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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한국교회 이단문제 그 원인과 대책 2
신학교수 3인이 말한다
1999년 09월 01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진행 장운철 <교회와신앙> 편집장

참여자(무순) : 정동섭 교수(대전침신대 기독교교육)

                     심창섭 교수(총신대학 역사신학)

                     목창균 교수(서울신학대학 조식신학)

   
 
   ▲ 좌담회는 1999년 8월 5일 여전도회관(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에서 개최됐다
 
진행자: ‘한국교회 이단 문제 그 원인과 대책‘이라는 주제로 지난 호에 이어 두번째 토론의 시간을 갖게 되어 기쁩니다. 참고로 지난 호에는 이단 대책 관련 현직 목회자 다섯 분이 토론에 참여 하셨습니다. 지난 호와 같은 주제로 신학교 교수님들의 견해를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대단히 기대가 됩니다.

최근 JMS, 만민중앙교회, 안상홍증인회 등의 단체들이 TV 전파를 타면서 세인들에게도 크게 알려졌습니다. 오랫동안 기독교 언론 등을 통해서 위 단체들의 비성경성을 알려왔지만, 한 번의 TV방송이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들에게까지 이단문제에 대해서 널리 알리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앞으로 이단연구는 교회에서 하지 말고 방송국에서 해야 된다는 말도 나올 정도입니다. 일반 언론을 잘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한국교회가 제 할 일을 못하고 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이단문제의 특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또 과거와 비교해본다면 어떤 부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 정동섭 교수
 
정동섭 교수: 그 말을 들으니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는 데는 3가지 접근이 가능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방송국에서 JMS나 이재록 씨 문제를 터뜨렸잖습니까? 그것은 대중적인, 즉 현상학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니까 그것을 폭로하고 분석하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이제 지금 얘기한 대로 이단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은 방송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사실은 이단과 정통을 가리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죠. 둘째로는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우리의 교회사는 이단과 정통과의 싸움의 역사였다고 볼 수도 있는데 결국은 지금까지 신학자들이 정통의 기준에 비추어서 어떤 집단이 이렇게 탈선했다 그래서 이단규정을 해 온 것인데 그것을 타당하고 권위 있게 하지 못하니까 일반 언론에서 하는 일이 생기는 것으로 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측면이 이단 교주들과 추종자들의 성격 또는 행태의 특징을 연구하는 사회 심리학적인 접근이 있어야 되겠어요.

이런 생각도 들어요. 탁명환 소장이 94년에 가셨는데 그분이 사실은 현상학적인, 기자가 현상을 파헤치는 그런 접근을 하신 대표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분의 자리를 매꾸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문 방송에서 그런 역할을 하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어떤 집단이 이단이냐 아니냐 규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신학적인 것이지 윤리적인 것을 파헤치는 것이 핵심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교리가 그 신학적인 기준에서 어떻게 탈선했느냐 하는 그런 문제로 귀결이 된다고 볼 때, 결국 신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 심창섭 교수
 
심창섭 교수: 진행자가 현재 이단들과 과거의 이단들의 차이점을 논해보자고 했는데 제가 교회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서양 교회사에서도 그렇고 한국교회사에서도 그렇고 과거의 이단들하고 현재의 이단들하고 특성에 큰 차이가 나서 이단이 무슨 의식전환을 해서 새롭게 나왔다 이런 것은 별로 없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을 되풀이 주장하면서 여러 양상을 띠면서 나타나는 것이지, 본질적인 내용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과거의 박태선, 백백교, 문선명 등이 있었고 현재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만민중앙교회(이재록), 안상홍증인회, JMS 등이 나오는데 과거에도 학원 중심으로 포교를 했던 이단들이 있거든요. 문선명도 사실은 대학교수나 지성인들에게 접근해서 포교활동을 했죠. 이것이 오늘날 JMS 등에 그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또 이제 이단들이 접근하는 계층이 주로 서민층 억눌려 있는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모습으로 접근하기도 하죠. 박태선 같은 이는 과거 60년대 국가가 어려웠을 때 공장에 들어가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포섭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도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서양의 초대교회사를 봐도 이원론 사상이나 체험적 사상이나 교주 중심적 사상 등 기성교회에 반론을 펴는 이런 양상들이 나타나는데, 한국교회에도 똑같이 나타나는 거예요. 과거의 이단이 갖고 있는 특성과 현재의 이단들이 갖고 있는 특성을 특별히 구별하는 것은 없고 계속 같은 주장들이 되풀이되면서 기성교회로부터 계속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종교집단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큰 차이는 없어요. 단지 새로운 양상을 갖고 새로운 자신들의 전도 채널을 이용한다는 것뿐이지. 사상은 거의 다 비슷해요.

서양의 이단들과 한국의 이단들의 차이점을 꼬집어 낸다면 이런 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도 서양에 있는 과거의 이단들은 뒤에 나오지만 아리우스 논쟁 등 교리적인 논쟁, 신학적인 논쟁을 거쳐 신학적인 이단들이 많습니다. 저는 신학적인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적인 이단이 많았는데 근대에 와서 서양에서는 신학적인 이단보다는 신앙적인 이단이 많아졌어요. 즉 신앙의 양상이 달라서 이단이 되는 거예요.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이단들을 보면 신학적인 정통교회의 신앙, 정말 교리적인 신학을 거부하는 것보다는 신앙을 거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적으로 믿는 신앙보다는 더 초월적인 체험, 계시, 기도 등을 통해서 자기 주관적인 체험의 신앙, 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 사람들을 몰입해서 몰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깊이 들어가 보면 삼위일체를 모르느냐,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 재림, 동정녀 탄생 등의 내용들을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기성교회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통된 교리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신앙이 전혀 달라요. 다른 말로 바꾸면 영적인 병리 현상입니다. 영성이 완전히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교리적인 내용은 정통 기독교와 같이 믿는다고 고백을 하지만, 그들의 신앙 양상은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믿는다는 내용은 같은데 이단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한가요?

심창섭 교수: 같은 내용을 고백하고 인식한다고 하지만 산에 가서 체험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죠. 신학적으로 건전한 것 같아서 공격하기는 힘들지만 들어가 보면 온통 다른 종류의 신앙체험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은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근하고 있어요.

정동섭 교수: 이재록 씨의 예를 통해 볼 때,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강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단을 여러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를 할 수 있겠지만, 제가 이단에서 정통교회로 돌아온 20여 년 동안 이단을 경험하고 또한 연구해온 바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론 중심으로 생겨난 이단, 구원파 같은 즉 구원론을 핵으로 해서 생겨난 이단, 그 다음에 종말론을 중심으로 생겨난 이단, 다미선교회 같은 안상홍증인회 같은 이단들이 있는가 하면 다음으로 지금 크게 주류를 이루는 것이 신비주의 계통,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신비주의를 중심으로 한 이단들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단들이 정통교리를 정말 믿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안 믿습니다. 이단들의 특징이 뭐냐하면 자신들만의 독특한 용어가 있거든요. 이중적인 언어체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외용으로 말하는 교리와 자신들이 내밀하게 믿는 교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세히 연구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거든요.

이단들이 분명히 사상과 교리가 잘못되었기에 신앙적인 모습도 탈선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주일 등 공적인 집회에서 행해진 설교를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진리에는 이면적인 진리와 내면적인 진리가 있다는 등의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의 차원이 있고 진리의 차원이 있다고 하며 그 진리의 차원이라는 것은 일반교회에서 믿는 것인데 그것으로는 구원을 못 받는다며 말씀의 차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요. 이원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심창섭 교수: 정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이원화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자기 신앙의 체험에서 다 왔더라구요. 전부 다 기도나 체험을 통해서 이원화된 체계가 생긴 거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신학적인 체계보다는 신앙적인 체험을 통해서 왔기 때문에 신앙적인 잘못으로 인해 이단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신학적인 문제가 기저에 깔려 있죠.

   
 
   ▲ 목창균 교수
 
목창균 교수: 사실은 한국의 이단들은 교리적인 체계가 없어요. 사실 이단과 정통은 서로 반대적인 측면 아니겠어요? 정통의 반대가 이단이고, 이단의 반대가 정통이기 때문에 정통적인 교리를 이단들이 가질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이단이라고 해서 정통적인 교리를 다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 중에 교리 몇 가지에 마치 이물질 같은 것을 섞어서 구별하기가 용이하지가 않게 만든 것이죠.

특별히 한국의 이단들이 교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면 지적하기가 쉬운데 그런 것보다는 아까 지적하셨지만 신앙의 양태면이라 할 수 있죠. 사실 교리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별 것 없는 경우가 많아요. 교리적인 체계를 제시할 만한 신학적인 기반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신앙 행태가 정통교회하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한국의 이단 연구할 때 어려운 것은 그들이 교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신학자들이 연구하면 오히려 그들의 교리를 체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요.

정동섭 교수: 다시 말해서 우리 나라 이단들의 교주는 무식한 사람, 신학을 부정하는 사람, 체계적인 신학이 필요 없다는 주의가 대부분이에요. 계시론 자체가 주관적으로 내가 체험한 것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면이 있어요.

목창균 교수: 제가 볼 때는 그런 면에 있어서 정통교회의 목회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목회자들까지 신학하고 신앙하고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신학을 얘기하는 교수들은 신앙이 없는 것처럼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신학적인 토대 위에서 목회를 하며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신학을 얘기하면 신앙하고는 별개인양 얘기를 하니 자의적인 성경해석이라든가, 체험 위주의 신앙으로 흘러간다고 봐요.

심창섭 교수: 한국교회사에 보면 이용도 목사님의 경우가 신비주의로 치달아서, 지금 그것에 대해서 재해석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이후의 기도운동으로 시작되어 이단적인 형태의 해석과 주장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어요. 어떻게 해서 이런 사조가 기름에 불을 붙이듯 일어났는가 하면 결국은 성령운동이 근본적으로 비인격적인 성령운동으로 치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한국교회에서 이단이 일어날 수 있는 텃밭을 일궈놨어요. 사실은 오순절 성령운동 계통의 운동이 어쩌면 이단을 불러오는 큰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목창균 교수: 그러니까 성령체험이 중요한데, 결국 그것이 다른 측면에서 볼 때는 체험이라든가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 있거든요. 항상 성경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데 자기 경험을 강조한다든가, 체험을 강조하다 보니 잘못될 수가 있어요. 신비체험은 필요하죠.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정동섭 교수: 조금은 엉뚱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종교 사회학자들이 최근에 <한국인에게 문화가 있는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뭐 이런 내용으로 종교 문화 논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기서 제가 흥미 있게 읽었던 내용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종교사회학자가 지적하기를 겉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 색칠을 했는데, 껍질을 벗겨 보면 안에는 유교 공자의 가르침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공자를 믿고 있고 또 벗겨보면 그 핵에는 샤머니즘, 무교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어요. 왜 우리 나라가 성령운동을 토대로 이단이 많이 생겨났는가 하면 샤머니즘, 무교적인 기복신앙 거기에다가 무당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하는 배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합적인 그러한 기독교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이비 종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고 경계하면 걸러낼 수가 있는데 그러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앞서 잠깐 얘기가 나왔는데 이단문제 당사자들이 항변하는 얘기들 중에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보고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교리적인 문제일 뿐이다. 성경적으로 얘기해야지 교리가 왜 우선시되느냐? 당신들이 우리를 교리적으로 이단이라고 했지만, 우리들은 성경적으로 옳다.“ 즉, 교리와 성경을 분리시키는 식의 애매모호한 주장들을 합니다. 교리적인 접근은 인위적인 것으로, 그래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기성교회가 마치 잘못을 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가려는 모습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주장에 일부 성도들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리적, 즉 신학적인 것과 성경적인 것이 과연 별개의 것입니까. 

목창균 교수: 신학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칼빈주의도 아니고, 웨슬리안도 아니고 알미니안도 아니고 성경적이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적인 것과  칼빈주의, 웨슬리안을 별개로 보는 거예요. 칼빈주의 같으면 칼빈이 성경을 해석한 원리에 따라서 성경을 읽어보니까 잘 이해가 된다는 입장 아니겠어요? 성경적이란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거기에 맹점이 있을 수 있어요.

성경적이라는 말은 자기 중심주의적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죠. 역사적인 신앙의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교리도 아니고 저런 주의도 아니고 성경적이다! 라고 하는 것은 자의적이다! 라고 하는 것과 같죠. 한편으로 볼 때 이단들이 성경 얘기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얘기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어떻게 얘기하느냐가 문제죠.

진행자: 역사적 정통성 없이 ‘성경적이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으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군요.

목창균 교수: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성경을 딱 펴서 보니까 “가룟 유다가 목 메달아 죽더라“ 또 펴보니까 “너도 그렇게 하라“, 또 펴보니까 “속히 그렇게 하라“고 되어 있어요. 이게 다 성경 얘기한 것 아닙니까?

정동섭 교수: 정말 성경적이죠.

전원: (웃음)

목창균 교수: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이단들의 성경해석입니다. 자의적이고 부분적이죠. 점검 받지 않으려 하고.

심창섭 교수: 이단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보면 엉터리가 많죠. 그러나 어떤 것들은 신학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도 있어요. 이단들은 그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신도들은 신학적인 배경이 없기 때문에 이단들이 어떤 자신들의 이론을 갖고 정리를 해 내면 반드시 설득 당하게 되어 있어요.

저는 수업시간에 이단들의 IQ가 120이라고 말합니다. 120이 넘어가면 엉뚱한 짓을 안 해요. 그 다음에 120이 안되면 아예 하지도 못해요. 그런데 딱 120 정도가 되면 사람을 요리할 수 있는 머리가 됩니다. 그래서 이단들의 교주 IQ는 120입니다.

그래서 교주들이 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자신의 체험을 덧붙이면 나름대로는 아주 성경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과는 기존에 갖고 있던 신학적인 배경들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것이 설득력이 없어요. 기존의 신학적인 배경과 신학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그들은 출발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신학은 잘못되었다. 신학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해석한 것은 성경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단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준 요소도 있습니다.
바로 문자주의적인 성경해석입니다. 그것이 한국교회에 강해요. 이단들이 그것을 갖고 이용하고 있어요. 그것은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요. 문자적으로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들이대면 먹혀 들어가는 거예요. 그 다음에 또 뭐냐하면 문자적으로 하다가도 필요에 따라 어느 부분은 은유적으로 해석해요. 필요에 따라 문자적, 영해가 나오는 것이죠. 그러니까 평신도들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체계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것을 보고 분석해주지 않으면, 평신도들이 이단들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정동섭 교수: 베드로후서에 보면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다가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이단과 정통은  어디서 갈라지는가 하면 성서 해석학에서 갈라진다고 봅니다. 성서해석의 문제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아서 이단이 아니고 몰몬교도 안식교, 구원파, JMS 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단 말예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고 또는 자의적으로 하거나 문자적, 풍유적으로 해석하든지 해요. 왜 그런가 하면 그 사람들은 성서 해석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줄도 모릅니다. 성서 해석학이 있는지 알게 뭐요. 신학 자체를 부인하는데…. 그러면서 이단들이 하는 얘기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신학교를 갔느냐?“ (웃음) 그러면서 지금의 신학교에 가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단‘이라고 그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학을 안 한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신학을 한 것인데 말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배웠잖아요.

성서 해석학 없이는 자의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에서 거듭난다는 것, 중생한다는 것을 몰몬교에서는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하며, 구원파에서는 똑같은 말씀을 죄사함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경을 읽는데 전부 해석을 달리합니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의미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신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나름대로의 신학‘이 다 있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이 문제예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영해하고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JMS 같은 경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다 하는 것을 우리 정통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라고 말하는데 정명석 씨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는다‘에서 따먹는다는 말을 성적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바른 신학을 알고 있다면 그런 해석이 나올 수가 없죠. 신학이 부인되서는 안되죠. 그렇기 때문에 성서해석학, 교회 역사, 조직신학 이런 것을 신학교에서 철저히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죠.

 심창섭 교수: 그런데 이단이 되기 전에 신학교를 들어온 사람들의 과거를 보면 신학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이단적인 성격을 갖고 들어와서 신학교육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하다 나갔다든지, 졸업을 했더라도 왕따가 되었다가 졸업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진행자: 이번에는 한국에 이단들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신학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한국교회에 이단 문제가 특별히 금년 들어서 사회문제로까지 크게 이슈화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목창균 교수: 최근 들어서 특별하게 이단들이 많이 나온 것은 아니라고 봐요. 제가 볼 때는 늘 있는 현상인데 이번에는 천년기의 말인데다 세기말이 겹쳐서 그런 시기적인 상황 때문에 종말론과 관련해서 이단들이 일어난 것이라고 봐요. 또 한편으로 볼 때는 처음에도 지적을 했지만 JMS라든지 만민중앙교회가 언론을 통해 지적이 돼서 일반 대중이 이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을 앞둔 시기 때문에 종말론과 관련해서 이단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진행자: 신학교 내에서의 원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목창균 교수: 제가 생각할 때는 신학교보다는 교회 내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적절치 않을까 생각돼요. 물론 신학교에서 교육을 철저히 못 시켜서 그렇게 되었다고 얘기한다면 신학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절감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단 신앙이라는 것은 정통신앙의 반대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정통교회의 취약점이라든가 여기에서 이단들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일반 교인들이 이단들의 주장에 공감한다고 볼 수가 있죠. 어떤 면에서는 한국교회의 문제점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단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창섭 교수: 사람 몸에도 언젠가는 병이 걸리거든요. 아무리 건강해도 병에 걸릴 가능성은 있는 거예요. 병이 안 걸리게 하려면 그래도 몸을 깨끗이 해야 하고 튼튼하게 해야 하고 건강을 유지해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교회라는 소위 단체, 기독교라는 단체도 유기체적인 하나의 몸이라고 생각한다면 항상 병이 걸릴 수 있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단이라는 병이 걸리지 않게 하려면 건강하고 깨끗하고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거든요.

얼마나 관리하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신학교 문제를 점검하면 지금 한국에 있는 신학교야말로 사실 이단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강하지 못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특정한 어느 신학교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있는 군소 신학교의 난립, 이게 얼마나 불건전한지 몰라요. 온갖 종류의 군소신학교가 신학교육을 하고 있는데, 정말 이단을 막아낼 수 있는 건전한 성경 해석학과 제대로 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학교의 난립 자체가 이단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의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한국교회 교단연합체가 이뤄지면, 교단이 하나의 큰 연합체를 형성하고 있으면 이단이 발을 못 붙입니다. 워낙 교단이 중구난방으로 산재해 있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이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교단이 큰 연합체를 이루고 있으면 이단이 나타나지를 못할 거예요. 나타나더라도 큰 연합체가 대치를 하면 이단이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중세 천년 동안 그래도 이단은 잘 막아냈어요. 어떤 면에서는 큰 연합체로 결속이 되어 있으니까. 사실 이런 것은 이상론입니다. 답답해서 하는 소리인데 신학교가 난립한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정리를 해야지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정동섭 교수: 어느 종교 사회학 교수님이 불신자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를 요약해서 말씀하셨어요. 한국교회는 교파분열이 너무 심하고 사이비 종파가 너무 많으며 품위 없는 성직자가 너무 많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심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궁극적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난다, 그런데 떠나 가지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다고 했습니다. 후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신 때부터가 후일이죠.

그러니까 지금 이단이 갑자기 많이 불어나는 것은 아니고 지금 목교수님 말씀대로 이단들은 항상 있어 왔고 앞으로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것인데 특별히 세기말에 부각되는 것 같고요. 그 배후에 궁극적으로는 마귀의 역사와 전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통교회가 부흥하는 것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만큼 귀신의 역사, 사탄의 역사도 그만큼 강력하게 일어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는데 양심이 마비된 이단 교주들, 사탄의 조종을 받는 종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이단들이 발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심리학적으로 이단들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가 지적할 수 있는데 사람들의  종교심 때문에 그런 것이죠. 종교심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인데 지금은 급격한 사회변화와 미래 공포증, 남북 관계에서 미사일 발사한다고 핵전쟁이 일어날 것인 양 불안한 마음, 공해문제, 이상기후로 인한 홍수 등 이런 일로 인해 사람들이 안전과 평화를 찾는 마음이 더욱 많아지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해요. 자신보다 더 큰 대상을 믿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죠.

그 다음에 우주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필요, 또 수용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필요, 불안한 상황,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할 필요, 컴퓨터나 정보산업화로 인한 비인간화, 또 늘어나는 이혼, 가치의 붕괴로 불안정한 가정이 거짓된 사랑의 공동체를 찾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안식처와 피난처를 찾게 되는 기본적인 종교심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변 상황이 이단을 찾도록 부채질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다 정통교회의 분열과 일부 교회의 자유주의 사상, 뉴에이지를 믿든 뭐를 믿든 결국은 다 같은 데서 만나는 것 아니냐 라는 종교다원주의 사상 같은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이단에 끌리는 것이죠.

이단들은 자신들을 찾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답을 제시해요. 자신들의 단체에 오면 14만4천 명, 구원의 확실한 숫자 안에 들어오게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 다음에 구원파에서는 자신들의 단체에서 받는 구원은 아주 확실한 구원이라며 다른 데는 구원이 없다고 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전부 바리새인들이며 그들은 모두 인학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사람의 학문이 아닌, 신학을 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신학이 여기에만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진리를 다른 데서 찾으니 있겠느냐?“ 라며 확실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에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심창섭 교수: 신학교 문제에 있어서 제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은 신학교에서 바깥에서 이단이라고 많이 떠들지만 실제로 신학교의 커리큘럼 안에 이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를 해서 학생들에게 그 이단성을 가르치고 있는 과목들이 제가 알기로는 많지가 않거든요. 말만 많이 하지 정말 학생들에게 이단이 이렇게 나쁘다, 정말 잘못된 것을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지적하면서 여러 이단들을 연구하고 검토해서 강의하는 과목들이 사실 약합니다.

이것도 개선이 되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학생들에게 성경해석학, 아까 말씀하신 성경 해석학의 필요성을 많이 강조해야 합니다. 이제는 성경을 근본주의나, 경건주의자들이 보듯이 문자적으로나 풍유적으로 보지 말고 성경을 정말 역사적인 배경과 모든 성경에 필요한 해석방법을 동원해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 낼 수 있는 그런 눈을 목사에게 줘야 해요.

왜냐하면 목사들이, 이단자들이 성경을 갖고 오면 겁을 내서 말을 못해요. 신학교육을 받아놓고도. 목사들이 겁이 나서 이단들에게 아무 소리도 못하는 거예요. 성경해석학에 자신이 있으면 이단들에게 말못할 것이 없죠. 그런데 말을 못한다고요. 그래서 사실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에 대해서 앞으로 강조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는 뭐냐하면 성경에 권위가 있는데, 이 권위 있는 성경을 아무나 해석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방치해 두느냐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반대해요. 로마 가톨릭으로 가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평신도 성경공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평신도 성경공부야말로 성경에 지식을 주는 것은 좋지만, 신학적인 배경 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화란에서 이단이 많이 일어날 때 화란 개혁파 교회에서는 절대로 평신도가 목사 없이 교회 밖에 모여서 성경을 공부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막 방치되어 있거든요. 누구나 다 평신도 그룹성경공부를 한다는데 거기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볼 때는 성경의 권위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반드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신학을 한 목사나 전도사나 성경해석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해 줘야지 평신도 성경공부에 대해서 분별없이 너무 방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진행자: 80년 이후 한국교회에 평신도 중심의 성경공부 열기가 폭발적으로 늘었지요.

심창섭 교수: 지금 JMS 등에서 그 방법을 도용해서 다 써먹고 있죠. 그렇다고 평신도들이 성경을 보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해석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해석해야 되요.

정동섭 교수: 궁극적으로는 항상 성경을 믿느냐, 안 믿느냐, 성경의 권위의 문제가 아니고 성경 해석의 문제로 귀결이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신학교육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침신대의 한 교회사 교수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저는 요즘의 이단들과 직접 싸우고 하니까 이런 최근의 지식을 가르치고 현상학적으로 하고, 교회사 교수님은 역사에 나타난 이단들에 대해서 정통하니 조인트 프로그램을 개설해서 이단에 대해 강의하자는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말만 있었지 아직 강의 진행은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에도 ‘사이비 종교와 이단‘이라는 과목은 개설이 되어 있는데 강의는 하지 않아요. 반면 학생들은 아우성입니다. 필요하다는 거죠. 현장에서 매일 안상홍이니 이만희니 하는데 지식이 없거든요. 교회가 피해를 보는데 교회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신학, 교회사, 성서해석학 이것이 뼈대가 되어 지금, 과거에 나타난 이단들만 얘기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그것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 현재 이단이기에 물론 공부를 해야 되겠지만 지금 현재의 이단들에 대응하기 위해서 통일교에서 시작하여 이재록에 이르기까지 왜 이단인가라는 것을 신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신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진행자: 저희 <교회와신앙>에 신학생들이 자료 문의를 종종 해 옵니다. 주로 논문 준비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모든 자료가 어떤 면에서 보면, 일개의 잡지사보다 신학교에 더 풍부히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특정 분야, 즉 이단 문제에 관해서는 저희를 비롯해서 한두 잡지사에서 자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잡지사가 신학교에 도움을 받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창섭 교수: 제가 볼 때는 사실 지금 <교회와신앙>이 이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갖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신학교보다는 이런 기구들이 보다 더 전문화돼서, 이런 기관에 교수들이 개입 돼서 이단에 대한 토론을 해서 전문성을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출판사 자체가 책 만드는 정도가 아니고 더 전문성을 신학교보다 가질 필요성이 있어요. 어떤 면에서, 그것에 대해서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앞으로는 계속 전문성을 살려서 중요한 일을 하기 바랍니다.

 목창균 교수: 신학교에서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교수들은 발이 없는 것이죠. 서로 상호 보완이 되어야죠.

 정동섭 교수: 제가 생각할 때는 신학교에서 현재 활동하는 이단들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정지원을 확실하게 받는 이단 연구 기관이 생겨 이단을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생겨날지 모르겠어요. 이것이 가장 바람직하죠.

진행자: 현실적인 문제가 상당히 발생하겠군요. 이젠 대책 부분으로 넘어갈까요. 어떻게 이단 문제를 대처해야 하는가? 라는 부분입니다.

 심창섭 교수: 제가 볼 때는 실현이 불가능했지만 정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단에 대해서는 개인이 대처하기 힘들어요. 이것은 연구소를 중심으로 해도, 학교를 중심으로 해도 마찬가집니다. 범교단적으로 하는 것이 있지만 활성화가 안되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래도 이단에 관심 있는 교수들이 교단을 초월한 연합체를 구성해서 이단을 연구하고 검토하고 대처하는 기구가 형성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들이 개입되면 정치문제가 걸려서 안되고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연합체가 구성되어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좋겠어요.

그 다음에 제가 볼 때는 지금까지는 이단에 대해 파괴하고 공격하고 이런 식으로 했는데 이것을 조금 바꿔서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치유하는 쪽으로 유도할 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단 문제 당사자 자신들도 이단이라고 규정되는 것은 원치 않거든요. 굉장히 싫어한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연구기관이 있으면 일찍 알아서 처음 그것이 발동이 걸린 그 때부터 이런 식으로 가면 당신 이단이 된다고 경고하면서 신학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지도하는 차원에서 치유해 주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생각해요.

제가 얼마 전에 경험한 것이 있거든요. 그분들이 내가 읽은 책으로 보면 이것은 벌써 한참 성경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쓴 논문을 보여 주면서 내 논문에는 당신들이 이렇게 비췄는데 당신 이런 부분들 안 고치면 당신들 이단으로 간다고 했더니 굉장히 기분 나빠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경각심을 갖고 책을 다 뜯어고치고 다시 내겠다고 하면서 출판에 들어갔습니다. 자기들의 방법이 기성교회에서 문제를 야기시키면 그것을 포기하겠다고까지 했어요. 그래서 이제 치유하는 쪽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안 믿는 사람들은 정통이든, 이단이든 결국은 같이 보거든요. 서로 싸우면 안 믿는 사람들은 “또 싸운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포괄적으로 다방면의 대처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동섭 교수: 대처면에서 무엇보다 원론적인 얘기인데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서 사도적인 가르침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교회에서나 신학교에서나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예방 교육이랄까 이런 것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는 베드로가 유언처럼 하신 말씀인데, 여기서 중요한 말은 “미리 알았은즉“이란 말입니다. 미리 미리 가르쳐주었은즉, 가르쳐주지 않고서는 ‘미리‘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예방교육, 이단 의식화 교육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개교회에서의 이단 의식화 교육, 그 다음에 신학교에서도 이단 사이비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죠.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교주, 가르침, 추종자 이렇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까 말한 대로 이렇게 하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종교 사회학자들과 또는 조직 신학자들이 한 부분을 가르치고 사회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 그 현상학적인 문제, 교주의 특징이라든가 추종자들의 심리적인 문제, 가정 문제, 가정에 문제 있는 사람들이 이단에 가거든요.
이러한 측면을 함께 가르치는 그러한 접근도 좋지 않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주요 교단의 각 이단 대책위원들을 규합하여 무엇인가 해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보다 더 실효성이 있는 것이 심교수님의 말씀이 좋다고 생각해요. 주요 교단의 신학교의 교회사나 조직신학 교수님들이 주동이 되어서 협의체를 구성, 논문들을 발표하면 굉장히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방, 교육, 치료적인 접근이 다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락방 류광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고신, 합동을 다 거친 사람 아닙니까? 신학을 한 사람인데 이단으로 주요교단에서 규정을 했단 말예요. 그런데 조직신학적인 측면에서나, 즉 중요한 신학적인 면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등의 집단들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이것은 치유 가능성이 있는, 선도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정말 어느 한 신학교의 교수가 하면 설득력이 없고 교수님들이 교제권을 형성해서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목창균 교수: 교의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교육을 시켜야 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학교 교육 따로, 교회에서 배우는 것 따로 이원화될 때 신학생들이 현장에 나가보면 신학교에서 배운 것 쓸모가 없더라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한국교회가 물량, 교회성장, 헌금 액수 등 숫자를 강조하거든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까 한국사회 일반적으로 ‘꿩잡는 게 매다‘라는 인식도 있잖아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 방법을 써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런데 저런데 많이 가게 되고 그래서 이제 그런 것이 어떤 면에서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돼요. 그래서 만민중앙교회 얘기도 나오지만 그곳도 처음에는 대언하는 여전도사하고 그런 식으로 설교해서 교회성장을 이뤘잖습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게 그들이 극단적으로 나간 것이고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이지 그런 아류의 사람들은 한두 사람이 아니죠.

 진행자: 신학교는 라이선스(licence)를 따기 위해, 실제의 교회사역은 각종 세미나를 쫓아다니며 배운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의 신학교 교육을 꼬집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목창균 교수: 어떤 면에서는 교수들도 허탈한 면이 있죠. 현장에 가면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쓸모 없다고 얘기하잖아요. 교회와 신학교가 밀접한 관계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갭이 생긴 것이 문제죠.

진행자: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단연구는 현재 교수님들보다는 목회 현장에 계신 목사님들이 중심이 된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것을 가지고 “교수님들이 해야지, 목회자들이 해서 되겠느냐?“라며 비꼬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단연구는 ‘목사‘보다는 ‘교수‘가 더 어울린다는 말인가 봅니다. 이단 연구는 누가 해야 되는 것입니까. 목사입니까. 교수입니까. 아니면 이단 연구가라는 이름으로 따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까?

 정동섭 교수: 예를 들어 만민중앙교회가 이단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어떤 목회자 개인이나 신학자가 할 일이 아니고 그것은 교단 총회가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성결교든, 침례교든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했을 때는 다른 교단에서도 거의 그대로 결과를 받아들였어요. 한국교회 전체가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이번에 한기총에서 이재록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을 빼고는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자, 그래서 앞으로도 이단 규정은 주요 교단 총회에서 하리라고 기대를 하는데, 총회에서 규정을 하려면 결국은 누군가 연구를 해서 신학적인 검토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란 말예요. 그것이 목사 아니면 신학교 교수가 이단 대책 위원회에 들어가서 했을 텐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연구하느냐 하면 교단 이단 대책위원회가 모여 <교회와신앙> 아니면 <현대종교> 등의 자료를 근거로 해서 연구를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1차적으로 연구해 놓은 것을 가지고 이단이니, 아니니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보면 이단 불감증에 걸렸다고 생각됩니다. 이재록 씨를 분명히 성결교에서 이단으로 규정을 했는데 다 손잡고 가서 교류하고 후원했단 말예요.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크리스천 신문에서도 다 협조를 했단 말이죠. 그런데 난리가 나서 결국은 손을 끊었지요. MBC 방송 때문이죠. 결국 MBC에서 이단 규정한 셈이 되버렸단 말예요. 

현실적으로 가장 실효성 있는 대안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요. 실제로 주요 교단의 학자들, 이단에 관심이 있고 이단을 연구할 만한 그런 학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연구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공동 이름으로 발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이단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상적인 것은 연합체를 구성해서 신학교 교수님들이 연구하는데 연구비 지원을 초교파적으로 각 교회에서 받아서 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죠. 다른 데, 정치하는 데는 돈을 다 쓰면서 이단 대처하는 데는 비용을 잘 안써요. 조금씩만 헌금하면 연구비로 쓸 수 있는 것이거든요. 실제로 제가 지금 모 이단과 재판중인데, 복음주의신학회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려고 해도 자금이 달립니다.

성명서 조그맣게 발표하는 데 40만 원, 어떤 곳은 200만 원 하는 데도 있더군요. 사정이 여의치 않아 조그맣게 냈어요. 40만 원짜리로. 그랬더니 그 이단에서는 그 다섯 배로 대문짝만하게 반박 성명을 낸단 말예요. 그런데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신문에다가 말이에요. 왜냐, 이단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심창섭 교수: ‘규정‘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단 규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정치적으로 이단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었고 생사람 잡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한국교회도 신앙의 양태나 이런 교리적인 것이 다르게 약간 해석이 돼도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중요한 가르침을 떠나지 않는 차원에서는 치유적인 의미로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충분히 검토하는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특정한 연구소가 연구해서 한 사람을 이단으로 규정해도 안 됩니다. 정말로 이것은 양심적으로 전국교회가 총회적인 차원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규정했을 때, 이단이라는 말을 붙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조금씩 다르다고 이단으로 규정해 버리면 이단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단 규정 문제는 조심해야 됩니다. 보다 객관성을 띄려면 교수들이 연합체를 형성해서 서로 다른 전공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통해 발표하면 상당히 객관적인 호응을 받을 수 있어요.

정교수님의 경우 굉장히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저도 이단 때문에 고소를 당해봐서 공감을 합니다. 정신적으로 피해가 엄청납니다. 고소를 당한 사람은 혼자예요. 그런데 이단은 엄청난 재력과 인력을 갖고 있어요. 그들이 한 교수를 죽이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봐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태에서, 그러니까 이럴 때는 범교단적으로 같은 교수면 교수끼리 힘을 모아야 이단이 꼼짝을 못하지 각개 전투로는 될 수가 없어요.

 목창균 교수: 그렇죠. 이단에 관심 있는 목사님들은 교수들이 연구하다가 뒤로 물러선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죠. 목사님들은 교인들이라도 있잖습니까? 교수들은 혼자거든요. 어쨌든 이것은 목사님들이 해야 하느냐, 신학교수들이 해야 하느냐보다는 같이 해야 하는 일이고요. 목사님들이 단정하는 것은 잘 하시는 데 반증하거나 반론이 나오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봐요. 그래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같으면 목사와 교수가 협력을 해서 상호보완 되는 체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창섭 교수: 이단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대응을 할 때는 어떤 약점이 있는가 하면 목사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단 연구를 하는 분들이 쉽게 유혹이 돼서 경제적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단 말예요. 이단 단체에 가서 목사님들이 설교도 하게 되거든요. 이단에 가면 사실 많은 돈을 주기도 하는데, 한 번 설교하고 돈까지 받는데 누가 싫어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신학교수든, 목사님이든, 이단을 연구하는 사람이든, 이단을 연구하고 대처하는 연구소든 깨끗해야 되요. 그게 생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꼼짝도 못해요. 그래서 전국교회에 붐을 조성해서 연구소도 운영하고 이단 연구와 대책에 공동지원도 하고, 신앙을 위한 같은 공동 투쟁이라는 인식이 되어 있어야지 개인적으로 투쟁하기는 힘들어요.

 정동섭 교수: 그것을 구체화하면 좋겠네요. 초교파적으로 교수님들의 교제권을 만들어서 연구하면서 모금운동도 하는 것이죠.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겠어요. 세미나, 학술활동, 발표, 주요 도시 순회 강연도 하는 것이죠.

 진행자: ‘규정과 선도‘에 관한 대화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흔히 “이단 연구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을 합니다. 백 번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도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신중하기만 해야하는가. 결단은 언제 해야 하는같입니다. 신중론자 입장에서는 어떠한 결단도 ‘더욱 신중‘ 이라는 말에 뒤로 밀리고 말 것입니다. 또한 신중하게 연구하다가 그 긴 시간동안에 입을 수 있는 성도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신중한 연구와 결단,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선도에 관해서, 먼저 선도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규정 전후 중 언제 해야 하는 지, 이미 규정받은 자에 대한 선도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창균 교수: 제가 볼 때는 자체 교인들의 보호차원이라는 것이죠. 자체 교인을 보호하고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선도하는 양면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이제 규정할 때 신중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고, 다른 해석과 틀린 해석을 구분해야 되기 때문에, 이단은 잘못된 해석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안될 것이라고 봐요. 그러나 교회가 규정하게 되는 것은 이단에 속한 사람들보다는 우선 교단에 소속한 교인들을 보호하는 차원이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규정의 목적은 적극적으로는 교인 보호뿐만 아니라 빠진 사람들을 선도하는 것에 있죠.

 심창섭 교수: 그런데 굉장한 인내력과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우리 교단 같으면 Y목사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가 본 교단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때 제가 조사위원으로 있었는데 그분이 총회 조사위원 앞에서 고백하기를 자신이 지금까지 설교하고 가르쳤던 모든 것이 교단의 가르침과 어긋난 것이 있다면 다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양심적으로.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선언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상이 완전히 전환되었느냐,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단 사상이 하루아침에 빨래가 세탁소에서 클리닝되듯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죠. 평생 동안 갈 수도 있습니다. 그 사상의 깊이가, 그러나 고백을 하고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정죄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식이 되어야지 마치 마녀사냥처럼 고백을 해도 더 조사해 들어가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어요. 공식적으로 교회 앞에서 자기 잘못을 천명하면 그런 생각이 있어도 더 이상 발표하지 않고 목회에 적용하지 않으면 선도해 가야죠.

 진행자: 교회 앞에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심창섭 교수: 그렇죠.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저는 “목사님을 당회장 자리에서 몇 년이든 유보하십시오. 그리고 그 동안 그 목사님 아래서 교육을 받아 목회하는 목회자, 교역자들을 다 총신 출신으로 대치하십시오. 그래야 그 교회가 완전히 돌아서고 교인들의 신앙의 성향이 달라지지 그 목사, 그 교역자 그대로 두고 교단에 들어왔다는 것은 이건 안 됩니다“라고 제시했습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드러난 이단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그냥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 목사님은 교회를 나오고 교단의 한 어른이 당회장으로 들어갔어요. 지금도 그 상태예요.

 정동섭 교수: 조직신학적으로 크게 우려할 만큼의 상태였나요?

 심창섭 교수: 역시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제가 드러났죠. 자기 나름대로 재미있게 하니까 교인들이 그냥 빠지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보면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주장해서는 안 되는데 너무 그런 것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은 모르죠. 조직신학적인 큰 줄기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어요.

 정동섭 교수: 선도 가치가 있었겠군요. 그러니까 고백을 하고 바꾸겠습니다 라고 할 때는 일단은 인정을 하고 지켜봐야 할 것 아니에요?

 심창섭 교수: 지켜 봐야죠. 대신에 그 기간 동안 쭉 훈련을 시켜야죠. 그래서 3년 동안 당회 치리를 못하도록 했습니다.

 목창균 교수: 그렇게 선도를 받아들일 정도면 괜찮죠.

 정동섭 교수: 이단교주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하는데, 그런 예가 지난 96년도에 ‘하나님의 전세계 교회‘라는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국에서 토요일마다 30분 TV 프로를 통해 상당히 영향을 미쳤어요. 그들의 교리 가운데 하나가 약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의사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죠. 모든 병은 믿음으로 고친다고 주장했는데 이 교주 자신이 암에 걸렸어요(웃음). 그래서 몰래 7가지나 되는 약을 매주 복용해왔어요. 그런데 그 측근들이 그것을 알게 됐어요. 옆에서 볼 때 교주가 가르치는 것과 완전히 반대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죽기 전에 그 교주 아들이 권면을 했대요. “이 사실을 공표하고 약을 먹어도 괜찮다고 교리 수정을 하자“고 말이죠.

그래서 결국 “약을 먹어도 된다. 의사 도움을 받아도 된다. 지금까지 그것을 부인하는 교리는 잘못되었다“고 공표하고 교주가 돌아섰어요. 이렇게 시인을 하면서 미국의 경우에는 이단전문가와 연결이 되어 이 사람을 선도했고 교주가 받아들여졌어요. 그래서 교인 전체가 돌이키게 됐어요. 물론 반발하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신도들이 정통교회로 돌아오게 되었죠. 성공한 케이스죠. 이것이 가능해요.  교주도 돌이킵니다.

 진행자: 우리 나라에도 보면 위에 언급한 경우 외에 J목사가 통합측에서 사과문을 낭독하고 사이비성을 해제 받은 그런 선례가 있었죠.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앞으로도 계속 그런 것이 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정치바람을 타기가 쉽죠. 오늘 우리에게 바람직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심창섭 교수: 그런데 말이 쉽지 이단이 회개한다는 것은 가물에 콩나듯이 힘들잖아요. 제가 그렇게 발언한 것은 너무 일방적으로 이단에 대해서 정죄만하고 쳐부수는 식보다는 앞으로는 세월이 많이 달라지니까 포용력을 갖도록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단들도 워낙 두드려 맞으니까 실제적으로는 자신들에게 이단성이 없다는 것을 늘 내세우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만약에 아까 말씀드린 구원론이 다른 것을 계속 고집한다든지, 속죄를 안 한다든지,  부활과 심판의 교리를 안 믿는다든지, 성경의 중요한 교리를 부인할 때는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으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신앙 체험을 통해 변질될 경우에는 잘못을 지적해 주면 돌아설 여지가 있거든요.

한국에는 이상하게 자유주의 계통의 교단에서는 이단들이 잘 안 나오더라구요. 주로 신학이 보수고 근본주의 계통에서 이단들이 나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그래서 이들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교리는 믿고 어떤 면에서는 열심도 있고 기도도 더 많이 하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기도하다가 체험신앙과 연결되어서 근본신학을 떠나서 자기 나름대로 도식화하는 것인데 그런 경우에는 범교단적으로 교정하기 위해서 신학자를 동원해서 추진하면 교정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영적으로 그 사람들이 교인들에게, 침체된 교인들에게 주는 것이 많거든요. 그들을 돌이켜서 교회에 보탬이 될 수도 있죠. 잘 치유만 된다면. 적대 감정만 보이지 말고.

 정동섭 교수: 그런데 우리 나라 국민의 심성도, 특별히 교인들은 더하다고 보는데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조금만 틀린 얘기하면 이단이라고 하고 개선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아요.

 심창섭 교수: 이단으로 이미 규정된 K목사가 제게 2억 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는데 내 재산을 다 털어도 2억 원이 안 됩니다. 그 사건이 진행되지 않고 끝나기는 했지만, 2억이라는 공문만 봐도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경찰서 가서 조서 받는다고 하루 종일 걸렸지, 정말 교수들이 이단문제에 걸리면 너무 괴로워요. 연구를 할 수도 없고. 밤이고 낮이고 그 생각이 맴돕니다. 소송이 되어 있으면. 버틸 힘도 없고. 월급 받으면 변호사 비용 내야지,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그래서 정교수님 신문에 몇 번 나오는 것 보고 걱정했어요.

 정동섭 교수: 당해본 사람은 알죠. 계속 불쑥불쑥 생각이 나는 거예요. 우산 쓰고 다니는 심정이에요.

 심창섭 교수: 정신건강에 아주 안 좋죠. 이 사람들은 아주 심심하면 하는 거예요.

 정동섭 교수: 이들은 아주 고소 전담 목사가 있다니까요. … 참 목교수님 시한부종말론과 관련해서 한 말씀해 주시죠.

 목창균 교수: 1999년 7월은 이미 지나간 것 아니에요?(토론회 당일은 8월 5일임. 편집자 주) 노스트라다무스가 7월이라고 예언했다고 하죠. 그런데 종말에 대한 신앙은 필요한데 시한에 대한 신앙은 아니다라는 것이죠. 종말에 대한 신앙을 갖고 신앙의 긴장을 갖는 것이 종말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시한을 강조해서 문제가 되죠. 시한부종말론자들은 시한을 정해 두고 긴장을 조장하죠. 그런데 어거스틴도 인류 역사 6천년을 얘기했죠.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을 얘기한 것이죠. 이것과 맞물려서 시한부종말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교인들도 10년, 20년 전에 이 얘기를 다 들었거든요. 그래서 종말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사실이죠.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심지어 예루살렘 신드롬이 생길 정도예요. 잘 넘겨야죠.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대책은 어쩌면 시한이 지나가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죠. (웃음)

 정동섭 교수: 한 마디로 세월이 약이군요. 이단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시한이 지나가면 ‘연기되었다‘며 이상한 논리를 또 폅니다. 그러면 신도들은 계속해서 넘어가더라고요. 그 동안 많이들 연기했더군요. 이상 기후, 대형 사고들이 일어나면 이단들이 기뻐한다죠. 자신들이 말한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고요.

 목창균 교수: 신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기성교회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잖아요. 그 점을 이단들이 파고드는 거예요. 종말뿐만 아니라 모든 이단문제가 그렇거든요.

 정동섭 교수: 이것은 여담인데, 저는 신학적인 탈선 때문에 ‘이것을 밝히자‘ 그러는 것보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도 전부 불행한 가정 출신이에요. 교주도 그렇고, 또 이단에 빠지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가정 사역이 제 전공이거든요. 가정사역을 하는 입장에서 가정 파괴의 가장 큰 세력, 가정 파괴범 역할을 하는 것이 이단이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이단 문제를 접근하는 거예요. 대안 가운데 하나가 신학적인 것도 있지만 교회를 튼튼히 진리로 세우고 가정을 행복한 가정, 건강한 가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앞으로 21세기에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혼율이 30% 이상이 되는 국내 실정에서 교회가 앞장서서 부부 개선교육 등의 훈련을 하는 것도 이단에 대응하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목창균 교수: 적극적인 방법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봐요. 이단신학은 어떤 면에서 병든 신앙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진행자: 가정의 중요성은 이미 통일교가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참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해가며 운동을 펼치고 있지요.

 정동섭 교수: 이단들은 위장술에 능하죠. 광명의 천사로 둔갑하여 나타나듯이 좋은 것을 항상 각색을 해서 나타납니다. 참가정 운동이라는 것도 그렇고,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알려준다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좋은 것을 위장해서 부패를 시키죠. 진짜를 가짜로 둔갑을 시키는 것입니다.

 심창섭 교수: 그런 면에서 도덕성이 기성교회보다 탁월하게 나은 점도 있죠. 훨씬 더 도덕적이고 가정을 강조하기도 하고. 칼빈은 16세기에 이단들에 대해서 언급할 때 자신의 실체를 감추고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표현했어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단들은 늘 표리부동한 성격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이단들이 나타날 때 기성교회에서 주의할 것은 이단들이 굉장히 색다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참신하거든요. 영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내면적인 것은 다르죠. 제가 숭실대학에서 모 단체에 대해 발표하기 위해 그곳에서 나온 책을 한 권 다 읽었는데 끝까지 읽을 때까지 그 책이 제게는 매력적이었습니다. 교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이 한 설교도 나오는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대단히 매력적이에요. 그곳 교인들도 인터뷰를 해봤는데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면서 기성교회 교인들보다도 훨씬 더 열기가 있고 참신하고 헌신적이고, 완전히 사람들이 바뀌었더라고요. 채식을 하고.

신학교 졸업생 가운데 한 사람도 그곳에 가 있었는데 자기가 장로교에 다녀봤는데 아니더라는 거예요. 완전히 빠져서 이렇게 좋은데 무슨 소리하는 거냐고 오히려 저보고 와서 들어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한 아가씨가 제발 그 논문을 발표하지 말아 달래요. 그래서 제가 발표하는 것이 당신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죠. 그 책을 읽고서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발표하는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발표를 하게 되면 저한테 해가 된다는 거예요. 자기 교주를 건드리기 때문에. 그러면서 전에 탁명환 씨가 죽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아, 이 아가씨가 이렇게 빠져 있구나.‘ 책을 맨 마지막까지 읽어보니 마지막 엘리야, 대심판장으로 연결된 것이 그 교주였어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처음에 들어갈 때는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세뇌가 된 다음에는 교주를 하나님이라고 해도 신앙적으로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료가 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진행자: 이단 단체에 가면 ‘신앙이 손에 잡힌다‘는 표현을 해도 될 것 같아요. 30개론이라는 것이 손에 탁 잡히잖아요. 또 구원파에서는 ‘구원‘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들의 이러한 주장이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들에게는 매력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심창섭 교수: 잡힌다는 것을 의식화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매력 있다, 빠졌다고 말할 필요도 없이 세뇌라고 할 수 있죠. 완전히 의식화죠.

 정동섭 교수: 전제,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놓는 것이죠. 어린아이를 미국에서 때리잖아요. 그러면 경찰이 와서 아이를 데려갑니다. ‘당신 애 키울 자격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죠. 미국 문화의 전제가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아이를 부모가 키울 자격이 없으면 국가가 키우겠다는 거예요. 우리 나라는 가족 집단주의이기 때문에 아무리 두드려 패도 경찰에 신고할 일이 아니란 말예요. 가정에서 해결할 일인데 왜 경찰이 끼어드냐 이 말이죠.

그러니까 전제 자체가 달라요. 이렇듯 이단과 정통이 밑에 깔려 있는 전제 자체가 달라요. 그런데 전제를 바꿔놓는 것을 이단들이 어떻게 하느냐하면 이단들은 5일 집회, 일주일 집회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집중적인 집회를 해서 세계관을 한꺼번에 바꿔버려요. 바꾸고 그 다음에 각론으로 들어가니까 무슨 얘기를 해도 다 먹히는 거예요. 이단의 이데올로기가 정통과는 완전히 다르죠. 이단들은 일주일 집회니 뭐니 해서 한꺼번에 하거든요. 그런데 정통교회는 그렇게 안 해요. 그런 차이가 있죠. 이곳에 오면 바뀐다는 거죠. 자신감이 있거든요.

 진행자: 그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나네요. 자신의 교리를 축약해서 한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이죠. 저희들은 예수님 믿겠다고 고백한 초신자를 교회에 앉혀두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단시일에 가르치지는 않거든요.

 목창균 교수: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완전히 기독교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기성교인들 중에서도 열심 있는 사람들이 오니까 그런 식의 교육이 어떤 면에서는 편할 거예요.

 정동섭 교수: 사회심리학적인 차원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이단을 연구한 책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가 하면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 요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의존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란 말예요.

역기능 가정 출신, 아버지와 자녀들간에 일방적인 대화만 있었든가, 아니면 대화가 없는 가정, 잔소리만 있었던 가정의 출신들이 이단에 많이 간다는 거죠. 왜 그런가 하면 건강하고 민주적인 가정, 대화가 있는 가정, 아버지의 말에도 반론을 펼 수 있는 가정,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했던 가정의 자녀들은 이단에 갔다가도 분별하고 나온다는 거죠. 그런데 대개 순진한 사람들, 이단에 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가느냐? 암송만 하는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지 못했거든요. 가정에서 기를 수도 없었고. 그러니까 그냥 가서 설득이 한꺼번에 되어서 넘어가는 거예요. 저도 그런 경우였죠. 대화가 없는 가정에서 자라 암송만 하는 교육을 받아서 영어 단어를 많이 외어서 영어는 잘했죠. 나중에는 이를 이단교주 통역하는 데 썼죠.

 심창섭 교수: 잘 사용하셨네요(웃음).

 정동섭 교수: 비판력이 없으니까 그랬어요.

 목창균 교수: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통일교에서 좋은 대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서 신학을 시키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데 주로 물리학과 등 똑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동경대학 나온 학생도 있고, 다 머리 좋은 사람들인데 장학금 받다가 하버드 예일 출신들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진행자: 건전한 비판의 능력은 이단 연구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신앙생활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군요. 끝으로 저희 책, <교회와신앙>에 대한 교수님들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잘하고 있다면 무엇이, 또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심창섭 교수: 한 이단 단체에서 제게 와서 <교회와신앙>에 보도된 내용에 줄을 치며 이런 점에서 잘못 보도가 되었다고 반론을 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주장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단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확실한 증거 자료가 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00개 중에 하나가 틀려도 99개가 다 틀린 것인 양 몰릴 수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생명을 걸어야죠. 제일 중요한 것이 정확한 근거자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동섭 교수: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보면 중요한 이단들을 차례대로 파헤쳤다고 할까. 구원파면 구원파, 귀신파면 귀신파로 나눠 단행본을 엮어 목회자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어제도 편지를 받았고 상담을 받았는데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단들이 그렇게 많아요. 그러한 집단들이 꽤 많아요. 전국적으로 이슈화되지 않으면서 가정을 파괴하는 집단들, 그런 곳을 기자를 투입해서 고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창균 교수: 다른 잡지가 고발 중심인데 비해 <교회와신앙>은 비교적 분석하는 스타일이네요. 이 특징을 잘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이것으로 토론회를 마치겠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월간<교회와신앙> 199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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