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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장들의 ‘뇌물 파티’
DJ정권 경제‘빅3’ 줄줄이 쇠고랑
2003년 05월 14일 (수) 00:00:00 윤길주 ykj77@joongang.co.kr

윤길주/ 월간중앙 기자

기관장들에 임명된 사람들이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유혹은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 것이다. DJ 정부 시절 잘 나가고,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독직으로 욕된 퇴장을 하는 모습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지않으면 5년 후 우리는 또 다시 우울한 뉴스를 접하게 될지 모른다.
 
필자는 한 때 금융감독위원회를 출입하는 기자였다. 당시 금감위원장이 이용근 씨였다. 이용근 위원장은 우리 나라 금융과 재벌정책을 총 지휘하는 사령탑으로, 필자는 출입기자로 한국 경제에 대해 서로 고민하기도 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을 둘러싸고 노조가 파업을 할 때 이 위원장은 파업 현장까지 찾아가 담판을 짓는 열의를 보였다.

또 2001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현대 사태가 터졌을 때도 그는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정 씨 형제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대다수 기자들은 다소 거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심정적으로 박수를 보냈다. 당시는 누군가 앞장서서 개혁의 칼날을 휘둘러야 우리 경제가 회생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과 재벌개혁의 화신처럼 보였던 그가 최근 구속됐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지휘를 받는 나라종금으로부터 4천8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다. 이 전 위원장이 대가성 없는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까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고, 왠지 배신을 당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가성이 있건 없건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보도를 보면서 함께 금감위를 출입했던 많은 기자들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리라 본다.

이에 앞서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도 구속됐다. 모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하도록 SK그룹에 강요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공정거래위원장이 시주를 강요했다니 기업으로서는 마지못해서라도 사찰에 시주를 했을 것이란 짐작이다.
 
또 손영래 전 국세청장은 SK 구조조정본부장으로부터 현금 1천만 원과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세무 관료 출신으로 서울지방국세청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성호 씨도 지방국세청장 재직 시절 취임 축하금으로 4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대중 정부는 어느 정권보다 도덕성을 강조했다. 국민들은 군사 정권과 그 연장에 있던 정권들보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 지난 97년 대선에서 DJ가 당선된 것도 그의 민주화 투쟁 경력과 상대적인 도덕적 우위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는가. DJ 정권은 임기 말에 들어서면서 끊임없는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다. 급기야 뇌물을 받은 혐의로 두 아들까지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단군 이래 최고의 부패 정권’이라느니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과장된 면이 있다. 자식들 문제야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만 DJ 자신은 청렴한 통치를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인정받는다. DJ 자신도 이 점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매도당하고 비난받고 있지만 역사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하지만 DJ 정부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후 그 시대 권력기관장들이 줄줄이 뇌물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이른바 DJ 정부 시절 경제 권력기관 ‘빅3’로 통칭된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곳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지난 97년 대선 때 국세청의 징세권을 이용해 대선 자금을 거둬들였다고 해서 지금도 시끄럽다. 기업들은 국세청 말단 직원만 봐도 벌벌 떤다. 국세청장은 기업들에게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하늘’이다. 그런데 DJ 정부 마지막 국세청장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감시하는 곳으로 기업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구속된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DJ와 임기를 함께 한 인물로 누구보다 개혁을 주장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 위기 사태 이후 생긴 조직으로 ‘금융 검찰’로 불린다. 금융과 재벌 개혁의 전위대로 DJ 정부에서 가장 힘이 실린 곳이 아닐까 싶다.
 
권력기관에는 으레 로비나 청탁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힘센 기관일수록 청렴과 도덕성이 요구된다. 이들 기관장들을 임명할 때도 다른 가치보다는 도덕성을 중시 여긴다. 아마 DJ도 이들을 임명할 때는 나름대로 깨끗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결과는 어떠한가. 권력기관 실세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다. 과연 우리 나라의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적 수준이 단 몇천만 원에 양심과 영혼을 팔아버릴 정도로 낮았단 말인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는 깨끗했을까. 또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과거에도 마찬가지의 행태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지금처럼 사회가 투명하지 않아서, 또 ‘그런 정도 자리에 있으면서 뭘 그 정도가지고’라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묻혀 지나갔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굵직한 자리는 인사도 모두 끝났다. 인사에 대한 우려도 있고 기대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될 듯 싶다.

다만 정권 차원에서 초창기부터 권력기관에 대한 도덕성 부분은 가혹할 정도로 정밀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로비나 청탁은 염라대왕에게도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끈질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관장들에 임명된 사람들이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유혹은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 것이다. DJ 정부 시절 잘 나가고,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독직으로 욕된 퇴장을 하는 모습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지않으면 5년 후 우리는 또 다시 우울한 뉴스를 접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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