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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음 목표는 북한인가
북한, 이라크전쟁 이후 긴장감 팽배
2003년 04월 02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이영종 기자 / 중앙일보 통일외교팀

정권축출 문제 거론 극도의 반감 표시
경협 등 무기삼아 민족공조 부쩍 강조
조바심 보다는 핵문제 해결 노력 보여야


“우리는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선군(先軍)정치와 일심단결, 자위적 국방력이란 필승불패의 강위력한 무기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 개전 이후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연일 이 같은 내용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수출 문제 등으로 부시 행정부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으로서는 이라크 다음 차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흘러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언론을 총 동원하다시피 해서 미국에 대해 결연한 대응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 자체가 북한 당국이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의 이런 모습은 지난 3월 28일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 잘 드러난다. 노동신문은 “미제가 이라크 침공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경우 조선반도에서 새로운 더 큰 침략전쟁을 동시에 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라크를 강점한 다음 범 잡은 포수 마냥 기고만장해 반 테러전쟁의 무대를 조선반도로 옮기고 우리를 침략할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새 세기에 들어와 발생한 ‘9.11사건’을 계기로 ‘반테러’ 전략을 21세기 군사전략으로 정책화하고 그 제1막을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제2막을 이라크 전쟁으로 연 미국의 부시 호전세력이 제3막을 조선반도에서 열 것은 의심할 바 없다”고 밝혔다. 다음 차례가 북한이 될 것임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북한 당국이 특히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는 대목은 김정일 체제의 존립과 관련된 사안인 듯하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을 감행하며 내세운 후세인 정권의 축출 문제를 거론하면서 반감을 표시하고 있는 데서 이런 분위기는 드러난다. 극히 이례적으로 정권의 안위문제까지 우회적으로나마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월 29일 관영 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라크전쟁의 기본목적이 이라크 지도부를 제거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다른 나라 국가지도자를 살해하는 것을 국가정책으로 세운 미국의 오만하고 횡포한 처사야말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국가테러 행위의 전형”이라고 밝혔다.

또 “국가지도자로 누구를 선출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나라 인민의 권리이며 누구도 미국에게 다른 나라의 정권교체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의 이런 날강도적인 국가테러 행위를 허용할 주권국가는 이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라크 전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달 가까이 공개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일부 한국과 서방언론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평양 지도부의 안위문제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월 12일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을 방문한 이후 상당 기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3월 26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국회) 제10기 6차회의에도 불참하자 이런 관측은 더 설득력을 얻는 듯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공개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신변상의 유고라기보다는 이라크전이 비상사태라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분석된다. 군부 실세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 김영춘 군 총참모장 등이 함께 불참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우리 정부도 다급해졌다. 자칫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습가능성이 부풀여질 경우 한국의 경제는 물론 남북관계의 진전에도 부작용이 따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청와대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3월 27일 안보 불안감 확산과 관련해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며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일축한 것도 이런 불끄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이란과도 전쟁을 벌였으며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재 이라크 주변국 중 이라크를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나라는 없다”는 게 반 보좌관의 지적이다. 또 “북한의 경우 유엔안보리 결의도 없었고,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일본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등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전략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은 부시 미 대통령이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을 이라크와 다르게 다룰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고, 지난해 멕시코 로스카보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을 들어 신중하게 접근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한·미간 현안을 포괄적으로 조율하기 위한 외무장관 회담이 3월 28일 워싱턴에서 열렸다.

이 회담은 향후 한·미관계를 결정짓는 첫 시험대로 북핵사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지가 관심이었다. 다행히 윤영관 외교장관과 파월 국무장관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나섬으로써 다소 안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라크 전쟁의 불똥이 남북관계에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라크 전을 빌미로 남북 당국 대화의 속도를 조절해야 겠다는 뜻을 틈틈이 내비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이 불만스러워하는 대목은 주로 △대북송금 특검제 △이라크 전쟁에 따른 한반도 긴장상태 △핵문제 이후 남측의 대북자세 등으로 간추려 진다.

무엇보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대북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대목을 북한은 문제삼고 있다. 3월말 실시한 한·미 합동의 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 훈련을 집중 거론한 데 이어 각종 군사훈련을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북한은 남측에 대해 대북 문제와 관련 한·미보다는 남북간의 보조를 중요시 해야 한다는 이른바 민족공조 주장을 부쩍 강화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3월 29일 “이라크에서 침략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제는 우리의 있지도 않는 핵문제를 떠들며 다음 번 차례는 북조선이라고 떠들고 있다”면서 “민족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북과 남 전민족 대 미제와의 대결로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의 군사분계선 지점 궤도연결 행사를 3월 31일 갖자는 우리측 제안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무산시켰다. 3월중 궤도연결식을 갖자는 앞서의 철도·도로 실무협의 합의를 깨버린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4월초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해 놓은 10차 남북장관급회담과 4월중 금강산에 짓기로 한 이산가족 면회소의 착공행사 등이 줄줄이 위기에 처했다. 북한이 미국의 이라크 공습과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파병결정에 반발해 남북간의 합의사항 이행을 미뤄보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 당국관계가 다시 얼어붙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정황에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노무현 정부의 출범에 맞춰 남북관계의 동결을 시도함으로써 우리 정부에 대해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라크전 파병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남한 내부에서 나오고 미국의 이라크 공습으로 반전여론이 들끓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북한 역시 민족의 안녕과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에 고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대북공조와 부시행정부에 대한 설득을 통해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대북 선제공격의 배제’ 등을 공언하고 있는 터에 북한이 자꾸 “다음 차례는 우리가 아니냐”며 조바심을 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이란 얘기다.

무엇보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화합과 통일을 위한 민족공조를 원한다면 핵무기와 미사일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여나가는 행동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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