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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보시겠습니까?
율리의 사색(6)
2024년 07월 10일 (수) 10:45:44 전성옥 집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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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옥 집사 / 부산 거성교회

 

고즈넉하다. 도심 속의 아파트 고층은 늘 고즈넉하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철저한 단절 속에 놓여있는 섬, 하늘에 떠 있는 ‘공중 섬’이다. 닫혀있는 베란다 샤시, 삼 겹 유리에 입매가 꼭 맞아떨어지는 고무 창틀. 완전한 봉쇄, 빈틈없는 차단이다.
 

 

그렇다고 집 안에서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납작한 벽시계는 조용히 발을 옮긴다. 행여 소리를 내었다가는 숨긴 무엇을 들켜버리기나 하는 것인지 숨을 삼키고 가만히 벽에 붙어서 긴다. 텔레비전도 커다란 검은 정물이다.


내가 원하는 소리는 언제나 듣게 될까. 계속해서 베란다를 들락거리고 있다. 아침, 허공 끝자락에 걸린 하늘이 낡은 기왓장처럼 희끄무레했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한다. 한때 비, 낭보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린다. 빗방울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칸칸이 베란다를 감고 있는 고층 아파트는 여간 세차지 않으면 빗소리를 들을 수 없고, 비를 알아차릴 수조차 없다. 비를 소리가 아닌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까마득한 저 아래, 길을 걷는 이들이 우산을 썼는지, 땅이 젖어 색이 짙어졌는지를 살펴야만 겨우 비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저 아래, 까만 아스팔트. 물로 코팅된 길, 흔들리는 우산들. 비가, 시작되었다. 베란다 얼개에 물 구슬이 달리고 물벌레들이 유리창을 긴다. 허공을 빗어 내리는 빗발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비 무리. 방향 잃은 물벌레들은 유리 절벽을 사선으로 기고 직선으로 긴다. 길게 자랐다가 툭 끊어진다. 끊어진 토막이 다른 것의 토막과 이어진다. 아프지 않을까. 안전한 곳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을까.


차단을 해제한다. 샤시를 열어젖힌다. 허공으로 내민 손, 빗방울이 닿는다. 손에 닿은 빗방울이 가슴으로 떨어진다. 피아노 건반처럼 콕콕 가슴을 누른다. 눌린 자리마다 말간 물이 몽올몽올 솟아오른다. 미지근한 무엇이 얼굴을 타고 내린다. 툭, 턱 끝에서 떨어지는 물벌레 토막 하나, 그리고 둘.


비가… 세차게 쏟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그 빗속에서 한바탕 원 없이 울어버렸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울고 싶을 때가 참 많다. 무너져 내리고 싶은 날들도 무수하다. 사람에 지칠 때가 얼마나 많던가. 상황에 시달릴 때는 또 얼마나 잦던가. 그리고 울 일이 어디 꼭 외부에서만 생겨나던가. 내 모습을 들여다보아도 울 일이 줄을 섰다. 나는 왜 이만큼 밖에 되지 못할까 울고 싶고,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워 울고 싶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할 수 없어서 울고 싶고, 마음이 시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탓에 울고 싶다. 어른이 되어서, 게다가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도록 살면서 이 무슨 물러빠진 소리이고 주책없는 감성팔이인가.
 

하지만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듯이 울고 플 때는 울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향한 관대함이 있다는 것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정화 시킬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울음은 인간의 시작과 함께한다. 울음으로 출사표를 던진 아기들, 그들은 많이 울고 많이 웃는다. 좋고 행복하면 웃고 싫거나 불편하면 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웃고 우는 것은 가장 솔직한 자기 고백이며 가장 정결한 자정 행위일 수 있다. 그만큼 용기 있다는 말이며, 그만큼 영혼이 건전하다는 증거도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기뻐하지도 못하고 원하는 만큼 울지도 못한다. 어찌 된 일인지 사람의 사회에서는 덜 웃고 덜 울어야 양식 있고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유실되고 있다. 태초의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관대함과 자기 정화력을 상실하는 시대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 상실을 일컬어 강함이라 말한다.


한없이 강함을 요구하는 사회, 시퍼런 호숫물만 보아도 눈물이 툭 떨어지는 여자더러 여자를 하지 말고 어머니를 하라 한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천하무적이 되기를 바라는 시대 정서, 어떤 여자는 차를 번쩍 들었단다. 제 아이가 차 아래 깔리자 순간적으로 슈퍼우먼이 되었다면서.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내가 차에 깔리면 내 엄마도 당연히 차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다 반찬값과 아이들 학비 정도는 너끈히 벌어야 엄마 된 체면이 서는 시대이다. 울고 싶은 여자들이 구석구석 빼곡하다.


울지 않는 것을 강함과 직결시키는 논리, 그 논리를 앞세워 남자들도 울음을 박탈당한다. 참으로 인색하게도 한국 남자들은 일평생 세 번 밖에 울 기회를 얻지 못한다. 태어날 때, 부모를 떠나보낼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만 울어라 한다. 어찌해서 울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인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마저도 참았노라며 훈장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과연 그 사람이 강한 남자일까.


그렇다면 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아마도 강하다는 것은 지지 않음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지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찌 늘 이기기만 할까. 이기는 사람보다 지는 사람이 훨씬 많은 세상이고 이길 때보다 질 때가 훨씬 많은 것이 인생이다. 게다가 유리창의 물벌레처럼 쉽게 끊어지는 것이 요즘의 ‘직장수명’ 이다. 울고 싶은 남자들이 사방에 빼곡하다.


그러나 울 곳이… 없다. 가족을 붙들고 울면 그 길로 온 집안에 소소리바람이 분다. 바람에 속살이 패이는 식솔의 모습은 우는 이를 더 울게 만든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테이블에 엎어져 우당탕 울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주사라는 흉이 무섭다. 지인더러 너 붙들고 좀 울자 하고 싶어도, 그 너도 울고 싶을 수 있고, 다행히 울고 싶지 않다면 그의 바쁜 시간을 내 눈물로 축내기 미안하다. 그리고 울고 난 뒤의 그 객쩍음은 또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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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몰래 운다. 혼자 운다. 내 상황을 남에게 옮기지 않을 확실한 검증이 된 대상 앞에서야 비로소 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혹은 말 한마디 하지도 못 하는, 그래서 한바탕 푸념을 늘어놓고 처량 맞은 눈물을 찔찔거려도 흉보지 않을 신神 앞에 주주물러 앉아 자신의 가슴을 비집어 연다. 그리고 신이 내 눈물을 거둬 주었다 위로받는다. 제 눈물이 스스로를 위로하였음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답 없는 상대를 향해 일방적으로 우는 것만으로 양이 차지 않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를 붙들고 운다. 의사들은 말한다.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그들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비싼 진료비를 내면서 의사가 내 마음을 고쳐 주었다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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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은 비가 오니 그냥 울자. 하늘이 말간 날 울면 그것은 또 너무하지 않은가. 비가 오니, 하늘이 우니 나도 운다며 한번 울어보자. 혹여 길을 가다 내리는 비를 오롯이 맞으며 우는 사람을 보아도 무심히 지나치자. 아니, 내리는 빗속에서 울 수 있는 저 사람은 얼마나 용감하고 또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부러워할 일이다.


누가, 너를 붙들고 좀 울자하면 두말없이 어깨를 내어주자. 나에게 기대 울고 싶다는 것은 나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것이며, 그 시간은 내가 그의 신이 되는 시간이다. 기꺼이 신이 되어 주자.


전화번호부를 들여다본다. 누구의 어깨를 붙들어 볼까. 붙들 어깨가… 없다. 비라도 세차게 내려라. 차에 시동을 걸고 낯선 곳으로 비를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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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옥 집사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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