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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탈정치적 접근 필요
국내외서 다양한 분석…바람직한 대처는?
2004년 03월 10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와 국내 관련단체 등의 관심이 최근 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켜온 관련 단체들은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북한 김정일 정권의 인권 유린상을 폭로하는 기자회견과 세미나를 잇달아 개최하고 있다. 또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접근방안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비판적 견해도 나온다. 특히 북핵문제 등을 둘러싼 미국의 대북압력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인권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는 주장도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미국의 인권운동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톰 말리노스키 워싱턴지부 국장은 제2차 6자회담 평가를 위해 미국 상원 외교청문회가 3월 2일 주최한 대북 청문회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이 심각하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북한을 압박해 외부세계로부터 더욱 고립시키는 것은 인권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말리노스키 국장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권을 고립시키거나 무력의 방법이 아니라 북한사회의 고립을 완화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더 나아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 자체가 미국 등 서방세계의 대북 압박책에 지나지 않은 것이란 주장도 일부 진보·친북 성향의 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앞서 지난 2월 29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한인권시민연합과 유럽의 인권단체인 헬싱키 인권재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북한인권 및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제회의에서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식량난 등 인권문제가 집중 거론되는 등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는 국제적인 인권운동가와 정부 정책담당자, 언론인 등 100여 명이 모여 지난해 4월 유엔인권위원회가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된 북한 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또 지난 2월 12일 북한 인권관련 민간기구인 ‘피랍 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탈북자 인권연대)는 북한이 정치범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이관서’(사진) 원본을 공개하고 “북한은 생체실험 등 반인륜적 만행을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해 파문이 일었다. 이날 공개한 ‘이관서’는 2002년 2월 정치범수용소인 국가보위부 22호 관리소에 수용돼 있던 최모(53)씨를 생체실험을 위해 함흥의 한 화학공장으로 신병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국가보위부가 작성한 것으로 돼 있다.

내용은 ‘상기자를 비날론 련합기업소 일용 2호에서 화학무기 액체가스 생체실험에 필요한 대상으로 상대기관인 2·8 비날론 련합기업소 보위부에 이관함’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증언에 대해 정부 당국은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탈북자들이 가끔 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않은 말을 해서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며 “공개된 ‘이관서’의 신뢰성 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 관련 전문가들도 탈북자들이 제시하는 문건이 상당부분 부풀려져 있거나 심지어 조작되기도 한다는 점을 들어 무게를 두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전문가는 “지난해부터 중국 단둥(丹東)·옌볜(延邊) 등 북·중 국경지역에 위조된 북한 문서가 다량 나돌고 있다”며 “북한의 극비문서라고 하면서 한 조선족이 돈을 요구하며 표지를 보여주길래 주의깊게 봤더니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문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 문서 위조가 일부 조선족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특이한 사항은 민간기구나 해외 정보기관·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한국 정부가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 정부나 정보기관이 먼저 나서 북한 인권문제의 취약성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여론환기를 주도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는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전문가와 정부당국자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떨어트리고 자칫 우리 정부가 북한의 심각한 인권유린상에 눈을 감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4일 미 상원 외교위가 개최한 북한 청문회에서는 북한의 인권 탄압과 탈북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증언과 함께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강도 높게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많이 등장했다. 북한자유연합의 샌디 리오스 회장은 중국 내 탈북자들의 처참한 생활상과 매춘 등에 대해 증언하면서 “한국이 북한 내 같은 핏줄을 모두 구해내는 게 너무 값비싸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국민을 굶기고 고문하는 정권을 (경제적 지원을 통해) 떠받쳐 준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느냐 하는 문제는 향후 인도적 대북지원이나 북한과의 교류·협력 전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그동안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대립해 왔다.
먼저 북한인권 문제는 김정일 독재정권에 의해 파생된 것이란 분석을 토대로 하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나 식량난·탈북자 문제 등이 세습적 독재체제에 따라 벌어진 사태라는 얘기다. 주로 보수층이나 북한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협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와 이산가족·식량난·정치범수용소 등 인권관련 문제는 뚜렷한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인권·식량난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특히 한국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며 인권문제에 무관심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체제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방편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있다. 이런 시각의 사람들은 미 국무부가 6자회담이 열리고 있던 지난 2월 25일(현지시간) ‘2003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북한의 인권실태를 신랄하게 비난한 대목까지도 의혹을 제기한다. 또 6자회담 테이블에서 납북자 송환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나선 일본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23일 대북 지원단체인 ‘좋은 벗들’(대표 유수)은 ‘북한 식량난과 인권’을 주제로 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북한 인권문제에서 탈정치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나 미국의 대북 압박을 문제삼는 견해 모두 정치적인 배경이 깔린 만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 원칙으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인권문제 제기 △정치적 목적에 따른 정략적 차원의 인권문제 제기 지양 △북한주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권개선을 위한 북한 정권의 노력과 함께 관련 국가와 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북한의 경제난에 대해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긴급구호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우리 사회 내부에는 북한 동포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인권문제에 대해서조차 진보와 보수의 양분법적인 이념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지만 정치범 수용소와 탈북자 문제 등 만연한 인권문제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은 데다 생체실험 같은 섬뜩한 보도까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논쟁은 북한동포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막는 꼴이 될 수 있다. 특히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를 의식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듯한 정부의 태도는 미덥지 못하다. 자칫 사분오열 될 수 있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접근법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지혜를 짜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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