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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문화향기’는 흐른다
문화탐구 / 서울의 대표적 거리 ‘명동’
2002년 08월 14일 (수) 00:00:00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 주말이면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명동
면적 91㎢, 상주하는 인구 약 3천명의 서울 중구의 작은 동. 하루 평균 유동인구 150만명의 패션, 문화, 유행의 일번지.
명동(明洞)이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간단하게 나타낸 말이다. 19세기 중엽부터 ‘명례방’이라 불리던 명동은 파리의 샹젤리제, 도쿄의 긴자처럼 서울의 대표적인 패션 거리이다. 또 총 70여 개의 금융 업체가 자리잡고 있는 명실상부한 한국 금융의 본산지이다.

명동은 예나 지금이나 젊음의 거리이다. 60∼70년대 명동을 무대로 젊음을 펼치던 세대는 문화와 유행의 거리로 명동을 기억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명동의 명소는 명동성당, 60년대 회식문화를 주도한 한일관, 국립극장, 명동칼국수, 최초 고층빌딩인 유네스코 빌딩, 57년 지어진 사보이 호텔 등의 문화적인 명소를 기억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명동을 소비의 거리로 생각한다. 명동 밀리오레, 유투존, 멀티플렉스극장, 스타벅스 커피숍 등 쇼핑과 소비의 장소를 기억한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기억하는 명소는 다르지만 이 시대 젊은이들이 명동으로 모인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명동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부터 2호선 을지로 입구역까지 이어지는 중앙길, 롯데백화점 건너 명동입구부터 명동성당까지의 명동길, 찌개골목과 여러 먹거리가 있는 먹자골목, 그리고 중국대사관 주변의 차이나거리로 나뉜다.
중앙길은 명실상부한 한국 패션의 중심이다. 화려한 쇼윈도우 속의 브랜드 의류들은 유행을 선도한다. 대형 쇼핑몰과 보세 의류점이 혼합되어 젊은이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한다. 많은 인파가 이동하는 이유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중앙길은 차없는 거리가 된다.

명동 큰길 사이사이 좁은 골목에 형성된 먹자골목은 일본관광객이 꼭 들르는 찌개골목과 명동 먹거리의 대명사인 명동칼국수로 대표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대형 외국 브랜드 커피전문점과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패스트푸드점의 도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명동길은 문화의 거리이다. 지금은 문화의 거리라고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지만 60∼70년대 옛 국립극장과 통기타 카페가 있던 시절에는 분명 문화의 중심이었다. 무엇보다 명동을 대표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명동성당이 명동길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의 본산인 명동성당은 각종 시위와 민주화 운동의 요지이다. 그러나 현재는 성당 측에서 성당 내 집회를 거부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도시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은 서울뿐이라는 말이 맞을 만큼 차이나타운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차이나거리가 명동에 있다. 중국대사관과 화교학교 주변에 중국관련 서점과 식당, 여행 상담소와 중국물건을 파는 노점들이 차이나거리를 이루고 있다.

최근 명동의 특징은 일본관광특구로의 변신이다. 한해 약 200만 명의 일본 관광객이 명동을 다녀가고 있어 명동 유동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따라서 노점상을 비롯해 거의 모든 상가 직원들은 의사소통을 위한 일본어 구사는 기본이다. 명동을 찾는 일본관광객의 70%는 젊은 여성으로 주로 미용, 쇼핑의 목적으로 명동을 찾는다.  관광객 1인당 미용관광비용이 50만원에 이르는  현상에 맞추어 미용실, 마사지실 등 미용관련 업소만 150여 개가 성업중이다. 쇼핑으로는 유독 눈에 띄는 업종은 안경이며 모든 안경점 간판에 한글 만한 크기의 일본어를 같이 써 놓고 있다. 이렇듯 미용과 쇼핑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가격이 일본의 반값이다. 반값의 가격에 질적인 면에서는 뒤질 것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정기적으로 쇼핑과 미용여행을 오는 일본 관광객이 많다.

외국 먹거리의 공세와 길 가다가 다섯명 중에 한 명 꼴로 일본인과 마주치게 되는 명동은 이제 더 이상 문화의 거리나 전통의 거리는 아니다. 인권을 원하는 소시민들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엔 삭막해진 명동이 더 이상 그들의 무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명동은 패션과 소비의 거리일 뿐이며 거기에 일본관광특구라는 명칭이 덧붙여질 뿐이다. 노점상들이 확성기를 통해 외치는 호객 소리와 일부 유사종교단체에서 내뿜는 포교 소리로 복잡하고 시끄러운 소비문화의 일번지란 이미지만 남아있는 명동. 하지만 비가 오는 날 칼국수가 먹고 싶을 때나 최신 패션과 살아있는 젊음을 느껴보고 싶을 때 우리는  여전히 명동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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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국립극장 부활 정부가 복원 앞장

   
▲ 옛 국립극장

문화의 거리 명동이라는 명칭이 무색해진 지금, 명동에서 문화의 부활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1962년부터 1973년까지 총 62회 공연으로 한국 공연 예술의 중심이었던 옛 중앙국립극장을 되살리기 위한 민간차원에서의 노력이 이제 정부차원으로 확대되었다. 문화관광부는 옛 중앙국립극장 건물(현 현대투자신탁)을 내년도에 사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구입 후 리모델링하여 2005년쯤 다시 공연예술장으로 개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문화관광부가 요청한 건물구입비 400억원이 기획예산처 1차 심의에서 탈락되었고 현재 재심을 요청한 상태여서 정확한 일정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옛 중앙국립극장은 1934년 완공되어 광복이후 서울시 공관으로 활용되다 57년부터 중앙국립극장으로 사용되었다. 남산에 현 국립극장이 들어선 73년에 ‘국립극장 산하 예술극장’으로 변경된 뒤 2년 후 대한투자금융에 팔렸다.

이번 문광부의 결정은 백만인 서명운동 등 명동 상가번영회와 연극인들이 중심이 되어 민간차원의 복원 운동을 꾸준히 펼쳐온 결과다. 당시 명동을 상권과 함께 문화예술의 거리로 이끌었던 옛 중앙국립극장이 복원된다면 활발한 문화 행사를 통해 소비거리로만 치우친 명동이 문화의 거리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대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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