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비까지 포함해 총 110억 원이라는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9월 13일 화려하게 등장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흥행 면에서 참패를 기록했다. 제작사측에 따르면 해외 수출 분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250만 명이 관람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한다.

그러나 9월 22일 현재 전국집계를 합쳐도 고작 1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흥행 실패로 인해 발생할 투자위축현상을 우려해 현재 우리 영화계는 초긴장 상태이다. <쉬리>의 성공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되다가 지난해 소위 조폭영화의 득세로 투자가 줄기 시작했다. 게다가 올해 개봉한 <아유 레디>(80억 원), <예스터데이>(70억 원) 등의 블록버스터 작품이 모두 흥행에 실패한 이후에 불어닥친 일이라 영화계에서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중에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행참패는 제작과정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현실세계에 사는 청년이 라이터를 파는 소녀를 위험으로부터 구하고 그 소녀의 사랑을 얻어야 하는 게임에 접속하면서 겪는 모험이 줄거리인 이 영화는 전형적인 볼거리 위주의 액션영화를 지향했다.

하지만 메가폰을 잡은 장선우 감독은 전작인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나쁜 영화>와 <거짓말>을 만들었을 때도 작품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작품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 흥행에 성공한, 이른바 작가주의 감독으로 지금까지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결국 제작과정에서 이런 감독의 스타일과 액션영화는 어울리지 못했다.

감독은 잠적과 개봉지연을 반복하며 제작비만 늘여갔고, 결국 ‘작가주의 액션영화’라는 애매한 장르의 영화가 탄생했다. 또 다른 실패원인은 영화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점이다. 영화제작을 시작할 때 시나리오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에 착수했기에, 결국 영화는 허술한 구조의 줄거리에다 액션과 철학이 뒤섞여 방향을 잃고 말았다.

또 외국액션영화를 모방하기 급급한 장면들은 이미 영화보는 수준이 높아진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한편의 ‘나쁜 영화’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영화를 아무리 살펴봐도 바람직하고, 인간적인 감동을 발견할 수 없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된 이 영화는 청소년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려는 듯한 장면만으로 스크린을 채웠다.

라이터를 팔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녀에게 이런 말이 던져진다. “그럼 라이터 가스라도 마셔봐. 질 좋은 가스지.” 소녀가 가스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고 “가스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답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포스터에는 영화와는 상관없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주인공이 서 있고, 영화 내내 들리는 욕설과 은어는 리얼리티를 벗어나 듣기 거북하다.

소녀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은 대중가수로 설정되어 대중가수를 향한 청소년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 오토바이를 안전장치 하나 없이 타고 질주하는 레즈비언을 멋있게 그리고 있다. 더욱이 영화 시종일관 나타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유 없는 살인은 생명경시풍조를 만연하게 하여 청소년 정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주제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감독은 제작 의도를 말하면서 “가상과 현실, 선과 악은 분리된 게 아니다. 모든 것이 망상과 환상이다”라고 했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세계에서의 삶을 망치기 충분하고, 선과 악을 동일시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하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관객을 향해 이런 말을 던지고 있는 듯 하다. “젊은이여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아라! 어차피 현실은 가상세계니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행 참패는 많은 제작비로 허술한 구성을 만회해 보겠다는 안일한 생각과, 건전한 내용보다는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선을 끌어보려는 도덕적이지 못한 발상을 향해 던지는 팬들의 엄중한 경고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