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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씨는 과연 회개하였는가?
1999년 11월 01일 (월)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윤석전 씨가 회개하였는데 그에게 이단논쟁을 일으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말에 대하여
윤석전 씨를 옹호하는 사람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윤석전 씨가 아예 이단이 아니란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단 사상이 있었지만 회개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단이 아니라는 주장도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는 윤씨에게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윤석전 씨는 위대한 목사요, 위대한 부흥사요, 한국교회 부흥의 모범을 삼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분명히 윤씨에게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일반적인 문제일 뿐 이단이거나 사이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그가 늘 자범죄를 바로 지옥과 연결시켜 주장하는 견해는 장로교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는 알미니안주의자로서 알미니안주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하여 본지 99년 9월호에서 이 주장이 얼마나 무지하고 사탄적인 말인지 비판하였기에 본 글에서는 그냥 넘어 가겠다. 단지 다시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그를 옹호하는 사람 중에 누구든지 본인의 견해가 무리하거나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반론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게 사이비 내지 이단 사상이 있었으나 이제 회개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윤석전 씨에게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필자를 비롯하여 윤씨에게 이단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들 중에 윤씨가 했다는 회개가 거짓된 것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순진한 사람보다 윤석전 씨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를 옹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문제가 있다. 필자는 본호에서 윤씨가 했다는 회개란 어떻게든 이단논쟁을 피하려는 더럽고 사악한 꾀요 속임수란 사실을 보이고자 한다.

물론 이 모든 혼선을 야기시킨 장본인은 윤씨 자신이다. 윤씨에게는 두세 가지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자신의 이단사상을 회개한다고도 했다가, 또 이단이 아니라고도 했다가, 회개를 하였다가, 또 그 회개는 윤리적인 것일 뿐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등의 모순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전 씨는 결코 회개한 사람이 아니다
A 윤석전 씨가 회개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1. 먼저 윤씨가 회개했다고 하는 것은 죄를 경히 여기되 특히 사이비 이단자의 죄를 윤리적 죄보다 더 경히 여기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사이비 이단의 측면에서 죄란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하나는 윤리적 죄요 다른 하나는 교리적 죄다. 다윗이 지은 간음과 살인은 분명히 윤리적 죄다. 그런데 윤리적 죄라도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한다. 다윗을 보자.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인간적으로 동정심을 느낄 만큼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침상이 썩을 만큼 울고 울며 회개하였지 않은가?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회개의 모범이다. 후론하겠지만, 놀라운 사실은 윤씨 자신도 회개에 있어서 그 이상으로 강조하는 사람이다.

사이비나 이단의 죄는 무슨 죄인가? 본질적으로 윤리적 죄가 아니라 교리적 죄이다. 즉 교리적 죄 그것만으로 영혼을 죽이는 이단이 되지만 때로는 그 죄가 윤리적 죄가 되어 이혼 내지 가출 등의 가정을 파괴하고, 때로는 거룩한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바로 윤석전 씨의 죄는 윤리적 죄가 아니라 교리적 죄였다. 그런데 윤리적 죄라도 철저하게 회개해야 용서를 받는데 하물며 교리적 죄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윤석전 씨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토록 무서운 교리적 잘못을 저지른 윤석전 씨에게 너그럽다는 점이다.

윤씨 자신은 말할 필요가 없다.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는 회개를 해 놓고도 뉘우치고 자숙하기보다 갈수록 더 뻔뻔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자신이 늘 주장하던 철저한 회개의 모습과 는 너무도 상치되는 모습이다. 윤석전 씨는 윤리적 죄를 지은 사람마저 무참히도 지옥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기억하여 자신이 하나님과 한국교회 앞에 지은 죄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리고 다시 철저하게 회개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성도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이단 사상에 미혹되고 또 그것을 가르치므로 천하보다 더 소중한 영혼까지 죽이는 무서운 죄를 범했다면,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지켜주시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령과 진리는 우리를 절대로 속이지 않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에 속아서 이단이 된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자신의 욕심과 교만과 정욕에 빠져 스스로 속이고 속아 이단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단자에게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하였고 또 한두 마디 훈계한 후에 그를 멀리하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윤씨의 교리적 죄에 대하여 왜 그렇게 너그러운가? 성경의 가르침에 눈이 먼 사람들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지 않고 보이는 인간만 보기 때문일 것이다.

2. 윤씨가 회개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회개의 문을 인간적으로 넓혀보자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분명히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이다. 우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하나님과 변론하면 눈과 같이 희어지게 하시고 양털 같이 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사 1:18). 그리고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요일 1:9). 심지어 우리 주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까지도 용서해 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회개의 넓은 문을 좁히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회개의 좁은 문을 넓히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죄다. 하나님이 용서한 것을 정죄해도 안 되고, 반대로 하나님이 정죄한 것을 용서해도 안 된다.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성경에서 보자. 성경에서 형식적으로 보면 회개의 충분한 조건들을 가진 자들이 많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그 회개가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하나씩 살펴봄으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요구하시는 회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그 눈으로 윤석전 씨를 보면 과연 윤석전 씨가 회개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인‘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죄를 지은 최초의 범죄자, 그것도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다. 그런데 가인은 자기 죄의 중함을 깨달았고 심지어 그것을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분명히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창 4:13)라고 하였다. 윤석전 씨가 회개했다고 하려면 가인도 회개한 사람이라고 주장해야 맞을 것이다.

다음은 ‘바로‘다. 성경에서 가장 강퍅한 사람의 대명사는 애굽의 왕 바로다. 그런 바로에게도 형식적으로 볼 때 회개의 충분한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는 명확하게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였고, 스스로 악하다고 고백하고, 또 용서까지 구하였다.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출 9:27).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출 10:16)라고 했고,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출 10:17)고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윤석전 씨보다 오히려 바로가 더 철저하게 회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은 ‘사울 왕‘이다. 사울 왕도 겉으로 보기에는 회개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사울은 사위이자 하나님이 세운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당방위로나, 하나님의 뜻으로나, 심지어 백성의 인기 어느 것으로 보아도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을 터인데 죽이지 않았다. 그런 다윗 앞에서 사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삼상 26:21)라고 말이다. 사울은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그리고 잘못까지 시인하였다.

필자와 윤씨가 몇 번 만났는데 왜 만났는가? 필자가 윤씨의 무슨 윤리적 문제를 문제 삼은 일이 있었는가? 그가 가르친 교리적 문제 즉 이단성을 지적하여 그래서 만났고 그리고 윤씨는 필자를 만나서 여러 번 자신의 교리적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할 것을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조금도 자숙하는 모습도 없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국내외 집회를 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이나, 더욱이 이제 필자에게 한 사과는 교리적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점과 필자의 교회에 3회에 걸쳐 쳐들어와 시위를 했던 윤리적 잘못에 대하여 사과했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하고, 또한 책까지 수정하고도 ‘자신의 중심 신학을 수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여 모처럼 회개할 기회를 스스로 부정하는 윤석전 씨보다 사울의 회개가 더 정직한 회개가 아닌가?

그 다음으로는 ‘가룟 유다‘이다. 가룟 유다도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후에 뉘우쳤다. 그 돈까지 가져다주며 예수님의 무죄를 증명하였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마 27:3~4)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주받은 사람의 대표자 가룟 유다에게도 윤석전식 회개의 모습은 충분히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누가 유다를 회개한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유다가 회개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윤석전 씨도 회개한 사람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하였는데 받으시지 않았던 실례를 하나 더 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죄를 짓고 잘못을 뉘우쳤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신 1:41)라고 하였다. 그런데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신 1:41~42)고 하였다.

윤석전 씨의 회개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누구든지 그가 참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증명해 줄 사람에게 본지가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바이다.

3. 윤씨가 회개했다고 하는 것은 윤씨를 연구하지도 않고 무조건 윤씨를 옹호하려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누구를 “이단이다“ 또는 “아니다“고 주장하는 일은 참으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쪽이라도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도 실수를 해서 안 되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받을 벌은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양심에 따라 윤씨의 이단성을 지적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윤석전 씨가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를 연구하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교리적으로 변증하려는 사람들도 그것이 지극히 파편적인 내용에 불과할 뿐 제대로 연구하여 변증한 사람이 없었다. 연구에 의해서 윤씨가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내용 있는 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용 없는 인신공격적 변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윤석전 씨의 이단성을 내용 없이 변호한 대표적 기관이 바로 윤석전 씨가 속한 기침 교단이다. 왜냐하면 처음에 윤석전 씨가 이단이 아니라고 할 때는 연구할 시간도 없었고 연구한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윤씨가 이단이 아니라고 할 때는 당사자인 윤씨 자신에게 물어 그의 말에 의하여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 기침 교단에서 연구를 하여 그가 이단이 아니라고 하였다면 그 내용이 밝혀졌어야 한다. 그리고 필자에게 윤씨에 대한 이단 비판을 삼가해 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었는데, 그런 요구를 하려면 적어도 필자가 지적한 내용들에 대하여도 구체적으로 변증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왜 처음에 그를 옹호하였던 대전 침신 도한호 교수는 지금 침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도 역시 전에 윤씨를 옹호할 때 그의 테이프를 구체적으로 듣고 연구하지 않았음을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연구했으리라고 본다. 적어도 학자가 학문적 진실에 의하여 윤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면 이제라도 도교수가 나서기를 바란다. 필자는 언제라도 도한호 교수와의 지상논쟁도 환영하는 바이다.

B. 윤석전 씨를 회개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1. 윤석전 씨는 교리적 죄를 지었고 그래서 필자는 교리적 잘못을 지적하였으며, 결국 필자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해 놓고 이제 그 말을 번복하여 자신은 교리적 잘못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윤석전 씨의 죄는 무슨 죄인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윤리적 죄가 아니라 바로 교리적인 죄이다. 필자가 윤씨를 한국교회 앞에 고발하고 비판한 것은 윤리적 죄 때문이 아니었다. 필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이단사상 즉 교리적 잘못을 지적했고 비판하였다. 한국교회가 윤석전 씨에게 문제를 삼는 것도 그의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교리적 문제이다. 처음부터 필자는 한 번도 변함없이 강조한 것은 그에게 이단사상이 있다는 것이요, 그리고 그것을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씨는 필자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고 또 회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점을 선명히 하겠다는 의미에서 1997년 11월 6일에 그를 만날 때 그에게 주었던 글의 일부분을 다시 소개하겠다.

“<1997년 11월 6일 윤석전 목사님을 만남에 대하여>- 첫째, 먼저 오늘의 만남은 나원준 목사님께서 윤목사님이 진심으로 회개할 뜻이 있음을 말하기에 이루어진 자리입니다. 1) 부탁하기는 회개란 이름을 빌어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윤목사나(나원준 목사를 포함해서) 본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본인은 참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적 선으로는 영적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3) 다시 말씀 드립니다. 본인이 지적한 내용이 윤목사님에게 아픔이 되고 인간적으로 섭섭하였지만 신학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있고 영적으로는 유익하다는 생각이 있어 진심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대화를 하고 싶으나 그렇지 않다면 식사나 하고 헤어지기를 바랍니다.

4) 이 말은 윤목사님이 회개하고 사과할 대상이 최삼경 목사란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윤목사님께서 회개할 대상은 하나님이요 사과할 대상은 한국교회란 점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 그런 점에서 다시 진심으로 바랍니다. 목사님의 영적 진실에 의하여 이 일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본인은 먼저 지난 9월호에 지적받은 내용에 대하여 회개하시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의 진실을 측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공적으로 이루어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하여 처음에 윤씨는 정직했다. 회개하겠다고 했고 많은 사건들을 거쳐 한국교회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문까지 게재하였다. 그리고 그의 책 좧영혼의 때를 위하여좩라는 책을 수정하고 개정증보판까지 내었다. 그런데 필자는 윤씨가 쓴 그 책 서문을 읽어보고 역시 이단은 거짓말쟁이란 사실을 깊이 인지하게 되었다. 직접 인용해 보자.

“영혼구령을 위해서 하나님께 목숨 바치기로 작정한 뜻을 굽히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을까‘하는 것이 저의 주된 목회적 관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까지 불철주야 기도하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저의 뜻과는 달리 표현상의 오해가 생겨 적지 않은 책망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목회에 전념하는 데 어려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들을 통해서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겸손하게 그것을 인정하고 고쳐 잡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의 중심과 신학을 수정한 부분은 없습니다만, 집회에서 전달된 내용들이 글로 표현될 때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부분들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998. 7. 30. 윤석전 목사“(영혼의 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요단출판사, 윤석전 지음,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위의 글만으로도 윤석전 씨는 교리적 사과나 회개를 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게 증명되었다고 본다. 혹 그가 위의 책 서문에서 교리적 사과나 교리적 회개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회개인지 아니면 속임인지 더 살펴보았어야 한다. 그러나 윤씨는 이제 스스로 그것을 부정하고 있으니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욱이 윤씨는 또한 예장통합측 이단대책위원회에 보낸 해명서에서도 ‘자범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자신의 사상은 알미니안주의적 구원관을 가진 자로서 잘못이 없다는 취지의 변호까지 하였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근거로 윤씨가  회개하였다고 한다는 말인가? 윤씨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누가 없는 윤씨의 죄를 미리 용서해 주었다는 말인가?

필자가 보기에 그가 필자에게 한 사과는 교리적 사과가 아니라 윤리적 사과라고 하여 교리적 잘못을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은 이단 논쟁을 피해 가려는 얕은 꾀에서 나온 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윤씨의 함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윤씨가 비록 자신의 윤리적 잘못만 시인하고 사과하였다고 말하였지만 그는 윤리적 죄에 대해서도 사과한 사람이거나 회개한 사람이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윤씨가 필자에게 회개문을 부탁하여 놓고 적반하장격으로 필자가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회개를 강조했다는 거짓말 등을 근거로 필자를 비난하는 광고전을 100여 회나 펼치고,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양동생이란 사람을 앞세워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거룩한 교회를 무단 점거하는 등 무려 3회에 걸쳐(500명, 1000명, 2000명씩) 시위를 하는 사악한 죄를 지었다. 그런데 윤씨는 과연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씨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라면 필자에 대해서나 한국교회에 대하여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진정한 회개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윤씨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① 진정한 회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시인하고 고백해야 한다.
필자는 기독교가 회개의 종교란 사실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이비 이단이 회개한 모범적 사례가 한국교회에 없다는 것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생각하게 한다. 사이비 이단이 회개하려면 죽음을 넘어서는 것과 같은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을 죽이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저 윤석전 씨에게는 자신의 죄에 대한 철저한 시인도 고백도 없었다.

필자는 1994년 10월 31일에 신문지상을 통하여 회개한 이태화(산해원 부활의교회 담임목사) 목사의 회개도 진정한 회개하였는지 시간을 두고 더 지켜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이단자로서 아직까지 이태화 목사만큼 회개의 내용에 있어서 철저하게 시인한 사람은 없었다. 이태화 목사는 1년간 당회장권을 포기하였고, 그리고 소위 귀신론자들과의 결별을 철저하게 선언하였으며, 그리고 그들의 귀신론 그리고 이중아담론에 대한 잘못을 철저하게 시인, 회개, 사과한 것이다. 그 표현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다시 한 번 피해를 입은 여러 교회들과 교우님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다. 윤석전 씨와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지 않은가?

② 회개란 말과 행동이 같아야 진정한 회개이다.
회개란 먼저 말의 회개가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 보아야 하지만 또한 그것이 실천되는 행동의 진실까지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죄는 드러난 것보다 숨은 그 뿌리가 더 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단자들은 거짓말쟁이 아비, 사탄의 하수인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단자들만큼 거짓말에 능한 자는 없다. 그들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속성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편지 한 장의 사과문을 회개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런 회개는 한국교회에 그렇게 큰 피해를 주었던 이재록 씨도 한 바 있다. 필자는 윤석전 씨가 회개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죄가 윤석전 씨 자신의 죄보다 더 클 것이라고 본다.

③ 그런 점에서 진정한 회개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지켜 본 후에 진정한 회개라는 확신이 있을 때 선언해야 옳은 일이다.

모든 회개는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단 문제는 더욱 그렇다. 수년 내지는 수십 년 동안 많은 영혼들을 미혹하여 놓고, 그 사상으로 교회를 부흥시켜 많은 경제적 이익까지 누리고 한 장의 편지나 말로 회개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죄란 반드시 열매가 있다. 그렇다면 이단자들이 뿌린 씨로부터 맺어진 열매는 얼마나 사악한 것들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단자들은 그 열매를 거두기까지 겸손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모범을 탕자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는 것이었다“(눅 15:19). 윤석전 씨의 자세는 이 탕자의 자세와는 정반대였다. 윤씨는 사이비 이단논쟁이 있은 후에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시위라도 하듯 국내외 집회를 통하여 교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윤씨의 회개 외에도 앞으로도 한국교회에는 사이비 이단들의 회개에 대하여 적지 않은 논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절차를 따라서 어떤 과정으로 회개를 확인해야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철저한 회개를 했다고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을 두고 살펴 본 후에, 그들이 뿌려 맺은 사탄의 열매들을 최대한 거둔 후 선언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그런 모범적 사례가 한국교회에는 없다는 점은 무엇을 말해 주는지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3. 더욱이 윤씨 자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그 자신의 회개관에 비추어 볼 때 윤씨는 회개한 사람이 아니다.
평소에 회개를 윤석전 씨만큼 강조하는 목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윤석전 씨를 4단계 회개론자 박무수 등과 같이 소위 ‘회개파‘로 본다. 왜냐하면 반복적으로 해야 할 성화를 위한 회개를 구원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구원을 위한 회개는 단회적 회개인 반면 성화를 위한 회개는 반복적 회개로서 성화를 위한 회개를 구원과 연결시키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성화를 위한 회개를 부정하고 구원을 위한 회개만 주장하는 사람을 ‘구원파‘ 이단이라고 한다면, 성화를 위한 회개를 구원에 연결시켜 주장하는 사람은 ‘회개파‘ 이단일 것이다. 윤석전 씨가 성화를 위한 회개를 구원과 연결시켜 주장하는 내용은 너무나 많지만 한 번 몇 가지만 직접 인용해 보자. 그가 어떤 회개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회개관을 기준으로 그가 했다는 회개가 올바른 것인지 비교해 보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 보세요. 예수 믿고, 예수 그렇게 잘 믿고, 잘 믿는다고 사람들이 전부 다 말하는데, 여러분 보세요. 그렇게 잘 믿는다고 그가 그렇게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지옥 가 있다면 이해가 되겠어요, 되겠어요? 사람들이 잘 믿는다고 말하는데 지옥 갔다면 이해가 되겠어요? 어저께 지옥에 대한 간증 보셨을 거예요.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하느냐.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교계에서 아주 훌륭한 분 세분이 있었데요. 여러분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거요. 목사님들 앞에서만 공개되는 거에요.

그런데 목사요, 총회장이 둘이나 되고요, 감독이 하나 있고요, 아주 유명한 사람이오. 그분들은 얼마나 훌륭하게 되었을까? 봤더니요, 회개 않고 죽었다고 지옥 가 있더래요. ··· 여러분 교회에서 나 자랑하고, 자랑하고, 교회에서 그냥 수라장 만들고, 내 고집대로 할려고 들고, 내 마음대로 안 되면 속상하고, 시험 들고, 이리 저리  전화질해서 많은 사람 같이 시험 들게 하고, 당신 죽으면 꼭 지옥 가! 까불지마. 얼른 회개 혀. 아멘 혀···“(구정축복성회, 흰돌산 기도원. 96년 2월19일~22일, ‘영적 생활‘ 테이프 10번).

“하나님께 솔직하게 내 놔야 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감추면 그 죄가 소리치고 그 죄가 주님 앞에 호소한다 이 말입니다. 절대 만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어리석은 인간이 되어서 죄를 감추지 말라 이 말입니다. 목사가 뻔히 알고 있는데도 변명할 때 보면 니가 마지막 날에 목사에게 변명한 죄, 니가 그 장본인의 죄는 하나님께 회개해서 끝났어. 그러나 목사에게 변명한 죄가 또 하나 발생했다 이 말이요. 그 죄가 마지막 주님께서 공중에서 부를 때 최후에 소리치면서 고발하게 된다. ···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회개했다고 하지만 목사에게 감추어 놓은 죄악은 나중에 주님 오시는 날 소리치게 될 것이라 이 말입니다. 그 죄가 소리치는 날,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윤석전, ‘죄에 대하여‘ 9번 테이프).

“만약에 오늘밤 여러분들이 통성으로 회개할 때 내 죄를 끄집어 내지 못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무용지물이라면, 내 죄를 찾아 내지 못하여서 하나님의 아들의 흘린 피가 효력이 없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냐  이 말이요. 만약 오늘밤, 나도 세상을 뜨고, 여러분도 똑같이 세상을 뜹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내 속에 있는 죄과를 알지 못하고 그냥 세상을 떴어요.

나는 지금까지 교회에 책가방만 왔다갔다 들고 다니는 것이 나에게 큰 믿음인 줄 알고 세상을 떴습니다. 우리 하늘나라 가보니까 내 회개치 못한 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의 피의 효력이 내가 범죄한 죄들을 진작 찾아냈다면 다 용서받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이제까지 속죄받지 못했을까? 라고 회개하고 통곡해야 거기서는 소용이 없는 것, 하나님의 아들의 피는 오직, 우리 육신이 있을 때만 효력이 있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윤석전, ‘죄에 대하여‘ 22번 테이프).

“이 지구상에서 가장 미련한 인간이 죄를 감추고  이것이 감춰지고, 감춰지고, 감춰지고 해서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감춰. 자기도 모르게 감춘다 이 말이여. 자기 알고 있다가 감췄다가 회개할 때 회개하면 좋은데 나도 모르게 감춰. 내가 감춘 것을 나도 모르게 까맣게 잊어 버렸어요. ··· 이렇게 감춰놓고 못 찾는다는 것은 나중에 그것이 나오는 날, 그것이 나를 심판하고 그것이 나를 고발하고 그 죄가 소리치며 따라올 텐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감춰서 내가 모르고 있는 죄를 찾아 줄 수 있는 자가 복된 자라 이 말이여“(윤석전, ‘죄에 대하여‘ 26번 테이프).

“하나님의 원수인 죄를 붙들고 있으면 나도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저 죄인은 원수될지라도 너는 원수되지 말라 이 말이오. 죄인은 원수되어 죄인은 영원히 망할지라도 내 속에 하나님과 원수 되는 죄를 끄집어내라 이 말이여. 그리고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라 이 말이여. 죄와 분리되라 이 말이여. 분리되라 이 말이여. 죄는 죽도록, 죽다 사망하게 내버려두고 너희는 돌아 오라 이  말이여. 회개라는 것은 나를 죽이는 죄와 내 살려는 나의 의지가 분명하게 분리되는 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할렐루야. 죄는 기어코 지옥으로 가야 해요.

지옥! 지옥 가는 죄와 함께 있으면 자기도 죄와 함께 영원히 지옥 가야지 별 수 있소? 회개하란 말은 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아멘) 아멘 크게 해라. 아, 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는데 뭘 그것을 붙들고 있을라고 그래? 새로 해야겠네. 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아멘) 바꿔 말하면? 내가 앞엣 것 하면 뒷 것 해. 회개하라!(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 다시 회개하라!(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 크게 해! 회개하라!(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 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회개하라!). 아직 안 맞어. 회개하라!(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 지옥 갈 밑천을 포기하라!(회개하라!).

이거 누구보고 하는 소리여?(나!) 죄 있어? 다 내놔. 이 얼마나 하나님의 눈물겨운 음성이냐 이 말이여. ···우리는 정말로 죄는 포기하고, 정말로 하나님께 나아가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냐? 무슨 죄인이냐?‘ ‘이러이러한 죄인입니다‘ ‘그러냐? 죄는 거기다 놔두고 너만 이리로 오너라‘ ‘예! 예!‘ 죄는 밖에 있고 우리는 들어간다 이 말이여.“(윤석전, ‘죄에 대하여‘ 33번 테이프).

“그러니까 우리가 지옥 가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멸망당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자기 속에 죄를 가지고 나를 멸망시키는 죄를 내가 회개치 않는 자가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나를 죽이지 하나님이 나를 죽이지 않습니다. 다같이, 죄가, 하나님으로,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없는 사람은 심판 받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죄가 있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 죄가 심판을 받고, 죄가 멸망을 받고, 죄가 저주를 받는 것이지 절대 죄인이 아닌 인간에게는 하나님은 형벌을 하지 않는 분임을 알기 바랍니다.“(윤석전, ‘죄에 대하여‘ 30번 테이프).

“아까 목사님이 우리 청년 매질하는 거 봤죠. 내, 10번을 때렸어. 여러분 아무도 없으면 한 3, 40대 맞았을 거요. 만약에 목사님 방에 불러 들였으면 3, 40대 맞았을 거요, 진짜. 3, 40대가 뭐요. 언제까지 두드려 패냐, 응? 맞다 맞다 견디다 못해서 무릎꿇고 ‘목사님, 잘못했어요. 내가 죽일 놈이예요. 다시는 안 그럴 게요, 목사님.‘ ‘응? 지옥은 그보다 100억만 배 고통스러운 곳이다.

일어나!‘ 또 맞어. 또 ‘목사님, 더 이상 못 맞겠어요.‘ ‘일어나‘ 또 맞아야 되요. 또 맞아야 되요. 왜 지옥은 억만 배 고통스러운 곳이오, 억만 배. 네가 이렇게 뚜드려 맞고라도 네 마음이 깨끗하고 주님, 모셔야 된다 이 말이오. ··· 오늘 만약에 회개의 농도가 그걸 털어놓을 만큼 안 되는 사람은 내 쫓아 내려가서 뺨을 내 동서남북으로 우리 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왜냐? 나는 여러분을 살려야 돼.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번 주간에 내게 맡겼어“(전국청년연합하기성회 흰돌산 기도원. 97년 8월4일~7일, ‘청년아 영원한 플러스 인생을‘ 6번 테이프).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과 에, 요한1서 3장 8절은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이런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마귀의 일을 멸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타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회개를 하는 즉석에서 마귀의 불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해 주세요‘ 하면 그 죄를 누가 범했느냐? 마귀가 범했다 이 말이오. 그러니 우리 인간은 마귀의 불의를 드러내는 완전한 일을 우리 인간이 해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낮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왔다면 김일성이 같은 것, 고르바쵸프 같은 것 하루 아침에 예수를 믿게 할 수 있어요. 그까짓 것 무엇이 무서워서 그 양반이 못합니까?“(1990년 5월 10일 연세중앙교회 “복 주어 거룩하게 하신 날“ 20번 테이프).

“00아, 너는 마음 속으로 남학생을 보고 음욕을 품은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여학생: 있어요). 있지! 많지!(예). 그러면 성경 속에 지금까지 음란한 마음, 음욕을 품고 간음한 사람을 용서해 본 사실이 있더냐? 그러면 만약에 그 음욕을 그대로 품고 있으면 누구의 나라에 속한 거요?(마귀). 누구의 나라에 속한 거요?(마귀). 그러면 여기 앉아 있으면 뭐해? 그냥 숨 끊어지면 그 나라에 가는데. 그 나라는 지옥인데 앉았으면 뭐해? 앉았으면 뭘 혀?

자, 오늘밤에 자다가 누군가가 하나 죽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우리 겉으로는 모르지만 만약에 그 속에서 00이처럼 음욕을 품은 그대로 죽었다면 그는 어디로 가겠어요? 십자가의 피는 내 죄를 끄집어내서 그 앞에 내 놓을 때 용서받는 거요. 그래야 그 피의 효력도 있는 줄로 알아야 해요“(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 97년 7월 21~24일 초교파 중고등부 하기 성회 ‘네 인생을 빼앗기지 말라‘ 6번 테이프).

“마귀가 회개할 기회가 없어요.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통해 범죄한 모든 죄가 다 마귀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우리의 죄는 전부 마귀에게로 또 가고 또 가고, 그 죄 때문에 영원히 우리가 죽어야 할 죄를 그가 졌다면 그도 죽어야죠. 맞습니까? 우리가 죄 때문에 죽는다면, 그가 짓게 했다면 죽어야죠. 그래서 마귀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할 때마다 우리 죄는 그에게로 돌아가고 그에게로 돌아가고 그는 그 죄 때문에 영원히 망하게 되나니, 우리는 마귀를 멸하는 예수와 동역자는, 회개하는 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 97년 7월 21~24일 초교파 중고등부 하기 성회 ‘네 인생을 빼앗기지 말라‘ 7번 테이프).

회개의 객관적 기준은 성경이다. 그러나 윤석전 씨 자신의 주관적 회개관에 의해 그를 평가해도 윤씨는 회개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윤씨 본인은 잘못이 없다는데 다른 사람은 용서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이단자 윤석전 씨 자신의 회개는 물론 그의 회개를 주장하는 사람의 회개를 촉구하며 글을 맺는다.
(월간<교회와신앙> 199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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