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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의 ‘피눈물’
달리 / 위에서 본 십자가
2003년 04월 02일 (수) 00:00:00 최민준 wjjo1004@yahoo.co.kr


이제 그들의 눈높이로 말씀여행을 떠나보자.

과연 그들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였으며 어떻게 보았는가? 어떤 사물이든지, 사물은 눈높이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가령 달을 지구상에서 쳐다본다고 한다면 그저 동그란 달, 어느 동요작가가 한 말처럼 “쟁반같이 둥근 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 된다. 위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온 태양계가 다 보여야 가능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고는 결코 위에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만큼 어디에서 어느 눈높이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사건은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이 계절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계절이다.
많은 화가들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그렸다. 그것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이다. 창에 옆구리를 찔리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처참하고 불쌍하신 예수님을 묘사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 Christ of St. John of the Cross(Salvdor Dali·1951)
그러나 그림을 보는 순간은 마음이 찡하고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기는 하지만, 그 다음순간 우리는 그 사실을 곧 잊어버리게 된다. 우선 나는 고통받은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또 조금 있으면 부활절이니까. 이렇게 우리들의 눈높이로 십자가를 보면, 사실 그것은 이제 매년 돌아오는 하나의 예배순서의 메시지로 끝나버리고 만다. 사실 사순절에 우리가 얼마나 애통해하고 있는가?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그러나 ‘달리’의 십자가는 다르다. 이 그림은 위에서 본 십자가이다. 위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았다면 누가 보았단 말인가?

우선 우리는 볼 수 없다. 오직 볼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는 것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예수님은 다르다.

생각해보자.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하고 오히려 안심하며 좋아하지만 아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오는 것을 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은 말로 다할 수가 없다.거기다가 아버지를 향한 애끓는 기도 소리를 들으셨다.
“아버지여, 제발 이 잔을 나로부터 멀어지게 하옵소서!” 그러나 아버지는 응답하지 않으셨다.

피눈물난다는 말이 있다. 아들을 보는 하나님의 눈에 어떻게 피눈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가운데 돌아가신 아들 예수의 옆구리에 창이 찔릴 때 그 신음과 고통과 절규, 우리는 이걸 다 못 듣는다. 이걸 생생하게 들으시고 보시는 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예수의 머리가 드디어 땅을 향하여 축 쳐지셨다. 모든 세상 짐을 메었던 그 어깨는 아버지가 볼 수 있도록 허옇게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 쪽에서 본 ‘아들 예수’.  충격적이다.
사순절에는 결코 우리 쪽에서 십자가를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 쪽에서 아들을 바라보는 그 십자가가 될 때 온전한 사순절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달리’의 메시지이다.

 

영감받은 화가들이 주는 감동
- 여행을 시작하면서

   
화가들은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보여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보지 않고는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화가는 보통사람들보다도 세밀하게, 정확하게, 높게, 넓게 심지어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현실의 차원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가 다른 차원의 광경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곤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육적인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보여지는 모든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초현실주의라는 미술의 한 장르는 그 계통의 화가들이 현실을 넘어 초 현실, 즉 꿈과 환상의 세계까지 추적하여,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까지 파헤쳐 그림을 그려냈기 때문에 초현실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화가의 눈은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과는 많이 다르다. 때문에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그림보기를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들 입장에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림을 감상하면 그들의 세계는 엄청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세상이 현존함에 대해서 감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를 보여주는 파노라마이면서 웅장한 드라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넘나들면서 보여주는 감격적인 영혼의 여행안내서이다. 이런 고차원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보통 일반인들의 눈높이 가지고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를 특별한 안목을 가진 화가들이 표현했을 때에는 우리는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성경이 보여주는 감격적인 장면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특별한 영감을 가진 화가들이 성경의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줄 때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던 지혜를 얻게 되며 성경내용을 깨닫게 되고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기독교 미술을 접하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화가들은 오늘날 내 신앙의 자리 매김을 해주는 귀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미술은 신앙을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한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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