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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성 희석에 이름을 거래하는 유명인사의 변명
1998년 04월 01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원문호 목사(제자성장연구원 이단분별 제자화운동본부장)

1. 시작하는 글

이단자의 변명은 무엇인가? 항상 ‘이단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어제 오늘의 변명이 아니다. 항시 존재하는 소리이다. 아마도 그들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이와 함께 이단들에게는 자기 집단의 존속을 위한 ‘포교 전략’이 있는데,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지명도가 있는 특정 인사들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선전하는 데 있어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작전이다. 그런고로 기독교 인사는 그들의 접근에 휘말리거나,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값싸게 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신분이 이용당한다는 것은 이단자를 정통 교단에 끼어들게 해 주는 행위로서, 이단 판별에 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자신이 그들을 인정한 과오를 낳기 때문이다.

사실 이단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이용당하고 있는 사람들로 아무개 교수, 아무개 목사 등이 유명하다. 이들의 행태는 교계에서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 또다시 김경선 장로라는 사람이 자신의 출판사인 <여운사>를 통해 발행한 <성경적 기독교교리와 각교단의 교리·신앙고백·신조들>이라는 책에 교계의 지명도 높은 인사들이 추천자와 감수자로 대거 등장했다 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의 사진까지 책 표지에 화려하게 실려 있어, 누구라도 언뜻 보면 이 책은 교계의 유명 인사들이‘보증’하는 책이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김경선 장로는 이렇게 교계의 지명도 높은 인사들의 이름과 사진으로 병풍을 치고서 이 책에 ‘안식교는 이단이 아니라 정통 교회이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버젓이 담았다. 김장로가, 안식교는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책을 출판 보급함으로 현재 자신이 속한 교단의 재판에 계류중인 자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아마 이번에 김장로의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사람들은 대부분 김장로의 ‘꾀’를 모르고 그저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증거 하나가 최근 교계 신문에 보도되었다. 총신대학교 박아무개 박사의 경우, 얼마 전 김경선 장로에게 보낸 내용증명 우편을 통해 김장로가 펴낸 책의 감수위원에서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기독신문, 98년 2월 25일자). 자신이 감수한 것은 장로교 부분으로, 안식교가 한국의 정통 교단에 포함된 사실을 출간 전에 알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모두가 다 이처럼 모르고 이용당한 것이 아닌 사실은 도한호 교수(기침교단 침례신학대학교 대학원장)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도교수는 감수 외에 서평까지 맡았다. 그는 서평에서 “목회자와 신학생은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며 김장로의 책을 높이 평가하고 “특히, 19세기에 미국에서 형성된 교파인 안식일교와 기독교의 한계 밖의 집단인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과 한국의 통일교를 연구한 것이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도교수는, 김장로가 각 교단들을 구분할 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등을 기독교 한계 밖의 집단들(이단)로 구분짓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안식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과 함께 정통 개신교회에 포함시키는 ‘분류’에 동의했다.

그래서 도교수는 책 표지에 자랑스럽게(?) 인쇄된 서평에서 “특히, 19세기에 미국에서 형성된 교파인 안식일교와 기독교의 한계 밖의 집단인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과 한국의 통일교를 연구한 것이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안식교를 이단의 범주인 기독교의 한계 밖의 집단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한 마디로 안식교는 이단이 아닌 정통 교회라고 주장한 꼴이다. 이는 근자에 들어 몇몇 유명인들의 흐릿해진 진리 의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2. 이단성 희석 수법

이렇듯 이단 집단이나 그들을 옹호해 주는 자들은 흔히 개신교의 대표성 인사들을 적절히 이용함에 능하다. 그들의 방법은 다양하고도 집요하다. 소위 개신교의 대표성 인사들이 잊지 말고 명심할 것은, 자신의 처신이 기독교의 건전 보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단들의 다양한 ‘이단성 은폐’ 수법을 알아보자.

① 대표성 인사를 설교자로 초청한다.
이단성을 은폐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교계의 지명도 높은 인사를 설교자로 초청하여 강단에 세운다. 그렇게 하여 그 집단 구성원들의 동요를 예방하고, 대외적으로 설교자의 정통성이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선전에 활용하여 외부의 비판을 사전에 차단코자 한다. “우리가 이단이라면 이렇게 유명한 목사님이 우리 강단에서 설교해 주시겠느냐!”는 말과 함께 말이다. 부흥회나 각종 세미나 및 연합집회 강사 자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이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한국 교회에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② 선한 사업에 참여함으로 이단성을 은폐한다.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구제나 기타 사업에 참여한다. 선한 일을 한다는 그 실적으로 자신들의 이단성을 가리려고 한다.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언론을 동원하는 것은 필수이다. 그러나 선한 일에 참여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단이 아니라는 보증이 결코 되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③ 이단성을 변명하는 도서 발행으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글에는 어느 정도 우상성이 있다. 제법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단들은 각종 문서의 발행으로 이단성을 변명하고 은폐하는 데 온 정열을 다 쏟기 일쑤이다. 종종 개신교의 유명 출판사를 선정하여 책을 펴내는 우회적인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지명도 있는 인사들로 하여금 추천서를 쓰게 하거나 감수 및 서평을 쓰게 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특별히 한국 교회의 지도자급 인사들은 이단들의 출판활동에 ‘보증수표’ 격으로 들러리를 서는 일에 자신들의 이름이 팔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단 서적과 관련 출판사를 철저히 구분하여 공개하고 불매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교계 신문을 통해 이단성을 변명하고, 그 내용을 담은 신문을 전국적으로 배포하여 성도들의 신앙에 혼란을 주기도 하는데, 이런 작업에 주로 어떤 신문이 이용되는지도 관심 있게 살펴봄으로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④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그 배경을 그늘 삼아 변명한다.
교계의 여러 연합 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실력(?) 있는 이단으로서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행사에 돈을 얼마나 내는지 여부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때로는 ‘이슈’가 될 만한 유명 인사들의 모임을 주체적으로 구성하여 시선을 끌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모임에 유명 인사들이 참여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이단성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치하게 느껴질 뿐이다.

⑤ 이름 있는 기관의 공청회를 면죄부로 활용한다.
교계에는 이단 연구와 대책에 관련된 기관들이 많이 있다. 이들 중에는 가끔 그 정체성에 의문이 가는 행사를 열기도 하는 기관이 있다. 이런 기관은 자체적으로 이렇다 할 연구기능도 갖추지 못한 허울뿐인 기관이면서, 어떤 이단문제가 한국 교회의 큰 이슈로 대두되어 주목을 끈다 싶으면 약방에 감초처럼 나타나서 ‘이단인지 아닌지 검증해보자’며 무슨 공청회라는 거창한 행사를 개최한다.

물론 형식은 챙긴다. 행사장에 비판하는 측의 인사와 변명하는 측의 인사 그리고 회중이 있고, 교계의 여러 언론도 참석한다. 매우 그럴싸한 모양은 취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그렇고 그런 인사의 모양 갖추기식 비판에 그렇고 그런 변명이 따르고, 이단성을 변명하는 자 측의 신도가 대부분인 회중은 ‘아멘’을 외치며 장내를 압도한다. 그리하여 불과 몇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짜여진 각본이나 있듯이 내용성도 없이 후다닥 행사를 끝낸다.

그리고 그렇고 그런 일부 언론은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적 관심도 없이 ‘비판자로 나선 아무개 교수도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다’, ‘표현상의 실수였는데 앞으로 고치기로 약속했으니 한국 교회는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 ‘그 동안의 이단감별사의 비판이 무분별한 것이었음이 객관적으로 검증됐다’는 등의 기사를 대서특필한다. 그러면 이 내용이 필요했던 자 측에서는 이를 전국적으로 뿌린다. 이 기관을 통해 면죄부나 받은 양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 있는 것은 이런 기관의 이런 행사에 등장하는 이단성 집단은 ‘예외 없이’ 흔히 알려져 있기로 ‘돈’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는 앞으로 무슨 이단문제 공청회가 열리면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즉 주최측이 평소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는지, 어떤 실적이 있는지, 책임자들 중에 이단성 연루 전력을 가진 자가 혹 있는지, 특히 비판자로 나선 연사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자인지 등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사의 결과를 알리는 언론 보도를 접할 때에는 한국 교회의 유수한 정통 교단에서 발행하는 언론의 논조를 특히 잘 참조할 필요가 있다. 원론적으로 유수한 교단지라고 해서 반드시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교회 언론의 현실상, 특히 이단 문제와 관련된 사안일 경우, 필자는 유수한 정통 교단지의 논조를 ‘비교적으로’ 더 신뢰하는 입장이다.  

3. 신분이 팔리는 자들의 정신

이단에게 미혹을 받아 이단성을 변호해 주는 일에 자신의 신분이 팔리는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결같이 기독교와 다른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왜들 이단이라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기야 그런 수준이니 미혹되는 게 당연하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단이든지, 삼단이든지’문제를 삼지 않는다. 이 어려운 세파에서 자신에게 안녕과 유익을 현실적으로 주느냐 이것에만 관심이 클 뿐이다.

그리고 이단의 분별 의식 교육이 분명하지 않은 그들은 이단성이 각 교단의 특정 주장이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지엽적’이라는 말로 힘을 준다. 그러니까 별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단성을 버젓이 존재케 하는 ‘통행증’ 정신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상습적인 도적을 방범대원으로 인정하여 야밤에 근무케 한다면, 그가 할 짓은 무엇이겠는가? 이웃의 재산을 보호하겠는가, 신분의 보장을 근거로 마음 놓고 이웃의 재산을 털어먹겠는가?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이단을 정통 교단의 신분과 소속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온 강단을 휘몰아 다니면서 노략질하는 이리의 짓으로 문제를 발생케 함이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이단자들이 지하 운동을 하기에 매우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존 각 교단에 일부이긴 하지만, 이단을 옹호하는 불가시적 인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합의 가치를 진리수호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자들이다. 그리고 진리 분별 인식이 낙후되어 있다. 그래서 이단자의 서적도 구분하지 않고 감수한다. 참으로 한심스럽지 않는가?
이들이 받을 보응은 무엇인가?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케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4~16).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행음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0~23).

① 이단에 대한 진리 분별 인식이 떨어진다.
사이비 집단에 잘 빠지는 무리는 ‘종교성 결손’의 사람이다. 그들은 늘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그들에게 포섭이 된다. 이들의 영적인 상태는 진리 분별에 대한 눈이 어둡고 그 인식은 매우 빈약하다. 그래서 교회당과 십자가만 보이면 가리지 않고 왕래를 하다가, 미혹의 영의 결정적인 때에 이단자의 암시적 설교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서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3~4).

이들은 애초부터 이단 분별에 무지하다. 한심한 것은 오래 믿었다는 고참 신자가 이단의 집단에 가서 이제 비로소 영적인 진리를 깨달았다고 간증하는 자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초신자들로 하여금 그곳에 정착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구원은 받았으나 이단의 분별에 문맹자이거나, 애시당초 유기자로서 종교인 생활을 기성 교회에서 하다가 마지막에 제가 갈 길로 갔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정황에서 지도자를 비롯하여 전 교인을 이단의 영들 분별자로 양육함이 매우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의 성장에 엄청나게 치명적인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이단성의 메시지를 구분하지 못하여 그들과 함께 교류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맞는 체질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때에는 정통 메시지가 거부를 당하는 극한 서러움을 받는 것이다.

② 연합 사업을 진리 수호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긴다.
각 교단을 상대로 연합 사업을 하는 일부 대표성 있는 분들이 이단과 버젓이 교류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은 이단성이 교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고 오히려 연합 사업의 가치를 우위에 둔다. 그것이 이단성을 옹호하는 서적을 가볍게 여기며, 자기의 필요 충족을 위하여 그 대표성 신분을 수단으로 이용하게 만든다. 깨달을 것은 최소한 진리의 분계선을 넘나드는 교류는 삼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라는 점이다. 이단성의 침투 기회를 제공하는 원흉적 행위는 일차적으로는 권고적이나, 상습적으로 하는 자에게는 면직에 해당한다. 그의 신앙은 검증을 받아야 할 이단성 증후군이다.

③ 이단이 정통보다 오히려 낫다는 인식을 보인다.
이단 집단과 교류하는 자들은 이단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서적을 통해서 감명을 받는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인즉 한 마디로 듣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서 그 집단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자기 나름대로 객관성 있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시도한다. 그 결과로, 그들의 이단성이 각 교단의 지엽적인 특성적 차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그들을 향하여 신뢰하고 개신교의 모델적 교회라고 과찬하기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이단을 분별할 수 있는 식견이 분명하지 않은 인물이 이런 일에 개입하는 결과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서 그의 신분의 지명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 그런 줄로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단의 표면적인 포교 수단이 되어버린 그들의 행위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들이 다소간 사회에 유익을 주는 측면도 있음을 무시함이 아니라, 그들이 이단성에 따른 집단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단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때로는 이단이 정통보다 낫다는 말까지 한다. 이는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들이다. 엄밀히 말해서 이단에게 배울 것은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원수요 멸망자에게 무엇이 배울 것이 있단 말인가? 적그리스도의 수법으로 일관하는 모든 행위를 말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선생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삶에 스승은 보혜사 성령일 뿐이다(요 14:26).

④ 어느 누구보다 정이 많고 인간미가 있다며 이단을 좋게 생각한다.
이단 집단의 교주를 만난 이들은 그에 대한 첫 인상에서 정이 넘치는 인간미를 느끼기 쉽다. 한 마디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는 것이다. 보통 생각하기를, 이단의 교주는 머리에 뿔이 나 있고, 얼굴은 화면에 나타나는 마귀 할멈의 상이라는 선입관이 있다. 그런 선입관을 가지고 보면 실제로 이단의 인상은 전혀 딴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그에게 대해서 좋다고 느끼는 매력적인 ‘이미지’는 목적을 위해 수단격으로 만들어진 가면이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가 마귀의 할멈 같다면 누가 그곳에 가겠는가? 그는 사단에게 선택을 받은 모델이라는 사실을 알자. 그리고 이단 분별에 있어 인간미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단의 배후는 사탄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성도의 미혹을 위하여 광명한 천사로 가장을 한다는 점을 알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리고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남을 생각해 보자. 사람을 외모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크게 성장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단의 집단에는 대체로 돈과 사람이 많이 모인다. 그리고 매우 열정적이며 급진적으로 성장한다. 이를 바라보는 이들은 대개 부러워한다. 그래서 이 일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목을 집중케 한다. 이제 주위의 관심이 집중되고 ‘교회 성장에 어떠한 묘수가 있는갗 하여 각처로부터 개척자들과 목회에 한계를 느끼는 지도자와 사모들이 모여들어 성황적 돌풍을 일으킨다. 이것이 복음적으로 잘 되는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아닌 경우가 지적되고 이단성이 드러나면 그 수치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정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단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한국에 이단 집단의 그 규모를 보라. 그 이단의 유형을 따라 급성장이 일반이 아닌가. 이단성으로 급히 성장함을 자랑하는 교회를 잘 살펴보라. 그들의 외침이 비복음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사이비성 신비주의라는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가. 그들에게 모여든 신자는 기성교인의 대이동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지 않는가.

세계교회사가 증거하는 것은 이단의 집단이 크게 위세를 떨치는 큰 집단이 되지만 스스로 멸망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교인이 미혹을 받지 않도록 그들의 접근을 예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마수의 손’이 전반에 걸쳐서 뻗치고 있다는 점을 알고, 깨어서 그들을 대적해야 한다. 이단의 마귀적 성장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교육과 신앙 검증이 필요하다.

⑥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갔다고 변명한다.
항간에 들리는 소리다.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 거기가 어디라고 가서 설교하느냐”라고 하니까 그저 자신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어야 할까? 하여간에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좋으나, 과연 그들에게 가서 이단성에 대한 지적을 바르게 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정통 교회의 지도자가 이단 집단에 가서 설교한 목적이 바로 전도였다면, 전도 설교와 더불어 그들의 이단성에 대해 지적한 바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한가? 필자는 지금까지 정통 교회의 지도자급 인사가 이단 집단에 가서 설교하면서 그들의 이단성을 바르게 지적해 주고 진정으로 그들이 바른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권면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다만 그 설교 사례비가 엄청난 액수였다는 풍문만 들었을 뿐이다. 설령 전도 목적을 가지고 이단 집단에 가서 설교를 한다손 치더라도, 이단들이 이 일을 자신들의 선전에 활용해먹는 현실을 감안하여 삼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처사일 터인데, 정작 그들의 이단성을 깨우쳐 주는 설교도 아니었다는 점이 이들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4. 끝맺는 글

기독교인의 대표성은 주님의 일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도자의 얼굴은 잘 관리되어, 행여 그 신분과 명예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에 이용당하지 말아야 한다. 이단은 자신들의 포교를 위하여 정통 교단의 대표성 있는 인사의 이름을 이용하는 전략을 실행한다. 그런고로 기독인은 자의든지 타의든지 어떠한 경우라도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그들이 진짜라면 정통 교단에 끼어들기에 전력을 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들이 이단성을 그대로 지속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교류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창질같은 이단성을 공개적으로 버린 확증이 있다면 그들과 교제함이 아름다울 것이다. 이것이 없는 한 그들의 이단성과는 멀리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지금 당신 얼굴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편인가, 정통과 이단을 넘나드는 ‘종교인 집시’인가? 주의 종은 이단에게 붙어먹고 살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6).
(월간<교회와신앙> 9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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