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양지톨게이트로 나와서 이천방면으로 약 4km 정도 가다보면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서 조금 들어가면 한자로 ‘순교자 기념공원’이라 쓰여진 큰 바위와 맞은편에 있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니라’는 터툴리안의 말이 쓰인 돌이 여기서부터 순교자 공원임을 알리고 있다.

▲ 한적한 순교자 기념관에서 순교자들의 희생을 느낄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순교자기념관까지는 1km정도 더 가야 한다. 가는 길은 전봇대마다 성경구절을 써 붙여놓았다. 그런데 초록색 바탕에 흰 페인트로 쓰여진 성경구절들은 묵상할 마음을 갖게 하기보다는 황량한 느낌을 준다.
흰색건물의 순교자기념관이 보이면서부터 길 양옆에는 순교자 기념비들이 군부대 사열하듯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높이 50cm, 길이 1m 정도의 돌에 순교자의 이름과 성경구절이 함께 적혀있는 기념비들이 수십 여 개가 있다. 하지만 기념비 뒤쪽에는 가족관계만 새겨져 있다. 순교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순교하게 됐는지에 관한 언급이 없어서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20개 교단, 26개의 기관단체가 모여 조직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이사장 강원용)가 1989년에 세웠다. 협의회는 순교자기념관 외에도 인천에 있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양화진 선교기념관’ 등을 건축했다.

유독 이곳에 기념관이 세워진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념관 부지를 구하는 과정에서 한 여신도가 이곳 용인시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자신의 땅 10만평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기념관은 흰색의 3층 건물로 1991년 대한민국건축상을 수상할 만큼 세련되게 지어졌고, 마당에는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1층으로 들어가면 우선 정면에 걸려있는 성화가 눈에 들어온다. 김학수 화백이 그린 토머스 목사가 순교 하는 모습으로 참수당하기 직전의 상황을 그렸다.

측면에는 요나의 그림이 있다.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통로마다 옛날 한국교회의 사진과 그림들이 걸려 있다. 2층에는 회의실과 예배실이 있다. 3층에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초상화들과 그들이 썼던 성경, 편지 등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총 200여명의 순교자 모습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을 다 돌아볼 때쯤 이곳에 방문객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평일에다 겨울철이라 관람객이 뜸하다. 기념관측 통계에 따르면 연 평균 3만5천명의 관람객이 다녀가고, 수련회 기간인 여름에는 한 달에 5천명 정도의 인원이 방문한다고 한다. 기독교 성지순례코스로 알려져서 개관이후 지난해까지 총 43만명이 다녀갔다.

기념관 마당에 박관준 장로가 투옥전 지은 시와 주기철 목사의 마지막 설교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박관준 장로의 시 마지막 부분에는 “죽을 때가 와서 죽지 않으면 살아 즐거움이 죽음만 못하리라. 예수께서 나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예수님 위해 죽으리라”고 쓰여져 있다.

또 주기철 목사의 마지막 설교는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라는 구절로 마무리 돼 있어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비록 화려한 볼거리는 없으나, 순교자들의 믿음에서 발원한 용기와 고결한 죽음이 현재 한국교회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