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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4)
1991년 03월 03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Ⅲ. 모든 질병이 귀신에서 온다는 말의 오류
 김씨는 귀신의 사역을 다섯 가지로 지적했다(마귀론 하, pp.170-174). 귀신은 모든 병의 원인이요, 모든 사고의 원인이요, 모든 중독의 원인이요, 모든 범죄의 원인이요, 모든 자살의 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질병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운동에 의해서만 고침을 받는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한마디로 김씨는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단정하는데 더욱이 예외도 없는 진리로 본다. 한의학 6,000년, 양의학 3,000년에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모든 병의 원인은 귀신에게서 온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사람이 벙어리 되고 귀 먹는 것은(막 9:25) 그 사람이 벙어리 되고 귀 먹는 것이 아니라 벙어리 되고 귀 먹은 귀신이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자체가 병든 것이 아니라 귀신 자체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모든 질병이 귀신에게서 온다는 주장을 할 뿐 아니라 의학이나 약으로는 어떤 질병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스런 논리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병이 과로로 생겼다고 볼 때 자연히 과로를 피하면 병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귀신에게서 온다고 볼 때 오직 귀신을 쫓아내야만 병이 물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의학이나 약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은 귀신이 약에 의해 쫓겨날 수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리니 그렇게 주장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약은 병을 고치지 못한다. 병을 첨가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저항력있는 병균을 투입함으로써 병의 단위를 높여 줄 뿐이다. 제약회사는 인류의 보건과 생명을 위하여 고심하면서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크게 공헌한다. 그리고 학계는 물론이려니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푸짐하게 받는다.

 그러나 얼마가서는 그 공헌한 바가 무색케 되고 투약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고 자기들이 양식시킨 병균으로부터 도전을 받아야 한다.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어야 하는 이러한 방식이 제약회사를 성장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제약회사들은 늘어가고 비대해 가는 동안 사람들의 신체는 마치 각 제약회사들의 경쟁하는 실험장같이 어처구니 없이 낡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병이 사라져 간 것이 아니다. 병균의 단위는 투약 때마다 올라간다. 마치 약은 사람 몸에 먼저 들어가 있는 선배균을 죽이고 대신 자신이 군림하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난립은 인류에겐 희소식 같은 예방공해라고 보아 과언이 아니다"(풀빛목회 86, 1·2. p.57).

 오히려 약은 귀신으로 낮은 단위의 병균을 포기하고 대신 높은 단위의 새로운 병균을 확보하게 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약의 투약이나 의술의 사용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귀신이 만든 질병을 치료하는데 약이나 의술을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직접 들어보자.

 "그러나 투입한 먼저 병균을 이긴 저항력있는 균이 후에 때에 맞추어 발병하게 되면 전보다 더 큰 병고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력은 병의 원인이 되어 병균을 생산 파송하는 귀신을 제거함으로써 깨끗하게 한다. 어떤 병은 대수술을 치른 후에도 재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귀신이 그 몸에 잠재되어 있는 한은 병은 계속 재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방법이 있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수술하는 방법, 수술즉시 추방하는 방법이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잠재한 병균을 멸하기 위한 투약 방법과 투약 직후 귀신을 추방하는 방법은 무리는 아니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떠난 다음에는 균만으로써는 인체 내에서 스스로 견디기가 힘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병균은 모두 사멸되고 만다"(Ibid., p.57).

 김씨는 죄와 병은 불가분리로 생각한다.
 "죄는 보이지 않는 병이요, 병은 보이는 죄악입니다. 이것을 철저한 신앙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몸이 상할 때 병을 짊어지셨고 죽으실 때 영혼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죄와 병은 구분시킬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다 해도 병이 있으니 죄가 있다는 말이요, 보이는 병은 내게 죄악이 있다는 말입니다"(T.P.46-1).

 모든 질병은 귀신에게서 왔다는 말과 그러기에 의약은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김씨의 이론은 그의 귀신론의 자연스런 결론일 수밖에 없지만 이 이론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반인에게 이해가 안될 뿐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이론으로 보이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하나의 전제를 해 놓고 반증을 하기로 하자. 틀림없이 질병의 일부는 귀신에 의한 것임을 성경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이라는 이론가 더욱이 의약은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해 보자.
 첫째, 김씨의 행동에 모순이 있다. 모든 질병은 귀신에 의한 것이니 자연히 축사로만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론은 논리적인 필연적 결과이다. 그런데 1984년 7월에 서울 기독병원(전 베데스다 병원)을 김목사 동생 김호동 목사를 인수했다가 10억이나 되는 손해만 보고 84년 11월에 손을 떼게 되었는데(현대종교 86, 3, pp.78-79) 그 사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교리적인 타당성을 묻는 것이지 윤리적인 약점을 묻는 것은 아니다. 약은 병을 더 심하게 할 뿐인데 무엇 때문에 병원을 인수했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혹시 김목사 마음 속에도 모든 질병이 귀신에게서 온다는 표면적 주장과 내면적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둘째,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이라면 귀신은 우리의 구원문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 김씨의 말에 의하면 신자도 귀신에 들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1985년 11월 18, 19일에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한 강연에 의하면 성락교인도 중에 병원에 입원한 작 하나도 없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다. 과연 성락교회 교인 중 병원에서 치료받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인가?

 신자도 병이 들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신자가 귀신에 들려 질병에 사로 잡혀 있으면 구원을 받는냐 받지 못하느냐는 질문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대해 직접 언급한 부분은 본 일이 없으나 그의 논리적 결과로는 구원은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도 바울마저도 지옥에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7에서 육체의 가시 즉 사탄의 사자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평생 그 가시(육체의 질병 즉 사탄의 사자)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씨도 아마 질병에 걸릴 것이다. 김씨를 모함하는 자의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간이 나쁘다는 소문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의 말처럼 죄는 보이지 않는 병이요, 병은 보이는 죄악이라면 모든 죄인은 병이 들 것이요 김씨도 죄인임에 틀림없으니 김씨도 병에 들 수밖에 없다고 고백해야 정직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5:23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말에 대하여 김씨는 바울이 모든 것을 안다고 결론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풀빛목회 1986, 1·2. p.56). 즉 바울의 지식을 불완전한 것으로 해석했다. 바울이 적어도 귀신에 의한 질병의 요인을 모르고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하였다는 말이 기독교 정통신학에서 타당한 말일 수 있는가?

 이미 앞서 계시론에서 밝혔지만 바울서신은  가감할 수 있는 성서라고 한 점을 볼 때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주장이다. 이 디모데전서 5:23의 해석과 같이 바울을 격하시켜 바울은 병들 수 있어도 김씨는 병들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김씨도 병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러면서도 수술(의학)을 질병치료의 하나의 방법론으로 인정하는 점이 더욱 모순된다. 김목사의 말에 의하면 일단 귀신이 몸 속에서 병균을 부리는 것처럼 되어있다. 병균과 귀신은 다르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귀신없이 병균만으로서는 인체 내에서 스스로 견디기 힘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병균은 모두 사멸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세운 방법론이란 이런 것이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수술하는 방법, 수술 즉시 추방하는 방법이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잠재한 병균을 멸하기 위한 투약방법과 투약 직후 귀신을 추방하는 방법은 무리가 아니다."
 이 말은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을 하게 된 저의가 베데스다 병원 인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통로를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후에 다시 병원을 인수한다거나 병원을 건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그의 교리적 결론은 역시 수술이나 투약만으로는 질병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수술 후에 귀신을 추방하는 방법이나 귀신을 추방한 후 수술을 하는 방법이란 모순 중에 모순이다. 귀신을 쫓는 축사현상 앞에 수술이나 투약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귀신만 사라지면 병균 혼자서 인체에 있을 수 없고 시간만 지나면 병균이 사라진다고 했지 않은가? 그것도 수술 가능성이나 투약의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 따로 있다고 억지로 끼워 맞추면 김씨의 이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의 경우는 아무 소용도 없는 이론이 아닌가?

 왜 이같은 비논리적이고 필자가 보기에 부정직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가?
 이 점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면 들수록 더욱 그러하다. 의약으로 고칠 수 있는 확실한 병의 경우 의약으로만 치료하려는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를 설명할 길이 없고, 불치병의 경우 축사와 의약의 균형 있는 치료와 그 타당성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

 넷째, 모든 질병이 귀신으로부터 기인된다고 보는 것은 모든 역사를 귀신이 역사로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에게는 무지도 있을 수 있고 실수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질병 이전의 그 실수나 무식마저도 귀신이 주장한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김씨는 성도가 믿음을 지속시키는 것만이 귀신을 이길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믿음 안에 있는 성도도 생활 속의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예컨데 수렁에 빠질 수도 있고 넘어져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이상으로 귀신이 섭리를 인정해야 된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마저도 귀신에 대한 공포 속에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귀신의 주권이 서로 대등한 것처럼 인식되지 않는가?
 다섯째, 귀신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모호하다. 질병의 원인도 불행의 원인도 귀신이다. 축사 시에도 귀신과 대화하는 것으로서 환자의 의지는 배제하고 있다. 인간의 책임이 무엇인가?

Ⅳ. 미혹의 영에 대한 오류
 서론에서 간단히 밝혔지만 먼저 미혹의 영에 대해 분명히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 마귀론 중권은 그 부제가 미혹의 영이듯이 미혹의 영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번호를 붙여 간결하게 설명해 보겠다.

 ①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수호하는 천사를 파송했다(마귀론 상, p.137).
 ② 이 천사가 가변되는 것을 미혹의 영이라 한다(Ibid., p.138).-가변된다는 말은 선한 천사가 변하여 악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③ 그런데 귀신이 우리 몸에 들어올 때 단독으로는 들어올 수 없고 반드시 미혹의 영의 도움으로만 들어온다(마귀론 하, p.54 이하)
 ④ 그래서 성경에 유혹이란 말은 모두 미혹의 영이란 뜻이다(마귀론 상, p.137, 중 p.64).

 ⑤ 이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은 한번 가변되면 절대로 다시 환원될 수 없으며(마귀론 하, p.61),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우리 주변에 따라 다린다(마귀론 상, p.142).
 ⑥ 이 미혹의 영이 인간의 인격을 지배한다(마귀론 중, p.70).
 ⑦ 그런데 능력있게 살려면 가변된 천사의 수보다(미혹의 영의 수보다) 천사의 수가 많아야 하며(마귀론 상, p.141), 천사가 가변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마귀론 중, p.74).
 ⑧ 천사가 가변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요, 좁게 세 가지가 된다. 첫째는 천사가 자기 우두머리를 따라 같이 가변되는 경우요, 둘째는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는 경우이다(마귀론 상, p.137).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변시키는 경우는 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하나님께 과잉충성 할 때와(마귀론 하, p.61)둘째, 성도가 불의할 때 성도의 불의를 따라서 가변된다(마귀론 상, p.137).
 ⑨ 그가 가변된 천사를 위해 사용되는 성구들은 다음과 같다: 삼상 16:14, 19:23, 왕상 22:19, 사 66:3, 4, 겔 14:9, 살후 2:11, 12, 롬 1:28(마귀론 중, pp.62-67). 그런데 마귀론 상권(p. 137)에서는 위 성구 중 3개만 들었다 : 왕상 22:19-23, 사 66:4, 5, 겔 14:9, 10.

 비판해 보자.
 제일 먼저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천사문제를 살펴보자. 그가 인간을 섬기라고 보낸 천사가 신자에게만 주어졌는지 불신자에게도 주어졌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가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사람들에게 천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는(마귀론 중, p.59) 불신자도 포함되는 것 같은데, 곧 천사를 가리켜 성도를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이라고 한 것을 볼 때(Ibid., p.59)는 불신자는 제외되어 있다.

 더욱이 마귀론 상권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천사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p.130).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우선 태어날 때에 천사가 배치되었다는 말은 분명 잘못된 말이다. "태어 날때"를 "예수를 믿을 때"로 바꾸든지 "예정된 사람들에게는"이란 말을 첨가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분명 김씨는 불신자는 천사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더 큰 모순이 생긴다. 불신자의 질병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질병은 귀신이 일으키고, 귀신은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인 사후의 영일 뿐이니 반드시 미혹의 영의 도움으로만 우리 몸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인 사후의 영이 불신자의 몸에 들어갈 수 있는가? 불신자에게는 천사가 없으니 가변된 천사, 즉 미혹의 영도 없을 것이요, 미혹이 영도 없으니 불신자에게는 귀신도 못들어 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는 분명히 자기모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점은 그가 미혹의 영에 대하여 든 성구 중에 로마서 1:28에서도 잘 나타난다(마귀론 중, pp.66-67). 인간으로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어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돕는 천사로 가변시켜 유혹으로 역사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였다(Ibid., p.67).

 그런데 이 로마서 1장은 신자에 대한 말이 아니다. 불신자에 대한 말이라는 점이다. 또한 천사가 없는 불신자의 성격형성은 무엇으로 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격형성은 오직 천사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아홉가지 미혹의 영에 대한 설명은 모두 가설에 불과하며 그것도 거짓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그가 제시한 성구들에 대해서만 변증하겠다.

 그가 제시한 사무엘상 16:14과 19:23은 모두 사울왕에 대한 것이다. 16:14의 말씀은 이렇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19:23의 말씀은 이렇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14절에서 "여호와의 신"은 사울이 타락하기 전, 즉 천사가 가변된 후라고 한다(마귀론 중, p.62).

 23절에서 "하나님의 신"이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이라고 한다. 그 스스로의 모순점 들을 살펴보자. 김씨는 마귀론 하권에서는 사울왕은 구원받지 못한 인간으로 보았다(p.143). 즉 자살한(삼상 31:4) 시체는 저주받아 더럽게 처리된(삼상 31:7-13) 자로서 사울이라고 한다. 김씨의 말에 의하면 사울은 죽어서 결코 사무엘처럼 될 수 없고 즉 귀신이 될 수밖에 없든지 아니면 무저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미혹의 영과 귀신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성도의 구원문제에도 그렇다. 미혹의 영이 있던 사울은 귀신을 초청하여 질병에 들었다는 말이 성경에 없다. 또한 미혹의 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타락까지 하여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김씨는 천사의 인간의 육체에 못들어 간다고 하면서(마귀론 하, p.63) 또한 영에도 못들어 간다고 하면서 미혹의 영은 인간을 지옥에도 보내는가? 미혹의 영의 힘은 하나님의 구속의 권능보다 커져 버리고 말지 않는가?

 다음에는 열왕기상 22:19-23까지의 말씀이다. 본문의 "거짓 말하는 영"이 바로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이라 하는데 이 또한 선한 천사를 가변시켜 사용한다는 말은 전혀 없다. 에스겔 14:9, 10에서 선지자들의 마음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면 하나님께서 유혹하시어(미혹의 영을 말함:필자 주) 그들의 영을 가변시킨다는 말은(마귀론 중, p.64) 이사야 66:3, 4에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능하면 유혹으로 역사하시어(미혹의 영을 말함) 유혹을 택해 준다는 말도(Ibid., p.64)다 가변된 천사를 가리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기타 그가 제시한 어떤 성구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김씨가 주장하는 미혹의 영에 대한 이론만큼 큰 이 시대의 미혹의 영이 없을 것이다.

Ⅴ. 인격에 대한 오류
 본 항은 인간론에서도 취급할 수 있는 항이지만 본 항에서 따로 취급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씨가 이 인격이란 말을 모호하게 사용하여 더욱 성도들을 혼돈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항에서도 간결한 이해를 돕기 위해 번호를 붙여 설명하겠다.

 ① 김씨는 인간의 영은 항구적 존재로 인격이 아니며 좁은 의미에서는 혼이 인격인데 실제로는 혼은 몸과 함께 인격이 된다고 한다(마귀론 상, p.80, 하, p.62).
 ② 그런데 인격의 주체인 몸이 죽을 때는 혼이 영에 잠재해 버리므로 항구적 인격이 된다(마귀론 상, p.83).
 ③ 그러면서도 사람의 몸이 없어지면 인격이 나타날 수 없어 영에 잠재해 버리므로 인격은 존재하나 그 기능 지·정·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마귀론 상, p. 167).
 ④ 또한 천사는 몸이 없어도 인격이라고 한다(마귀론 하, p. 62). 반면에 몸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서 인격이라고 한다(마귀론 상, p.80).

 ⑤ 김씨는 하나님은 또한 비록 세 인격이 아닌 한 인격이라고는 하나 인격이라고 한다(T.P.9-1, 성령을 알자 등).
 ⑥ 그리고 예수님의 육체는 영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니 (마귀론 상, P.89)그래서 예수님의 육신은 인격이 아니다(T.P.9-2)라고 한다.
 ⑦ 그리고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기 때문에 인격이 아니며 남의 몸에 들어갈 때만 인격이 나타난다(마귀론 하, PP.62-63)고 한다.
 ⑧ 귀신은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몸에 들어올 때 반드시 가변된 천사, 즉 미혹의 영이 도움으로만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이미 독자들은 위에 열거된 그의 사상이 서로서로 모순 투성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의 궤계가 얼마나 교묘한지 알 수 있다.

 비판해 보자.
 우선 김씨는 인격이란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든지 두 개의 기준을 가지고 인격이란 말을 쓰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쉽게 귀신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한 필연적 논리적 귀결이다. 그가 쓰는 인격이란 말이 의미는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육체를 가져야만 인격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즉 인격의 "사람 인(人)"자 때문에 사람과 같은 존재를 가리킨다고 보기 때문에 육체를 입어야만 인격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유의지와 책임을 가진 존재를 가리켜 인격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 자신이 인격의 기능인 지·정·의를 말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가지 기준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모순 투성이가 도어 버렸다.

이를 살펴보자.
 첫째, 몸을 가져야만 인격이라고 생각할 때 오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는 말과 미혹의 영의 도움을 입어야만 우리 몸에 들어 온다는 그의 이론을 설명할 때만 그의 논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모순을 낳는다. 귀신은 절대로 인격이 아니어야 하고 그 귀신은 인격적 기능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마귀론 상, p.167) 반면 또한 귀신은 인격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마귀론 하, pp.124-135)고 하는 모순된 소리를 했다.

 더욱이 그가 귀신 자체는 영으로 인격이 아니라고 하면서 귀신 자체가 몸도 없이 의지를 보이고 대화하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마 12:43, 44). 그런가 하면 귀신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미혹의 영의 도움이 없이 우리 몸에 못들어 온다는 그의 이론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가 천사의 몸이 없어도 인격이라고 하였지만(마귀론 하, p.62) 천사는 영인데 어떻게 인격이 될 수 있겠으며 그보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이신데(약 1:17) 어떻게 인격이 될 수 있겠는가?

 둘째, 지·정·의를 가진 그리고 책임을 가진 존재가 인격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처음에는 김씨가 인격을 전자의 의미로 받아 들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글을 읽어 본 후 후자의 의미로 인격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항구적 존재라는 영의 문제이다. 영은 인격이 아니며 오직 항구적 가치만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한 그의 말이 모순된다(마귀론 상, p.83) 영자체가 인격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귀신은 몸을 입기 전에도 인격으로 존재하니 대화도 가능하며 미혹의 영의 도움 없이도 몸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고의든, 무지든 인격이란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 하나씩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다.

1. 사람의 인격
 김씨가 인간을 영·혼·육의 삼분설을 취하면서 그 인격의 주체를 혼으로 잡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야만 창세기 1장의 인간과 2장의 인간이 다르다는 이중아담론이 가능하고 귀신의 존재에 대한 설명과 축사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운 교리이지만 사실 인간의 인격은 영혼 자체만으로(이분설을 취하여) 가능한 것이다 .

 몸이 없어도 다른 모든 천사들이나 신들이 영만으로 인격인 것과 같이 인간도 영혼만으로 인격이 되는 것이다. 혼을 인격의 주체로 보는 것은 구원의 핵심이 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혼에 의해 움직여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인격을 지배한다는 천사가 실질적으로 하나님보다 더 큰 영향력과 힘을 가지게 된다.

2. 귀신의 인격
 귀신이란 말 자체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기 때문에 이는 인격이 아니란 말이 된다. 그렇게 볼 때 귀신 그 자체는 죽을 수도 없어질 수도 없다는 말이 되고 만다. 그런데 "죽은 자"라고 표현한 것이 "귀신"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은(마귀론 하, p.141, 144)귀신이란 본질에 대한 표현으로서는 맞지 않게 된다. 죽은 것은 몸이지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혼이 영에 잠재할 때는 인격이 아니고 몸에 들어올때는 인격이 된다는 말은 귀신은 아무런 의지가 없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미혹의 영의 도움을 입어 몸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전혀 의지가 없는 비인격체인 귀신이 어떻게 몸에 들어오겠는가? 차라리 미혹의 영이 귀신을 강제로 몰아 넣었다고 해야 김씨의 논리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김씨의 마귀론의 핵심이 귀신이 아니다. 미혹의 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천사의 인격
 천사는 육체가 없어도 인격이란 말은 천사의 인격과 사람의 인격이 다르다는 전제에 의해서만 가능한다. 천사의 영과 인간의 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몸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인격이란 말은(마귀론 상, p.80)구약에 천사가 몸을 입고 나타난 경우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형상"이란 말이 모순된다.

 이 형상이란 개념을 내적인 성품으로서의 형상이라면 천사가 몸을 입었든지 안입었든지 형상일 것이요, 형상이란 개념을 외적인 모습으로 생각했다면 천사가 몸을 입었을 때는 보이는 형상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형상"이란 말은 네모난 삼각형같이 모순된 말이 된다.

4. 예수님의 인격
 그의 말에 의하면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인격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몸을 입고 오신 인간으로서 신이라고 하면 이단이 되고 그의 몸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요(요 1:1), 그 말씀은 곧 영이기 때문에(요 6:63) 영은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이니 예수님의 육신은 인격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예수님의 육신이 인격이 아니라고 할 때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위에서 지적한 인간의 몸을 중심해서 생각하는 인격의 범주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몸은 영이니 인격이 아니라는 논리는 자연스런 것이다. 천사는 몸이 없어도 인격이며 예수님은 몸이 있어도 왜 인격이 아닌가? 이 해괴망칙한 인격론이 어디에 있겠는가? 왜 이런 말이 생겼다고 독자들은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그의 귀신의 존재와 축사운동 때문에 생긴 비성경적인 이론이다.

 마귀는 그 본질이 거짓말쟁이이다(요 8:44). 위에서 밝힌 것처럼 김씨의 마귀론이 성경을 떠난 것만은 분명히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유익정도나 숫자와 아무 상관없이 사탄의 역사이다. 우리는 쉽게 김기동씨의 마귀론은 마귀신학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많은 평신도들은 영의 세계를 두려워 한다. 마귀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그래서 오늘날 신비주의는 많은 사람을 모으는 나팔같이 사용되지만 또한 이단을 위한 문이 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다(요 1:12).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 곧 영생을 얻었다(요 3:16). 그리고 아들을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그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롬 8:38, 39).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요한계시록을 보며 어떤 징계와 저주가 나올지라도, 어떤 환난이 나올지라도, 어떤 혼란이 나올지라도 우리는 주의 권능으로 능히 이길 것이며 보호될 것이니 오히려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는 줄로 믿는다. 이것이 말씀의 권능을 믿는 성도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권능을 믿는 성도이다.

결론
귀신은 타락한 천사이다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성서적 마귀론은 신학의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이제 신학계의 적극적인 관심이 모아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필자가 결론적으로 이 항을 만든 것은 적극적인 면에서 성서적 마귀론을 정립하겠다는 뜻보다는 많은 연구의 가능성을 남겨 놓자는 것이며 김씨의 마귀론의 표면적 실제적 핵심이 귀신이란 점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성서적 접근을 하자는 적이다.

 그동안 학계에 나온 마귀론 중에서 복음적인 면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마귀론을 메릴 엉거(Merrill. F. Unger)가 쓴 성서적 마귀론(Biblical Demonology)이다(정학봉 역, 요단출판사, 1981). 그러나 이 책에서도 많은 연구점을 남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마귀에 대해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성서적 마귀론, pp.22~23). 그러나 또한 마귀론 연구의 핵심은 다른 어떤 인간의 자연주의적 이론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분명한 답을 주는 것이 성경이 되어야 한다(Ibid., pp.44~43).

 먼저 김씨가 귀신론을 중심해서 정통교회를 향해 내어놓은 도전을 살펴보자.
 김씨는 귀신이 제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의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귀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통신학에서는 귀신 또한 타락한 천사로 보는데 이는 성경적으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귀신은 결코 불신자의 사후 존재가 아니요, 마귀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모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성서적 증거도 없습니다"(마귀론 하, p.62).

 그가 그렇게 말하는 논리의 근거는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도 많은 귀신들이 있어서 질병을 일으키느냐고 하는 것이다. 김씨 자신의 주관적 논리의 근거는 이렇다.

 천사나 마귀는 절대로 우리 몸에 못들어 오는데(Ibid., p.63) 만일 들어간다면 A속에 있으면 B속에 마귀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T.P.9~2). 그러니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귀신이요, 그렇게 많은 질병들을 이 우주 안에서 일으키는 귀신들은 많을 수밖에 없고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고 할 때 잘 믿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점이 성경과 다르다. 성경에 보면 사탄과 마귀가 인간에게 들어 온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13:2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으며 누가복음 22:3에서는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라고 했다. 심지어 사도행전 5:3에서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하였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만 사탄이라고 하는 김씨에게 위의 말씀중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가니"란 말은 이중으로 불가능한 말이다.

 또한 마귀가 A란 사람 속에 있으면 B라는 사람 속에 없다는 말은 영의 세계를 모르는 말이다. 그러면 마귀가 A라는 사람을 대적하고, 유혹하고, 올무를 놓는다면 B라는 사람을 대적할 수도, 유혹할 수도, 올무를 놓을 수도 없어야 할 것이다(약 4:7; 딤전 3:7).
 한마디로 귀신은 사탄과 마귀와 같이 타락한 천사이다. 엉거는 타락한 천사를 활동하는 계층과 묶여있는 계층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탄의 처음 반역에서 그가 비천한 천사들을 많이 끌어들인 것을 알 수가 있다(마 25:41; 게 12:4 참고).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두 계층으로 나누이는데 (1) 자유스럽게 활동하는 계층과 (2) 묶여있는 계층이 있다. 이들 자유스럽게 활동하는 계층은 그들의 재왕인 사탄의 지도하에 하늘에서 왕래하고 있는데 이들 타락한 영들에 대해서만 성경에 분명히 언급되어있다. 그들 '귀신의 왕 바알세불'(마 12:24)이라고 불렀고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 '용과 그의 사자들'(계 12:7)이라고도 불렀다. 이들 사탄의 왕국의 통치하에서의 감금되지 아니한 악령들은 그의 사자와 신하들이며(마 12:26) 그의 세력을 실제적으로 어디에나 있게 할 만큼 수없이 많은데 바로 이들이 귀신들인 것 같다"(엉거, 마귀론, p.88).

 분명히 귀신이 타락한 천사들이란 증거는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과 "용과 그의 사자들"(계 12:7)을 그 결정적 증거로 들 수 있다. 더욱이 사탄의 최초 반역시 그보다 못한 수많은 천사들이, 모든 천사의 삼분의 일 가량되는 천사들이 그곳에 가담하였다(겔 28:18; 계 12:4). 이렇게 귀신을 정의하는데 성경적으로 아무 모순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탄, 마귀 또는 귀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인의 후손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의 머리가 상하였으며(창 3:15), 하늘에서 떨어졌으며(눅 10:18), 사탄의 권세는 무너졌다(고전 15:55 이하). 이제 마지막 심판이 남아 있을 뿐이다(계 20:10).

 아무리 그들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지라도(고후 11:1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만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강할지라도 우리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승리할 것이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고 찬송하고 찬송하고 찬송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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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가 쓴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기독교문화협회刊, 1990년 9월10일 발행)를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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