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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말부터 통일하자
언어 이질화 현상 갈수록 심각
2003년 07월 16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영종 / 중앙일보 통일외교팀 기자


“무리등이나 살결물이 무슨 뜻인지 인차 요해가 안되십네까.”
만약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져 북한에서 안내원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무슨 의미인지 언뜻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남한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리등은 우리말로 샹들리에를, 살결물은 화장품인 스킨로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차는 금방이란 뜻이고 요해는 이해란 말의 북한식 표현이다.

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남북간의 언어차이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자칫 남북한을 한민족으로 묶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인 언어문화마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봇물을 이루기 시작한 남북간 화해·협력 분위기에 힘입어 서로의 언어생활에 대한 차이의 폭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지만, 아직 이질화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최근 KBS라디오 사회교육 방송이 탈북자 2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듣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언어차이(33.3%)였다는 답이 나왔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72%가 언어문제로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44.8%는 정착 초기에 남한주민의 말을 ‘다소’ 또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생소한 단어(33.9%), 발음과 억양(27.4%), 의미차이(19.6%) 등을 들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근 연세대학교에서는 이 학교에 재학중인 17명의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을 위한 일대일 맞춤과외를 실시하고 있다. 미팅이나 리포트 같은 단어조차 몰라 대학생활에 적지않은 어려움이 따르는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북한에서 의학대학을 다니다 이 학교 3학년에 편입한 김 모양은 “영어로 된 의학 전문용어는커녕 ‘터프하다’, ‘컨셉트’ 같이 친구들이 흔히 쓰는 단어조차 무슨 뜻인지 몰랐다”라고 털어놨다. 자연히 친구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아 움츠러드는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한국어문진흥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북한주민이 모르는 남한 외래어’ 조사 결과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뉴스·다이아몬드·모델·뮤지컬·미니스커트·콘돔 등 남한 사람들이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외래어들이 북한 주민에게는 생소한 단어라는 지적이다. 또 발레(바레, 이하 괄호 안은 북한식 외래어 표기)·마라톤(마라손)·러시아(로씨야)·베트남(웨트남)·카이로(까이라)·베이컨(베콘)·멕시코(메히꼬)·마이신(미찐)·레일(레루)·달러(딸라) 등으로 남북간의 표기가 크게 다른 사례도 많았다. 조사결과 남한에서 흔히 통용되지만 북한주민들이 모르는 단어는 8천284개나 됐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첫 이산상봉이 이뤄진 2000년 8월 상봉장에서는 언어차이로 인해 한동안 혼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남한의 아들이 북녘의 어머니께 “어머니 그동안 어찌 지내셨어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나는 일없다. 너는 어떻게 살았니?”라고 답했다. 아들은 내심 ‘일없다니, 어머니가 화나셨나?’라고 당황해 했지만 어머니의 속마음은 달랐다. 북한에서는 ‘일없다’는 말이 ‘괜찮다’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남한에서는 좋지 않은 감정에서 거절할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에 참가한 남측 수행원들도 경험했다. 이들이 방북중 귀에 설었던 어휘들은 호위(경호)·의례(의전)·방조하다(도와주다)·찬물미역(냉수욕)·인민소비품(생활필수품)·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볶음머리(파마머리)·다리매(각선미)·가두녀성(가정주부)·단고기(개고기)·땅고집(옹고집) 등이다.

또 군중가요(대중가요)·주석단(귀빈석)·위생실(화장실)·찬단물(냉주스)·표(서명)·수원(수행원)·관람예견(관람예정)·정보행진(사열)·모터찌클(모터사이클)·텔레비죤소설(TV드라마)·손풍금(아코디언)·남새(채소) 등을 생소한 어휘로 꼽았다. 이들은 려과담배(필터담배)·내굴찜(훈제)·가시아버지(장인)·집단체조(단체체조)·려과설비(여과장치)·래왕수단(왕래수단)·로정(노선)·열스러워서(창피해서)·어방치기(어림짐작)·소리를 웨치다(소리를 외치다)·호상간(상호간)·인차(당장)·료해(파악) 등도 이질화된 언어라고 지적했다.

상대방에 대한 호칭에서도 남북차이는 확연하다. 북한에서 남자를 가리킬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름말은 ‘아저씨’. 초면이나 절친한 사이건 관계없이 아버지뻘이 아닌 손윗남자를 흔히 아저씨라고 부른다. 아저씨는 또 언니의 남편을 가리키는 호칭이며 남한의 형부라는 말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또 언니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어머니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적은 상대방에 대해 ‘아지미’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남한에서는 흔히 친하게 지내는 손윗사람을 형이나 형님으로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친인척 관계에 있는 형과 친구의 형에 대해서만 형님이라고 한다. ‘오빠’란 말도 마찬가지로 연인이나 신혼부부들은 남자애인이나 남편을 ‘동무’ 또는 ‘동지’로 부른다.

‘여사’란 말은 김일성의 할머니와 어머니,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에게만 사용하며 ‘사모님’은 간부들의 부인에게만 붙인다. 이외에 북한에서는 상사나 선배에 대해 ‘동지’로, 동료는 ‘동무’로 각각 부른다. 연세가 많은 상사에 대해 친근감을 나타낼 때에는 ‘부장아바이’라는 식으로 직급뒤에 ‘아바이’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씨’나 ‘아가씨’는 부르주아 언어문화의 대표적 호칭으로 인식돼 있어 북한주민들은 방북한 사람들이 이 호칭을 사용할 경우 거부감을 나타내기 십상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남북한이 이처럼 분단 반 세기만에 언어사용에서 깊은 골이 패인 것은 서로 다른 체제속에 다른 어문정책을 펴온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일찍이 언어를 사상교양의 수단으로, ‘혁명과 건설의 중요한 무기’로 규정하고 주민들의 언어생활을 조절·통제해왔다. 북한은 1966년 5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과거부터 우리나라 표준말로 돼있는 서울말 대신 평양말을 중심으로 ‘문화어’를 만들고 사용토록 했다. 서울말에 부르주아·복고주의 요소가 있어 봉건·유교사상 등 반동적 사상과 생활양식에 젖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남북한의 언어가 달라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북한이 54년 제정한 ‘조선어 철자법’이다. 북한은 이를 통해 종래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적지 않은 수정을 가했다. 즉 전통적인 24자모에 ㄲ ㄸ ㅃ ㅆ ㅉ 등 된소리 5자와 ㅐ ㅔ ㅚ ㅘ ㅝ 등 총 16자를 추가해 40자모로 만들었으며 두음법칙을 부정해 ‘내일’을 ‘래일’, ‘여성’을 ‘녀성’으로 표기토록 했다. 자모순차도 ‘ㅇ’을 ‘ㅅ’ 다음이 아닌 맨 마지막에 놓았고 ‘었’을 ‘였’, ‘깃발’을 ‘기발’ 식으로 일부 단어철자법도 고쳤다. 또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일부 외래어에 대해서도 ‘탱크’를 ‘땅크’, ‘캠페인’을 ‘깜빠니아’ 등 러시아·일본식으로 표기했다.

북한당국의 언어정책에도 긍정적 측면이 발견된다. 고유한 우리 말을 살리고 이를 생활화한 점이다. 상당수 탈북자들은 이 같은 점을 들어 남북한의 언어이질화가 단순히 북한당국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남북한에서 기념하는 한글날의 날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은 남북간 언어이질화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엿보게 한다. 남한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세종 28년 음력 9월 상순(1446년 10월 9일)을 계기로 해 한글날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한글 창제일인 세종 25년 음력 12월(1444년 1월15일)을 기념하고 있다.

남북간의 언어이질화가 초래한 많은 문제점과 관련해 무엇보다 정보화 시대와 통일에 대비한 통합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간의 언어차이는 컴퓨터 자판의 체계까지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보화 시대의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닥칠 남북통일에 대비해 자판통일 같은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통일 이후에도 서로 다른 언어와 컴퓨터 입력시스템 때문에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란 지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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