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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환자들 치료못받고 죽어간다
실질적 대북 의료지원 시급
2005년 03월 16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이영종 /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정부와 대북지원 민간단체가 올해 북한에 대한 지원사업의 중점을 식량난 극복과 의료환경 개선에 두기로 결정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만성화된 식량난으로 북한 동포들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데다 의료체계마저 붕괴된 상황이라 조직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개선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대북 보건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노약자와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활동과 함께 국내외 보건의료 전문가의 자문과 관리감독을 바탕으로 한 병원현대화와 제약공장 설립 지원, 연구 지원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북한의 의료체계는 사실상 와해상황이라는 게 우리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경제난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의료보건체계의 마비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실제로 수술환자들에게 투입할 페니실린이 없어 수술 후 환자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이 이런 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고 개선책을 마련하거나 외부 지원을 요청하는 대신 체제유지나 선전을 위한 겉치레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국가망신 4대 질병’이란 용어다. 북한은 결핵·간염·성병·정신병 등 4대 질병의 발병률 저하를 위해 도당 교육부를 통해 이들 질병의 북한 내 발병률과 남한에서의 발병률을 수시로 비교 분석하고 있으며, 질병의 북한 내 발병률이 남한 내 발병률 수치를 넘어설 경우 의사담당구역제에 의해 해당 담당구역 의료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 당국에 따르면 강원도 천내군 49호 정신예방원에서는 군내 정신병 발병지표가 3%에 도달하자 남한의 전국 평균치 2.5%를 상회했다 하여 이 병원 행정책임자인 기술부원장과 초급당비서를 철직(면직)했다는 것이다. 치료나 질병예방 자체보다는 체제대결 등에 더 치중하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최근에는 해외장기 근무자들 중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까지 발생, 북한 보건당국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 AIDS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북한주민들 사이에 ‘AIDS환자는 민족반역자’라는 유행어가 확산되고 있는 사실에서도 인지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87년 보건부 산하에 중앙 AIDS방역기술소를 설립한 이후 청진 원산 등 5개 도시에 추가로 AIDS검사소를 설치하고 해외 장기체류자와 외국인을 상대로 AIDS검사를 의무화하는 등 AIDS환자 발생에 극도의 신경을 쓰고 있다.

폐쇄적인 국가체제의 특성상 AIDS에 덜 노출돼 있지만 감염사례가 나타난 이상 철저한 대응이 필요한데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 의료보건정책의 특성은 크게 무상치료제와 의사담당구역제, 고려의학(한의학) 중시정책이라는 것이 북한당국의 주장이다. 지난 92년 공표된 사회주의 헌법 56조가 ‘국가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공고 발전시키며 의사담당구역제를 강화하고, 예방의학적 방침을 관철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자력갱생’을 모토로 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의료보건체계는 그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당국과 국제의료구호단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제약공업만 보더라도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극도의 자립만을 강조함으로써 외부의 선진기술과 원료 도입의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김일성의 의료보건 분야에 대한 교시도 한몫 했다.

김일성은 66년 10월 20일 보건성 간부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서 김일성은 “제약공업이 아직 발전되지 못한 조건에서 약초재배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면서 “모든 보건기관들에서 약초를 많이 심어 생약에 대한 수요를 자체적으로 보장하라”고 강조했다. 이후 북한은 역량이 부족한 제약공업에 주력하기 보다는 약초재배에 집중했다.

물론 북한에도 평양제약공장, 나남제약공장, 순천제약공장 등을 두고 해열제인 아날빈, 아스피린, 설사약 등의 양약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량이 워낙 적어 구색 갖추기에 불과할 뿐 대부분의 역량을 한방약인 ‘고려약’ 제조에 쏟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최근에도 약생산에서의 자력갱생과 약초재배만을 강조하고 있다.

의약품 부족, 고려의학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더불어 북한의 허술한 의료체계 역시 북한주민들의 건강을 위험에 빠트려버렸다. 의료체계의 가장 큰 허점은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현재 북한의 전문의 수는 동의사 1천200명을 포함해 1만2천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전체인구가 약 2천200만 명인 점을 고려한다면 의사 1인당 주민 2천명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의사 1인당 담당인구수 784명에 비해 매우 많은 숫자다. 그나마 있는 의사들도 생계유지를 이유로 본업보다는 장사로 전직하기를 희망하고 있어 북한 의료체계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49개에 불과한 종합병원도 모든 북한주민을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특히 계층분류에 따른 차별치료 역시 북한 의료정책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표적인 당·정 간부 진료기관으로는 남산진료소·봉화진료소 등이 꼽히며 여기에는 북한 최고의 의료진과 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첨단 의료장비와 고가의 수입 의약품이 갖추어져 있다.

일반주민들은 리단위나 군단위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고작인데 이들 병원에는 대부분 정규의사가 아닌 부의사나 준의사가 1~2명 배치돼 있고 의료시설도 X-Ray가 고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적인 의료체계 미비와 함께 의사들의 부정부패 역시 문제다. 북한은 80년 제정한 보건법에서 ‘보건일꾼들은 전체 인민을 건강한 몸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 참가하게 하는 영예로운 혁명갗라고 규정, 의사들에게 도덕성에 입각한 활동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난 등 생활고 속에서 의사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하고 있다. 진료기회가 워낙 하늘에 별따기다 보니 환자들의 입·퇴원이나 각종 진단서의 발급, 의약품 밀반출 등 부정사례가 만연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체제에서 김정일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특권부여는 본건의료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만을 전담하는 연구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는 게 정부당국의 전언이다. 바로 만수무강연구소이다.

각종 북한관계 자료를 종합해 보면 당재정경리부에서 관장하는 이 연구소는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동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 총본산인 이른바 당3호청사 맞은 편이고 근무인원은 총 1천500명이다. 연구원·연구조수·실험공 등으로 불리우는 이곳 근무자들은 질병연구·종합분석 등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고, 물론 전원이 우수한 실력과 좋은 출신성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설이나 인력은 일반 주민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일 수 있다.

대북 의료지원은 94년 김일성 사망과 95년 대홍수로 망가진 북한의 의료체계를 돕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4월 북한 평북 용천군에서 발생한 열차폭발사고 구호과정에서도 대한적십자사나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의약품지원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폭발참사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어린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 현지를 방문하려던 남한 의료진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이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만큼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발맞춘 전향적인 남북 의료분야 협력에 나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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