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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흥수 판사/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1998년 01월 01일 (목)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문흥수 /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학교 시절
 나는 충남 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나의 집은 아늑한 산골에 있었는데, 백제시대 의자왕 때 세워진 향천사라는 절이 집 근처에 있었다. 나는 사람이 열심히 수행을 해서 욕심을 끊어버리고 해탈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었으며, 대학 졸업 때까지 불교 신자라고 생각하였다. 반면에 기독교는 믿어야만 하고, 교회를 다녀야만 하며,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독선적으로 보여졌고, 불교보다 수준이 낮은 종교로 생각되어졌다.

 그런데 고 2때 영어선생님이 시편 23편을 영어로 외우는 숙제를 내 주었다. 그래서 시편 23편을 영어로 외웠는데 그후 등하교 시간이라든가 밤에 잠들기 전에 시편 23편을 외우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4당 5락이라고,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자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인데, 잠자리에 들면 그 날 공부한 내용들이 머리 속에 연달아 떠오르며 머리 속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이때 시편 23편을 두세 번 외우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편안히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마 대학 시험 때까지 시편 23편을 1천 번은 넘게 외웠을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서울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연고대도 합격한 사람이 없는 소위 3류 학교였는데, 나는 시편 23편의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말씀대로 거뜬히 서울법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모든 영광을 시편 23편을 주신 하나님께 돌린다.

 시편 23편은 기적의 말씀이다. 시편 23편을 하루 세 번 이상 묵상한 사람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간증을 들어본 일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불교신자였으므로, 시편 23편의 깊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시편 23편을 수없이 묵상할 때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시편 23편 말씀은 공부하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외워서 자주 묵상해야 할 말씀이라고 믿는다. 마음 속으로 묵상하는 것도 좋지만, 소리 내어서 입술로 시편 23편을 외우는 것이 더욱 좋은 것 같다.

대학시절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까? 그렇지 못했다. 시편 23편 때문에 일류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신앙이 깊어진 뒤에야 알 수 있었고, 당시에는 내 자신의 노력으로, 내 머리가 좋아서 천하 제일 서울법대에 합격한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기고만장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고시 공부를 잘못하여서 비후성비염이라는 콧병이 생겨 수술하고 약 한 달을 쉬어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인생의 근본 목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면서, 고시 공부에 대하여 회의가 생겼다. 인생의 목표가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일을 하며 좋은 삶을 사는 것이어야 하는데, 육법전서를 달달 외운다고 좋은 사람이 되겠는가라는 회의가 생겼다.

 그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일어났다. 좋은 책을 읽으면 좋은 책 안에 들어 있는 좋은 내용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서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제일 좋은 책을 읽어 나가기로 하였다. 내가 생각한 제일 좋은 책은 사서삼경, 불경, 성경 등의 경전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교양 차원에서 사서삼경을 읽었지만, 고리타분한 얘기들로 생각되었을 뿐이었고, 신약성경 마태복음을 보니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걷고 말 한 마디로 병자들을 고치는 얘기들이 황당무계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마태복음도 제대로 다 읽지 못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인류의 제일 좋은 책들로부터 제일 좋은 것들을 받아들여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겸손한 생각으로 사서삼경을 읽으니 가슴에 와 닿는 진리가 그 속에 있었고, 성경을 읽으니 정확히 이해는 안 되었지만 그 속에 엄청난 진리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3일에 걸쳐서 신약성경을 요한계시록까지 다 읽고 나니까, 무언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느끼게 되었고, 성경공부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가 되어 다시 고시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졸업을 앞두고 가장 바쁜 때였다.

 그때 캠퍼스 게시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요한복음 공부를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성경공부반에 들기로 하였다. 내가 혼자 앉아서 성경을 읽을 때 한 시간에 10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면, 성경공부시간에는 백 가지, 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분들에게는 이와 같은 소그룹 성경공부가 대단히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 성경을 대하는 분들은 구약성경보다는 먼저 신약성경을 통독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정독을 하면,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에 믿음의 길로 들어가기 보다는 오히려 더 의문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신약성경 처음 책인 마태복음 1장부터 예수님의 족보가 장황하게 나온다. 이런 부분이나 전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그대로 뛰어넘고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염두에 두면서 요한계시록까지 한 번 최대한으로 빨리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마찬가지 방법으로 구약성서를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구약성서를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였는데, 유대민족의 창조설화처럼 생각되었을 뿐이었고, 창세기 10장까지만 읽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라함, 야곱, 요셉 등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시작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안타깝다. 구약성경 중 창세기, 출애굽기를 읽고, 넘어가서 사무엘상하를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 다음에 또 뛰어넘어서 시편이나 잠언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잠언을 처음 읽었을 때, 구체적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교회생활과 죄사함의 확신
 요한복음 공부를 마치고 나자, 교회에도 다닐 생각이 나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사법시험을 앞두고 목사님께서 온 회중 앞에서 나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를 해주셨는데 지금도 목사님의 기도가 귀에 쟁쟁한듯 하다. 그리고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목사님의 기도를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법연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에 계속 나가는데 교회에서 가장 많이 전하는 메시지가 십자가의 도에 관한 것이었다. 목사님께서 기도와 설교말씀을 언제나 십자가의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하여 그 사랑에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어떻게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의 그 모든 엄청난 죄가 청산될 수 있는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기운이 완전히 빠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때 갑자기 십자가의 의미가 깨달아지는데, 폭포수처럼, 번개처럼, 깨달음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동정녀를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유, 하나님의 귀하고 귀한 독생자로서 깨끗한 생명을 모두 쏟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이유가 믿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온 천하를 얻고도 그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너희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니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 죄많은 인간의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질 생명도 천하보다 귀한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죄없고 흠과 티가 없는 깨끗한 생명이라면, 그 가치가 천하보다 만만배 귀하고, 그 생명을 아낌없이 희생하셨다면, 인류의 죄가 비록 천하보다 무겁다고 하더라도 모두 깨끗이 청산되고 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경륜을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면서 이 우주의 창조주요, 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시다. 그분께서, 피조물과 대화하고 피조물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친히 피조물이 되시고, 처참히 십자가에서 희생되시면서 모든 생명을 쏟으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그 사랑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누리지 못하는 데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왜 죄악이 관영하고, 불공평과 부조리, 가난과 질병, 전쟁이 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주인이요, 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서 가장 처참한 자리에까지 나아가셔서 인류를 구원하였다는 십자가의 망극한 사랑을 깨닫게 되자, 나는 "하나님 당신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생명을 모두 쏟으셔서 인간을 구원하셨군요,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군요. 이 사랑을 모르고 방황한 것은 저의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의 망극한 십자가의 사랑에 저 자신이 온전히 녹아져서, 그 사랑을 누리고, 기리고, 찬양하고, 높이고, 전하고, 본받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삶의 시작
 그 후 나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십자가의 구원의 도를 언제나 어디서나 열심히 전하게 되었다. 버스 속에서도 기차 속에서도 택시를 타도 만나는 사람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게 되었고, 저절로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게 되었다. 주일 저녁, 수요일, 금요 철야, 그리고 새벽기도도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수습을 할 때인데 밤 늦게까지 술자리 회동을 하다가 - 다만 술은 거의 마시지 못했다 - 새벽 1시에야 잠을 자게 된 날도 추운 겨울 4시 30분에 드려지는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새벽기도를 하고 나서 공부를 하면 머리가 명경지수처럼 맑아서 머리 속에 쏙쏙 흡수가 되고 번개처럼 마음이 민첩하게 움직여서 어려운 법률지식을 폭넓고 또 깊이있게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어렵다는 사법연수원 시험에서 수석으로 졸업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었다.

  새벽기도의 중요성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루에, 이를테면 나무 열 그루를 베어야하는 짐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하는 것은 그 나무를 베는 연장을 날카롭게 가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시리라고 하셨다. 예수님도 언제나 새벽 미명에 기도를 드리셨다. 기독교의 역사적인 부활도 새벽에 일어났다. 그야말로 달디 단 잠을 깨우고, 포근한 잠자리를 뒤로 한 채 새벽에 나아와서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의 은혜가 채소 위에 단비처럼, 마른 땅 위에 단비처럼 촉촉이 내리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기도에 깊이 들어가서 뜨겁게 기도하면, 성령이 폭포수처럼 한량없이 쏟아지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새벽기도시간은 가시와 엉겅퀴가 얽히고 섥혀 있는 이 세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싸워 이기기 위해 필요한 무기를 날카롭게 가는 시간이다. 전도서 10장 10절에서 연장을 갈지않고 일을 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새벽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성령의 검으로 날카롭게 무장하고 하루를 살면, 우리는 쉽게 가시덤불을 헤치며 거뜬히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 없이 세상에 나가면 무기없이 나가는 것이요, 그 날은 세상의 가시에 찔리고 돌에 채이며 상처투성이 패배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충만의 중요성
 나는 살아가면서 새벽기도를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삶이 엄청난 차이가 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벽기도를 한 날은 사자와 같이 담대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같이, 하루 종일 상승기류 속에서 기쁘게 살 수 있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천국을 체험하는 삶을 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고 아침에 쿨쿨 잠을 잔 날은 어딘지 기운이 없고, 자신이 없는 삶을 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베드로의 일생을 생각해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하여 예수님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곧 이어서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질 것이라는 말씀을 듣자 인간적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만류하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로다"라는 책망을 들었다.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걷기도 하고 변화산상에도 예수님과 함께 있기도 하였으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쿨쿨 잠을 잔 결과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번이나, 그것도 계집 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히 통곡하면서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를 게을리할 때 우리도 이와 같이 계집 아이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처럼 살지 못한다면, 그것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베드로가 언제 주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 수 있게 되었는가? 그것은 베드로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의 성령체험을 한 이후였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0일 동안 베드로를 비롯한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에 힘썼을 때 마침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불이 임하였다. 그후 베드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이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증거하였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인류의 죄의 댓가를 치루기 위하여 당신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절반의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인간의 죄를 청산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허물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오히려 유익한 까닭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성령이 올 수 없으나 십자가를 지심으로써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히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원하고 원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성령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행치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 오직 성령충만을 입은 사람이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보혜사 곧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른 모든 말이 생각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고린도전서 3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직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할 수 있다.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왕, 선지자, 제사장과 같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령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나아오는 자마다, 구하는 자마다 성령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누가복음 11장 12절에서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하물며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의 삶의 비결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기도할 때 누구에게나 성령충만이 주어지는 것이다. 새벽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시간이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왕같은 제사장이요,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며,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베드로 전서 2장 9절). 신약시대의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구약시대의 왕과 같은 존재요, 선지자와 같은 존재요, 제사장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복음의 빛을 해처럼 환히 비추게 된다.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 위하여는 반드시 새벽에 기도하며, 그 날 일용할 지혜와 총명의 영, 재능과 모략의 영,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함을 즐거워하게 하는 영을 받아야 함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매일 새벽기도하는 삶을 위한 전략
 나는 새벽기도를 한 날과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의 차이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새벽기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번번히 새벽기도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새벽기도하는 삶을 항상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은 아침을 굶기로 작정하였다. 아침을 금식하니 한 달 정도는 11시 이후에는 현기증이 오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점심과 저녁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오히려 전보다 더 맛있게 밥을 먹게 되었고, 아침을 자주 굶었지만 체중은 2~3 킬로그램이 늘어났으며, 한 달이 지나자 아침을 굶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렸다. 그 결과 새벽기도는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 중요한 체험을 하였다. 새벽기도하지 않은 날 아내가 정성껏 아침식사를 준비하여 주면, 아내의 정성에 못 이겨서 아침식사를 하고마는 날이 대여섯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외 없이 승용차를 통하여 나를 징계하셨다. 승용차의 키를 꼽은 채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아버려, 집으로 다시 돌아와 스페어 키를 가져와야 했던 일, 터널을 지나면서 헤드라이트를 켰는데 터널 밖에 나와서 라이트를 끄지 않고 주차시킨 후 퇴근시간에 나와보면 배터리가 나가 있어서 고생했던 일, 접촉사고로 곤욕을 치룬 일 등등. 그때마다 새벽기도도 안 하고 아침을 먹은 날임을 기억하고는 몸은 성가셨지만 마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징계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생각에 한없이 감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96년 여름. 우리나라의 도덕적 위기를 직감하고 강한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공중도덕의 마비, 문란한 성도덕, 사치와 향락풍조의 만연! 전통적 가치나 도덕을 대신할 생명력 있는 가치관과 도덕의 확산없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나 자신이 확실하게 새벽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새벽기도하지 않는 날은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까지 굶을 작정을 하게 하셨다. 그 후 거의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침내 내가 바라고 바라던 항상 새벽기도하는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자에게 좋을 것으로 채워주심이라"는 시편 107편의 말씀은 진리이다. 기도에 깊이 나아가게 되면서, 항상 성령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의 비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에서의 삶과 가정과 직장에서의 삶을 어떻게 한결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인가에 대하여 몇몇 신심이 돈독한 분들과 전략을 세워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성령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하는 삶"을 주제로 하여 "청십자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찾고 있는 중이다. 다음은 지금까지 정리된 청십자운동의 내용이다.

청십자운동 3대 강령
 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인류구원을 위한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심과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의 하나이심을 믿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요, 한 형제자매임을 믿는다.
 ②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망극하신 사랑 안에서 나 자신은 완전히 죽었고, 오직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심을 믿는다.
 ③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 안에 완전히 녹아져서 그 사랑을 전하고, 그 사랑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기 위하여 청십자(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보다 높고 크고, 바다보다 넓고 깊은 사랑을 상징함)회원으로서의 7가지 덕목을 성령의 능력을 입어 실천한다.
   
청십자운동의 내용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믿음인가? 에녹의 믿음이다. 에녹은 365년 동안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다. 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인가? 믿음을 가진 자이다. 어떠한 믿음을 가진 자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찾아 나아와서 구하는 자에게마다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때 누가복음 11장 12절의 "구하는 자에게 하물며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라는 말씀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루를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 청십자운동의 목표이다.

 이를 위하여 새벽기도가 가장 유익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만일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은 아침과 저녁 두 끼를 굶을 작정을 하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이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두 끼 굶는 희생도 못하겠는가? 새벽기도를 하는 삶은 성령충만한 삶, 성령과 동행하는 삶의 기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셨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무궁무진한 사랑과 지혜, 그리고 은총을 구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더 깊은 신앙의 차원에서 볼 때 기도하는 것까지 하나님께서 간구의 영을 부어주셨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기도를 많이 할수록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은 우리 자신의 힘이나, 능으로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새벽기도할 때 하루의 나의 삶 가운데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천국의 삶이 이루어진다. 바울은 천국을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신의 행함이 없는 믿음, 죽어 있는 믿음을 보고 탄식하며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청십자운동은 그런 분들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 능력있는 믿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믿음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새벽기도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기억하는 일이다. 확실히 말씀을 우리 마음의 심비에 아로새겨 놓을 때에만 우리는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 또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곧 성령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의 삶은 곧 말씀충만, 진리충만의 삶인 것이다. 이를 위하여 3일 또는 일 주일에 중요 성구를 하나 이상 외우기로 하였다.

 성령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또한 중요한 세번째 전략은 경건과 성결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성령은 이사야 11장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지혜와 총명의 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게 하는 신"이다. 하루를 살면서 악한 생각을 곧 물리치는 길은 하나님 경외를 즐거움으로 삼게 하는 성령이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 경외야말로 경건과 성결의 삶의 기초요, 이 기초 위에서만 성령님께서 함께 사시며 기쁨을 함께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며, 가난한 자가 복이 있으니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다(누가복음 6장 20절). 돈을 사랑함이 만가지 악의 뿌리요 부하게 되려는 생각이 그 사람을 얽어매는 올무라고 말씀하듯이 물질적으로 깨끗하지 않고는 절대로 성령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기상이 신앙인의 자세가 되지 않고는 언제나 세상의 물질의 신에게 속아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이 덕목이 성령님을 근심시켜드리지 않고 사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상급은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성실히 하는 삶을 살도록 한다(에베소서 6장 7절). 이것이야말로 직장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이다. 이로써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하면서 늘 온유한 마음을 유지해야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의 첫 째 내용은 온유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충만은 곧 사랑충만이요, 온유와 친절충만인 것이다. 강퍅한 마음이야말로 성령을 소멸하는 악령의 역사이다. 또 온유하고 친절한 삶이 주위 사람들을 복음화한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온유한 자를 통하여 땅에서 하늘나라가 확장된다는 말씀이다. 가족들을 비롯하여 하루 동안 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와 친절을 베푸는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한다.

 매일 삶에서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린 부분을 애통해 하며 회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나아가 다시는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지 않을 결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청십자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약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길을 구체적으로 찾아서 실천함으로써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결단의 방법으로 다시 또 같은 내용의 잘못을 하면  금식이나 T.V. 등 오락을 금할 작정을 하여 실천하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것이 청십자 회원들의 공통적인 체험이다.

결  론
 다음의 글은 청십자운동의 취지문이다. 나의 삶의 간증의 요약이라고 생각되기에 글 마무리에 싣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죄의 담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그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그 결과 이제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오히려 유익한 까닭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성령이 올 수 없으나 십자가를 지심으로써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히 가르치셨습니다(요한복음 16장 7절).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이 십자가의 고난의 결과 우리에게 오실 수 있게 된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면서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기억하고 기리며 감사, 감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창조주요, 생명과 진리, 그리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시는 축복, 곧 임마누엘의 축복보다 더 복된 일은 없습니다. 나아가 성령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 친밀하심을 깊이 체험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소극적으로는 성령님을 슬프게 하거나 근심시켜 드리거나,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소멸케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겸손히 삼가고 근신하며 살아야 할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성령님께서 무엇을 가장 기뻐하시는가를 분별하여서 성령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청십자운동은 바로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한 선한 싸움의 전략(戰略)으로서 하루 하루의 삶에서 우리가 언제 성령님의 역사를 소멸하였는가를 점검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회하고 고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고, 매일매일 24시간 삶의 현장에서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늘나라를 앞당겨 사는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운동입니다. 언제나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 십자가에서 처참히 희생되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예수 그리스도의 망극하신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이 없이는 억만 죄악의 바다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감격하며, 기리고, 누리는 삶, 그 사랑을 본받으며 전하고, 나누어주는 삶을 살기 위한 운동인 것입니다. 아멘!"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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