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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은 신인합일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지상논쟁1-2 교회와신앙측
1996년 09월 01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윗트니스 리 씨(지방교회·회복교회)는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동시에 상당 수준 이단 시비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윗트니스 리 씨 측에서 기존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여 지난 호부터 본지와 지상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호에는 예정대로 본지 발행인 최삼경 목사의 글을 싣는다. 다음은 윗트니스 리 씨 측의 순서다.<편집자 주>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에 대한  지상논쟁을 시작하면서

이번에 윗트니스 리 편의 요청에 의하여 이런 지상논쟁이 본 지면을 통하여 개설되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필자는 윗트니스 리 편의 자발적인 참여를 귀하게 여기며 다음과 같은 점을 미리 주지시키고 싶다.

무엇보다도 유익한 논쟁이 되기를 바란다. 논쟁이란 잘못하면 유익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기 쉽다. 그것은 운동선수에게 승리가 목적이 됨으로 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 논쟁에는 객관적으로 인정된 심판이 따로 있지 않다. 단지 독자와 역사의 심판을 기대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 논쟁이 유익한 논쟁이 되기를 바라며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제시하는 바이다.

첫째, 인신공격성 논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 교계에는 이런 논쟁이 별로 없었고, 있었어도 평형이 어긋나 어느 편에 치우친 논쟁이 있었으며, 때로는 인신공격적인 논쟁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하는 것이다. 이단논쟁은 분명히 교리적인 논쟁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단으로 지목받는 편에서는 비록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교리적인 논쟁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신공격적인 형태로 발전되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논쟁의 핵심을 피해가지 않기를 바란다. 본지는 창간 이래 지금까지 정통교회나 필자가 이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반론권을 보장해 주었다. 그것을 좋게 보는 정통교회 교인들도 있었지만 “무슨 이단에게 반론권이냐“, “이단의 글을 어떻게 넣어 줄 수 있느냐“, “그렇게 하다 이단에게 미혹을 받으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등의 항의를 종종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지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이단 연구의 객관성을 보장하자는 것이요, 또는 만의 하나 이단 연구에 잘못이 있으면 시정하겠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지가 이단이라고 규정되거나 지목받는 자들에게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는 뜻을 상대편에서는 마치 자신들의 교리 선전장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특히 그 동안의 안식교와의 논쟁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바라기는 혹 내적으로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표면적인, 일차적인 목적만은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한 내용 중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또는 무엇이 잘못 이해된 부분인지 그것이 논쟁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논쟁을 할 때마다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는 공통적인데 자신들의 교리가 옳아서(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정통교회가 이단이라서) 이단이 아니라는 말인지, 아니면 정통교회가 자신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이단이 아니라는 말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혹 자신들의 교리 선전장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일차적인 목적이 형식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해도 하고 묵과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의 핵심은 신인합일주의다
우리 몸은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저 병은 이 병을 불러일으키듯이 어떤  사람의 사상은 여러 가지 사상이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단성도 교리마다 고리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사상을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포도송이가 꼭지에 붙어 있는 것처럼 하나의 핵심 사상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의 핵심 사상을 말한다면 신인합일주의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의 면에서 시작하고 진행되고 발전하며 그것을 목적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상 속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합일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에게 어떤 이단성이 있는지 그 핵심은 예장 통합측의 결의를 소개한 본지 전호에 명시되었다고 본다. 비록 윗트니스 리도 양태론을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삼위일체관 역시 양태론적이다. 또한 인간관도, 기독관도, 교회관도 정통교회와는 다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모든 사상들을 끌고 가는 핵심 사상을 신인합일주의라고 본다. 앞으로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교리들 속에 있는 그의 이단성을 하나씩 밝혀가겠지만 본 호에서는 서론적으로 신인합일주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 교리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필자의 본 글이 너무나 함축적이라서 평신도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앞으로 진행되는 논쟁을 지켜보면 충분히 이해되리라 믿는다. 먼저 그의 신인합일주의 사상을 살펴보자.

윗트니스 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경륜 내지는 창조 목적은 사람 속에 하나님 자신을 넣어 사람으로 하나님과 같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 10~11; 하나님의 경륜, p. 10, 244 등). 이 사상은 중요하므로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겠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해 주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그분 `자신' 만을 우리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그분 자신이 곧 그분의 모든 자본이다. 그 자본을 가지고 하나님은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사업가도 되고, 자본도 되고, 생산품도 되신다. 그분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많은 사람에게 대량으로, 값없이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하나님의 경륜, pp. 9~10, 1987).

“하나님은 어떠한 목적으로 사람을 창조했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하셨다. 나는 `담는 그릇'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릇'이라는 말보다 더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빈 그릇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내용이 되기를 원하신다. 좀더 설명을 하자면 병은 음료를 담는 데 필요하며 전구는 전기를 담는 데 필요하다. 사람은 하나님을 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담지 않고 우리의 내용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모순 덩어리인 것이다. 하나님은 내용이며 우리는 이 내용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담아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한다“(위의 책, pp. 51~52).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 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와 뜻의 중심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자신을 분배받는  그릇이 되게 하려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셨다. 온 우주 가운데 시간과 우주와 영원에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안에 공급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변화의 최후 완성은 하나님과 사람의 우주적인 연합이다“(위의 책, p. 244).

위와 같은 말을 그의 책에서 인용하려면 너무나 많다. 모든 교리에 가득 차 있다. 그것이 그의 핵심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만 들으면 무엇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모른다. 더욱이 대부분의 한국의 크리스천마다 간접적으로 워치만 니나 윗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성도라면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는 것이 상례인 점을 볼 때 오히려 옳은 말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이 바로 윗트니스 리의 신론에도, 기독론에도, 그리고 인간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결국 구원론까지 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구조를 영·혼·육 삼분설로 보고 그중에도 항상 영을 강조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첫째는 우리의 영을 거처로 삼아 일하시고, 둘째는 혼에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고, 마지막으로는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의 몸도 변화시키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몸에 거하여 혼에 영향을 주고 끝으로 혼을 통하여 영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하나님의 경륜, pp. 136~137).

그래서 그는 `육신은 악한 것이요, 영은 선한 것'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든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 성령을 받은 우리보다 못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즉 인간에게는 성령과 사탄의 중간은 없다고 말하면서(하나님의 경륜, p. 139), 창조시 만든 인간은 순수한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중립의 순수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위의 책, p. 127). 결국 인간의 타락은 사탄이 인간의 몸 안에 들어온 것으로서(위의 책, p. 130,  138; 사람의 영, p. 45)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이비나 이단들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입으신 주님의 경우 예수님에게 죄는 없다는 말은 하면서도 육신을 입고 있었을 때는 신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인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하고(그의 영과 몸, p.  73), 또한 예수님에게 죄는 없었다고 하면서도 사탄의 모양인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셨다고 말하고(하나님의 경륜, p. 131), 따라서 그 인성은 거룩해져야 할 필요마저 주장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함으로(그의 영과 몸, p. 76) 정통교회에는 없는 불경스런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육신도 하나님 사랑의 실현과 구속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 속에 들어오시기 위한 신인합일의 측면에서 이해했으며(하나님의 경륜, p. 215),  예수님의 부활도 자신을 우리 안에 생명을 넣어 주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며(성경의 핵심, p. 29),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을 영적으로 호흡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오 주 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도 바로 그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호흡한다는 것이다(그 영과 몸, pp. 29~30).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오 주 예수여!“를 외쳐도 영적으로 호흡하는 의미는 없을 것 같으며, 그리고 승천하신 주님이 육신을 입고 있을 의미도, 우리가 부활한 후에 육신을 입고 있을 의미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바로 윗트니스 리가 양태론을 이단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주장이 양태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은 수박 덩어리요, 아들은 조각난 수박 조각이요, 마지막으로 성령은 우리 몸에 들어가는 수박즙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며 삼위일체 하나님(그의 말에 의하면 삼일 하나님)을 설명한 것도 신인합일주의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양태론적인 비유인 것이다(본호에서 필자에게 할애된 지면이 적어서 다음에 구체적인 비판을 하겠다).

결국 회복교회 교인들이 아무리 주님을 호흡한다고 “주 예수여“를 외치지만 그 예수는 우리가 믿는 예수와 다른 예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이유를 하나만 든다면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함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육과 혼만을 위해서 죽으시고 영을 위해서는 죽으실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의 범위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받을 구원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워치만 니의 사상과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한때 한국교회를 휩쓴 것을 한국교회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본다. 지금도 워치만 니의 책을 출판하는 기독교 출판사가 있으며 또한 윗트니스 리의 책자를 판매하거나 선전하고 있는 언론들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경계되어야 할 위험한 일이라 여겨진다.
(월간<교회와신앙> 199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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