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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울음도 끊겨가는 농촌
수입품 범람 - 농촌이 죽어간다
2002년 08월 21일 (수) 00:00:00 윤길주 ykj77@joongang.co.kr

 

 

 

 
▲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급증해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서울 경동시장 마늘 상점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가족과 함께 섬진강 줄기로 흘러내리는 지리산 계곡의 콘도에서 3일을 머물렀다. 마침 장마철이라 휴가 기분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답답해 하는 가족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가족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비가 고마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안개비에 잠기는 숲과 잠시 멈췄다 훌쩍 떠나는 바람이 아쉬운지 은은한 울음을 내는 산사의 풍경 소리, 그리고 상큼한 소나무 향기. 모든 게 행복하기만 했다. 혹시나 소란스런 마음이 생겨날까 해서 아예 신문이나 TV도 보지 않았다. 아마 도회지를 떠나 자연 속으로 휴가를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졌으리라 여겨진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 집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노모와 형제를 만나기 위해서다. 가는 도중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옷도 걸치지 않은 채 논에 나와 물꼬를 트는 농부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현실로 돌아왔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비가 그쳐야 농사를 망치지 않을텐데’ 하는 염려가 들었다.

 밤에는 시골 친구들과 모처럼 만나 이야기 잔을 기울였다. 소를 키우는 친구, 공무원인 친구, 버섯을 재배하는 친구, 채소를 키우는 친구 등 먹고 살기 위해 시골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농촌 경제 문제로 옮겨갔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농업 정책이 잘못됐다고 열을 올렸다. 특히 최근 불거진 ‘마늘 파동’에 대해 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물밀듯이 밀려오는 중국산 농산물 때문에 농촌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뭔가 한마디는 해야 될 것 같아 중국과의 통상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점을 설명했다. 사실 농산물의 경우 중국산이 우리 식탁을 장악한 지 이미 오래다. 서울 경동시장에서 파는 한약재의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또 재래시장에서 팔고 있는 참깨나 채소류도 중국산 판이다.

정부가 이를 모르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 통상에서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파는 만큼 상대방 것도 사주는 게 원칙이다. 실제 중국에서 수입하는 농산물과 우리가 수출하는 핸드폰 등 하이테크 제품 가격을 비교했을 때 우리의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 중국은 우리가 농산물 시비를 할 때마다 우리 수출품에 대해 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결국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중국산 농산품의 범람을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와 함께 필자는 값싼 중국산 농산물의 유입을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부는 업자들이 원산지 표시를 확실히 하도록 해 토종과 구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에 국내 농가들이 농산물을 집약적으로 재배해 훨씬 높은 값에 내놓을 경우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중국산이 토종으로 둔갑해 헐값에 무분별하게 유통되면 우리 농가는 살 길이 없어진다. 소비자들이 원산지 표시를 믿을 수 있게 되면 값이 비싸더라도 토종을 찾는 사람이 많아 충분히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란 얘기다.

친구 중 한 명이 그렇다고 중국산 때문에 농부들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봐서야 되겠느냐고 따졌다. 중국에 수출해서 돈을 버는 기업들이 일정액을 농가 보상비로 내야 한다는 게 그 친구의 지적이었다. 옳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공산품을 더 많이 수출하기 위해 농산물 시장을 내준 만큼 거기에서 벌어들이는 돈의 일정액을 농촌에 보조해주는 게 형평성에 맞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고려해봄직하다.

2004년이면 쌀 시장이 개방된다. 값싼 외국산 쌀이 봇물처럼 들어올 게 뻔하다. 김영삼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대비해 농촌에 10조 원대의 돈을 쏟아 부었다. 쌀 농사를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농기계 매입이나 영농조합 설립에 정부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쌀 시장이 열리는 시점을 코 앞에 둔 지금 농촌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다. 농기계는 녹이 슨 채 마당에서 뒹굴고, 영농조합들은 파산했으며 농부들은 부채를 탕감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정부가 표를 의식해 치밀한 계획도 없이 돈만 뿌림으로써 아까운 국민 세금만 날린 것이다. 당시 농촌에서 빈둥거리던 ‘건달’들이 영농 자금을 눈 먼 돈이라고 생각하고 대거 챙겨감으로써 실제 농삿꾼들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농업정책 실패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고향 집에서 가까운 마을에서 과수원과 벼농사를 함께 하는 큰매형은 환갑이 지났음에도 30년 넘게 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마을 일을 볼 젊은이가 없는 게 주된 이유다. 매형은 지금 한 집 건너 한 집은 빈 집이라며 조만간 마을이 텅 비어버릴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에는 학생이 없어서 운동회도 못하게 됐다고 씁쓸해 했다.
아기 울음 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 농촌. 죽어가는 농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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