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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은 정의로운가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한복협 강연(上)
2003년 04월 23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전 튜빙겐 대학교 선교학 교수

숨막혔던 이라크 전쟁이 미·영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부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이번 전쟁을 기독교인은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 교회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지난 4월 14일에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발표회가 열렸다. 현재 독일 고백교회 신학회 회장인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는 강변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월례조찬기도회에 참석,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이라크 전에 대해 강연했다. 이에 본지는 이날 발표된 전문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라크의 사담 정권과 싸우는 미·영 연합군의 전쟁은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깊은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자신들 가운데 평화를 실현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라크 전쟁이, 그 원인이 무엇이든, 성경적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률적이지는 않다. 많은 나라에서 생각이 엇갈리고 있다. 같은 교회나 교단 안에서도 상반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 미국의 예를 들면 미국침례교회연맹은 이 논쟁적인 문제에 대해서 입장이 갈리고 있는데 보수적인 남침례교단만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부시가 속해 있는 감리교단은 부시의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강경한 구호를 외치며 열정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호전적인 전략을 정죄하며, 그것은 침공을 당한 나라에 극심한 피해를 입히며 수많은 인간의 생명, 특히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지적한다. ‘충격과 공포’라고 자랑스럽게 명명한 파괴적 공습이 무고한 시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안식처를 빼앗아가는 두려움과 혐오의 공습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쟁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을 정책의 수단으로 정당화할 수 없고 전쟁에 참여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전쟁이나 일반적인 군사대결에 대한 문제는 일방적인 어떤 입장표명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성급하게 부시와 그의 동료들을 무자비한 정책의 입안자들이라고 정죄하기 전에 우리는 조지 부시가 진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그가 체니 부통령과 파월 국방장관 등이 참여하는 국무회의를 개회할 때 정기적인 아침 기도와 성경 공부를 함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기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 민주사회의 악한 적과 싸우고 있으며 특히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의해 생존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적과 싸우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스라엘 국가와 대항해서 싸우는 아랍 국가들을 사담 후세인이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지원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평화로운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팔레스틴의 자살 공격을 격려하며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2만5천불을 지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부시의 전쟁정책은 많은 미국 시민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들은 9·11 사건이후 앞으로 아랍의 생화학무기 또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특히 미국의 정치 및 경제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계 미국인들과 그들의 시온주의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첫째, 침략자에 대항해서 무기를 들고 전쟁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그런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전쟁을 지원하는 것이 옳은가? 둘째, 오늘의 이라크 전쟁은 공의로운 전쟁인가?

성경을 읽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의 첫번째 부모가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 쌓게 된 인간의 범죄와 인간간의 증오가 결국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전쟁을 죄악을 심판하시는 수단으로 허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또한 현대의 세계도 사탄의 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인간이 서로 증오하고 독재적인 권력 구조를 만들어 서로 싸우며 고통과 억압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상의 종말이 오기까지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구약 성경은 지금의 악한 시대에는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의 타락한 시대를 대치하시고 메시아를 보내어 그의 공의와 평화의 왕국을 가시적으로 시온산에 세우실 때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 때에 가서만 전쟁이 그치고 나라들은 전쟁을 배우지도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사 2:2~4).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라고 격려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어 보내실 때 더 무서운 전쟁인 보이지 않는 악령과 대항해서 영적인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을 하라고 내어 보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의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전쟁은 때로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으며, 세례 요한처럼, 불의와 무자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군인의 직업도 가질 수 있다고 인정했다.

사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교만을 벌하고 그를 권자에서 몰아내는 전쟁이라면 그런 전쟁에 개입하실 수도 있다(눅 1:52).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시대에 아돌프 히틀러의 반 기독교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원리에 기초한 무자비한 세계제국 건설의 시도를 부서뜨리므로 전쟁에 개입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자들은 항상 불가피한 전쟁들의 사건을 취급하면서 ‘공의로운 전쟁’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기독교 이전 시대의 사상가로 이 문제를 취급하며 방향을 제시한 사람은 희랍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북 아프리카의 교부 어거스틴이 기본적인 기준을 설정했고, 그 후 종교개혁자들인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이 그것을 발전시켰다.

루터교회의 중요한 교리 문서인 아우그스버그 신앙고백 16조항은 “그리스도인들이 악을 범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통치자들과 심판자들로서 무기를 사용하여 공의로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그 문서는 방어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은 어떤 전쟁도 정당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제정했다. 첫째, 전쟁의 불가피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적법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 둘째, 분명한 전쟁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 즉 무기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분명한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큰 악을 제거하는 작은 악이 되어야 한다. 셋째, 전쟁의 수단이 그 전쟁으로 극복하고 제거하려는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초래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방어하고 보호하려는 선한 목적에 적절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현대에 와서 이 문제는 전쟁의 ‘부수적인 피해’로 많은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고 고통을 당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전쟁은 마지막 수단으로 채택되어야 한다. 즉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모든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을 경우에만 채택되어야 한다. 다섯째, 전쟁은 예측할 수 있는 시간 안에 끝날 수 있다는 계산을 가지고 수행해야 한다. 여섯째, 그와 같은 전쟁의 결과는 전쟁을 초래케 한 재난보다 훨씬 더 좋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잣대로 재어볼 때, 우리 시대는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공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몇 개의 전쟁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합군이 여러 나라들을 나치 독일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켰고 특히 히틀러 강제수용소의 대학살에서 살아 남은 유대인들을 구해낸 세계 제2차 대전을 생각한다. 물론 연합군이 사용한 전쟁의 수단이 다 적절했고 변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군사적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가해서 함부르크, 드레스덴 등 여러 참화를 입은 도시에서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은 것은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을 통해서 여러 아시아 나라들, 특히 한국이 일본의 무자비한 정복과 억압에서 해방되었다. 공산주의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을 때 유엔의 결의로 많은 미국 군인들이 달려와서 남한의 친구들을 도왔고 4년 동안의 희생적인 전투로 남한의 자유와 특히 남한 교회의 자유를 확보해 주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남한의 상태는 북한의 것과 같았을 것이다.

민주 국가들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번영한 한국은 없었을 것이고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못한 세계 곳곳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려는 생동한 한국교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서독은 저들이 누리는 평화와 안녕이 ‘공의로운 전쟁’의 유익한 결과에 기인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쟁 기간동안 미국은 자유 세계의 강한 보루였고 공산주의 진영의 임박한 정복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희생을 수행했다. 많은 한국인들과 독일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미국의 보호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정책이 (의로운지에 대한) 비판과 의심을 받을만한 이유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평화주의가 더 큰 악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악하게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세력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마 영국 수상 챔벌린이 1938∼1939년 히틀러에 대해 취한 유화정책이 그로 하여금 다른 유럽 나라들과 유대인들에 대한 침략의 계획을 계속하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리를 견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타당하며 따라서 자유를 변호하려는 모든 노력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라고 자동적으로 정죄하는 일은 삼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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