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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심 버리고 마음의 부자 되자
서민 주머니 울리는 ‘복권 공화국’
2002년 12월 11일 (수) 00:00:00 윤길주 ykj77@joongang.co.kr

 

윤길주 월간중앙 기자

신문을 보다 보면 가끔씩 어느 동네 사는 누가 복권에 당첨돼 횡재를 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당첨자가 전날 무슨 꿈을 꾸었고, 직업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복권을 샀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얘기도 덧붙여진다. 1등에 당첨된 복권을 판 판매소는 금새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한다.

   
▲ 사행심을 조장하는 즉석 복권, 그래도 서민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다.
얼마 전에도 경기도 안산에 사는 김모 씨가 복권 40억원에 당첨됐다. 김 씨는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복권 다섯장이 1, 2, 3등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다고 한다. 그는 실직자로 11평 전세 아파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지난 4년간 매주 복권을 구입했으며 당첨되기 전에 특별한 꿈도 꾸지 않았다는 내용이 신문에 자세히 소개됐다.

필자도 1년에 3∼4번은 복권을 샀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전날 좋은 꿈을 꾸면 아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오전에 복권을 샀다. 그러나 1천원짜리 이상 당첨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또 1천원짜리에 당첨되더라도 돈으로 교환하거나 다음 회차 복권으로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심심풀이 땅콩으로 단 며칠, 몇 시간만이라도 혹시나 하는 재미를 갖는 것으로 족한 까닭이다. 복권은 그런 것이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우리나라는 복권 공화국이다. 현재 국내에는 9개 정부 부처와 제주도가 총 23종의 복권을 발행 중이다. 복권 판매액이 2001년도에만 6천억원에 달한다. 복권 최고 당첨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60억원짜리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7개 정부 기관이 연합해 발행한 온라인 복권 ‘로또’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로또는 고객이 OMR 카드를 구입한 뒤 총 45개의 숫자 중 6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직접 번호를 선택하기 때문에 1등이 여러 명 나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온라인 복권의 시장 점유율이 60%대에 이르는 점을 들어 로또의 등장으로 기존 오프라인 복권의 퇴출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구나 로또는 추첨식과 달리 1등 상한선이 없기 때문에 돈 벼락을 꿈꾸는 사람들이 앞다퉈 달려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내년 복권 시장 규모가 지난해의 2.5배인 1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가구당 복권 구입액이 연 20만원에 달하는 규모다. 가구당 매일 500원짜리 복권 1장을 산다는 얘기다. 복권 인구도 작년 600만명에서 내년에는 1천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권이 남발되면서 폐해도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복권 발행액 1조원 가운데 4천억원 이상이 팔리지 않아 폐기처분됐다.

공공기관이 복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복권을 발행하면서 오히려 예산을 까먹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서민의 입장에서야 예산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내가 산 복권이 과연 당첨될 것인가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복권 당첨 확률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 최근 로또 열풍으로 우후죽순처럼 개점되는 복권방.
지난 11월 28일 김모씨가 즉석복권 1만1천400장을 훔친 혐의로 입건됐다. 김씨는 편의점에서 주인이 손님과 계산 중인 틈을 타 복권을 훔쳤는데 모두 합해서 1만1천400장, 무려 570여 만원어치 상당을 훔쳤다. 그런데 이중 당첨금은 고작 1만원에 불과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김 씨가 재수가 없어 당첨 확률이 낮은 복권만 훔쳤을까.

복권 당첨 금액이 높아지면서 당첨 확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특히 최고 당첨금 마련을 위해서는 낮은 액수의 당첨자는 줄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복권의 당첨 확률을 3% 미만으로 보고 있다.

사람들이 복권을 살 때 당첨 확률을 일일이 따지지는 않는다. 확률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복권을 살 수 없다. 따라서 복권을 사는 행위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충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겐 당첨 여부와 상관없이 대략 적게는 1천원에서 많게는 1만원 정도를 들여 잠깐만이라도 행복을 예감하고 장밋빛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쩌다 5천원짜리라도 당첨될라치면 그해 운수대통했다고 한참동안 즐거워하는 게 보통 사람들이고, 이는 5천원의 가치를 훨씬 넘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공공기관들이 이런 서민의 심리를 이용해 복권을 마구잡이로 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금을 조성해 좋은 일에 쓰겠다고 하면서 너도 나도 복권을 발행해 서민 호주머니를 털고 있는 것이다. 또 경쟁적으로 복권 당첨금액을 올려 전 국민에게 대박 횡재 심리를 부추겼다. 뒤늦게 정부가 복권 종류를 줄이고, 당첨 금액을 제한한다고 하지만 이미 국민의 눈 높이를 높여 복권에 대한 실망감만 키울 것이란 지적이다.

땀흘리지 않고 큰 돈을 바라는 도박심리가 근저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실 복권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

복권을 발행하는 기관들이 아무리 장난을 치고, 눈 속임을 하더라도 고객이 중심을 잡고 복권을 대하면 즐겁게 복권의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다.

필자가 잘 아는 선배는 매주 5장씩의 복권을 산다. 이보다 많이 산 적은 한 번도 없다. 10년 넘게 이 일을 반복하지만 최고 당첨액이 5천원을 넘은 적이 없다. 그래서 필자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선배는 소위 지성인이라면서 뭐 그리 복권에 연연하십니까?”

그랬더니 그는 “당첨될 것을 믿고 사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사는 것이다. 지갑을 열 때마다 빳빳한 복권을 보고 있으면 괜히 힘도 나고 희망도 생기는 것 같다”고 답했다. 잘 이해는 안 됐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잘 아는 음식점 주인은 필자에게 한 달에 한 번 꼴로 간단하게 메모한 엽서를 보내온다. 겉 봉지를 뜯어내면 거기에는 반드시 즉석식 복권 한 장이 들어 있다. 필자는 동전으로 복권을 긁으면서 “만약 1천만원에 당첨되면 어떻게 할까.

그 음식점 주인에게 절반을 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긁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동료에게도 100만원쯤 떼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한 고민이다.

복권 고액 당첨자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그것이 희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착해서 1천장, 1만장을 사도 ‘꽝’이 되기 십상이다.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고, 오기로 사고, 또 더 사고 그러다 안 되면 경마장까지 가는 중독 증세는 경계해야 한다. 지하철역에서 즉석식 복권을 수북이 사놓고 하염없이 긁고 있는 모습은 정녕 꼴불견이다.

다시 한 해가 저문다. 한 번쯤 복권 몇장을 사서 심심풀이 삼아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지 않을까. 사행심리가 아닌 ‘가벼운’ 마음이라면 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의 복권’을 듬뿍 사서 내년을 기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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