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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도원의 실태와 바람직한 기도원상
1997년 02월 01일 (토)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경원 목사(예장 합동)

시작하는 말

최근 우리 사회 주변에서 기도원이란 간판을 걸고 범죄에 연류된 곳이 발생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교회와신앙>에서 이상한 기도원의 형태에 대하여 고발성 탐방 기사를 다룬 적이 있었다. 이번에 국내에 있는 기도원에 대하여 좀더 깊이 다루워 달라는 부탁을 받고 좀더 원론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고자 한다.

기도원이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기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도의 처소이다. 우리 주님도 사역하시다가 기도하시기 위하여 어떤 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신 흔적이 복음서에서 발견된다. 오늘 국내의 기도원은 단순 기도의 처소의 기능에서 벗어나 이상한 비성경적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정도가 되었다. 어떤 분은 "오직 기도만 할 수 있는 기도원이 그립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국내 기도원이 모두가 다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일부 기도원은 아주 건전한가 하면 또 한 일부에서는 '기도원'이란 간판을 걸고 상상할 수 없는 불의와 악을 자행하여 교계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기도원의 시작과 현황
국내 기도원의 시작에 대하여 학문성을 갖고 접근하는 분들의 주장으로는 중세 수도원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필자는 학문적이고 교회사적인 접근을 피하고 실제적인 시작과 오늘의 현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한 마디로 국내 개신교의 기도원의 정확한 시작과 연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마 한국 기독교가 일제시대를 맞게 되면서 몇몇 지도자들이 일본의 박해를 피해 그들과 정면으로 대결을 피하여 깊은 산속으로 신앙을 지키려고 은둔하기 시작하면서 기도원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 지역으로는 백두산 산상기도처, 금강산 산상기도처, 서울 삼각산기도처가 잘 알려진 곳들이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기도원 운동은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북 분단과 6?25사건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큰 충격과 좌절을 당하면서 고향을 떠난 월남 실향민들, 비참한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각종 어려움의 문제가 현실로 부닥칠 때 많은 이들이 현실 도피의 길을 찾게 되었고 좀더 자극적이고 열광적인 신앙생활에 도취하게 되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병리 현상은 기도원이 확장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4?19와 5?16군사혁명으로 인한 사회적인 불안과 함께 기도원 운동은 계속 확장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와서 국내 기도원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은사운동 및 성령운동이 확산되면서 이 붐을 타고 은사집회 내지 성령집회라는 형식으로 기도원 운동이 가속화되기도 하였다. 이때 기도원 운동이 한국교회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하였지만 부작용이 커서 비윤리적이고 범죄적인 사건까지도 발생하면서 그런 유형이 지금까지 국내 기도원들의 형태속에 자리잡게 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일부 기도원 운동이 약간 다른 양상을 띠면서 건전한 교단이나 교회에서 직영하는 기도원의 형태가 많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최근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최고급형 호텔급 기도원들이 들어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음성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도원이 상당히 많은 실정이다. 가끔 범죄성 사건과 연류된 기도원들이 메스컴에 발표됨으로 건전한 기도원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실정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도심속에 간판을 내건 기도원까지 합하면 무려 2천여 개의 기도원이 있다. 그외에도 가정제단까지 합하면 5백여 개까지 추가되는 실정이다.

국내 기도원의 운영 형태
첫째로, 연중 쉬지 않고 기도원 원장 혹은 부흥강사를 초청하여 부흥회 및 은사 성령 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하는 기도원들이 있다.
둘째로, 교회가 직영하는 기도원으로서 자체 수양회 수련회 특별집회를 개최하면서 장소를 대여하는 형태롤 초교파적으로 운영하는 형태가 있다.
셋째로, 기도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사회에서 완전 소외된 계층들을 집단 수용하는 요양원 형태의 기도원이 있다.

넷째로, 외부에 비쳐진 것은 기도원이지만 사교집단 내지 신흥종교의 성격을 가진 기도원이 있다.
다섯째로, 도심에 소재한 기도원으로서 개인의 집이나 일정한 장소를 임대하여 운영하는 기도처가 있다. 일종의 기존 교회가 행하는 목회 프로그램을 다 실시하는 유사 교회의 기도원 형태가 있는 것이다.

첫째 유형의 기도원은 기도원이 자체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운영상의 문제, 기도원 책임자의 신학의 문제, 개인의 신앙적인 문제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되며 문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그 내막을 들어다 보면 기도원측과 초청되는 부흥강사측 사이에 임대료나 강사료의 배분문제로 교계에 화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든다면 삼칠제, 사육제, 오오제란 용어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유형은 기성교회나 교단에 연결된 기도원으로 교회 목회프로그램의 연장선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볼 때 커다란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유형으로는 소외된 계층의 수용 내지 환자 치료소로 바뀐 기도원으로서, 이러한 곳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 유형에 해당된 것으로 몇 년전에 모 방송사의 기도원 실태 프로그램에서 폭로된 바도 있다. 정신질환자들을 집단으로 수용하여 놓고 보호와 치료라는 명목하에 비인간적인 대우와 비의약적인 치료방법으로 인해 사회법으로도 용납되지 않는 이러한 기도원 활동은 반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넷째 유형은 아주 심각한 상태인 것 같다. 기독교계 사이비 종파로 자리를 잡고 있는 형태이다. 사이비 이단 집단으로서의 이러한 기도원은 전국 각지에 이미 상당히 있는 실정이고 최근 들어 확산 일로에 있는 추세이다.
다섯째 유형은 완전히 변형된 기도원이다. 일반적으로 기도원하면 도심과 세속에서 좀 떨어져 위치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도심 작은 건물 지하에 혹은 2, 3층에 위치하여 기도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기도원 운영 내막과 운영자에 대하여

1. 상업주의적 기도원 운영과 운영자의 자질 문제
기도원이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지 않고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화 양상은 심각한 문제이다. 신성한 복음전파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기도원이 아니라 한낱 세속적인 상업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이권과 명예에 눈이 어두워져 그 부패와 타락상이 위험수위를 넘은 기도원도 여러 곳이 있다. 기도원의 재산을 완전 사유화하여 원장 자신에서 후손에게 상속시키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개중 교계 일부 부흥강사라는 인사들중에서 사람만 많이 모이고 사례만 많이 준다면 어디든지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 기도원 운영자의 신학부재와 저학력 실태
기도원은 실용적인 경험을 토대하여 사역하므로 성경과 신학이 자연적 배제되는 양상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신학교육이 필요없어지고 일반학력이 무시되어 버리는 실정에 이르게 된다. 어떤 조사자료에 의하면 기도원 원장의 학력이 국졸 13.6%, 신학교이상 졸업이 31.8% 등으로 나타났고, 기도원 원장의 신급이 목사 45.4%, 전도사 13.7%, 장로 9.1%, 권사 4.5%, 기타 27.3%로 나타나고 있다. 일련의 통계자료에 의해도 기도원이 성경적인 은사운동보다 비성경적인 감정주의(Emotionalism)나 신비주의(Mysticism)로 빠져드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처럼 보인다.

3. 기도원 운영자들이 기도원을 병고치는 곳으로, 복받는 곳으로 잘못 인식한 가운데 운영하는 방식이 있다
필자가 80년대에 서울 삼각산 지역을 지나가다가 본 기도원 현수막중에 잊을 수 없는 것은 "위장병 단 10분만에 진단치료"라는 내용이었다. 이쯤되어 버린 것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래서 기도원마다 특징이 있다. 기도응답이 잘되는 기도원, 병이 잘 낫는 기적이 일어나는 기도원, 그것도 질병의 종류따라 또 나누어지는 현상까지 있다.

기도원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면에 대하여

기도원이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다. 목회자들에게는 말씀 묵상훈련, 기도훈련, 은사훈련, 인격훈련 등 새로운 신앙세계를 열어주는 처소로서의 역할도 많이 있다. 국내에 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체험하지 않은 분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평신도들에게는 거듭남의 체험, 자기 소명체험, 응답체험, 신유체험, 성령충만체험 등을 수많은 사람들이 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인들이 기도원을 선호하는 이유

첫째로 기성교회의 목회 프로그램을 통하여 영적 만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성도들 중에 마음이 "컬컬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나서 기도원에 다녀온 후 컬컬함이 해소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둘째는 교회가 세속화되어 영적 신선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신자들의 다양한 영적 요구를 교회가 수용하지 못하고, 교회는 신앙체험의 장소로서는 부적합하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교인들은 기도원을 찾고 기성교회는 기도원과 대립 내지 갈등구조를 갖게 된다. 분명히 목회하는 필자의 경우도 교회현장과 기도원과의 영적 분위기 면에서 다른 면이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기도원은 결코 대립적 자세나 갈등구조로 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기도원의 앞날과 개선

1. 기도원은 바른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

앞서 논한 내용중에서도 밝혔듯이 기도원 원장 내지 강사라는 분들의 신학이 부재함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서 일차적으로 해결 국면으로 갈수 있는 길은 바른 신학의 정립이다.

2. 기도원은 기도처로서 본연의 자세에 성실해야 한다
현실 삶에 지친 성도들이 좋은 자연경관과 환경속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와 만남이 이루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전문적으로 훈련된 말씀 인도자와 상담자들이 상주하여 기도원을 찾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3. 기도원은 상업주의에서 탈피하여 성(聖))업주의로 가야할 것이다
복음의 타락은 상업주의로 가는 것이다. 거룩할 성(Holy), 성(聖)업주의적 자세로 기도원을 운영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원을 운영하여 자신과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도원 사역에서 손을 떼고 다른 길로 가야 할 것이다.

4. 기도원이 사회의 소외된 각종 질환자의 수용소 내지 치료소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만일 이와 같은 기능으로 운영되는 기도원이 있다면 기도원의 간판을 내리고 사회복지 시설로 명칭과 운영 방향을 변경해야 한다. 비기독교인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도원에 대하여 잘못 이해함으로 기성교회의 복음전파의 길이 막히는 실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는 이런 소외된 사람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노력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5. 기성교회는 일반교우들에게 바른 신앙지도를 통하여 바른 기도원에 대한 이해를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들 중에는 기도원 출입을 교인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막는 분들이 있다. 이것이 최상의 방법은 아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기도원과 불건전한 기도원을 식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6. 기도원은 소유와 운영문제에 대하여 개선해야 한다
기도원의 소유와 운영을 동일시하면 부패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절대 권력은 망하는 것이 철칙이다. 적어도 기도원은 개인이 소유하기보다는 교회나 교단이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어렵다면 법인화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도원 운영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7. 기도원들은 시설을 보완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부 기도원 중에 환경이 심히 열악한 곳도 한 둘이 아니다. 현대인의 영적 휴식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심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도원은 스스로 철수하든지 아니면 좋은 환경으로 이전운영 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인다.

8. 기도원에서 안수기도나 치유사역에 대하여는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기도원이 문제가 되어 사회 문제화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출 15:26을 보면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했기에 우리는 신유치유사역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치유를 빙자한 다른 목적으로 가서는 안될 것이다.

9. 기도원은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일부 기도원에서 일반 기성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는 경우를 본다. 기도원과 교회는 엄연히 다르다. 기도원을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목양 사역에서 채워지지 않는 영적 수련장이 바로 기도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10. 교회와 기도원은 엄연한 영적 질서 속에서 협력하는 공동연합전략이 꼭 있어야 한다
앞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교회와 기도원은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은 건전한 기도원 운영을 위한 전략 모색이나 지도가 있어야 하고, 교회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리스도 몸의 지체의식을 갖고 기도원이 성의있게 협력하여 영적 공생관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한국교회는 선교 21세기를 맞아 세계교회사에 급성장한 교회로, 기도에 열정이 있는 교회로 소개되고 있다. 이제는 건전한 기도원을 세우고 만들어 나가야 할 역사적 시점에 이른 것이다. 국내의 기도원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음놓고 쉴 수 있고, 연구할 수 있고, 영적 새힘을 충전시킬수 있는 영적 휴식공간으로 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의 영적 성장과 부흥이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월간<교회와신앙> 199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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