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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범(레마선교회)의 이단성 비판 3
1995년 10월 01일 (일)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조경대목사(서울 가락제일교회 담임, 기성 사이비 이단대책 전문연구위원)

기독론에 나타난 이단성

 먼저 레마선교회 이명범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명범의 기독론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육체와 다르다는 것이다.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런데 요한복음 6장 63절 후반절을 꼭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했으니 하나님 말씀은 영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의 육신은 흙에 속합니다. 이 표현은 대우를 많이 해주어서 흙인 것이지 정확하게 말하면 먼지입니다. 우리는 티끌로, 즉 먼지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대로 하면 티끌이요, 먼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육체는 무엇이 되어 오셨다고 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왔다고 했으니 예수님의 예수님의 육신의 죽음은 우리의 영의 저주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명범, 이것이 복음이다 p.21)

 "예수님의 육신은 우리와 똑같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지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며 예수님의 육신은 우리의 죄와 비중이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영이 죽은 죄를 담당하신 것 아닙니까? 바로 우리의 원죄를 전부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행위의 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의 육신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고 우리의 육신은 티끌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영의 저주를 대신하니까 우리에게 생명이 있게 된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영의 저주를 해결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과 온 인류의 생명이 서로 대등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이 죽으신 것은 온 인류의 영의 저주를 대신하신 것이므로 영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명범, 상게서 p.23)

 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살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우리와 다른 "영의 육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론에 위배된다. 이명범 씨는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인데"(요1:14) "그 말씀은 영"(요6:63 하)이라고 하여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영의 육체"라고 결론짓고 있는데 이것은 베뢰아 아카데미의 김기동씨와 똑같은 사상이며(김기동, 태초에 계신 말씀, pp.40-41상) 이러므로 레마선교회의 이명범 씨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약화시키거나 부인하는 아볼리나리우스 주의적인 이단으로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우리의 육체와 다른 '영의 육체'를 입으신 것이다"고 주장하므로 그의 사상은 또한 유티케스주의적 이단임이 명백하다.

 이명범 씨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그리스도의 육체는 "영의 육체"로서 우리의 육체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게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불완전한(반쪽) 구원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 되시는 양성(兩性)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양성론은 A.D.451년의 칼케론 회의에서 정통교리로 결정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론은 "신성과 인성의 관계는 서로 혼돈치 않으며(confuse) 바꿀 수 없으며(exchange) 쪼갤 수 없으며(separte) 분리할 수 없다(divide)"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양성론의 확정되었으며 현재까지 이 양성교리는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가 되어 있다(전성용, 기독교신학개론, p.91).

 여기서 신인양성론 교리에 관한 오류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초대교회 당시 알로기파와 에비온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다. 개혁시대의 쏘시니안파와 유니테리안파와 오늘의 현대주의 자들도 이러한 사상을 따른다. 초대교회의 아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부당한 것으로 보았으며, 그리스도를 반신(半神)으로 간주한데 반해 아볼리나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신적 로고스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영을 대신해서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스토리안파는 한 인격 속에서의 두 본질의 결합을 부인했으며, 유티커스파는 두 본질을 완전 분간하지 않았다(루이스벌코프, 기독교교리 요약,  pp.103-104). 성경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론은 여러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골 2:9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눅24:39에는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고 하였다. 그외에도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을 증거하고 있다(사9:6, 요1:1, 롬9:5, 요8:40, 마26:38, 히2:14).

 다시 레마선교회의 이명범 씨 주장을 더 살펴보자. 레마선교회 이명범 씨는 기독론에서 "아볼리나리우스 주의(Apollinarism)"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그가 쓴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이명범)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피흘리기 위해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일개의 목수 아들 보잘 것없는, 정말 형편없는 자로 보았습니다. ... 신이 어떻게 이땅에 육체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느냐고 생각했습니다"(p100).

 "그러나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요1:1, 6:13) 유일하신 이유는 피를 흘리기 위함입니다."(p101)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은 비물질이고 형체가 없기 때문에 피를 흘릴 수가 엇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곧 성육신입니다"(p100).

 "하나님은 그자신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위에 오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은 우주 속에서 말씀으로 나타니신 다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육신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p121).
 "부활하신 그분은 하나님께로 가시고 다시 하나님은 영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분을 성령이라고 부릅니다"(p121).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실제적인 존재로서 오신 그 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초월해 계시는 그 하나님 우주를 초월해 계셔서 무소부재하고 영원히 불변하며 전지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한하셔서 육체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속으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속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부를 때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p133).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고자 구원자로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을 때 우리는 그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P134).
 "(말구유에 탄생했다는 것)...성경이 이를 밝혀둔데는 달리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이땅에 오실 때 그러한 보습으로 오셨다는 것뿐입니다. ... 하나님의 독생자 귀하신이가,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는 그 엄청난 사실은 사라져 버리고 구유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 이는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p167-168).
 "마가복음, 요한복음도 예수께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셨는지에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본질적으로 다를 뿐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르신 하나님께서 죽어 마땅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는 사실만이 공통적으로 다루어져 있을 뿐입니다"(p168).

 "(가상7언보다)더 중요한 것은 죄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p168).
 "그래서 고린도전서 15:54이하에서는 생명(Living Soul)인, 즉 사는 영, 인간에게 살리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로 필요하며,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것입니다)"(p183).
 "('여호와'라는 두려워서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는)... 그 하나님이 이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분이 다시 인간에게 나타나사 인간을 도우실 때에 성령으로 오셨다고 되어있습니다"(p208).

 "왜 사람들은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메시야 이심을 믿지 않습니까? 그것은 예수를 인간으로만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예수를 인간으로 알기 때문입니다"(p104).
 "인간이 예수를 볼 때는 하찮은 목수의 아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 사람 정도로밖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이야기를 빼놓습니다"(p147).
 "기독교의 특징은... 이것을 신학자들은'descending ascending pattern'이라고 하는데, '즉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로부터 인간에게로 내려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신 다음,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시고 인간은 그분이 해결하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p147).

 이제 기독교 입장을 살펴보자. 아볼리나리우스는 제2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정죄된 자로서 저는 "보통 사람이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가진데 반해 그리스도는 육체와 영혼 및 로고스로 되어 있다고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nous, mind)이 없다고 하는 사상이다. 즉, 아볼리나리우스주의 (Apollinarism)는 그리스도 안에서 두인격 즉 신성과 인성을 부여한 사실에 따르는 위험을 지적하면서 지나치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탓으로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반대위해, 몸을 입으신 하나님(God Incarnate), 육을 가지신 하나님(Fleshbering God), 여자에게서 난 하나님(God born of a woman)이라고 하였다.

 결국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인간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아들로 태어났다가 자기의 신성안에 흡수해 버렸다고 보는 설이다. 이것은 가현설(假顯說, Docetism. A.D.70-170)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 되시는 신,인 양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다시 레마선교회 이명범의 주장을 살펴보자. 레마선교회 이명범 씨는 '하나님의 주권보다 예수그리스도의 주권이 열등하다.'는 견해를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실제적인 존재로서 오신 그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초월해 계시는 그 하나님 우주를 초월해 계셔서 무소부재하고 영원히 불변하며 전지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한하셔서 육체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속으로, 이간이 살고 있는 세계속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과 예수 스리스도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부를 때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이명범,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 p.133).
 "하나님의 주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하나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차이가 큽니다"(84년 5월 7일 강의 테이프).

 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이다. 하나님의 주권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열등하다는 말은 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동격이다. 그러나 성부의 사역이 다르고 성자의 사역이 다르니 아버지는 창조주요, 아들은 구세주이시다.
 레마선교회 이명범의 주장을 다시보자. 이명범의 속죄론은 교부배상설(Ranson, Theory) 중 특히 오리겐(Origen)의 대상위마설과 유사하다.그리스도의 신성은 그의 인간성 안에 감추인 채로 이 세상에 왔으며 악마는 그리스도를 속금으로 받고 죄인을 자기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하였지만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부터 부활하여 악마의 장중에서 탈출하였으므로 결국 악마는 하나님의 술책에 빠졌고 그리스도에게 속았다. 이것이 오리겐의 대상위마설(對象僞瑪說)인데 이씨는 그의 속죄관에 있어서 오리겐의 사상과 유사하다.

 직접 인용해 보자.
 "안식일에 속죄되었지만,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속이는 세력'인 마귀에게 속지 않고 오히려 마귀가 속은 것이다." (이명범, 84년 6월 18일 강의 테이프)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속이는 게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도록 막는 세력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사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그 사단이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1절에는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단이라는 것은 속이는 자라는 말입니다."(이명범, 예수는 속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p23)

 "인간과 환경을 갈라 버리고 인간과 모든 것을 갈라 버림으로 고통과 어려움과 좌절을 주고 있는 속이는 세력이 분명히 이 땅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성격은 스스로 속은 자이기 때문에 그는 속이기도, 속기도 하는 존재이며 사단의 성격은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끊임없이 속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속이는 일을 합니다. 바로 속이는 세력인 사단은 자기 스스로 속았기 때문에, 자기가 혁명을 일으켜서 성공하리라고 속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적이 가능하다고 속았기 때문에, 그는 만나는 자마다, 그가 대하는 자마다 속이는 것을 그의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바로 이 엄청난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약속을 받아들이려면 오직 속지 않으시는 유일하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속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고 우리의 삶속에서 속지 아니할 그분의 뜻을 따라야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이명범, 상게서, pp.24-25).

 "이와 같이 사단이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먼저 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첫째, 속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속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시 시작했다는 것이 이미 속기 시작한 것입니다. 네가 만일에 그 선과 악을 경험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너도 선과 악을 경험하여 지혜가 높아져서 하나님같이 되라라고 속았기 때문에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단의 침투는 언제나 인간에게 속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속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이명범, 상게서, pp.27-28)

 기독교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명범은 속죄론에서 마귀는 '속이는 세력'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속지않는 것'이라 했는데 오히려 마귀가 '속았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에 관한 이론이 기독론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했느냐에 관한 이론이 속죄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부배상설에는 인간이 악마의 노예이며 속죄의 대상이 악마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나아가서 그리스도가 악마를 속였다고 하는 등은 허황된 생각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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