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성/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교수

장애인의 달을 맞이해 실시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장애인 차별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5%가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요 원인은 일반인들의 편견 때문인 것으로 장애인들은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로 다양한 부분에서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장애인의 38.9%는 가족생활에서도 차별을 느끼고 있으며, 노동과 관련하여서는 63.9%가 차별을 경험하였고, 이동과 관련하여서는 75.9%나 차별에 시달리며 불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천년 전 예수님이 계실 때도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장애인들이었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인은 여전히 차별과 편견 속에 소외돼 있다는 것은 우리 인류 사회가 그만큼 발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서구 복지사회에서는 장애인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추세이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회가 그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복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창출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립생활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정하는 자유를 갖는 것을 말한다. 즉, 장애인 자신의 건강관리, 금전관리, 취침시간과 같은 모든 일상의 활동들 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결정, 금전관리, 거주지 결정까지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에 의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의사결정을 하거나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함에 있어 여러 가지 가능한 대안 중에서 다른 사람의 의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을 하도록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이루기 위해서는 복지서비스를 통해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과 원조를 제공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장애인복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인권선언’(1948)을 필두로 서구사회의 변화 및 서비스 개발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서비스의 수혜자인 장애인 자신들에게도 커다란 자각을 일깨우면서 사회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강조되었다. 발전단계를 거칠 때마다 장애를 정의하고 바라보는 관점 혹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수반되었는데, 이전과는 다른 전제, 신념, 가치, 서비스 모델, 실천모델들이 도입되면서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의 방향도 바뀌어 왔다.

장애인의 복지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장애인은 인간으로서 지니는 모든 권리를 가지며, 그 권리의 양과 질은 다른 시민과 같다는 것이다. 자립생활의 원리도 다음과 같은 장애인의 권리에 입각하고 있다.

① 모든 인간의 삶은 가치 있는 것이다.

② 어떠한 손상을 입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③ 장애인은 신체적 반응, 사회적·물리적 반응, 지능적인 반응에 있어서의 기능장애 및 감각의 손상, 정서적인 불안 등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자신들의 생활전반을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④ 장애인은 사회전반을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에서 자유권 사상과 생존권 사상을 바탕으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규정함으로써 장애인 복지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헌법 제2장은 이러한 자유권과 생존권을 개괄적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의무를 지닌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노동의 권리를 갖고 또한 근로의 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장애를 지닌 국민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1960년대부터 대부분의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정상화(normalization)의 이념을 장애인복지의 기본 사상으로 받아들여 장애인의 사회통합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이후 장애인복지의 동향은 의료재활, 교육재활, 직업재활 중심의 의존적 복지를 탈피하여 사회통합을 추구하게 되었고, 시설중심에서 지역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오늘날 장애인복지는 통합적인 복지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과 함께 사회적 존재로서 가지는 시민적 권리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존엄성, 생명권, 생존권 등이 포함된 권리실현과 함께 사회접근권, 기회균등이 포함된 권리보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틀 속에서 장애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전인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내 사회환경의 개선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장애인의 불편함은 장애인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사회통제 기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탈시설화를 위한 건축물이나 지역사회 환경상의 보완이나 수정,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통합에 대한 시민태도와 인식의 성숙이 우선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립생활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 장애인복지는 사회의 공유된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 만큼 비장애인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다양한 사회환경적인 장벽들을 제거함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는 사회성을 지닌 것이며, 장애인의 인권보호와 장애인 문제는 사회연대 책임의 기초 위에서 국가의 법적 책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그동안 축적된 잠재력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여야 한다.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장애인 인권운동과 국제정책 등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복지의 전달체계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장애인을 위한 재활기관, 전문인력, 정부예산 등 장애인복지 자원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하고 수준도 미흡한 상황이다. 물론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차원의 장애인복지행정체계가 완비되어야 하며, 민간 장애인복지 시설들은 효율성을 높이고 통합적이며 전문적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민간 사회복지기관 및 시설들의 연계·협력체계를 강화하여 효과적인 복지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재구조화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복지의 추세가 지역복지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에 위치한 교회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리하여 민간부문 복지총량의 극대화를 이루고 기존의 복지자원의 영세성으로 인한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민간의 복지재원이 적극적으로 동원되고 상호 보완되면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교인들의 적극적인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 뿐 만 아니라, 노인 및 아동을 포함한 모든 취약계층에게 정상화의 이념이 실현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하지만 교회와 같은 민간 복지자원의 활용은 정부의 복지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 시점에서 정부의 사회보장관련 예산증대가 절실히 요구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여 사회통합 효과가 큰 복지나 노동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기초로 공공과 민간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연계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한편 한국교회는 교인들이 물질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가치를 지니고 개인이기주의보다는 상호 공존하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복지전달체계의 구축과 함께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연대의식과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복지사회가 건설된 후에야 진정한 장애인의 자립생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 사회를 정상으로 만드는 첩경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어느 부문보다 교회에서 먼저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제거하고 장애인과 함께 하는 태도를 키워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