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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교 변증서 <성경만이 판단기준이다>의 김경선 장로 출판 서문
1996년 06월 01일 (토)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경선 씨(출간 당시 무학교회 장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롬 4:3; 갈 4:30>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부정적인 요소들이 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적들과 섭리들을 직접 목격하면서도 배도하고 배역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요즘 우리 교계에서 일어나는 각가지 사건들과 모순된 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서 이탈하여 너무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명예와 돈 때문에 일어나는 갖가지 부끄러운 일들, 성 스캔들, 가짜 박사학위, 무인가 신학교의 무자격 목사 배출, 존속 상해, 살인, 사기, 횡령 등 죄악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심심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 것인가? 이것은 기독교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의 세속화 문제를 두고 매우 심각히 염려하며 성령의 지혜를 통한 철저한 회개와 개혁을 서둘러야 할 때가 되었다.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낡은 책 한 권
 나도 기독교 장로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책임 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교계에 신선한 개혁의 바람을 일으킬만한 논문이나 책을 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수집하던 중, 미국에 있는 큰아들에게 개혁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들을 몇 권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세 권의 책이 왔다. 그런데 그 세 권의 책 중 아들이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 책은 헌 책이었다. 아들은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몇 권의 역서도 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판단력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우선 그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읽기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며 투쟁한 발도파, 죤 위클리프, 후스와 제롬, 루터, 프랑스 신교도들의 눈물겨운 역사를 읽는 동안 가슴 속에 맺히는 이슬이 온 몸을 적셔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와 구원의 사랑을 안다고 하며 마음놓고 죄를 짓고 있다"는 구절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사실, 오늘날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죄를 물 마시듯이 범하고 있다. 주님의 일을 하라고 맡겨주신 직분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책의 저자 엘렌 화잇이, 이미 100여년 전에 우리 기독교의 현실을 그렇게도 적나라게 지적해 놓은 것이 너무나 놀라왔다. 저자는 온 교회가 성경 말씀의 원칙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투철한 성경 중심 사상을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성경 말씀대로 예수를 믿으려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라"는 말씀은 나에게 큰 도전을 주는 내용이었다. 그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더욱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참된 신앙의 원칙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하였다.

  <기독교를 조각한 불칼들>번역에 착수하다
 분주한 생활 중에 틈틈히 번역을 하다보니 근 2년이 결려서야 번역을 마치게 되었다. 식자를 하고 교정을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교정 단계에서 교정을 보던 한 전도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장로님, 이 책이 안식교 책 같은데, 펴 내셔도 되겠습니까? 그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의 모든 감동과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인가? 일단 출판을 중단시키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알아본 결과, 그 책은 안식일교회에서 발생하는 유명한 책 중의 하나이며 이미 오래 전에 시조사에서 번역하여 판매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책이 안식일교회의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을 때에 받은 그 큰 감동, 이제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내용이었다. 또한, 여러 교회들이 이단시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그렇게 큰 감동을 준 책을 무시해버린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편견이라는 것이 너무 간사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다시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책을 많이 집필하는 J대학의 C교수에게 물었다. "안식일교회는 이단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하기도 곤란하다"는 애매한 대답을 한다. 다시 O교수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 이단 아닙니다. 아주 건전한 사람들이지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가정 예배를 충실하게 드리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 뿐이었고, 그들은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교계의 저명 인사들에게,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비평하는 책들을 낸 저자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K 목사, T 씨, P 목사, 모두 교계에서 별로 신뢰를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때로는 이권 문제에 얽혀서 비양심적인 일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유수한 교단들이 그러한 사람들이 전개해 놓은 이론에 근거하여 타 교단을 이단시하는 것은 문제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분은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그 사람들은, 기독교인은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한다며 오히려 우리를 이단시하기 때문에 우리와는 물과 기름처럼 된 것이지요"  

  안식일교회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찾아
나는, 교회사가(敎會史家)들은 안식일교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필립 샤프(Philip Schaff)의『기독교회사(History of the Christion Church)』를 위시하여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의『역사연구(A Study of History)』, 케넷 스캇 라투렛(Kenneth Scott Latourette)의『교회사(A History of Christianity)』, 죤 플레쳐 허스트(John Fletcher Hurst)박사의『기독교 약사(Short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그리고 기독교문사에서 발행한『기독교 대백과 사전』등 교회사 관련 서적들과 사전류를 살펴보았으나 안식일교회의 선교열을 칭찬했을 뿐 이단이라고 규정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옥스포드 기독교회 사전(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SEVENTH-DAY ADVENTISTS)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서는 신앙과 행위의 무오(無誤)의 법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예정일을 정하지는 않지만 그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믿고 있는 충실한 개신교 조직체이다. 인간의 육신은 성령의 전(殿)임을 강조하며(고전 6:19), 그 교인들에게 금주와 금연은 필수사항이고, 차(茶)와 커피와 육류까지도 가급적 삼가는 엄격한 절제 생활을 요구하고 있다. 교인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의 안식일을 준수하며, 일반적인 헌금 외에도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와 함께 오직 믿음을 통한 은혜로만 구원받는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몸을 완전히 물에 잠그는 침례 예식을 행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여러 교회사가들의 해석을 종합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그들을 무조건 이단이라고 정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좀더 확실히 알아보고자 <미국 성서 공회>와 <대영 성서 공회>에 연락을 취해 보았다. 편지도 보내고 여기저기 조사해 본 결과 그들을 이단이라 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세기의 위대한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목사도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1974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빌리 그레이엄 대전도집회가 열렸을 때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참여시키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내가 방송 계통에서 가까이 지내고 있는 한 미국인 선교사에게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솔직한 말을 해 주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쌀밥이 주식이요 국이 부식이듯이 우리 미국 사람들에게는 육류가 주식이요 커피가 부식이다시피 되어 있는데, 안식일교회는 그것을 삼가고 가급적 채식을 하라고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게다가 미국인 교역자들 중에는 술과 담배를 종종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교회에서는 음주, 흡연이 절대 금지 사항이니 좋아할 리가 없지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신앙 생활을 요구하니, 꼭 그렇게까지 해야 구원받느냐는 생각으로, 그 사람들 별나게 믿는다고 생각할 뿐이지 이단으로까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조각한 불칼들> 출판을 결심하다
  이와 같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하여 알아본 결과, 그 교회의 내막을 잘 아는 지식층에서는, 그 교회 교인들은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지 결코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는 이제 나의 행동을 결정해야 했다. 책을 출판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어느 날 새벽,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왜 그렇게 용기가 없느냐"하는 책망의 말씀이 나의 가슴을 꽉 메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백두산의 모양을 어떻게 말하는가? 동쪽에서 본 사람, 서쪽에서 본 사람, 남쪽에서 본 사람, 북쪽에서 본 사람의 주장이 각각 다를 것이고 저마다 자기의 판단이 옳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가장 정확한 판단은 동서남북에서 보고 상공에서도 본 후 나오는 것이다. 어떤 교리적 주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성경에 비추어 나오는 것이며, 인간의 판단은 언제든지 잘못된 것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간들은 때때로 성경 말씀이 자기의 양심에 가책을 주거나 자기의 현실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으면 그 말씀을 돌려서 자기에게 편리하고 유익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므로, 나는 결국 나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3개월간에 걸친 갈등과 고민을 끝내고 <기독교를 조각한 불칼들>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였다. 책의 원 제목은 <The Great Controversy>였다.

책이 출판되어 나가지 수십 통의 전화가 몰려왔다. 격려의 전화도 많았지만 항의하는 전화도 있었다. "여운사 같은 교계 공인 출판사에서, 그리고 찬송가 해설집을 펴낸 장로가 그런 이단 서적을 펴내면 어떻게 하느냐" , "저자가 인식일교회 창시자가 아니냐" 등등의 전화였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그 책을 읽고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았기 때문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출판한 것인데 뭐가 잘못 되었습니까? 

그 책 내용 중에 이단적인 요소들을 지적해 주시면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내용을 가지고 이단성을 제시한 사람이 없었다. 그저 우리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몇몇 분들이 내가 이 책을 펴 낸데 대하여 염려하고 충고하였기 때문에 나는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좀더 상세한 부분을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대표적인 서적들을 구입해 읽으면서 그 교회의 목사들 몇 명과 접촉하여 보았다. 그 결과, 우리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저들에 대한 생각에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안식일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안식일교회에는 그들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7>이라는 책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안식일교회를 교리적으로 비평하려면 어떤 개인들이 저술한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지 말고 그 책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 책의 내용은 안식일 교회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성경 중심으로 체계 있게 설명하고 있다.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 구속사적 신관, 성서 중심의 신앙관, 성서적 종말사상, 도덕적인 실천 신앙 등 대부분의 교리가 일반적인 기독교 신앙과 일치하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의 원 기둥에 대해서는 우리와 같은 원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몇 가지 다른 점을 지적해 본다면, 주일 예배 대신에 주일 중 일곱째날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 세례를 하지 않고 침례를 베푼다는 것, 성찬식을 할 때에 세족 예식까지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피차간 성경 해석상의 차이일 뿐이지 상대를 이단시 할만한 요소는 아닐 것이다. 그 정도는, 장로교의 예정론이나 감리교의 자유 은혜, 성결교의 성결론, 침례교의 침례식 등의 차이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전지전능하여 모든 것을 다 알도록 영감을 주시지 않았다. 그러기에 장로교회의 창시자 칼빈도 예정 교리에 입각하여 자기의 신정정치를 펴나가며 훌륭한 일을 많이 했으나 요한복음 3장 16절을 절대교리로 내세우는 알미니우스 교리 주창자들을 투옥하고 처형하며 추방하는 등 얼마나 많은 실수를 범했던가? 또한 알미니우스 교리 주창자들은 영국에서 감리교회를 창설했고 부패한 영국에서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영국을 구출하지 않았던가? 비록 성경에 근거했다 할지라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교리는 절대 완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상호 보완하고 합력하여 의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가지들을 하늘로 높이 뻗은 거목(巨木)이다. 그 거목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태양 빛을 받을 잎새가 필요하고 잎새가 많이 붙어 있으려면 많은 가지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영양분을 공급하는 뿌리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 장로교의 뿌리, 감리교나 성결교, 침례교나 그리스도 교회의 뿌리 뿐만 아니라 안식일 교회의 뿌리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모든 뿌리들이 깊이깊이 내려져 양분을 많이 흡수하여 그 거목에 공급을 해야 나무는 언제나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신령한 빛의 양분을 부여받고, 한 성경의 같은 우물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아 기독교라는 나무의 가지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인데 같은 뿌리끼리 같은 가지끼리 대립해서야 되겠는가? 그 거목의 가지나 뿌리는 세계적인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지체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식생활 습관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질감을 주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교리로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건강 문제와 관련하여 권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가급적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자는 주장을 이단시하는 것은 너무 시대에 맞지 않는 편견일 것이다. 육식 보다 채식이 인간의 신체에 유익하다는 것은 20세기 과학에 있어서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식일교인이 일반인들보다 질병이 없고 장수한다는 것은 브리태니커 사전(Medical & Health Fncyclopedia in Britannica, 1978년판, p.82)에까지 언급된 엄연한 사실이며, 그것은 그들의 식생활 습관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문제시 할 필요도 없고 권리도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일반인들보다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 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율법주의자라고 몰아세우는 경향이있는데, 그들의 교리로서는 결코 율법주의적인 요소를 주장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과 뜻을 따라서 살려고 애쓰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한다면,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다 율법주의자인 것이다. 그들은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계명에 순종하는 것조차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 이상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안식일교회의 성직자들은 사실 청교도 정신에 가깝게 살고 있다. 아무리 신도 수가 많은 교회를 목양해도, 담임한 교회의 신도수가 아주 적어도 그들은 최소한의 생활비에 불과한 봉급을 일정한 비율로 받는다. 그러면서도 전 목회자는 60년대부터 철저하게 소득세를 봉급에서 공제하고 있다. 그리고 사모는 직장이나 부업을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성직자는 성물(십일조)로 살아가며 부부가 함께 목회에 전념하라는 의미이다.

1994년 선교 90주년 행사에서는 4000명 이상이 집단 헌혈을 하여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본을 보여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요란스럽게 광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펼치는 구호 사업도 상당히 광범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인 면에서도 깨끗하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무인가 신학교는 있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단 본부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서 무자격 목회자들은 발을 붙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이단으로 정하여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안식일교회를 재평가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성경 사상에 입각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교회를 좀더 깊이 연구해 보지도 않은 채 이단으로 규정하여 고통을 주고 있다면, 기독인의 양심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어떤 상대를 이단으로 규정하려면 매우 심사숙고해야 한다. 역사를 보면 대게 소수 집단이 다수 집단에 의하여 이단 취급을 받게 된다.

이단에는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 이단이 있을 수 있다. 자신과는 신조를 달리하는 모든 상대를 이단으로 정할 수 있다. 이것은 상대적 이단이지 성경이 정하는 절대이단이 아니다. 성서적인 이단으로 규정하려면 적어도 피차간에 자리를 함께하여 성경을 가지고 면밀하게 검토하고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때로는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상대를 판단하여 이단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정신이 아니다.

여기 한 복음교회[루터교] 신학자 파울 슈바르체나우 교수가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을 주목해보자.

"이 대화 (제네바 대화, 1965-1971)에서 양측은 피차 신뢰와 그리스도인 우의를 나누었으며 그 기초 위에 많은 영역에서 신학적 일치를 볼 수 있었다. 이 대화에서 우리들, 즉 WCC 대표진은 제칠일한식일예수재림교회가 하나의 분파가 아니라 한 교회인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   지금까지 우리 루터교에 의하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그릇 인식되어 왔는데 그것은 이제 제네바 대화의 정신 속에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 <라스페, 1979, 3판, p.6>

순복음교회가 한창 발전해 나아갈 때 일반 기독교계에서 그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교회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 변화된 것인가? 순복음교회의 교리나 그들의 신앙이 바뀐 것인가? 무엇이 기준이 되어 이단과 정통이 가려지는 것인가? "화합적 차원에서" 그렇게 되었다면 이단과 정통의 기준은 이미 허물어진 것이다. 한 때 K 목사의 귀신론을 문제삼아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나, 최근 모 교단의  C목사는 다시 그것을 완전히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모 교단에서는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다고 한다. 첫째 이유는 성경에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사도신경 원문 (현재 우리는 그것을 고쳐 사용하지만)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 (He descended into hell)는 터무니없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런 이유로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 교회를 이단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도시대에 가말리엘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38,39).

천주교에서는 성경과는 완전히 위배되는 화체설, 이콘 숭상, 마리아의 무원죄설, 마리아 승천설, 교황 무오류설, 십계명 변경등, 그야말로 이단적인 요소가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단시하는 일은 삼가고 있다.  오히려 안식일교회에서는 천주교의 오류를 과감하게 지적하여 그들의 오류성을 들추어내고 있다.

나는 결코 안식일교회를 두둔하여 그들의 편에 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좀더 바르게 알자는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굳어진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체를 좀더 깊이 파악하여 진실을 파헤쳐 자는 것이다. 너무 일방적인 평가로 몰아세우지 말고 성서 중심의 객관적인 평가를 다시 내려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교인들 중에 안식일교회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무엇인가 잘못된 교리에 미혹되어 그렇게 되었다면, 무조건 안식일교인들과 상종을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확실하게 밝혀내어 우리 교인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그들에게 어떤 성격적인 진리가 있어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의 백성들을 끌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살펴서 성서적이라면 우리도 그것을 취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 책>에 해답을 주어야 한다
최근 안식일교회가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 사업에 참여하게 됨에 따라 기독계에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단시하던 복음침례회는 사무 착오로 들어온 것이라 일단 배제시켰지만, 안식일교회는 유선 방송 기독교 채널에 최초로 신청한 3개업 중의 하나로서 정부로부터 약속된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이 사업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결코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배경과 내막을 상세히 알지 못하는 교회를 이단이라고 하여 결코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에 참여시킬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교계 여러 신문에서 안식일교회 이단 운운하며 배제시킬 것을 역설하는 기사를 큰 활자로 뽑아 공략하였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신문에 그러한 기사를 작성한 편집인들에게 '안식일교회의 어떤 점이 이단이냐'고 물으면, 교단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뿐 그 구체적인 내용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식일교회에서는 함구하고 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들이 정말 이단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싸움이나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들의 속성 때문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이단이라고 규정한 부분에 대하여 너무나도 상세하게 그 대답을 끝내놓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대답에 대하여 다시 어떤 문제를 제시하지 못했을 뿐이다.

안식일교회는 1991년도에 삼육대학 교수인 신계훈 박사가 저술한 <오직 성경만이 판단의 기준이다>라는 저서를 내 놓고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책을 통해서 그들은 모든 문제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명쾌한 변증을 제시하고 있다. 교계 지도자들은, 지금 이 책이 진지한 성서 중심의 우리 목회자들에게 심각한 도전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안식일교회를 무조건 이단이라고 하기에 앞서서, 이제 우리는 그들을 성서적으로 재평가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기독교 텔레비전 사업에 참여하게 된 그들을 좀더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본 도서출판 여운사에서는 이 책 <오직 성경만이 판단의 기준이다>를 펴내게 되었다. 목회자들, 신학생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모든 평신도들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고,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우리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면 "화합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성서 진리의 차원에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용납할 것이요. 그렇지 않고 성서적으로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면 다시 한 번 선을 분명히 그어서 우리의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세상이 너무 어두워 아군과 적군을 분별하기가 매우 곤란하고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세계에 산재해 있는 300개 이상의 기독교 종파들이 저마다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경우 다수를 점령하고 있으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야말로 교단이나 교파의 편견을 떠나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주의 말씀은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내 발의 등이요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길을 안내하는 빛이다. 말씀에 조명하여 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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