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싸인> 중에서

미국 필라델피아 외곽 옥수수 농장에 살고 있는 전직 신부 그레이엄 헤스(멜 깁슨)는 두아이와 야구선수로 실패를 거듭한 동생 메릴(호와킨 피닉스)과 함께 옥수수 밭을 일구며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의 엄마는 6개월 전 참혹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어느 날 아침, 옥수수 밭에서 거대한 미스테리 서클-농작물이 자라는 들판 한가운데 원형 또는 기하학적 모양으로 농작물이 눌려져 있는 현상으로 주로 영국의 밀밭에서 발견됨-이 발견된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미스테리 써클과 UFO가 도처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면서 그레이엄 가족은 점점 긴장하게 된다. 옥수수 농장 근처에서는 정체 모를 침입자가 맴돌고, 급기야 이웃 수의사 집에서는 외계인이 발견되기에 이른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싸인(signs)’은 영화 시작부터 바로 공포장르로 들어간다. ‘싸인’의 감독인 M. 나이트 샤말란은 몇 해전 ‘식스 센스’란 영화로 영화사에 가장 충격적인 반전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로도 유명한 감독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실체를 드러내기보다는 쉽게 보여주지 않는 공포로 관객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싸인’에서도 외계인의 실체를 TV화면에서만 계속해서 보여줄 뿐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 미스테리 써클은 밀밭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옥수수 밭에 나타난 것으로 설정한 이유도 키보다 높아 시야에 한계가 있는 옥수수 밭을 헤맬 때 다가오는 공포감을 노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탁월한 공포전략과 매끄러운 연출로 관객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싸인’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공포영화로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외계인의 실체를 드러냄으로 인해 수준높은 공포영화를 포기하고 재난영화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외계인을 물리치는 액션영화로 만들것인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서 오는 두려움이 적나라하게 보여짐으로 인해 힘을 잃었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위한 다소 억지스런 껴맞추기식 결말로 인해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지 못한다. 전작의 성공이 가져다주는 기대치가 얼마나 감독에게 무거운 굴레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공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식스 센스’에서 공포를 소재로 하여 사랑의 멜로드라마를 성공시킨 감독은 이번에는 신앙을 주제로 선택했다. 감당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의 접근, 즉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인 상황 앞에서의 두 부류의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한 부류는 이런 현상을 계시라고 믿고, 다른 한 부류는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하지. 넌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그레이엄의 대사를 통해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레이엄은 신부였다가 사고로 부인을 잃은 후 신앙을 버린 상태이다. 동생 역시 실패한 야구선수이기에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은 상태다. ‘싸인’은 신과 자신에게 믿음을 잃은 이들이 초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심적인 변화를 겪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싸인’은 공포를 소재로 한 신앙고백서와 같다. 모든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초현실적인 현상 앞에서는 의지할 것이라고는 신의 존재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인간이 알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그것보다 너무 보잘 것 없이 작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