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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혼수품은 ‘5장6기’
북한의 결혼·연애 문화 어떻게 다른가
2003년 05월 07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이영종 기자/ 중앙일보 통일외교팀

      찬장·이불장·냉장고·세탁기 인기
      만혼 장려 노동력 확보…이혼 증가

 바야흐로 청춘 남녀들이 백년가약을 맺고 가정을 이루는 결혼의 계절이 왔다. 북한에서도 5월은 결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로 선호되고 있다. 하지만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교제과정이나 약혼·결혼식 과정은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시간 동안 민족 전래의 고유한 관혼상제 풍습이 적지 않게 이질화 돼버린 때문이다. 북한의 결혼 문화를 통해 북녘동포들의 삶의 단면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남북 화해·협력과 통일문화의 길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날로 늘어가는 자유연애 풍조=대개 중매에 의해 이뤄지던 배우자 선택은 90년대 초부터 연애결혼이 늘어나면서 점차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살이 넘으면 자연스럽게 이성교제가 시작되지만 “남녀가 거리에서 팔을 끼는 행위는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사회분위기로 인해 남녀의 자유로운 교제가 쉽지 않았던 게 그동안의 문화였다. 그러나 최근들어 점차 외부사조가 북한 체제 내부로 유입되면서 젊은 남녀들의 자유연애가 증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혼전임신 등 젊은 계층의 성도덕 문란 현상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생의 경우는 혼전임신을 하게되면 즉각 퇴학처분 당하고 노동직장에 배치되는 등 엄격한 편이지만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과 함께 최근들어서는 결혼과 사랑을 별개로 인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중매결혼은 우리와 같이 대부분 부모의 친지나 직장 상사들이 나서서 배우자를 소개한다. 연애결혼은 남녀가 직장 등 사회에서 접촉하는 과정에서 애정이 싹터서 결혼이 성사되는데 최근 귀순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연애결혼이 60%를 넘는다고 한다.
 
교제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약혼을 하는 게 보편화 돼있다. 약혼식은 대체로 신부측 집에서 하는데, 통행증 없이 올 수 있는 신랑·신부측 직계가족들이 모여서 간소하게 치뤄진다고 한다. 약혼식에서는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식 때 입을 한복감과 화장품 등을 선물로 준다. 시계·반지 등 예물교환은 부유한 일부계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간단한 식사대접과 양가인사 및 약혼사진 촬영 등으로 진행된다.

◈선호하는 결혼상대는 외화벌이 종사자=배우자는 직업과 현재의 거주지, 출신성분, 노동당원인지 여부가 중시된다. 당간부의 자녀 등은 최고의 배우자 감으로 인기가 높다.

최고로 선호되는 직업은 외화벌이에 종사하거나 해외에서 근무할 수 있는 외교관 등이다. 과거에는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원이나 경찰격인 인민보안원 등 권력 기관원들이 가장 인기였다. ‘경제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데, 생필품 조달이 용이하거나 부수입이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가 있다. 여성들은 신랑감으로 외화벌이 종사자를 필두로 요리사·운전수·열차승무원을 선호하고, 남자들은 신부감으로 호텔직원·상점판매원·간호사 등을 좋아한다.

최근들어 용모도 중시되는 경향인데 여성의 경우는 둥그렇고 쌍꺼풀이 진 얼굴, 남성은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얗고 튼튼한 경우가 선호된다.
북한주민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경우는 북한에 살고 있는 화교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는 러시아·중국·일본인과의 국제결혼도 있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려면 결혼승인 신청서·이력서·소속기관 책임자 의견서 등을 작성하여 인민보안성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최종적으로 최고인민회의(국회) 상임위원회의 비준을 받아야 정식 부부로서 법적 효력을 보장받을 수 있어 실제 결혼에 이르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최고의 혼수품은 5장6기=혼수품으로는 여자는 보통 배우자의 양복 1벌과 이불 2, 3채 정도를 준비하며, 남자는 대개 약혼식때 옷감·화장품 등을 신부집에 보내나 여유가 있는 집은 가재도구 일체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른바 5장 6기(5장=찬장·이불장·양복장·책장·신발장, 6기=냉동기·세탁기·TV·제봉기·녹음기·사진기)로 불리는 세간은 최고의 품목으로 꼽힌다.

결혼 비용과 신접살림은 양가에서 부담하지만 소속 직장에서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신부는 일반적으로 주방용품 등만을 준비한다.

여자가 타 지역으로 시집을 갈 경우는 결혼식을 올린 후에 전에 살던 직장에 사직원을 내고 새 거주지에 직장을 구해 취직한다. 그러나 결혼을 했다고 해서 당장 부부가 함께 신접살림을 하기란 쉽지 않다. 북한의 심각한 주택난으로 인해 결혼신고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을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유층 호화결혼 문제도=종래의 길흉을 가리는 풍습이 거의 없어져 통상 생산활동에 지장이 없는 일요일이나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을 택해서 결혼식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길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일반주민들의 결혼식 택일과 관련 북한당국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달인 2월(김정일)과 4월(김일성) 그리고 노동절(5.1) 등 특정 기념일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일반주민들은 대개 소속기관 또는 마을의 공공회관이나 신랑·신부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다만 조금 여유가 있는 계층은 평양시내 경흥관·문수식당·청류관에서도 결혼식을 올리는데 특히 경흥관의 경우 한해 1천건의 결혼식이 치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랑은 양복차림이며 신부는 한복을 착용하는데 양가 부모와 친지·동료 등 약간만이 참가한 가운데 결혼식이 진행된다. 대개 주례 겸 사회자의 “장군님(김정일)의 배려로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었다”는 간단한 결혼선포와 부모님에게 잔을 드리는 의식과 기념촬영·피로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피로연에는 떡·국수·강냉이·술 등이 주로 나온다. 음식과 술 등이 준비된 가운데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는 등 잔치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데 간부계층이나 북송교포의 호화 결혼식이 가끔 사회문제화 되기도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방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없다. 대개 신혼부부들은 거주지역내에 있는 김일성동상이나 혁명사적지 등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만혼풍조와 증가하는 이혼율=북한에서는 최근 만혼(晩婚)을 권장하는 가요 ‘염려 마세요’가 대대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모두 3절로 된 이 노래는 젊음을 ‘강성대국’건설에 바치려고 건설장에 지원한 한 처녀와 그런 딸의 혼기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 미혼 여성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결혼을 늦출 것을 장려하는 내용의 캠페인임을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지난 봄에 건설장 탄원해 올 때/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했지요
처녀시절 봄 시절 때를 놓칠라/ 어머니는 근심도 많고 많았죠
(후렴) 아 어머니 염려 마세요
처녀시절 빛내고 시집갈테니/ 염려 마세요.”

가족법에 결혼 가능연령이 남자 18세, 여자 17세로 규정돼 있는 북한에서 여성들의 만혼은 그들의 자의식이 높아진 결과이기도 해 점차 사회의 일반적인 풍조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에서도 배우자의 불륜이나 고부간 갈등 등으로 이혼하는 부부들이 있으며, 최근에는 “가장의 경제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북한은 가족법에 “이혼은 재판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재판에 의한 이혼만을 허용하고 있으나, 생활고 등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부부가 많아지자 북한 당국은 “이혼은 자본주의 나라나 사회주의가 좌절된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라면서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이혼 증가로 인해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기관지인 <조선녀성> 잡지에는 이혼방지 캠페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인민은 부부사이에 재산이나 권력을 보기 전에 도덕과 의리를 더 소중히 여기며 검은 머리 희어질 때까지 화목하게 살아오는 미덕을 꽃피워 왔다”면서 이혼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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