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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죄는 다 사하여졌느니라”
2004년 04월 21일 (수)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가룟유다로부터 온 복음>중에서
레이 앤더슨 지음/  진은경 옮김
가리온 펴냄 

“예수님, 왜 저를 열두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하셨는데, 많은 사람들 중에 열 둘이며 하필이면 그 중에 제가 있습니까?” - 결정을 해야했단다.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했단다. “예수님, 지금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당신을 배신한 제가 기도의 응답이라는 말씀입니까? 그 기도를 믿습니까?”- 나의 기도는 모든 것이 나에게 유익하도록 한 기도가 아니란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란다. 유다야, 너는 진정 나의 기도의 응답이었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하며 배신하던 그날도 네 발을 씻겼던 것이다. “주님, 그 때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 왜 제게 멈추도록 하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제게 배신자라고 크게 소리쳤더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 그래,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너를 사랑함으로 네가 다시 사랑하길 원했다. 유다야,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네 사랑이 다시 돌아오고 치유되기를 기도했단다. “저도 한 때 기도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제가 사랑할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다면 이런 제게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저를 주님을 판 배반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 어떤 논리로도 제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전 후회도 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며, 결코 치유할 수 없습니다.” - 배신이라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란다. 배신하는 자와 배신당하는 자 사이에서 존재하는 힘이 있단다. 유다야, 너의 힘은 관계를 파괴하려고 하지만, 나의 힘은 관계를 연결하려고 하고 있단다. “주님 저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부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저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태양이 계속 떠 있다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 나에게 조금의 시간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유다야, 네 자신을 속죄하는데 필요한 것이 더 많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느냐? “제가 원하는 것은 내가 목숨을 끊기 바로 직전에 저를 발견할 수 있는 그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배신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죽음은 홀로 행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더욱더 홀로 남게 합니다.”- 네 생각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하나님조차도 용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빠졌다고 생각하느냐? 나도 하나님이 져버린 곳에 간 적이 있단다. 바로 십자가의 자리였단다. 죽음은 한 번으로 족하단다. 그 죽음을 내가 죽었다. 그리고 기억하거라. 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예수님과 유다 사이의 화해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측면에서 볼 때 적어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죽음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택되어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들을 다스릴 권능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계 1:5)라는 의미이다. 죽음이 더 이상 우리 인간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결정되어지며 결코 우리의 죄나 그 죄로 인한 결과로써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결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운명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모든 인류의 적인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서 극복되었다’라는 진리를 고수해야 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죽는다. 그러나 인류의 운명을 덮고 있는 죽음의 권능은 죽음에서 다시 사신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무효가 되었다.
이것은 보편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죽음과 삶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된 진다는 확신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예수님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은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복된 소식이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 3:15). 유다로부터 온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죽음조차도 영향을 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다. “유다야, 집으로 오너라 모든 것이 다 용서되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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