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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정권, 붕괴 위기감 드러내
내부 문건 ‘학습제강’ 통해 확인된 분위기
2005년 04월 20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적들은 우리를 없애 버리는 가장 빠른 길이 수뇌부를 제거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놈들은 혁명의 수뇌부를 헐뜯는 나발을 불어대는 한편 수뇌부 호위사업과 관련한 비밀을 뽑아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보 당국에 입수돼 공개된 북한의 내부문건 ‘학습제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외부세계의 위해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인민군출판사가 지난해 발간한 이 문건은 군 핵심인 장성급 군 지휘부에서 군관(장교)에 이르기까지 교육용으로 배포한 것이다. 사상교육을 위한 강의 골자를 적어놓은 지침서가 학습제강인 것이다.

문건은 김 위원장의 “적들이 우리 혁명의 수뇌부를 노리며 갖은 책동을 다하는 조건에서 우리는 한시도 혁명의 경각성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내용도 담겨 있다. 김 위원장이 ‘우리 혁명의 수뇌부’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 문건은 “혁명의 수뇌부는 김정일 최고 사령관”이라고 못박고 있다. 김 위원장 스스로 자신에 대한 외부세계의 위협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3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몰락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돌리고 있는 것도 특이한 대목이다. “이라크는 10만명의 공화국 근위대, 특히 메디나 사단이 충성도가 높아 후세인의 신변안전이 확고히 담보된다며 큰소리쳤다”며 “그러나 지휘관과 군인들이 정세가 불리해지고 적들의 심리전이 극도에 이르자 대통령도 나라의 운명도 안중에 없이 투항변절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매수작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문건은 “이라크에 대한 매수작전에 재미를 본 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그 방법을 적용하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다”며 “그 주되는 대상은 인민군 지휘성원(지휘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그 누구던 일단 적들이 던진 미끼를 물게 되면 종당에는 혁명의 배신자로, 변절자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며 경각심을 갖자고 촉구하고 있다.

사실 북한의 이런 위기감은 지난 2003년 7월부터 그 강도가 높아졌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이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직후다. 바그다드의 후세인 동상이 미군에 의해 밧줄에 감겨 내동댕이쳐지고 후세인 대통령이 비참하게 미군에 의해 체포되는 장면은 북한 정권 핵심부들에게 극도의 충격을 느끼게 했을 게 분명하다.

그 이후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개활동과 관련한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북한언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정보도에는 어느 장소에 누구와 함께 갔다는 내용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하지만 언제 그런 활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경호문제 상 비밀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하면서도 날짜를 명시하지 않는 것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반체제 세력에 의한 위해기도나 외부세계의 김정일 체제 전복 움직임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의 정보기관이 평양은 물론 북한 곳곳의 시설물과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권력층 인물의 일거수 일투족을 체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김정일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부시 행정부의 김정일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드러나고 있고 9·11 테러 이후 국제 테러단체들이 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한 정보당국 최고책임자는 김 위원장이 유럽의 한 국가에 있는 여성과 나눈 통화내용을 사석에서 공개했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을 정도다.

특히 지난해 4월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 단순 사고가 아닌 김 위원장을 노린 계획적인 폭발이었다는 설도 제기된 터라 북한 당국의 우려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신의주를 거쳐 특별열차편으로 귀환하는 시점에 맞춰 가공할 위력의 열차사고가 났다는 배경에서다. 또 당시 폭발이 핸드폰을 이용한 타이머 장치로 벌어졌다는 관측까지 제기됐고, 뒤이어 북한 당국이 외국인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핸드폰을 수거한 일이 알려지면서 김 위원장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 북한 정보기관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감지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경호문제는 우리의 경호실 격인 호위사령부가 맡는다. 또 군부대 방문 시에는 우리의 국군기무사령부 격인 인민군 보위사령부가 담당한다. 부대방문의 경우 수 개월 전부터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전투훈련과 시범공연 연습이 이뤄지며 부대 내의 탄약류 등은 모두 수거해 봉인한 상태에 들어간다. 또 경호문제는 전적으로 군복차림의 군이 담당하며 김 위원장의 차량 부근은 물론 가시거리나 화기로부터의 사거리 내에는 일절 주민들의 접근을 불허함으로써 위해요인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한 고위 군출신 탈북자는 “과거에도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은 날짜를 공개하지 않거나 아예 틀린 날짜를 내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자기 부대를 방문한 김정일이 엉뚱하게 다른 날짜에 자기 부대를 다녀간 것으로 나오거나 일정 자체가 뒤죽박죽돼 중앙TV 등에 나오는 일도 많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병출신 탈북자는 “우리 부대를 방문한다고 해서 전투훈련과 태권도 시범까지 죽어라고 해서 시범을 보였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는데 나중에 나오는 화면은 다른 시범단이 한 행사여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런 철저한 김 위원장의 경호와 군부에 대한 집중적인 측근관리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에 대한 위해설은 심심찮게 나왔다. 북한군 친위대의 고위 장교가 부대방문 중인 김 위원장을 총격하려 했다거나 차량으로 밀어부쳤다는 소문 등이다. 지난해 말에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피격설까지 서울을 비롯한 국제 증권시장 등에 나돌아 주변국 정보기관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김정일에 의해 실각된 장성택 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아들이 김 위원장을 권총으로 저격했다는 그럴 듯한 스토리는 언제든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북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권력핵심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주민들의 반감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김 위원장의 후계체제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질 조짐이 있다는 점에서 한미 정보당국의 정보채널을 총가동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이 군부를 확고히 장악하고 있고 핵심 측근들로 방어막을 치고 있다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절대 권력자일수록 가장 믿었던 최측근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에 서울의 정보통뿐 아니라 주변국의 정보망이 총가동돼 안테나를 돌리고 있는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이번에 공개된 북한의 내부문건 ‘학습제강’은 김 위원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위해 우려가 우려 수준을 넘어 실제적인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북한의 핵개발과 6자회담 불참 등 막무가내식 행동에 대한  미 부시행정부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더욱 강도가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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