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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3)
1991년 03월 03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Ⅲ. 베뢰아의 성령은 허수아비이다.

 김씨의 성령론은 "성령을 알자"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이책을 통해 그의 삼위일체는 양태론적 삼위일체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그가 이해하는 성령론은 정통적인 성령론과는 하늘과 땅처럼, 동과 서처럼 먼 것이다.

 그는 구약시대의 성령의 역사는 인간 속에 내주하신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양자의 영인 성령이 없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

 "구약시대에는 모두가 천사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기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양자의 영이 없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지 않았습니까?"(마귀론 상, p.57)
 그런 점에서 예수 이전에는 성령의 내주가 없었다고 한다.

 "예수 이전에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성경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권능을 입어' '감동함을 입어'하여 위에 입었다는 뜻이지 '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 오신 성령에 대하여는 '성령이 너희 안에 오시리라',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하여 모든 사람 속에 '내주하리라'는 말로 나옵니다."

 "…과거 선지자들도 성령을 힘입었고, 요한도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함을 입어'라고 했으나 그들은 성령의 권위로 외투를 입고 있듯 힘입었던 것이지 내주하여 임하신 것은 아닙니다"(성령을 알자. pp.95-96).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상, p.112). 그래서 창세기 1:2에 "하나님의 신"도 천사를 말한다고 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였던 것같이 하나님의 신이 그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것은 하나님의 천사가 수면 위에 운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를 말합니다"(마귀론 상, p.62).

 그의 성령론 역시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에 근거하여 이해할 때 잘 이해되는데 결국 김씨는 성령의 편재성을 부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성령 받고 우리도 성령 받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지만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늘로 가신 다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안에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성령을 알자, p.96).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시기 전에는 성령은 예수 안에 계셨으니 다른 사람에게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볼 때 성령의 편재성이 와전히 부정되고 있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비로소 교회에 성령이 오셨다는 말은 성령의 편재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스스로 모순되는 말이다. 즉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교회에 성령이 왔다는 말은교회에 성령이 오신 후에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 속에는 성령이 분명히 안계신다는 말이 된다.

 다시 상기하여 보자.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우리 안에 있을 때 성령이 된다는 김씨의 말을 따르게 되면 구약에서의 성령이 내주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안계셨다는 말이 되고, 신약의 예수님이 승천하신후 성령이 교회 안에 계신다는 말은 아버지가 우리 속에 오셨다는 말이니 하늘에는 아버지가 안계신다는 말이 된다.

 그는 심지어 성령이 임하지 않아도 예수를 인정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성령을 알자, p97) 오직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령이 오심으로 시작되는 것 같이 교회가 성령을 받을 때부터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Ibid., p.97). 그래서 성령이 없어도 구원은 받으나 공생애는 아니요 사생애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령을 받아 공생애의 삶을 살지 않으면 면류관은 없다고 한다(Ibid., p.98).

 이처럼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엄격하게 따지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시대의) 성령의 사역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함을 입어" 태어났다는 말도 성령의 내주가 아니라고 하게 되었고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에 의해서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는 어느 누구의 속에도 성령이 없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속에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성령은 하늘에도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보다는 성령은 한 분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갑 속에 성령이 있으면 을 속에 성령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김씨는 성령의 역사를 모두 천사의 역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비록 김씨는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천사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며 권능을 받는다고 할 때의 성령을 권능과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한번 움직이면 그의 주변을 경호하는 수행자들이 많이 수행하며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가만히 있어도 수행자들과 경호원들은 계속 일하듯이 성령이 임하시면 이러한 권능들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있으면 자연히 수행자가 따르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113).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지배를 받는 자들은 천사가 수종들려고 보냄을 받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라는 말은 '천사를 얻고'라는 말로, 신약시대의 권능은 천사와 동격입니다"(Ibid., p.111).

 김씨는 천사의 숫자에 따라 능력있는 성도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귀신도 천사가 쫓고(T.P.21-2) 인격형성도 천사가 하며(마귀론 중, P.67) 가변된 천사, 즉 미혹의 영, 모든 행동과 생각도 천사가 주장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비판해 보자.
 한 마디로 김씨의 삼위일체론은 구약에는 일신론이요 신약에서만 삼위일체론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나마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론이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있기 전에는 예수가 있을 수도 없으며 그러기에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 본래 이름이란 말이 가능했고(김기동, 보이지 않는 벽, 서울, 1982, p.185) 구약에는 성령이 인간 속에 내주한 일이 없었으며 그러기에 구약에 나온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란 말은 자연스런 결론이다. 왜냐하면 성령이란 아버지가 인간 속에 있을 때만 성령이라는 그의 정의를 볼 때 구약에는 성령이 인간 속에 내주한 일이 없다는 말은 아버지께서 우리 속에 내주한 일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구약에 성령이란 이름조차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구약의 성령의 역사를 말한다면 스스로 모순될 뿐이다. 더욱이 창세기 1:2의 하나님의 신마저도 천사로 볼 수밖에 없음은 하나님의 신을 성령으로 보면 그가 내린 성령에 대한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가 우리 속에 있을 때만 성령이신데 수면위를 운행할 그런 신은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사람의 영 자체가 신이요, 사람의 영은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라고 한 점을 볼 때(T.P.35-1)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천사라 했고 사람의 영(귀신을 포함해서)은 하나님의 신이기 때문에 결국 정통교회가 보는 성령, 즉 하나님의 신은 천사나 귀신 수준으로 바꾸어 버림은 자연스럽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록 그가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이론적으로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천사의 역사로 설명하여 누가 보아도 성령은 허수아비 같은 인상을 못 벗어나는 이유 또한 삼위의 양태론적 이해와 성령의 편재성을 부정하는 자세에서 나온 체계없는 이론일 뿐이다. 그가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성령을 알자, p96)는 말을 깊이 분석해 보면 성령의 편재성을 부인함을 알 수 있게된다. 혹 그가 신약시대의 성령의 편재성을 억지로 주장하더라도 구약의 신은 삼위 하나님이 아니요 그나마 이해하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마저도 신약에만 국한될 뿐이다.

제Ⅲ장
창조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창조론만큼 중요한 교리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현상이든 그 의미를 찾을 때마다 근원부터 살펴야 하는 학문적 습관과 당연한 방법론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은 모든 교리의 근원인 창조론에서부터 달라진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이단 사상을 숨길 수 있는 숲 또한 창조론이다. 더욱이 우리는 창조론에서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많은 부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호기심을 정통신학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이단 사상으로 채울 위험이 큰 것이다.

 김씨의 창조론을 살펴보자.
 먼저 그가 말하는 창조목적은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천사가 타락한 시기는 천지창조 전이 될 수밖에 없다(마귀론 상, p.64). 그 증거는 이렇다.
 그는 세 가지로 하늘을 구별하여 가르치는데 지구 가까이에 지구의 하늘(sky)이 있고, 그 다음에 궁창의 하늘(space)이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하늘(heaven)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타락한 마귀를 하나님의 하늘에서 내어 쫓아 궁창에 가두신 때가 창세기 1:8이요, 그 마귀가 셋째 하늘로 내려온 때가 요한계시록 12:7-10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하늘과 궁창의 하늘 사이는 물벽이 있는데 그 물벽이 창세기 1:2의 그 물벽이요 거기 있는 하나님의 신, 즉 천사는 마귀가 하늘나라에 못들어 오도록 지키는 천사라고 한다.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수종드는 종으로서 지음을 받았는데 그가 하나님을 반역했기에 하나님은 계획전으로 그 천사를 멸하기 위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천사가 인간보다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만물을 지을 때에 천사도 함께 있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할 때의 그 신은 성령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교도소를 지키는 교도관은 법무장관의 지시 하에 그 교도소를 지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운행한다는 것은 곧 천사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법무장관이 직접 총을 메고 나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도관을 파송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영원한 결박으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마귀론 상, pp.61-62).

 그리하여 첫째 날 만든 빛은 어둠의 세력인 마귀에 대한 심판의 시작이라고 한다.
 "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천사가 타락했기에 이 타락한 천사를 멸하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우주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흑암과 먼지와 안개가 가득하더라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우주를 만드실 때 창조한 사실이 없으나 이미 과거에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우주 안에 그를 영원한 결박으로 가두신 것입니다. 천지창조는 그 다음에 구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의 태초는 만물의 태초로 이 우주 안에서 이루어진 태초입니다. 그곳이 어둠과 먼지와 안개로 가득했기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다. 우주 안에만 있는 시한적 존재입니다. 이러한 피조물은 어느 때인가는 없어질 것들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하나님이 천사를 만드셨을 때 그들의 배타적인 부분, 곧 그들이 지위를 떠났을 때의 만약을 위해 사전에 그러한 준비를 하셨을는지도 모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빛이 있으므로 인류가 있게 되고 인류가 존재하게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곧 인자가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귀론 상, pp.64-65).

 여기에서 소위 성도들에게 가장 미혹이 되는 둘째 날 궁창 창조시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는 이유인데 거기에 마귀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중을 만드셨으나 좋았더라 하지 않으신 것은 마귀가 거할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형무소를 만들어 놓고 놓았더라 하겠습니까?"(마귀론 상, p.66).

 그리하여 하나님은 마귀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대적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합법적인 권리를 받았다는 논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사탄으로 마귀가 되게하여 그 사람을 대적하도록 방향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합법적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곧 마귀라는 불법을 합법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에 시험하는 자라고 주님께서 합법적인 신분이기에 그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은 합법적인 권리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면 매일 시험에 빠져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마귀론 중, p.23).

 비판을 하기 전에 창조론에서 한 가지 더 소개해야 할 중요한 이단사상이 있다. 소위 이중아담론이다. 이 사상은 마귀론 상권 79페이지에서부터 95페이지에 잘 나타나있다. 간단히 설명해 보자.

 창세기 1:27의 남자와 여자는 몸과 혼만 가진 존재인데 창세기 2:7의 아담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다. 1장의 인간은 사람이라 하고, 2장의 인간을 아담이라고 한다. 직접 인용해 보자.

 "창세기 1:27의 '하나님이…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할 때의 이 남자와 여자는 지금 말하는 인격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남자와 여자라는 곧 암컷과 수컷이라는 하나의 자웅을 구분하는 이치로서의 표현입니다. 이때 많은 자손을 얻어 번성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육체는 생물학적인 유전은 가져왔지만 영적인 유전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사람 자체가 여섯째 날 모든 동물을 만드심 같이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들 역시 몸과 혼을 합해 완전한 인격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육신이 있는 동안 이들에게는 도덕이 잇고 윤리가 있었으며 또 문화도 있었습니다. 다만 영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 죄 지은 자들은 내세가 없는 자들이기에 더 행복할는지 모릅니다"(마귀론 상, p.81).

 이 2장의 아담은 충만한 수의 사람들(영이 없는 짐승과 같은)중에 뽑혔으니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말은 생 또는 삶(육+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하심으로 이들의 임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하심으로 이들의 임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몇몇 사람중에서 한 사람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땅에 충만한 수 중에서 뽑혔으니 굉장한 사람입니다. 몸으로서의 혼, 곧 인격인 아담을 하나님은 생령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마귀론 상, p.84).

 이제 하나씩 비판하겠다.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하려한다. 첫째,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둘째, 하늘 문제 속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셋째, 이중아담론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Ⅰ.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우선 그가 보는 천사의 타락시기부터 문제가 된다. 성경은 전혀 천사의 타락시기를 말하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와 하나님이 절대창조만은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사상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고 역사적인 기독교의 전통이 그렇다.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천사의 타락시기를 말하려면 겸손하게 가능성 정도만 비쳐 말해야 하며 그것도 하나님의 절대창조와 선한 창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복음적인 학자들은 천사의 타락시기를 창조 후로 보는데 공통적이다.

 그 다음에는 창조목적이 잘못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된 일이다. 그런데 마귀를 멸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인간은 하나님의 노리개가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계획적으로 마귀를 멸하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과, 마귀는 불법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불법을 합법화 하도록 하는 권리를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은 악하며 인간타락의 책임이 하나님께 돌아가 버리는 무서운 사상을 가지게 된다.

Ⅱ. 하늘 문제 속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우선 김씨가 주장하는 세 가지 하늘이 있는데 우주(궁창의 하늘과 지구의 하늘을 합하여)와 천국의 하늘이 물벽으로 구분되며 이 우주는 결국 사탄이 지배하는 음부라고 하는 사상은 그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하늘과 궁창의 하늘은 물벽으로 나누어 졌다고하여 그 선이 선명한데 반해 지구의 하늘과 궁창의 하늘은 구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니 궁창은 마귀의 감옥으로 만들었으며 천지창조 둘째 날 궁창 창조에 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란 말이 없다고 하는 그의 이론은 잘못된 말이지만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

 궁창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마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가르친 베뢰아 강의에 보면 바로 넷째 날 만든 해와 달과 별들이 궁창에 있다고 했다(T.P.3-1,2). 이는 그가 과학자들의 말을 빌려 우주, 물벽과 물벽의 지름을 백만 광년이라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궁창에 마귀가 있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않은데 마귀의 감옥 속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은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둘째 날 창조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음은 궁창이 마귀의 감옥이기 때문이라고 한 김씨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비판해 보자.

 ① 창세기 1:1의 창조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다.
 김씨는 창세기 1:2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영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김씨에 의하면 창조 자체가 마귀를 위해 창조한 세상이니 그렇게 해석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기에 1:의 창조를 가리켜 어둠과 먼지와 안개로 가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마귀론 상, P. 65).

 본문의 "혼돈"과 "공허"는 단지 사람이 살 수 없는 조직되지 못한 자연적인 상태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며 더욱이 "흑암"은 자연적인 어두움일 뿐이지 영적 어두움이 아니다. 하나님은 빛도 만드셨지만 어두움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사 45:7).

 ② 1:4의 "어두움"에 대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다.
 1:2의 "흑암"도 사탄에 의한 어두움으로 본다면 자연히 1:4의 "어두움"도 사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씨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음이 이상하다. 이 "어두움"또한 자연적인 어두움을 가리킨다.

 만일 자연적인 어두움마저 사탄적인 것으로 본다면 김씨는 자기방에다 밤이 되면 수만 볼트의 전깃불을 가능한 한 많이 켜 놓고 자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김씨에게는 자연적인 어두움이 곧 영적인 어두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빛도 만드시고 어두움도 만드셨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시 104:20)라고 했다. 그런데 창세기 1:4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빛에만 해당되고 어두움에 대하여는 말하고 있지 않다. 왜 그러한가?

 ③ 1:27,28의 인간창조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다.
 위 두 가지는 해석적인 입장에 따라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남는다. 그러나 인간창조 문제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음은 해석할 길이 없다. 25절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은 땅의 짐승에 대하여 한 말이지 인간에 대하여 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마저도 마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는 것이가? 그렇게 본다면 모든 창조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김씨의 이론을 따르면 어차피 창조는 마귀를 멸하기 위한 창조였으니까 말이다.

 ④ 1:31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이 모순된다.
 이 본문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에서 궁창창조는 예외인간? 1:2의 "흑암"도 1:4의 "어두움"도 1:26, 27의 인간도 예외인가? 오직 궁창창조 하나만 예외가 있더라도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이란 말은 모순되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경계시를 잘못하신 것이다.

 ⑤ 궁창창조 후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 대신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이 있다(1:7).
 "그대로 되니라"란 말은 누구의 뜻대로 되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는 말이다. 김씨도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믿는 줄 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뜻하는대로 원하시는대로 만드신 것이 둘째 날 궁창이다.

 본문에 "그대로 되니라"란 말이 다른 곳의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을 대신한다. 그리고 1:31의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은 이 궁창까지 포함한 모든 것이다.

Ⅲ. 이중아담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이중아담론이 이단적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김씨 자신일 것이다. 그가 1983년 자신이 속했던 침례교 총회에 이중아담론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한  각서를 보아 알 수 있다(물론 후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그 교단에서 1987년 11월에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이 항은 인간론의 측면에서 별개의 장으로 취급될 수 있으나 본항에서 취급하겠다. 이 이중아담론과 베뢰아의 인간론은 "마귀론"상권 사람의 인견(pp.79-95)에 잘 나타나 있다.

 우선 하나님의 이중 인간창조문제를 비판하고 인간의 인격문제는 후에 취급하자.
 김씨는 1장의 인간은 혼과 몸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로 단지 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용어로 보고 2장의 인간은 혼과 몸 외에 영을 받아 수많은 1장의 사람들 중에서 뽑힌 개화딘 인간이라고 한다(마귀론 상, p.79). 그러므로 그는 히브리 원문에 보면 창세기 1:27의 남자와 여자가 2:8의 인간과 다름을 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히브리 원문을 보면 창세기 1:27의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가 영적인 것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적인 자웅을 구분하고 있는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말은, 생 또는 삶(육+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하심으로 이들의 임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몇몇 사람 중에서 한 사람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땅에 충만한 수 중에서 뽑혔으니 굉장한 사람입니다. 몸으로서의 혼, 곧 인격인 아담을 하나님은 생령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령은 아담 하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와의 영도 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 하나를 만들어 아담에게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하여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부터 시작했으나 아다믄 충만한 수의 사람 중 하나를 뽑아 경건한 자녀를 얻기 위해 분리시킨 것입니다"(마귀론 상, pp.84-85).

 원래 이단은 거짓말의 명수이다. 김씨는 원문을 들면서 결정적인 거짓말을 했던 경우가 두 번 있는데 그 한 번이 바로 이중아담론이다. 이는 실수로 인한 거짓말이 결코 아니다. 실수로 인해 거짓말을 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럴 가능성이 신학적으로나 어학적으로나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1:27의 인간이나 2:8의 인간이 경우 히브리 원문은 똑같이 '아담'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본 상 그렇게 말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오직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여 미혹하려는 경우와 원어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무지와 교만의 가능성 외에는 절대로 다른 가능성이 없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이단들은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성도들이 모르는 원문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데 구원받은 자는 의인이라 해야하며 죄인이라 하면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하는 구원파 이단의 경우도 그렇다(특히 박옥수파의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15에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했다고 말하면 원문에는 과거시제로 과거에 죄인의 괴수였다고 했기 때문에 현재 죄인의 괴수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문에는 과거시제가 아닌 현재시제로 되어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단들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다.

 1장의 인간과 2장의 인간은 똑같은 인간이다. 2장의 인간도 1장의 인간처럼 하나님 형상을 가진 인간이요, 1장의 인간도 2장의 인간처럼 생령을 가진 인간이다. 단지 2장은 1장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창조의 모습을 가르치는 것이다. 2:4의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의 "대략"이란 말은 히브리어 "톨도트"란 말로 구체적인 모습을 설명하는 단어이다.

 만일 1장 창조와 2장 창조를 다른 창조로 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1장의 인간은 에덴동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말이 되며 에덴동산을 위한 창조가 따로 있게 된다. 그 이유는 2:8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라고 한 것을 보아서 에덴동산을 따로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1장에는 에덴이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김씨가 말하는 1장의 동물과 같은 인간(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것과 같은 인간이니까)에게 하나님 형상을 주셨다는 말이 설명되지 않는다. 27절과 28절을 보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단지 동물과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었다고 한다면 김씨는 하나님 형상에 영적 요소를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성품과 같은 하나님 형상을 주었다는 것도 모순되는 말이 된다. 더욱이 그런 인간에게 만물을 정복하고 다르시라는 특권을 주었음도 모순된다. 그보다 영적 요소가 없는, 영적 요소가 배제되는 하나님 형상이란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이는 하나님 형상에 대한 전통적인 교회의 이해와 완전히 배치되는 이단적 해석이다.

 본 항에서 김씨의 인간론 문제를 취급할 수 있다. 그러나 마귀론에서도 이 점이 핵심이 되기 때문에 다음 장에서 베뢰아의 인격 문제를 같이 취급하여 비판하겠다.


제Ⅳ장
마귀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김씨는 마귀를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자신의 마귀론은 성경에 근거했으며 또한 경험에 근거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마귀론 상, pp.9-10) 얼마나 성경에 접근하고 있으며 얼마나 성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리고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경험과 성경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그의 경험 앞에 성경은 얼마만한 의미가 있는가?

 그의 계시론에서 밝힌 것처럼 이미 그의 설교나 학설은 성경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본장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소개비판 하겠다.

Ⅰ. 김씨가 사탄과 마귀에 대해 내린 정의의 오류
 베뢰아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탄과 마귀는 창세전에 하나님께 혁명을 일으킨 천사(마귀론 상, p.37)로서 원래 동격인데 사탄은 하나님을 대항할 때를 가리키고 마귀는 인간을 대적할 때 부르는 명칭이라 한다.

 "사탄과 마귀는 동격으로 사탄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여 단수입니다. 사탄은 흑암에 갇히기 전 자기 지위를 떠나 하나님께 도전할 때를 말하며 이는 혁명가라는 뜻으로 타락한 자의 신분을 말합니다. 임금을 반역했을 때에 혁명가가 되듯 사탄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켜 하나님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반역한 원수일 뿐, 권세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주 안에 들어와서 이를 주관하는 자로 권세의 대명사입니다"(마귀론 상, p.151).

 그래서 그는 성경에 사탄을 대적하라고 한 일이 없다고 거듭거듭 말한다. "우주를 창조하기 이전,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자의 신분을 사탄이라 하며 우주를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한 후부터 마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사탄을 대적하라는 말은 없습니다"(마귀론 중, p.23).

 즉 사탄은 창조 전, 하나님을 도전할 때 가진 이름이요, 마귀는 우주 안에 들어와 인간을 주관하는 합법적인 불법자라고 한다.

 그의 말이 옳은지 살펴보자.
 우선 사탄마귀의 타락시기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타락의 시기를 창조 전으로 잡는 것은 하나님을 불법자로 만들어 버렸으며 인간은 불법적인 합법자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피조된 이용물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의 시기를 창조 후 하와가 유혹받기 전 어느 시기로 보는데 복음적인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김씨가 사탄은 하나님을 도전할 때 사탄이라고 한 말과 인간을 대적할 때 마귀라고 한 말은 전혀 성경적으로 무근한 말이다. 김씨는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자신의 사상을 전개시키는데 이든 이단의 속성이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사탄과 마귀에 대한 정의이다.

 사탄이란 말은 신구약에 56회 , 구약에서는 명사형태로 28회, 동사형태로 6회 정도 사용되고 있는데 김씨의 말처럼 창조 전에 하나님을 대적할 때만 사탄이거나 창조 후부터는 인간을 대적할때는 마귀라고 하는 말은 전혀 무책임한 말이다.

 김씨 말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마 4장) "사단아 물러가라"(10절)는 말은 모순된다. 첫째,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은 인간이신데(하나님이 아닌), 인간 예수를 대적하는데 왜 "사단"이라고 했는가? 둘째, 창조 후에는 마귀에게 맡겨진 일인데 왜 마귀가 아니고 사단인가?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할 때(23절), 김씨 말에 의하면, 베드로가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사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다. 분명히 김씨가 주장하는 인간 예수를 대적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김씨의 말이 옳다면 결국 모든 사단의 역사는 직접·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사상을 완전히 뒤엎을 몇 가지 경우를 더 들어보자.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값을 속였을 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3절)라고 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가리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다고 했으며(고후 12:7),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2:31에서 시몬에게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라고 하였다. 그의 말로하면 이는 사단이 아니라 마귀가 되어야 한다.

 이 점은 구약에서도 같다. 욥기 2:7에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틀림없이 사단이 욥을 쳐서라고 했다.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욥을 대적했다.

 그보다 스가랴 3:1을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기에서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에서 그는 누구인가? 틀림없이 여호수아이다. 인간 여호수아를 대적하는데 마귀가 아니고 사단이었다.

 이제 인간을 대적할 때 마귀라는 그의 말을 살펴보자. 역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실 때(마 4장)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하였다. 김씨의 말로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니까 인간 예수를 시험하였으니 마귀가 맞는데 그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한 것은 모순된다. 그러나 마귀를 사단이라고 한 것을 보니 하나님을 대적하든 인간을 대적하든 사단이요 마귀인 것이다. 그리고 김씨의 주장처럼 베드로가 예수님께 책망을 들을 때 하나님께 대적했으므로 사단이라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마 16:23)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때야말로 더욱 사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귀니라"(요 6:70)라고 하셨다.

 그의 말에 의하면 천사장 미가엘과 모세의 시체로 싸울 때 그 원수를 가리켜 "마귀"라고 했는데(유 1:9) 천사를 대적할 때는 마귀인지 사탄인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볼 때 성경에서 사탄과 마귀라는 용어가 구별된 의미로 사용됨에는 틀림이 없으나, 사탄과 마귀를 같은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계 12:9; 20:2). 김씨의 마귀론은 그 출발부터가 성경을 잘 살펴보지도 않은 채 무책임하게 엮어 놓은 이단체계임을 알 수 있다.

Ⅱ. 귀신은 제명에 죽지못한 불신자의 사후의 존재라는 말의 오류
 김씨의 모든 신학의 초점은 바로 이 귀신의 존재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현상을 맞추어져 있다.
 먼저 인간수명문제를 생각해 보자. 김씨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노아 이전에는 천 년 가까이도 살았는데 노아 때 120년으로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가 노아 이후부터 120년이 인간의 수명이라고 가르쳤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제 평균수명이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 설명을 하는 것 같다.

 "창세기 6:3에 인간이 세상에 머무는 연수의 한계를 120년이라 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천 년 가까이 살았는데 노아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수명이 줄어들었습니다. 곡식을 심으면 다 고르지 않고 위로 올라오는 것도 있고 내려가는 것도 있듯이 하나님이 인간의 연수를 120년이라 하신 것은 평균수명이기에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더위와 영양부족으로 설흔 네 살이 최장수인 곳도 있습니다"(마귀론 상, p.180).

 그런데 그가 실례를 들어 설명할 때 80세를 자연수명으로 설명하기도 하고(Ibid., p.180), 또한 100세를 자연수명으로 예를 들기도 한 것을 볼 수 있다(Ibid., p.187). 어쨌든 자연수명을 다 채우고 죽은 불신자의 영은 무저갱으로 가고 그렇지 않고 제명에 죽지 못한 영은 제 수명이 차기까지 귀신으로 활동하며 몸에 붙어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수명이 백살인 을이라는 사람이 암으로 60살에 죽었다고 합시다. 그는 자연수명에서 60살에 죽었기에 아직 40살이 남아 있습니다. 이때는 무저갱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음부에서 자연수명이 차기까지 40년간을 마귀와 그 사자들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Ibid., p.187).

 그래서 100살이 제명인 자가 2살에 죽으면 98년간 인간을 괴롭힌다는 것이다(Ibid., p.187). 그리고 귀신이 들렸다가도 자연 수명이 다 되면 자연히 귀신이 떠나 무저갱으로 간다고 한다(Ibid., p.188).

 비판해 보자.
 "제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란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마 10:29). 만일 인간의 수명을 하나님이 정하시고 또 하나님이 죽게하여 남은 생명을 귀신으로 일하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 편에서 스스로 모순된다.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작정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이 아닌 운명론적으로 정해졌을 것이며 그러하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다. 이 점에 대한 김씨의 성경적 증거를 찾을 길도 없으며 또한 구체적 논증을 본 일이 없다.

 이제 귀신은 과연 불신자의 사후의 영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자.
 그는 8,000명을 상대로 하여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의 존재임을 밝혔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나는 죽은 불신자의 영혼이다"라고 한 자가 7,995명이요, "나는 천사다"라고 한 자가 2명이요, "나는 신자였으나 후에 배교했다"는 자가 2명이요, "나는 신자였으나 자살했다"는 자가 1명이라고 했다(마귀론 하, p.146). 이 귀신은 인간의 몸 속에서는 인격을 나타내지만 인간의 몸 밖에 나가서는 항구적 존재인 영으로 있다고 한다.

 이를 살펴보자.
 "성경은 '귀신 들려'라 하며(마 8:16,28; 막 9:25) 사람 몸안에 귀신이 들어 잇을 때에는 '소오마'(헬)라 하며 인격으로 나타냈으며 '귀신이 나가더라'하여 육체에서 귀신이 떠나게 될 때에는 '퓨뉴마'(헬)라 하여 인격이 아닌 영으로 다루었습니다."

사람몸+귀신=인격(소오마)
(X)+귀신=영(퓨뉴마)
 "인격은 몸과 혼은 함께 말하면 영은 하나의 항구적 존재이기에 귀신 들린 사람이라 할 때의 귀신이란 말은 '인격을 지닌 귀신이 들려'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없어지면 영 안에 인격이 잠재해 버려 그 기능이 나타나지 않기에 영이라 말합니다. 귀신도 사람과 같아 몸을 떠나면 그 인격이 영 안에 잠재해 버리기에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영으로서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사람 몸 안에 들어와서만 역사하지 몸 밖에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마귀론 상, pp.167-168).

 그가 귀신이 몸 밖에서는 인격이 아니라는 말에 대한 비판은 다음에 따로 하겠으나 먼저 그가 원어를 말하며 결국 성도들을 속였던 두 번 째 거짓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마태복음 8:16, 28과 마가복음 9:25을 들어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몸 안에 있으면 '소오마'(몸이란 뜻임)가 되고 귀신 자체는 '퓨뉴마'(영이란 뜻임)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성경에는 그런 일이 없다 .단지 동물의 몸이나 인간의 썩을 몸과 육체를 가리켜 '소오마'라고 했으며 귀신이 몸 속에 있을 때 '소오마'라고 불리워진 경우는 성경에 단 한번도 없다.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존재라는 김씨의 주장은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의 학설이라고 하기도 하고(마귀론 상, p.179), 성경에서 명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라 하기도 하고(마귀론 하, p.140), 그러나 성경은 귀신의 정체에 대해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를 보여 준다고 하기도 한다(Ibid., p.140). 그리고 학문적으로 뒷받침 하기가 어려움을 인정하고 이론이기에 표현에 약간의 무리가 있다고 전제하기도 한다(마귀론 상, p.9). 그러나 그가 말하는 성경적 증거만 살펴보자. 그가 제시하는 성경적 증거는 일곱 개가 된다. 사도행전 16:16, 이사야 8:19, 사무엘상 28장의 신접한 여인 사건, 고린도전서 10:20-22, 시편 106:28, 29 마가복음 6:14-16, 마태복음 16:13, 14이다(마귀론 하, pp.141-145).

 하나씩 소개하며 비판해 보자.
 모두가 다 적은 가능성을 확대하여 해석했을 뿐이며 결정적으로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의 영임을 밝히고 있는 부분은 없다.

 첫 번째 성구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지라"(행 16:16).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에서 점하는 귀신의 정체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음의 이사야 8:19을 제시한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여기에서 문제는 '죽은 자'에 대한 해석이다. 이 '죽은 자'가 바로 신접한 자나 마술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점하는 귀신들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순된다. 이 신접한 자와 마술사 속에 있는 귀신은 비록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 하더라도 죽은 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귀신 자체가 항구적 존재이다. 항구적 존재는 죽을 수 없는 것이다. 신약 에베소서 2:1에 우리 성도를 가리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다. 단지 성경은 영적 생명이 없는 자르 죽었다고 한다. 이 점은 누가복음 9:60에서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장사하게 하라는 말의 두 번째 "죽은 자"에서도 같은 의미이다.

 세 번째로 그는 사무엘상 28장의 사울왕의 경우를 든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갔을 때 그 영인이 한 노인을 올라오게 하였는데 사울이 사무엘인 줄 알고 땅에 대고 절하였다는 것이다(삼상 28:13, 14). 그런데 김씨가 강조하는 점은 사울왕이 그 신을 본 것이 아니고 신접한 여인만 보았다고 한 점이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사울왕 자신이 그 신을 본 것이 아니고 신접한 여인이 신접한 방법으로써 그 신을 불러 올렸고, 땅에서 올라온 그 신을 그 신접한 여인만이 복 있었다는 것입니다(삼상 28:13)"(마귀론 하, p.142).

 그런데 이때 나타난 사무엘은 사무엘이 아닌 이 신접한 여인의 술법에 이하여 끌어 올려진 다른 사후 존재라고 한다(Ibid., p.143). 왜냐하면 그 사무엘이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삼상 28:19)는 예언은 참 예언일 수 없다고 한다.

 "사무엘의 사후 형편과 사울의 사후 형편이 같은 수 없습니다. 사무엘은 죽어 거룩히 장사되었고(삼상 25:1), 사울은 자살하여 (삼상 31:4) 그 시체는 저주받아 더럽게 처리됐습니다(삼상 31:7-13). 결코 거룩한 자의 죽음과 타락하고 자살한 자의 죽음을 동일시 할 수 없습니다"(Ibid., p.143).

 비판해 보자.
 김씨가 그 사무엘이 참 사무엘일 수 없다는 데는 정통적인 신학자과 의견이 같다. 그런데 김씨가 사울은 그 신(사무엘)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항구적인 존재일 뿐, 육신을 입고 있는 사울이 인격이 아닌 사후의 존재를 보았다는 말이 그의 귀신론의 체계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울은 분명히 그 신이 노인이라는 것도 알았고 겉옷까지 입고 있음을 알았고, 더욱이 15절에서 들려온 그 음성은 사무엘의 음성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말처럼 모습은 볼 수 없었다면 소리는 들을수 있는가? 귀신은 반드시 몸에만 들어오고 몸에 들어 올 때만 인격인데 어떻게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또한 모순되는 것은 자신은 8,000명을 상대한 경험 속에서 귀신의 말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본문의 사무엘의 "내일…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은 사실일 수 없다는 점이 모순된다. 김씨의 주장은 이같이 모순투성이다.

 네 번째 성구는 고린도전서 10:20-22이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그는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Ibid., p. 144)라는 짧은 한 마디로 위의 귀신이 사후의 존재라고 비약해 버렸다. 자시의 전제를 하나님 말씀의 전제로 삼은 것이다.

 다섯 번째 성구는 시편 106:28, 29이다.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 앞의 이사야 8:19에서와 같이 '죽은 자'를 귀신이라고 한다. 필자도 위의 두 번째 성구에서와 같은 모순점을 지적할 뿐이다.

 여섯 번째 성구는 마가복음 6:14-16이며, 일곱 번째 내용은 마태복음 16:13, 14이다.
 여섯 번째 성구는 헤롯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목 베인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다. 일곱 번째 성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 그런 사상이 너리 퍼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의 사람들이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 또는 악한 자들의 영이라고 생각했음을 부인하지 못하면서도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Ibid., p.145).

 과연 위의 두 성구가 초대교인들이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라고 믿었다는 말이 될 수 있으며,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말이 될 수 있으며,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그 신앙이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겠는가? 구체적 변증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위의 입곱 개의 성구를 살펴 보았으나 어느 것 하나 성경이 그의 사상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렇게도 중요한 계시라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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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가 쓴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기독교문화협회刊, 1990년 9월10일 발행)를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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