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요한 목사(황창연) / 선교사

2부 서론
 

교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직장이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조직과 달리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고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하는 사업이나 활동은 자격 조건이나 업무 능력을 직장처럼 엄격히 요구하지 않고 신앙심에 의한 자발적 헌신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직장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은혜롭게’ 일하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하심을 우리의 게으름과 불충성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교회 직분자들로 인해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많은 분쟁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까!

주님이 찾으시고 부르시는 사람은 철저히 헌신된 제자이지, 적당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원봉사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친히 세우신 사도들과 바울 사도 및 그 밖의 제자들이 모두 주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걷다가 순교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잊어버립니다.

예수를 따르면 만사형통, 물질의 축복, 자녀의 성공, 육신의 건강 등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믿고, 또 교회가 그렇게 성도를 가르칩니다. 제자도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잘못된 것인지 근원을 알아야 바로잡을 수 있는데, 저는 그 출발점이 십자가 영성의 회복이라고 믿습니다.

십자가 영성의 개념은 앞서 제1부에서 다루었습니다. 제2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십자가 영성이 추구하는 가치 및 성숙한 제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1장
 

광야 훈련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온실이 아닌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생활 40년은, 애굽에서 이방 신을 섬기며 애굽인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나안 생활에 적합한 체질로 거듭나는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광야 생활을 거쳤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세례 요한,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공생애 시작 전 광야의 훈련을 받으셨습니다.
 

그 시대에도 풍요를 좇는 세상의 위력은 강력했고 세상의 유혹도 오늘날과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서기관들은 광야를 꺼리고 화려한 주류사회에 몸담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부패와 타락에서 건지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안락하고 풍요로운 도시보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광야를 택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광야’라는 단어가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전 풍요의 시대에는 보지 못했던 풍조입니다. 찬양 가사나 설교 제목, 큐티 묵상집에도 광야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황폐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로 견고하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던 세상에서 이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미래는 불확실하다’라는 사실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성경에서 말하는 광야 생활을 자신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현실에서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세례 요한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저는 선교지에 나갈 때 세례 요한을 생각하며 제 이름을 요한으로 정했습니다. 그가 가졌던 광야의 영성, 십자가 영성을 본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광야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23).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세례 요한의 출생 기사는 복음서 중 유일하게 누가복음 1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는데 당시 제사장직은 세습되었기에 세례 요한은 자동적으로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제사장으로서 있어야 할 성전이 아닌 광야(빈들)에 나와 살았습니다. 그것도 엘리야를 연상케 하는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광야는 익숙하게 의지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곳입니다. 낮에 광야에서 눈에 보이는 색은 모래색과 하늘색과 하얀 구름 색뿐입니다.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달과 별 이외에 땅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더 가까이 크게 다가오는 곳 또한 광야입니다.
 

수년 전 이스라엘에 갔을 때 세례 요한이 살았던 광야와 비슷한 환경인 쿰란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사해 부근 황량하기 그지없는 유대 광야 지역의 모래와 바위로 이루어진 동굴에서 지냈던 수도자들은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식량을 먹으며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면서 성경을 필사하고 암송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쿰란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인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제사장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었던 편안한 삶의 자리를 떠나 이런 광야 생활을 한 데는 분명 아버지 사가랴가 주의 천사에게 받은 예언을 전해 들은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가랴가 받은 계시는 아들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해 세운 백성을 준비하는 자’(눅 1:17)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구약 말라기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길을 준비하는 사자(엘리야)’로 살도록 택함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세례 요한은 부모에게서 그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어려서부터 듣고 그 사명을 이루며 살도록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주관적인 확신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과 씨름 끝에 마침내 결단을 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가정과 성전을 떠나 광야로 나가 고독과 극심한 결핍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받고자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세례 요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얼마나 부담되고 두려웠을까요?
 

생명체가 살기 어려워 인간의 한계 상황에 늘 부딪혀야 하는 광야에서 자신의 소명을 찾으려 몸부림쳤을 세례 요한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목숨을 내걸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왜 저에게 이런 무거운 멍에를 지게 하시나요? 제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고…” 하며 울부짖는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즉시 순종하여 사역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 훈련을 통해 자기 정체성과 소명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였고, 받은 사명대로 사역을 시작하여 요즘 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와 회개의 세례 사역을 보며 그가 그리스도인지 혹은 엘리야인지 묻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은 주저함 없이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요, 신랑의 친구라고 대답합니다(요 3:28-29).
 

그런데 세례 요한에게 구름 떼같이 몰려왔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등장하자 그에게로 쏠리며, 심지어 요한의 제자 중에도 그를 떠나 예수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런데도 세례 요한은 기꺼이 신랑 옆에서 기뻐하는 친구 자리를 묵묵히 지켜 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어떻게 이런 영성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광야에서 연단 받으면서 주변의 어떤 환경에도 요동치 않고 하나님과의 최단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의 사역 기간은 매우 짧았으나 예수님은 그가 바로 성경에서 예언한 엘리야이며,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저는 신학대학 재학 시절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기 위하여 기도와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하며 비교적 고독하게 보냈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면 마치 저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십대 때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기도를 드렸는데, 가정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여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몇 년 동안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 육체에 큰 병을 얻으면서 다시금 회개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고 신학교에 들어갔기에 저의 학교 생활은 평범한 친구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방학이 되면 다른 친구들처럼 북적이는 모임과 낭만적인 여행을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가까이서 만날 수있는 조용한 시간과 공간을 찾아 기도하며 선교의 길을 열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3학년 때 대만에서 견습 선교사 훈련에 참여할 전도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를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하고 지원하여 1년을 대만에서 보냈습니다. 처음 해외에 나가 접한 대만은 기후나 언어,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생소하고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빠듯하여 늘 배가 고팠고, 차비를 아끼느라 먼 통학 길을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고독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그때 1년간 휴학하고 광야와 같은 곳으로 자원하여 갔던 것은,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며 그분의 음성 듣기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저는 그곳에서 중국 선교에 대한 비전을 받았고, 이후 중국 대륙에 들어가 25년간 선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종은 부르심을 확인하기 위해 광야의 훈련을 꼭 거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도 바울의 광야
 

위대한 사도 바울의 영성 역시 광야의 영성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회심하고서 가까운 혈육과 의논하거나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광야)로 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5-17)
 

성경에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무엇을 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바울의 이러한 행동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당시 교회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인정을 받고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도 없기에 사도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영향력 있는 사도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효과적인 사역에 더더욱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사도들이 한 명도 없는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바울이 아라비아로 갔다는 것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는 말입니다.
 

모세, 다윗, 요셉, 엘리야 등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아라비아 광야에서 더 깊이 만나고 체험했을 것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일한 목표로 갖는 영성이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한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영성을 잘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예루살렘과 아라비아 광야, 두 갈래 길에서 계속적으로

선택하며 사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사람의 인정을 받는 성공적인 삶을 추구하는 길이라면, 후자는 사람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입니다.
 

어떤 후배 목사가 임지 결정을 앞두고 찾아와 어느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 경험상 더 불편하고 어려운 곳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제자를 찾으시지,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원치 않으십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고 다른 사도들의 인정도 받은 적 없지만,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사도라고 천명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 받은 계시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열두 제자는 3년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제자훈련을 받았지만, 바울은 3년간 광야에서 성령을 통해 주님께 직접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주를 위해 선교하면서 주님의 제자도를 실천하였습니다. 그만큼 광야에서의 훈련은 특별하고도 강도가 높았습니다.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난 환경 자체가 훈련의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편안한 교회나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제자훈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종을 훈련시킬 때 최적의 훈련장으로 광야를 택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놓아두시는 광야는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역만리 먼 타향이 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결혼 생활이 광야일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동안 자신이 인간적으로 의지해 왔던 것을 더는 기대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외롭고 낯설고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빛이 없는 곳에서 밤하늘의 쏟아지는 찬란한 별빛이 더 밝게 보이는 것처럼, 익숙한 환경이 사라져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길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 또한 광야입니다. 그러기에 광야는 ‘버림’과 ‘새로 채워짐’의 장소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훈련이 바로 광야 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