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장로교는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할 때 지역별로 나누어 보냈다. 서울지역에는 언더우드 선교사, 평양지역에는 마펫 선교사를, 그리고 대구에는 1893년 베어드(William M. Baird) 선교사를 파송했다. 부산을 통해 대구로 들어온 베어드 선교사는 4월22일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줬는데, 이것이 대구제일교회(나요섭 목사)의 시작이자 대구지역 복음의 시작이었다. 베어드 선교사가 서울로 옮겨간 1899년, 애덤스(James E Adams) 선교사가 교회를 인계했다. 그 해 12월24일에 존슨(Woodbridge O. Johnson) 의료선교사가 교회 안에 제중원을 설립했고, 이것이 동산의료원의 시작이었다.

동산의료원 뒤에 있는 간호학부 건물을 지나 넓은 공터를 가로지르니 작고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하나 보인다. 담은 없고 앞뜰에는 잔디를 곱게 심어서 깔끔한 느낌을 준다. 입구에 있는 큼지막한 바위에 ‘의료선교 박물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병원에서 개척한 교회에 걸려있던 종

들어가면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왼편에 있는 낡은 종탑이다. 그런데 종탑치고는 이상한 모양새다. 안내글을 보니 1999년 ‘전국담장허물기’ 행사를 하면서 허문 의료원의 정문 담장과 중문기둥의 일부를 이곳에 옮겼고, 초창기 병원에서 개척한 교회에 있던 종들 중에 하나를 걸어놓은 상징물이었다.

‘의료선교 박물관’은 의료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세 동의 주택을 개조한 것으로, 모두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 돼 있다. 건물 뿐 아니라 주변 나무나 정원 등이 잘 꾸며져 있다. 동산의료원 길 건너편은 서문시장이어서 많은 차량과 인파로 북적댄다. 때문에 늘 시끄러운 동산의료원에서 불과 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이토록 한적한 장소가 있다는 것이 의아하다. 작고 아담한 세 동의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주는 느낌이 차분해서 좋다.

첫 번째 건물은 선교박물관이다. 1910년경 지은 서양식 건물로 선교사 스윗즈 여사가 주거하던 집이었고, 이후 병원에서 사택으로 사용하다 1999년 병원개원 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선교박물관으로 꾸몄다고 한다. 실내는 주택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넓지는 않지만 아담하다. 1900년도에 사용된 성경을 비롯한 여러 선교유물들과 선교사들의 당시 사진이 전시돼 있다. 특히 영남지역의 선교역사와 동산의료원의 의료선교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계단을 올라 2층에 오르니 구약시대 성막을 재현한 모형이 있다. 

선교박물관을 나와 앞쪽에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오래된 서양식 건물 두 동이 또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건물 앞에는 작고 아담한 외국인 묘지가 있다. 대구 최초의 외국인 묘지인데, 애덤스 선교사의 부인인 넬리딕 여사의 묘를 비롯해서 10여 개의 묘비가 서 있다.
묘지 뒷편 왼쪽에는 선교사 챔니스의 주택을 복원해서 의료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오른쪽의 블레어 선교사의 집은 2001년부터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선교 박물관’의 바로 뒤편에는 대형교회의 예배당이 화려한 대리석 건물로 서 있다. 거대한 예배당을 보며 앞쪽의 작은 주택에 살던 선교사들의 희생에 의해 맺혀진 열매라는 뿌듯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선교사들의 주택을 박물관으로 보존하기 전에 화려한 예배당이 먼저 지어졌기 때문이다. 개교회의 영광 앞에 그 지역 복음의 뿌리가 된 기독교 유적은 차순위로 밀렸다. 게다가 큰 예배당을 짓기 전까지 1930년대부터 사용해오던 오래된 예배당은, 새 예배당 건축 후 관리 소홀로 화재가 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많지 않은 기독교 유적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