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 목사 / 빛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오늘 저녁에는 유독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서상균 선생님이 생각난다. 서울 법대를 졸업하신 분이 무슨 사연인지 시골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계셨다. 하얀 얼굴, 잘 생기신 분, 항상 유머러스하게 말씀하고, 영어도 잘 가르쳐 주셨다.
 

어느날 학교가 끝날 때, 광고를 하셨다. 어느 중학생 1학년 집에서 아르바이트 선생을 구하는데 지원자는 선생님을 만나러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가족은 모두 서울에 살고, 할머니와 홀로 살고 있었는데 가르치며 공부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신청하러 갔다.
 

선생님은 나의 신청을 거절하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후일 그 거절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자기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생이 다른 애를 가르치면서 자기 공부 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때 하신 말씀은 전교 3등 안에 있는 학생은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전교 1등이었다. 완곡하게 나의 청을 거절하셨다.
 

한 번은 교실 안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교실 안에서 주먹으로 주름잡았던 배○○이라는 급우와 붙은 것이다. 그 친구는 중 3 체중이 60kg으로 우리 반에서 주먹이 제일 쌨다. 그런 녀석이 나를 건드리기에 붙어 버린 것이다. 한창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싸움질을 하는데 서상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주먹이 제일 쎈 녀석과 얌전하기만 한 녀석이 붙었다는 데 조금 놀라셨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은 내 호주머니를 뒤졌다. 그런데 내 호주머니에서 할머니가 성당 다닐 때 사용하였던 쇠로된 묵주가 나왔다. 왜 그 묵주를 내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의아하게 생각하셨고, 다른 말씀하지 않고, 두 녀석을 모두 자리로 보내 주었다.

70년대 남자중학교 3학년 교실

얼마 후 6월 첫째 주일, 내 발걸음은 발만 교회를 찾아갔다. 죽음과 허무가 느껴져서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고, 담임 선생님이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았다. 그날 이후 나는 교회 생활이 삶의 한 부분이 되었고 나의 진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의 진로를 위해 새벽이면 인근 교회 차임벨 소리에 깨어나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의 여정에 누군가의 영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의 삶에 그 길을 열어 주신 분이 있다면, 서상균 선생님이시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밝은 표정으로 학생들을 대해 주셨다. 가끔 교무실에서 갖게 되는 스트레스를 교실에서 표현하기도 하셨는데, 그 표현은 항상 유머러스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실 것이 확실하다. 언젠가 그곳에서 만나게 되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감사의 마음으로 표현할 것 같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은 감사와 감동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면, 귀한 삶을 사는 것 아닌가? 쉽게 잊혀지는 사람도 있고, 씁쓸한 기억으로 남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도 마음에 감사와 감동을 주는 분도 있다. 그런 분을 만났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교인들, 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추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