그러면 속의 내용물이 삐죽 삐죽 나온다. 이쯤되면 보통사람은 뒤로 자빠질 텐데 눈도 깜짝 안하고 자기 손으로 '들어가거라. 들어가거라'할 정도다.

 또 어떤 재소자는 형광등을 깨서 혓바닥을 가로 세로로 얼마나 썰었는지 걸레 쪽을 다 만들었다. 너덜너덜한 채로 병원에 끌고 가면 봉합수술만 4-5시간 걸렸다. 나중에 다 낫고 난 뒤에 물었다.

 "야, 니는 남보다 살도 많은데 허벅지나, 엉덩이를 째지, 하필 혀를 째냐?"
 그는 내 얘기를 듣자 "히 히" 웃으면서 말했다.

 "주임님, 뭐 잘 모르시는구먼요. 의사들이 제일 깁기 힘든 데가 어딘 줄 알아요? 혀죠. 해면체라 바늘도 잘 안들어가고 가위도 잘 안 짚이고 물컹 물컹해서 의사들이 제일 애 먹는데가 혀예요. 내가 이왕 째는거. 누군지 몰라도 의사 거 애먹일라고 혓바닥을 쨌어요."

 이러니 신앙도 없었던 내게는 그들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미웠겠는가? 1년 가까운 기간은 그들과 전쟁이었다. 나도 기강을 잡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그대로 두면 사고치고 범죄하니까 제압을 해야 되는데 방법은 딴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난폭한 인간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내가 더 난폭해져야 한다. 저 잔인한 인간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잔인해져야 하고 흉폭한 인간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내가 더 흉폭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게는 국가가 입혀 준 제복이 있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사용권이 있으니까 두들겨 잡는다. 한 일이 뭐냐? 너희들이.'

 인정사정 볼 것 없었다. 한평생 남들이 피땀 흘려 벌어놓은 돈, 밤에 들어가서 목에 칼대고 온 가족들을 위협해서 재물을 다 뺏아서 집을 패가망신시키고,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윤간해서 가정을 파괴하고, 봉고차에 처자들을 납치해서 사창가에 팔고, 이렇게 살아오며 온갖 행악을 자행한 이 인간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이들은 법이 좋아서 살려놨지 인간이 아니다. 이들은 쓰레기로 말하면 재활용도 하지 못할 폐품이다라며 늘 그렇게 바라보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늘 그러한 기준점을 갖고 있다가 걸렸다 하면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 때에 따라서는 그 한계를 벗어 나서도 그들을 다스리고, 징계하고 징치하고 살았다.

 그러자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직원들과 재소자들은 그대로 전면 전쟁일 뿐이었다. 거의 매일 전쟁양상이었다. 난동, 폭동, 인질,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과 맞붙어 싸우는 것이었다. 그 일 년 동안은 완전히 나도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위안되는 것은 있었다. '나는 국가의 공권력을 확립하기 위해서 의로운 싸움을 한다. 나는 정의다. 인간도 아닌 것들을 잡아야 하는 정의다'면서 하등의 양심의 가책이나 양심의 아픔이 없었다.

 일 년 동안을 그렇게 미친 듯이 두드려 잡다 보니 공권력을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결국 질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딱 잡혔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바로 나의 정신이 황폐해져 간 것이다.

황무지에서의 만남
 어느날 집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어린 남매는 자고 있었다.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세상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바람같은 것이 마음을 휙 훑고 지나갔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내인 것은 틀림없지만 아무 정감도, 아무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부간의 정, 끈끈한 정이 0.1%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남매에 대한 감정도 아무 사랑도 없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고 삭막하기만 했다.

 처음 며칠 간은 이렇게 생각을 했다. '내가 요즘, 직장에서 많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겠지. 며칠 지나면 낫겠지.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러나 갈수록 갈수록 골짜기는 깊어만 갔다. 미칠 지경이었다.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다.

 신앙없는 사람이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노상 집밖으로 나와서 술집만 드나드는 것이었다. 알코올이 내 중추신경을 마비시켜야만 질질 끌려 집에 들어와 자는 거지 그 외에는 집에 들어올 용기가 안 났다. 이것이 매일의 일상이었다. 재소자들은 제압했으면서도 나 자신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어서 망가져갔다.

 그 당시에는 아내가 많은 기도로 나를 뒷받침해줬다. 자다가 새벽녘에 목이 말라 눈을 뜨면 어김없이 아내는 내 머리 맡에 앉아 울며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우짜면 좋십니꺼? 좀 살려 주이소."

 내가 일어나 앉으면 아내가 무안하고 쑥스러워할까봐 목마른 것을 참고 실눈을 뜨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우리 남편 살려 주이소, 언제까지 이렇게 방황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타락해야 합니까?"

 남편된 입장에서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뿐 '이 미련한 여편네야,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이 새벽에 잠이나 자지. 누가 듣기나 하냐? 봐주기를 하냐? 하나님은 없다'고 속으로 호통을 쳤다.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일상이 계속됐다. 회복의 길은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그 해 연말에 이상한 소문이 들렸왔다. 그 당시에 내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읍내의 학교에 교편을 잡고 있는 이덕진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분이 은혜를 받았다는 소문이었다. 받아도 보통 받은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은사를 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분의 기도를 받은 문제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그 순간부터 하나님 앞에 돌아와 모범생이 된다는 믿기지 않는 일들도 일어났다고 했다. 마치 사도행전을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좁은 바닥이라 동네 기독교인의 모든 관심이 이선생님에게 쏠렸다. 골수 예수쟁이였던 아내도 이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지사다. 하루는 내가 아내를 점잖게 불러서 말했다.

 "항간에 듣자하니 이선생이란 분이 은혜가 충만하다는데 은혜가 별 게 아니다. 자기 감정에 도취되어 펄떡댈 수도 있다. 잘못된 세계를 볼 수도 있다. 사이비로 빠질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당신은 절대 그런데 관심을 갖지 말고 오직 말씀 중심으로만 살면 되는 거야!"

 믿음은 없으면서도 집사 경력 8년이니 입만 영글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지났는데 또 들리는 이야기가 이 양반이 사람을 보기만 하면 그 속을 다 뚫어 본다는 거였다. 품고 있는 생각, 숨겨진 죄, 영적 상태 할 것 없이 거울같이 본다는 얘기였다. 믿음이 없는 나였지만 그 소리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좁은 바닥에서 설사 길을 가다가도 마주쳐서는 안 된다. 만약에 지나가다 내 속을 들여다 보면 꼬라지가 뭐가 될까? 집사라는게 술 . 담배 . 화투에 절어있지, 아내와 자식도 사랑 못할 정도로 파괴된 심성이지, 집사 8년인데도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조금도 노력하지 않지....' 그 양반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치는 거다. 이것이 은혜받았다는 이덕진 선생님에 대한 행동지침 1호였다.

 그런데 행동지침을 무색케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87년 시무식을 하고 며칠 지났을 때다. 이덕진 선생님과 학부형 관계에 있다는 절친한 선배집사님이 내게 전화를 했다.

 "박집사, 그 은혜많이 받은 이집사님 알지? 그분 모시고 오늘 박집사님 집에서 예배 한 번 드리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20m 밖에서 봐도 튀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예배라니....' 생각할 것없이 "절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선배는 당황했다.

 "아니, 예배 드리자는 데 왜 그렇게 질색을 하냐?."

 번지르르한 나의 변명.
 "선배님, 예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 교회 교역자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야지 근본도 모르는 뜨내기를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다가 가정 제단을 쌓을 수 있습니까? 목회 윤리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멋지게 한마디했다. 집사 생활 9년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제의를 거절했는데 웬걸 집에 오니 상황은 달랐다. 이 선배가 그새 아내를 설득해 놓고 이덕진 선생을 초청한 것이다. 결국 내가 마음을 바꾸었다. '내가 한 번 창피당하지. 이덕진 선생이 은혜받은 사람이라니까 내 속을 자기 혼자 보고 말겠지. 떠벌이겠어? 우리 교회 교인이라면 안되겠지만 남의 교회 교인이니까 피하면 되고, 까짓거, 오늘 한 번 불쌍한 아내를 위해서라도 예배를 드리자.'

 마음을 바꾼데는 겨울이니까 내복을 많이 껴 입어서 이선생이 내 속을 들여다 보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무식한 용기도 작용을 했다. 일종의 방탄복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밤 9시쯤 이덕진 선생이 왔다. 그때부터 뚫려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하다가 오히려 역공을 취하기로 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앉아서 당하느니 공격부터 하자는 심산이었다. 나는 그가 자리에 앉자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듣기에 은혜를 많이 받으셨다는데 제가 묻는 것 몇 가지만 대답을 듣고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성경 속에서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있는데 술 먹지 말라는 것은 눈을 닦고 봐도 없습디다. 그리고 저는 담배를 하루 한 갑 반 이상을 피우는 줄 담뱁니다. 성경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구절은 또 어디 있습니까? 저는 또 고스톱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예요. 고스톱 치지 말라는 구절이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묻자 그 선생은 잠시 묵도를 하더니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딱 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더니만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대뜸 말을 시작했다.

 "집사님, 집사님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는 집사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드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게 하시는 이 놀랍고, 중요하고, 엄청난 진리를, 이 놀라운 말씀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아직도 눈뜨지 못했느냐? 니 마음에 아직도 확신이 없느냐?라는 물으심입니다."

 이선생은 그러더니 성경을 딱 덮고 "굳이 성경을 논하지 않고 얘기를 해봅시다"며 말을 이었다.

 "집사님 절에 다니는 사람들도 절에 갈때는 옷을 깨끗하게 갈아 입고 경건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얼음 깬 물에 목욕을 해서 정결하게 절에 갑니다. 그중에 경건한 사람들은 절에 갈 때까지 입에 수건을 물고 가죠. 부정한 말 한마디도 안하려고, 세상적인 말 한마디 안하려고 수건을 물고 가는 거예요. 다시 대웅전 앞에서는 자기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나무와 돌이나 쇠로 만든 우상 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배를 올립니다.

그런데 집사님을, 대웅전보다 위대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부르시고, 아무리 추하고 병들고 못났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죽은 우상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게 하신 이 놀라운 은혜 앞에서 술을 마실까, 담배를 피울까 따져보기 이전에 하루에 한 갑 반씩 담배 연기를 집어 넣었다가 뺐다가 이 성전을 굴뚝으로 만들 필요가 무엇입니까? 불교신자들이 대웅전에 들어가서 술 마시고 주정하는 것 본 적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 온갖 술들을 다 집어 넣어서 이 성전을 술독으로 만들 이유가 무엇입니까? 화투를 칠까 말까 따지기 이전에, 대제사장 한 명만이 그것도 일 년에 딱 한 번 온 민족의 죄와 자기의 죄를 들고가 벌벌 떨며 회개하던 지성소가 집사님 안에 완성되어 있는데 이 지성소를 모시고 기껏 술자리, 음란 비디오를 틀어 놓은 자리, 도박자리에 성전을 끌고 다녀야 될 필요가 무엇입니까?'

 쉬운 이야기였는데도 내 가슴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 '어, 맞다. 일리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동의가 아니라 내 생애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전적인 동의, 전인격적인 동의였다. 내 영혼이 아멘하는 순간이었다.

 그 날 밤은 그분이 그냥 갔다. 나는 혼자서 잠이 들 때까지 계속 그 날 있었던 대화를 생각했다. '하나님의 성전, 성령, 담배, 연기, 술, 술독, 제사장....'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맴돌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고 다음날 눈을 떴다.

새로운 피조물
 1987년 1월9일 아침이었다. 내게는 새로운 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놀라운 대변화의 중간단계에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꿈도 한 번 꾸게 하지 않으시고 환상도, 내적, 외적 체험 등 느낄만한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다. 단, 분명한 원인자 하나가 있었다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말씀에 따른 이선생의 말씀 해설과 그에 대한 나의 아멘만이 있었다. 이것만으로 하나님은 소중한 변화를 허락했다.

 그 날 아침 출근하니까 나의 모든 것은 이미 다 바뀌어져 있었다. 담배연기도 냄새를 못 맡게 되었다. 술은 먹기는커녕 잔도 못들게 되었다. 직장 동료들은 어제까지 잘먹던 후배가, 잘 마시던 친구가 죽어도 안 먹겠다니까 아연실색을 했다.
 "입술만 댔다 떼라!"
 "그것도 안 됩니다."
 "잔만 받아라!"
 "잔도 못 받습니다."
 "에라, 이 놈!"

 술을 확 끼얹는 상관도 더러 있었다. 다 덮어 썼다. 술을 덮어 쓰고 울었다. 그 눈물은 결코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내게는 감격과 감동의 눈물이었다. 주님이 나를 변화시킨데 대한.... 나는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내 유익과 직장에서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서는 충분히 먹고 마시고 아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뇌물까지라도 갖다 바칠 수 있는 내 기질을 내가 잘 안다. 이것이 내 본질이다.

 이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근본적인 생각부터 욕구까지 보혈의 손을 대셨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앉아서 술잔을 덮어쓰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저 같은 인생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까?'라며 감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술 . 담배 . 화투 모든 것이 팽개쳐져 버렸다.

 그렇게 먹던 술을 한 잔은커녕 냄새도 못맡을 정도로 완벽하게 하나님이 바꿔놓았다. 내 자신이 '술을 안 먹어야 겠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겠다. 화투를 치지 말아야 겠다'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성령께서 나의 욕구와 욕심과 생각의 근원을 틀어놔 버렸다. 그렇게 피우던 담배를 오늘 이 순간까지 냄새도 못 맡도록 근본적으로 만드셨고 지나가다 쓰레기통에 화투장이 버려진 것을 보면 '와, 팔공산 고돌이 팬데. 저거'라던 나, 화투치는 자리가 있으면 그냥 그 자리에 끼고 싶었던 과거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이 영혼을 강권적으로 바꿔 놓으니까 화투라는 것을 내가 쳤던 기억이나 있었던 사람인가 할 정도로 바꿔 놓으셨다.

 그 다음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토록 미웠던 감호자들이 하나하나 눈물의 대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매일 끌어안고 우는 게 일이 되었다. 앉아서 울다가, 울다가 생각하면 또 다른 감호자가 떠오른다. '내가 00에게 너무했구나.' 생각나면 그가 있는 감방으로 찾아 간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렇게 옮겨진다. 인간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도 간부직원이자 감독자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 속에서 감독자라는 것을 다 집어 던지고 나의 발걸음을 그 감방 속까지 인도를 하셨다. 그 속으로 들어가 감호자들과 울며 불며 "내가 잘못했다. 나를 이해하고 용서해 달라"며 "내가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네게 했던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용서해달라"고 했다.

 그 때 왜 그렇게 주님이 눈물을 주셨던 걸까. 하나님이 심령을 새롭게 하신 다음 눈을 뜨고 보니 하나님이 감호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순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는 누구도 미움과 저주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증오의 대상이었고 미움의 대상이었고, 정죄와 판단의 대상이었고, 때려 죽여도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던, 그 저주스러웠던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하나 보면 눈물이 나고, 뒤통수만 봐도 눈물이 펑펑펑 흘렀다.

내 자신이 눈물을 통제해 보려고 발버둥을 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몸부림을 쳐봐도 멎지를 않았다. 넉달 동안을 눈물 속에서 살았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잠시만 눈을 감아도 지금까지 미워하고 묶고 두들겨 패며 악을 쓰며 독을 피우던 내 모습과, 그들의 처참한 모습들이 하나 둘, 하나 둘 계속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니까 내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서러움, 후회, 죄스러움,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기 시작하여 눈물의 샘이 멎지를 않았나 보다. 평생 울 것을 그 때 다 울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나를 변화시킨 눈으로 바라보니, 지금까지 생각하고 판단해온 것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한 순간에 깨달아졌다. '아니었구나.' 이 형제들을, 이 제소자 형제들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고, 이들은 저주하고 판단할 대상이 아니고 어느 한 사람 빠짐없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의 배후에서 그들의 전인격을 지배하고 그들을 조정하고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미혹의 영들과 더럽고 추악한 음란의 영들의 문제가 하나님앞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간 그 자체, 껍데기만 보고 전과 5범, 전과 6범, 흉악범이라는 것만 보고 이들을 판단할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이 한순간에 깨달아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또한 넘쳤다고 하시는 말씀같이 전에는 저주받은 곳, 형벌의 땅이 이제는 주님이 찾아 오시는 장소가 되었다. 주님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관심과 뜨거운 사랑을 가지시고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피흘리는 손바닥을 앞세우시고 그 15자 담장을 넘어서, 철장을 넘어서 찾아 오셨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들도 찾아 오셔서 흉악범이든, 전과 8범이든, 9범이든, 사형수든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올리시면서 구원해 내시는 구속의 역사를, 담장 속에서 펼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내가 다니는 직장마다 함께 하셨지만 이 중에서 지면관계상 다른 것은 생략하고 서울 구치소에서의 일을 말하고자 한다.

"니 죽을 준비 됐나?"
 서울 구치소에 와서 가장 놀라웠던 일은 사형수를 만나는 것이었다. 가슴에 붉은 색 명찰을 찬 사형수들을 지나칠 때면 느낌인지 몰라도 피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사형수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피냄새다. 느끼한 듯, 비릿한 듯 끈끈한 점액질 냄새가 감으로 와 닿았다. 그들은 눈빛도 달랐다.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눈이 번질번질하고 일반 재소자와는 사뭇 달랐다.

 이들을 먼저 전도하자는 마음으로 40여 명의 사형수들의 성분을 조사했다. 종교적 성분을 조사해보니 17명이 기독교인으로 등록돼 있었다. 그나마 17명, 다행이었다. 그래서 일단 17명부터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전도 전략도 세웠다. 기독교인 중 제일 센자부터 잡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찾아보니까 두영(가명)이라고 하는 자가 보스였다. 힘도 좋고, 덩치도 커서 다른 사형수들의 형님 격인 사람이었다.

 그와 대면을 했다. 조그마한 방의 소파에서 마주 앉아 수인사를 하며 "나는 청송감호소에서 온 박효진 장로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거듭남의 체험이 있는 사람인지 아무리 느껴 보려고 해도 안되었다. 영적인 냄새가 전혀 맡아지질 않았다. 참 답답했다. '이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래가 되겠나?' 이런 마음이 계속 생겼다. 그래서 이말저말 하다가 아예 정공법으로 나가기로 했다.

 "야, 두영아. 니 죽을 준비 됐나?"

 이렇게 묻자 말자 그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마음에 셔터내리는 소리가 '철커덩'하고 들리는 듯했다.

 사실 사형수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죽는다'는 소리다. 죽음과 관련된 단어는 사형수들이 절대로 듣기 싫어한다. 하나의 '금기'인 것이다. 내가 "죽을 준비 됐냐"고 묻자 반갑지도 않은 손님인데다 금기까지 깨트리니 만정이 떨어졌나 보다. 눈을 내리깔고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 자세다.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두영아. 니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기분 나쁘게 '죽을 준비 됐냐'고 묻겠냐? 그러나 두영아 따지고 보면 너만 사형수가 아니고 우리도 다 사형수 아니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사형수다. 하나님 앞에 전부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형수들이다. 너희만 사형수가 아니야. 언제 갈 지 모르는 인생, 너희만 죽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 사실은 나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런 차원에서 하는 얘기이니 고깝게 생각지 말고 내 말 들어라."

 그래도 그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오늘은 틀린 것 같았다. 다음에 며칠 있다가 마음 가라 앉으면 살살 달래가며 이야기하자는 생각으로 일어서려다가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인데 기도라도 하고 헤어져야 안 되겠나'는 마음으로 다시 앉아서 손을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냉랭하고 형식적인 기도였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두영이에게...."

 아무리 형식적인 기도라도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 있는 법인데 오히려 돌덩이, 쇳덩이를 앞에 두고 기도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는 등어리에 송충이가 스물스물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너무너무 이상했다. 한 번도 기도하다가 이런 느낌이 든 적은 없었는데.... 그래서 도대체가 이상해서 입으로는 기도를 하며 눈은 살그머니 뜨고 두영이를 보았다. 그 순간 두영이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뗑그랑!' 종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기도하는 처음부터 두영이는 눈을 뜨고 나를 꼬나보고 있었나 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살그머니 조심스럽게 작은 눈을 떴고 눈을 마주쳐 버린 것이다. 얼마나 놀랐겠는가. 가슴에 불이 떨어지는 것 같아 얼른 눈을 다시 감았다. 그 때부터 마음에는 온갖 생각이 왔다 갔다했다. '아이고, 창피해라. 부끄러워라.'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영적으로 이런 창피가 없었다. 명색이 장로라면서, 사형수에게 '니 죽을 준비됐나?'라고 그럴 듯하게 말해 놓고는 완전히 체면을 꾸겨버린 격이었다.

 기도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언어와 언어가 연결이 안되고 단어와 단어는 혼란스러워졌다. 중언부언이었다. 그 때 어김없이 심령 속에서 '꿇어 앉아라, 꿇어 앉아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문제 해결 안 되면 꿇어 앉는데서부터 시작하면 됐다. 마음 속에 들리는 음성대로 두영이의 손을 잡고 꿇어 앉으며 기도를 하자 아까 느꼈던 수치심도 사라지고 어느덧 눈물이 쏟아졌다.

 "주님, 주님. 앞에 있는 두영이가 불쌍합니다. 영혼이 너무너무 안 됐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 영혼, 이 강퍅한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찢어질 듯합니다. 주님, 우리 두영이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우리 두영이를 살리소서."

 한참, 울면서 기도하자 두영이의 반응도 아까와는 달라졌다. 이제는 아예 두영이의 목을 끌어 안게 만들었다. 두영이도 주춤주춤 하더니만 나의 목을 끌어 안게 되었다. 결국은 같이 목과 가슴을 끌어 안고 기도할 때부터 눈물과 눈물이 교차되며 기적이 일어났다. 두영이가 한참을 울다가 얘기했다.

 "계장님, 저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죽음이 무섭습니다.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죽음을 생각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봤는데요. 이제는 알겠습니다. ...준비를 해야죠."

 그는 통곡을 했고 이후부터 기적적으로 변화되었다. 감방에 앉아서 날마다 찬송하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두영이의 삶이 그 날의 기도를 계기로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을 나가도 성경을 품에 갈무리를 해서 떼놓지를 않았다. 그것도 폼(?)을 잰다고 목까지 잡아 올려서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게다가 동료 재소자들을 만나면 "00아!" "네, 형님!", "우리, 죽을 준비하자, 잉!" 그러면 사형수들이 기겁을 했다.

 "형님, 미쳤수? 재수없이 죽을 준비라뇨?"

 "아니야. 죽을 준비해야돼. 죽을 준비하자!"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죽을 준비를 하자고 했다. 두영이의 변화된 모습은 서울구치소의 사형수 세계에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와! 두영이 형이 변했다."
 "두영이 형이 저럴 수가 있나!"

 구치소 안의 화제거리였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형수들 사이에서도 그의 회심은 큰 충격이고 도전이었다. 나도 이 모습을 보고 큰 소망을 갖게 되었다. 우리 사형수 형제들에게 성경공부반을 만들어서 멋지게 운영을 해보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해가 다가기 전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사형집행 소식이었다. 명단을 보니 기가 막히게도 그 많은 사형수 중 두영이가 제 1순위로 내정이 돼 있었다. 그것은 서울구치소에서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명단을 보자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졌다.

 '하나님, 꼼꼼하시고 세밀하신 하나님, 두영이의 마지막 날을 정하시고 그 날이 가까워 오게 되자 지금까지 전혀 준비되지 못했던 그의 영혼을 사랑하셔서 이 촌놈, 청송감호소 바닥에서 살고 있는 나를 이곳까지 끌어 오셔서 그의 죽음을 준비시키셨구나.'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여정을 묵상해보니까 그냥 하나님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 날 신우회원들이 모여 "오늘, 마지막으로 가는 저 형제들을, 그 무서운 사형장에 그냥 던져 놓을 수 있겠나. 우리가 가서 같이 위로해 주고, 같이 기도해 주고, 하나님 나라 가는 그 길을 배웅하자"며 마음을 정하고 사형장 지원근무에 들어갔다.

사형장이 '하늘가는 밝은 길'로
 사형수들은 자신이 지내던 감방에서 불리워 나와 긴 지하복도를 걸어서 자신이 목 매달려 죽을 지하실 밑을 통과한다. 사형장 밑을 통과하면 바로 문이 있다. 사형수들은 계단을 올라 문을 밀고 집행하는 곳에 앉게 된다. 그게 사형장이다. 나도 그 때 사형장은 처음 와 본 것이다. 처음 들어오니 얼마나 삭막하던지.... 신우회원들은 일단 이 곳에 들어와서 굵은 밧줄밑에 둘러서 통성기도부터 했다. 밧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을 옭아 죽였는지 기름이 묻은 듯 반질반질했다. 그것을 보니 비위가 휙 뒤틀렸다. 매스꺼움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믿음이 생기질 않았다. 오늘 이곳에서 목 매달려 죽어야 하는 믿음의 형제들, 불쌍한 사형수들이라는 인간적인 애처로움과 서러움이 계속 베어 나왔다. 나는 그래도 믿음이 조금 있는 줄 알았는데 사형장에서 정말 믿음없는 사람임을 되새겼다. 절망의 상황에서 믿음이 있고 없음이 드러나는 법인데 그 사형장에서 내 자신이 진실된 깊은 믿음이 없음을 통감했던 것이다.

 어쨌든 통성기도를 하고 한 교도관 집사가 마무리 기도를 했다. 기가막힌 기도였다.

 "하나님, 우리도 무섭습니다. 우리도 두렵습니다. 하물며 이 자리에서 이 땅을 떠나야 할 사형수 형제, 자매들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저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이곳이 죽음을 맞는 공포의 자리가 아니라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천국의 문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 주십시오. 절대로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가는 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시오."

 이 기도를 듣고서야 나는 '저게 맞다'며 안심을 하고 정리가 되며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 저것이 바로 믿음이요, 이 자리에서 성도들이 내릴 수 있는 정답이다.' 나도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하이고 집사가 장로보다 낫데이'라고 감탄을 했다.

 사형수들을 데려오는 일을 우리가 하기로 했다. 사형수들이 감방에서 사형장까지 오는 길은 죽는 것보다 더 무서워 하는 길이다. 이 길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감방 안에 앉았다가 '00번 나와!'라는 소리를 들으면 발버둥을 친다. 쇠창살을 붙들고는 '나는 안 가! 못 가! 살고 싶어, 죽기 싫어!'하며 발버둥을 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팔을 비틀어서라도 수갑을 채워서 들고서라도 목을 매달아 집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끌려 오면서 그렇게 어머니를 찾는데 '어머니, 어머니' 그렇게 목놓아 울며, 부르며 그 길을 온다. 창틀 사이에 조그만 들풀이 피어 있어도 그곳에 코를 대고 폐부가 찢어 지도록 풀냄새를 맡는 이도 있다. 마지막으로 조그만 쪽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창문틈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고 땅 한 번 바라보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수갑을 차고 끌려 오면서도 생의 마지막 발걸음들이 두렵고 아쉬워 그냥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보폭이 5cm도 될까 말까 하게 발걸음을 뗀다. 그렇게 오다가 일부러 자기 신발을 벗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담당님, 저 신발 벗겨졌습니다'라면 다시 신발을 주으려 또 돌아온다. 그만큼 더 살겠다고. 또다시 신발있는 데로 돌아와서 신발을 신고 돌아서고 한발자욱이라도 벌며 1분, 1초라도 좀 더 살아보고 싶었던 생명에 대한 처절한 애착이다. 죽음의 길에서 보여주는 사형수들의 모습이다.

 그날은 사형수 데리고 오는 일을 신우회원들이 맡아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뜨거운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간다는 이 위대한 소망을 계속 그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을 복음으로 충만하게 세워 주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혹시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한쪽 편의 강도처럼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신우회가 그 일을 맞게 되었다. 교도관 중 제일 믿음 좋은 집사님 4-5분을 골랐다. 우리는 그 때 집사님들에게 부탁했다.

 "집사님들 사형수들을 데리고 오실 때 절대 그냥 오지 말고 잠시 잠깐 걷더라도 할렐루야,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하고,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 복음을 전하고 끝까지 도와줘야 합니다."

 한참 후에 두영이가 올라왔다. 나는 가슴 속에서 치미는 서러움을 꾹 참고 있었다. 서러운 표를 안 내려고, 안타까운 표를 안 내려고 억지로 참으며 덤덤하려고 애썼다. 그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아까 약속한 대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졌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선 두영이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옆에 따라오던 집사님의 얼굴은 사형수처럼 긴장되어 굳어 있고 오히려 두영이가 복도에 늘어선 직원들을 볼 때마다 큰 소리로 "할렐루야, 할렐루야"하고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들었던 "할렐루야"는 잠시 후에 사형이 집행될 두영이가 외치는 소리였다. 아까 입을 맞춘 집사님들은 생전 처음보는 사형장의 그 무섭고 음산한 분위기에 짓눌려 오히려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안스럽고 애처로워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고개만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데 두영이가 오더니만 내 앞에서 서서 손을 꼬옥 잡았다. 나도 손을 잡았다. 할 말이 없어 한참을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두영아, 그래. 니 먼저 하나님 나라 가그래이."

 세상에 이런 인사가 있을까? 생떼같이 젊은 사람을 먼저 가라고 하다니. 어색한 가운데 두영이의 대답은 의외로 강한 어조로 되돌아왔다.

 "예, 장로님. 저 아버지 나라 먼저 갑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너무나 당당한 목소리에 놀라서 그때서야 두영이의 얼굴을 봤다. 그 순간 나는 뒤로 떠밀릴 정도의 놀라운 영적 권위와 권능이 그의 온 몸에서부터 확 끼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이 오로라같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이 권능과 권위는 어디서부터란 말인가. 이해가 안 되었다. 두영이의 얼굴은 절대 평안이었다. 5분 뒤면 죽을 사형수의 절대적인 당당함, 소망, 기쁨, 이 모든 것이 복합된, 표현하기 어려운 그 표정. 사람으로서 지어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좌중을 압도하는 가운데 두영이는 인정 심문받는 자리에 앉았다. 그 곳에서 심문을 마친 뒤에 그가 저지른 그 끔찍한 죄상을 읽는 순서였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살해하고...."

 소장이 상세하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두영이가 말을 끊었다.

 "소장님, 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소장님, 소장님이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었던 죄였습니다. 만일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지금 소장님이 읽은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늦게나마 하나님을 알고 난 뒤에 그분은 제 모든 더러운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억도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믿고 8년 긴 세월 살다가 오늘 아버지 나라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그 더러운 죄, 하나님께서 기억도 않으시겠다는 그 죄를 또다시 제 귀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하나님이 깨끗게 해 주신 영혼과 육신 그대로 아버지 나라 갈 수 있도록 제발 그 더러운 죄목을 읽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담담하고도 당당하고도 조리있는 말 앞에 소장도 인간적으로 그만 감동이 되어서 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었다.

 두영이가 예배를 다 드리고 마지막 하직인사를 마치고 유언을 하는 시간이 왔다. 두영이의 입 가까이에 녹음기를 갖다댔다. 마지막 유언은 녹음을 다 해서 최대한 들어주려고 힘써 준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하고 유언을 했다.

 "소장님, 검사님, 그리고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 제 마지막 유언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제가 믿는 하나님을 다 믿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잠시 후면 죽을 사형수의 유언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유언이었다. 나는 얼핏 스데반 집사님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이내 혼란스러워졌다. '이건 이상하다. 두영이가 이럴 수 없다. 겨우 자기 믿음 하나 지키기도 급급한 상태였는데....'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두영이는 밧줄 밑으로 끌려갔다. 그 얼굴에 흰 두건이 쓰여지고 목에는 밧줄이 걸렸다. 이제 스위치만 누르면 떨어져 죽는 순간이다. 전부 다 긴장해 있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들릴 정도의 적막이 계속되었다. 신우회원들은 손을 맞잡고 안타깝게 두영이를 보내고 있었다.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 침묵의 시간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일을 많이 보고 늘 근심하여도...."
 찬송가가 울려 나왔다. 깜짝 놀랐다. 누가 부르는가 살펴보니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운 두영이가 그 속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이 찬송을 담대하게 부르던 중 '덜커덩'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저 무서운 지하실로 그의 몸이 뚝 떨어져버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그 밧줄 밑에 내 형제가 매달렸다. 그 영혼은 아버지의 나라로 갔지만 육신의 생명이 끊어지는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허공에 매달린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렇게 두영이는 갔다. 두영이의 시체는 마지막 유언대로 해부실습용으로 의사들에게 내어 주었고 눈, 신장 등 쓸 수 있는 장기들은 떼내어져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뉘어졌다.

구원 방주에 오른 지각생
 사형장에는 작은 충격이 일었다. 사형집행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의아해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따르는 사형수 형제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형제들, 끔찍한 살인 사건을 일으켰던 태호와 용수, 그 젊은 아이들, 26, 27세의 꽃다운 젊은 아이들이 차례차례 올라왔다.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한 이들이었다. 비록 믿음의 삶은 충만하게 따르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예수의 이름 앞에 갈등하다가 결국 예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얼마나 놀랍게 변했던지 그 젊은이들의 유언을 듣고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범죄 속에 뛰어 들어서 죄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오늘, 이렇게 젊은 나이에 사형장에서 제 일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어버리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에 저는 너무 너무 귀중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예수님을 만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 손에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기도해왔습니다. 오늘 아버지 나라로 가는데요.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그분들의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기도하겠습니다. 제 마지막 유언은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만난 이 하나님을 똑같이 만나시고 저와 함께 천국에서 꼭 다시 한 번 저를 만나 주시는 겁니다. 그곳에서는 사형수 태호가 아니고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태호로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태화의 얼굴에도 똑같이 두건이 씌워지고 목에는 밧줄이 걸렸다. 마찬가지로 그도 찬송을 부르며 갔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사형장 내에 충격은 더해갔다. 이제 남은 용수도 그러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형수들은 어느 한 사람 빠짐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해같이 밝은 모습으로, 담대히 주님의 나라를 증거하며, 천국가는 소망을 감사하고, 마지막까지 예수를 전하다가 갔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못나게 말할 필요도 없다. 본 그대로이다. 한 사람은 코미디언 같이 히죽거리다 갔다. 신앙고백도, 유언 한마디도 옳게 들을 수 없었다. 히히덕 거리기만 했다. 죽음 앞에서 넋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 사형수는 더욱 가슴이 아프다. 처음부터 끝까지 울다가 갔다. 울어도 그냥 운 것이 아니다.

 "어으흥, 어으흥, 어흐, 어흐"

 이 울음은 20분 동안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도 신앙고백, 유언 한 마디 못남기고 그렇게 악스럽게 울다가 갔다.

 다음 차례로 올라온 사형수는 별명이 '도사'였다. 행동이 점잖고 수양도 많이 된 사람이었다. 나이도 50대 중반이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사형수가 되었을까"라며 의아해 할 정도로 도사였다. 수양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바늘로 누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 한 5분쯤 있다가 "아~ 야"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 사형장으로 왔다. 계단을 올라오는데 기가 막혔다.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는 힘을 다 잃어 버린 모습이었다. 계단 하나를 오르지 못해 질질 끌려 오다시피 했다. 그가 밧줄을 보는 순간에 "어흐"하는 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 상태로 인정심문하는 자리에 앉았기에 제대로 될 수 없었다. 한두마디 하고 나서부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전혀 딴 말만 내놓았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그러다가 5분쯤 지나자 원망을 시작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잘되는가 보자."

 저주하고 원망하다가 결국 터져나오는 것은 욕설밖에 없었다. 그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개새끼들"이라는 한마디였다.

구원방주에 오른 지각생
 똑같은 공간, 똑같은 상황에서 예수의 이름을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마지막 모습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가장 진실한 최후의 모습이 천양지차로 갈라졌다. 그 차이를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본, 예수를 믿지 않는 직원들의 마음 속에까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이 휘도는 듯했다.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나의 입술이 달싹여졌다. '용필이, 용필이....' 그에 대한 기억이 아쉽게 떠올랐다.

 그는 구치소 내에서 직원들에게는 '꼴통', 같은 재소자들에게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예를 들어 감방에서 같이 앉아 밥을 먹다가 용필이가 갑자기 젓가락을 들고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전부 다 식사를 중단하고 용필이를 봐야 한다. 그가 입을 열고 이렇게 말한다.

 "아, 요새 말야, 꿈자리도 어수선한데 아무래도 곧 집행이 있을 것 같아. 이번에 내가 달릴 것 같은데 이걸로 오늘밤에 누구 눈깔이나 팍, 파버릴까?"

 그러면 그날밤에 눈알을 파일까 싶어서 아무도 잠을 이루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매사에 그는 문제아였다. 사고나면 '용필이'였다. 남의 것 뺏어 먹었다 하면 '용필이', 폭력을 휘둘렀다 하면 '용필이.' 어느날 내가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용필아, 예수 믿고 천국가야 한다."
 "아, 웃기는 소리하지 마세요. 그런 것 없어요."
 "영혼 구원을 받고, 예수믿고 천국가야 한다."
 "그런 사치스런 소리는 어디가서 배부른 사람한테나 해 보쇼. 계장님 내 신세되보세요. 그런 소리 나오는가. 우리하고는 관계 없습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하다하다 안 되서 전도전략을 바꿨다.
 "용필아 그러면, 내가 아는 분들 중에서 부자에다가 돈 잘 쓰는 집사님을 소개해 줄테니까, 그 집사님이 매주 한 번 너를 찾아와서, 물론 올 때는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니 좋아하는 치킨, 옷, 물품을 사오도록 해 줄테니까 예수 한번 믿어라. 그리고 성경공부 한번 해보자."

 이렇게 얘기하자 구미가 당겼던지 두번째 나를 만날 때는 "생각해 봤는데 꼭 계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믿어보죠"라고 했다. 그 소리가 곧 내게는 기적이었다. 저 입에서 '예수 믿는다'는 소리 한마디가 기적 중에 기적이었다. 그런데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용필이에게 집행 날이 다가온 것이다. '양육한 번 못해 보고....' 복음 한 번 전해보지 못했다. 사도신경이 무엇이며, 예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한 번 전해보지 못하고 사형 당하게 생겼다. 그러니 내 마음이 어땠겠는가. 하나님 앞에 원망도 토해 놓았다. 하릴없이 집사님들께 "용필이가 복음을 모르니까. 오는 도중,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음의 진리를 완벽하게 전하고 그 입으로 신앙고백을 받고 오십시오"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사형대에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무엇이 급해서 그렇게 빨리 데려가십니까? 몇 달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하다 못해 예수 믿고 천국간다는 그 고백이라도 하고 가야하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도신경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용필이를 어쩌실렵니까?"

 기도하며 마음에 오기마저 생겼다.

 "하나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전에 용필이가 '예수 믿죠'라고 한 그 한마디도 주의 이름을 부른 겁니다. 그러니 구원해 주셔야 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주님, 구원해 주십시오."

 기도를 한 30분 했는데 용필이가 올라왔다. 그런데 아까 올라왔던 불신자는 용필이에 비하면 오히려 신사였다. 용필이는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다리에 힘을 잃어 덜렁거리듯 매달려 오는데 안면 근육은 완전히 돌아갔고 입으로는 침을 질질 흘렸다. 신경이 다 마비된 듯했다. 동공도 풀려 있었다. 인정심문하는 자리에 앉혔는데 용필이가 하는 짓이라고는 입을 벌리고 앞을 보다가 뒤에 있는 밧줄을 쳐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앞을 보다가 뒤를 보다가, 이 짓만 기계처럼 되풀이했다. 소장이 한참 보다가 더 볼 것 없다는 듯 "집행하시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직원들이 우루루 달려와서 용필이의 양쪽 팔을 쥐고 밧줄 밑으로 질질 끌고 갔다. 끌려가는 순간 용필이는 그나마 남아 있던 의식세계가 해체되버린 것 같았다. 극심한 공포로 완전히 실성한 모습이었는데 그것을 본 순간, 나의 심령 속에서 '그냥 보내면 안 된다'라는 음성이 가슴을 쳤다. '절대로 그냥 보내면 안 된다.' '이대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성령님의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음성이 내 영혼을 타고 올라왔다.

'그냥 보내면 안 되! 그냥 보내면 안 되!' 내가 이 음성에 동의하자 말자 거의 반사적으로 뛰어가 밧줄 밑에 다가간 용필이를 가슴으로 끌어 안게 되었다. 성령이 강하게 몰아 붙인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직원에게 "니 팔쫌 놔라!"며 팔을 풀고 끌어 안고 그 길로 돌아서서 소장님과 딱 눈을 마주쳤다.

 "소장님, 시간을 조금만 주십시오. 소장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소장님, 이대로 보낼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나는 절규했다.

 "예, 예, 예? 소장님 조금만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예수 믿는 자들의 역사 앞에 소장도 감동이 되었던 것 같았다. 나를 보더니 "좋습니다"라는 허락을 했다.

 용필이를 내 앞에 눕혔다. 몸이 완전히 물먹은 솜처럼 풀어져 있었다. '용필이는 복음이 뭔지도 모르고 믿음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를 눕혀 두고 집사님들을 보고 부탁을 했다.

 "여러분 우리가 용필이를 위해서 한번 기도해 주십시다."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 집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팔을 잡고, 다리를 잡고, 몸통을 붙들고, 그냥 쓰러져 울부짖기 시작했다.

 "용필아, 용필아!"

 그의 영혼이 불쌍해서 우는 울음이었다. 사형장은 한순간에 눈물의 통곡장으로 변해 버렸다. 사형장 천장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나도 용필이의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 안았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이제 용필이는 우리 꺼다. 우리 꺼다. 절대로 안 놔줄 꺼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기 전에는 용필이를 안 놔줄꺼다. 오늘밤이 다 지새봐라 죽어도 안 놔준다. 강제로 끌고가서 목을 매달아 죽여봐라. 우리도 다같이 매달려서 같이 죽어버릴 끼다. 안 놔준다. 안 놔준다.' 오기가 생겼으나 욕심에 불과했다. 직원들 손에 용필이를 넘겨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 사이의 갈등이 너무 아팠다. 우리들의 목이 다 쉬어갔다. 그런데도 소장도 그만하라는 얘기도 못하고 직원들도 어느 누구하나 그만하라고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전부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용필이가 일어서려고 꿈틀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손을 다 놔주어 용필이가 일어서도록 해주었다. 그가 반쯤 일어서더니만 수갑찬 손을 기도하듯 꽉 쥔 채로 갑자기 "주여, 주여!"라는 말을 턱 내뱉었다. 그 순간 우리는 착각을 했다. 용필이가 두려움과 공포 속에 넋이 나가버린 상태, 정신적 공황 속에서 많은 직원들이 "주여, 주여!"를 외치니까 그 소리에 용필이가 도취되어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에서 무의식 중에 뇌까린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서서 두 손을 높이 들더니만 소리높여 외쳤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두 마디를 몇 번이고 외치기를 시작했다. 얼마나 담대하게 외치던지 우리도 새로운 눈으로 용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폭포같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입으로는 자신을 받아 주신데 대한 감사를 계속해서 외쳐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외쳐 대더니 조금 진정이 되었나 보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위대한 기적을 보았다. 용필이의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할 수 있었을까? 무엇으로 그를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10분 전까지만 해도 온몸의 근육이 다 마비되고 동공이 풀리고, 침까지 질질 흘리며 걸레처럼 끌려오던 그가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붙들자 말자 먼저 간 두영이에게서 보았던 완벽한 평화의 모습, 죽음을 앞에 두고도 복음을 가졌기에 당당했던 사형수 형제들의 모습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의 눈이 뜨여진 것이다. 그가 소장과 눈이 마주치자 말자 수갑찬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예를 다한 인사 앞에 소장은 자기도 모르게 "어, 예..."하며 반쯤 인사를 받았다. 인사 후 용필이의 얘기가 이어졌다.

 "소장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장님,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시고, 승진하셔서 저희 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장님 만수무강하십시오."

 또 깊이 인사를 했다. 사형수의 공손한 인사와 유언 앞에 소장마저 마침내 격앙된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만 손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파묻고 나즉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용필이의 상상을 넘어선 변화 앞에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대비되어서였을까? 소장으로서는 그 신비한 상황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우리는 용필이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바로 그 때였다. 그의 손을 통해서 나는 몇백만 볼트가 넘는 전류의 충격을 받는 듯했다. 이것은 성령 충만이 극치에 달한 상황이었다. 손으로 감지될 정도의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사로잡힌 감격과 기쁨과 감사가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용필이를 보았다. 그는 건드려도 터질 듯한 충만과 충만으로 벅차오르고 있었다. 그 벅찬 감격을 이기지 못해 용필이는 또 손을 들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서 바라보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 순간 하늘의 문을 여시고 온 우주의 성령 충만함을 용필이에게 다 부어주는 것 같았다. 용필이는 기쁨의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형장 안에는 기이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굵은 밧줄, 여러 사람의 목을 옭아 기름이 반질반질한 줄을 가운데 두고 사형수 한 명과 교도관 신우회 직원들이 "주여, 주여 내 말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하며 덩실 덩실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 놀라운 모습앞에 누구하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충격이었으리라.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그 거룩한 충격 앞에 어느 누구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압도되었다. 시간이 되어 결국 용필이도 이 땅을 떠나갔다. 여러 사형수 형제들을 보내고 나는 사형장의 차디찬 바닥에 앉아 울고, 또 울었다.

 '내 눈을 뜨게 해 주신 주님, 믿음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 저는 지금까지 두영이의 믿음이 위대했고 태호와 용수의 믿음이 대단했고 용필이의 신앙이 놀라웠다고만 알아 왔는데, 나를 포함한 이들 모두가 다 똑같이 본질상 사망의 세력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 예수의 이름을 가진 그 자가, 그가 잘 믿든, 못 믿든, 예수 이름을 가졌다는 그거 하나로 하나님의 성전을 삼으셔서 마지막 죽음 앞에서 순식간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그들의 영을 덮기 시작하면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느낄 수밖에 없는 죽음의 공포를 성령께서 몰아내 주시고 모든 사망의 두려움을 천국의 소망으로 바꿔주시니까, 그들이 그토록 담대한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앞에 눈을 떴습니다. 할렐루야!'

 그 사형수들이 대단한게 아니었다. 사형수들의 믿음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하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 그대로 성령을 보내셔서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내시고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끌어 가시는 구원의 절대 주권이 선포된 것이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위대할 뿐이다. 여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박효진 장로 인터뷰
4.5m 담 안의 선교사

 정윤석 기자

   
    ▲ 박효진 장로
박효진 장로(서울 명문교회 . 49)의 사무실(서울구치소 경비대대 본부)까지 가는 길에는 4.5m 높이의 담벼락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갑갑한 기분이 든다. 감옥에서 복음 전하는 어려움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다. 재소자들의 마음에도 그 담벼락만큼이나 높은 담이 있을 것같은 분위기다.

 사무실에서 만난 박효진 장로도 이 점을 인정한다. 재소자들의 마음까지 가는 길은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담이 에워싸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을 구원시키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박장로는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구원받은 자의 영혼을 해부하면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만일 해부가 가능하다면 구원받은 자의 영혼 속에는 수없이 많은 복음의 씨앗들이 촘촘이 박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마치 해바라기씨처럼, 복음이 인간의 영혼을 채우고 채우다 결국에는 '한 송이 국화'처럼 구원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재소자들이 구원을 받기 까지는 박장로가 알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복음의 씨가 그들의 마음을 두드려왔다는 얘기다.

 따라서 박장로의 구치소에서의 전도 전략은 중 . 장기적으로 긴 안목을 갖고 세워진다. 복음의 씨를 자주, 오랫동안 뿌릴 뿐 아니라 재소자와 대화하고, 상담하고, 필요를 채우고, 인간의 정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확신이다. 교도소 안에 있는 110여 명의 신우회 직원들도 이를 위해 철저히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 결과 구치소는 사형수 형제들의 영혼이 구원받는 생생한 구원의 현장이 되었다.

 독특한 현장 얘기들은 교인들에게도 매력이 있었다. 교회와 교인들의 초청이 끊이지 않아 지금까지 500여회의 간증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잘 얘기해 준다.

"살아있는 동안 들풀 하나, 공기 한 모금에도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겠다."(혜림교회 이종혁 성도)

"하나님은 누구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변화된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생생하게 일깨워준 간증이었다. 강퍅했던 재소자들, 흉악한 살인자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사역을 목회현장에도 동일하게 나타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평성교회 송영수 목사)

밖에서는 담장 안의 기적들이 큰 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장로는 이에 대한 도전이 결국 재소자들이 사회로 나갔을 때도 적응을 하며 받아 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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