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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 사흘연휴 기본명절로 부활
북한의 민속명절과 김정일 ‘생일명절’
2005년 02월 16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북한에서 민족명절인 설이 부활했다. 북한 당국이 올 들어 음력설을 ‘기본 명절’로 정하고 설 당일부터 사흘간을 연휴로 주민들이 쉴 수 있게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5일자 평양발 보도에서 “올해부터 조선에서는 양력설보다 음력설을 기본 설명절로 쇠게 됐다”며 “전통적인 민속명절을 크게 쇠기 위한 국가적 조치가 취해졌다”고 전했다.

북한의 방송과 신문들도 전례 없이 설 명절의 의미와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장군님이 설 명절을 제대로 쇠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은덕을 찬양하는 이야기들도 뒤따랐다. 북한이 그 동안 주민들에게 설과 추석명절을 봉건시대의 유물이라며 제대로 쇨 수 없게 해왔던 점에 비춰보면 전향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북한에서는 설과 추석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이 더 큰 ‘명절’로 치러지고 있다. 특히 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그의 생일은 ‘태양절’이라 불리며 우상화에 이용되고 있다.

북한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민속명절에 한해 명절로 부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경일·민속명절·국제적 기념일·기념일 등을 총칭해 명절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북한의 명절은 종류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필요에 따라 공휴일(노동량이 부과되지 않아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날), 휴무일(당일 노동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노동량은 부과되어 추후 공휴일 등을 기해 할당된 노동량을 벌충해야 하는 노동의 의무가 부가되어 있는 날), 그리고 단순히 기념행사만 하는 기념일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국경일은 ‘나라와 민족의 융성발전에 매우 의의 깊고 경사스러운 날’로 설명되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을 비롯해 국제노동자절(메이데이, 5.1) 해방기념일(8.15) 정권창건일(9.9) 노동당 창건일(10.10) 헌법절(12.27)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국경일은 모두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통상 ‘사회주의 7대 명절’로 불린다. 북한은 사회주의 7대 명절 중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가장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북한이 김일성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제정한 것은 지난 74년 2월이며, 김정일 생일은 75년 임시휴무일로 제정됨으로써 민족적 명절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어 다음 해인 76년부터 김정일 생일을 정식 휴무일로 삼았으며 82년부터는 다시 공휴일로 제정했다.

특히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을 여타 사회주의 7대 명절과 구별하기 위해 지난 86년부터 생일 다음날을 휴식일로 정해 이틀간 휴무토록 하는 한편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부터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까지의 두 달여의 기간을 축제기간으로 설정해 갖가지 기념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명절은 국경일인 사회주의 7대명절과 민속명절 중 유일한 공휴일로 지정된 설날(1.1)을 포함해 공휴일이 8일이고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 다음날과 음력설 한식 단오 추석 등 4대 민속명절을 포함한 휴무일이 6일로 되어있다.

북한은 정권수립 직후부터 매년 1월 1일을 새로이 민속명절 설날로 기념하면서 민족 고유의 전통명절은 배타시함으로써 북한에서 전통적인 풍습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북한은 이와 같이 민속명절을 외면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민속명절이 ‘봉건주의적 잔재’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김일성 유일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주민통제에 부적합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노동력 손실을 초래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민족고유의 명절임에도 북녘의 설맞이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우리처럼 민족대이동을 연상케 하는 귀성행렬도 황금연휴를 만끽하는 기쁨도 찾아보기 어렵다. 멀리 헤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상께 제사를 올린 후 덕담을 주고받는 등의 미풍양속들이 북녘에서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한편 북한에서는 추석이 지난 88년 부활됐다. 부활이라는 표현은 북한에서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 추석을 말살시켰기 때문이다. 즉 “착취계급들이 통치권을 강화하는 데 악용하고 종교적 외피를 씌워 허례허식을 덧붙였다”는 이유로 규제해오다가 67년 5월에는 마침내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아예 공식 명절에서 제외시켜 버린 것이다.

이처럼 말살된 추석이 88년 부활된 것은 크게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됐다. 우선은 한국의 해외동포(조총련 동포)를 대상으로 한 추석 성묘사업에 대응키 위한 조치였다. 남북한 국력의 격차가 점차 커져 해외동포들, 특히 조총련 동포들 사이에서조차 북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또 내부적으로 40여 년간 추진돼 온 통제정책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말하자면 민속명절을 지냄으로써 우려됐던 ‘종파주의’ ‘가족주의’ ‘문벌주의’의 형성이 40여 년 간의 통제정책으로 차단됐다는 확신을 가진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추석은 그러나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내지고 있다.

북한은 이밖의 민족 세시풍속에 대해서도 정치선전 차원의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매체들은 동짓날을 맞아 “동지는 24절기 중의 하나로서 아세라고도 불렀는데 우리 인민들이 해마다 보내는 겨울철 민간명절”이라고 소개하는 가운데 북한에서는 동지 날에 즈음해 “가정에서 동짓죽을 쑤어 먹으며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귀순자들은 이러한 선전은 일부 특권계층에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설이 명절로 부활했다지만 식량난으로 대표되는 고단한 삶에서 북한 동포들이 해방되기는 요원해 보인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에 돼지고기와 사탕 같은 특식을 배급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지도자의 은덕임을 부각하려 하고 있다. 남북한의 동포가 함께 우리 명절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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