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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의 마지막 여름
율리의 사색(5)
2024년 07월 03일 (수) 11:20:58 전성옥 집사 webmaster@amennews.com
   
 

전성옥 집사 / 부산 거성교회


이제, 저 나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서 어떤 최후를 맞게 될까. 저 측은한 팔자를 어찌할꼬… 길을 오갈 때마다, 나무들을 볼 때마다 속이 아린다.
 

양정에서 부전에 이르는 오래된 도로 '부전로', 애견가게들이 밀집한 이 길이 도로 확장공사로 어수선하다. 좌우에 늘어선 나이 든 플라타너스들. 길 가장자리에 머리를 맞대고 줄줄이 늘어서서 여름이면 푸른 그늘을 드리워주고 가을이면 노랑 터널을 만들어 주던 나무, 그 나무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길 가운데로 내몰려 있다.
 

플라타너스, 하늘을 가릴 듯 무성하던 나무. 마음 가는 곳 어디라도 가지를 뻗어 나가던 힘찬 나무, 손바닥처럼 넓푸른 잎으로 태양을 향해 환호하던 나무 플라타너스, 그 싱그럽던 이들이 지금은 모지라진 빗자루처럼 볼품없는 모양새로 길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 있다. 무자비한 전기톱이 무성한 가지들을 댕강댕강 잘라 버린 탓이고,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되며 바깥쪽으로 길이 넓어져 버린 까닭이다. 플라타너스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이해도 적응도 되지 않는 모양이나 체념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나 보다. 한여름 따가운 태양 아래 허깨비처럼… 망연히 서 있다. 잎사귀 하나 얄랑일 힘도 하늘 한번 쳐다볼 의지도 없는 듯, 그저 죽은 듯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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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는 버즘나무과 플라티누스 속의 낙엽교목이다. 강한 생명력을 가져 이식이 수월하고 추위를 잘 견딘다.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병충해도 쉽게 이겨내는 튼튼한 체력을 지녔다. 그리고, 플라타너스는 아름답다. 사철 아름답다. 다른 나무들이 모두 가지는 덕목인 봄의 신록, 여름 녹음, 가을의 단풍뿐만 아니라 겨울조차 아름답다. 잎이 다 떨어진 마른 가지에 조롱조롱 방울 열매들을 달고 있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씨앗을 꼭꼭 담은 그 방울을 하나라도 잃을까 플라타너스는 온몸의 근육을 꽉 조인 채 겨울바람을 견뎌낸다. 굳세게 아름답다.
 

이렇듯 사철 아름다운 나무지만 플라타너스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여름이다. 지열이 후끈대고 하늘이 끓는 듯한 열기 속에서도 푸르디푸른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그 모습은 고대인의 눈에도 칭송할 만하였던지 플라타너스는 신화에도 등장한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 플라타노스가 쌍둥이 오라비의 죽음을 슬퍼하다 플라타너스가 되었다며 이 나무를 태양의 일족으로 받들었다.
 

태양, 동서를 막론하고 강력한 군주들은 모두 태양과 관계되었다. 한때는 로마제국만큼이나 강력했다는 크메르 왕국, 그 앙코르왓의 주인인 '수르야 바르만'과 마추픽추의 '파차쿠티'도 자신을 태양의 아들이라 칭했고, 이집트의 파라오 역시 태양신의 대변자로 지극한 섬김을 받았다. 그런 만큼 태양신의 손녀라는 말은 최고의 나무, 최선의 아름다움을 갖춘 나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시각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던지 이 나무는 한순간에 국토를 점령했다. 압제와 전란으로 피폐해진 땅에 플라타너스만큼 알맞은 나무도 없었던 까닭이다. 재건이 국가 명제였던 시절이라 그 힘찬 기상과 푸른 생명력은 성장과 발전의 표상으로 충분했다.
 

하여, 길이고 공원이고 학교운동장이고 가리지 않고 플라타너스가 등장했고 사람들 역시 이 나무와 같이 지내고, 함께 자랐다. 모르기는 해도 반백 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 대부분은 이 나무에 곱푸른 추억 한두 가지쯤은 걸어 두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책장 속에 넣어 말렸던 노란 이파리의 기억이라도 말이다.
 

그런 플라타너스, 청춘의 상징으로 수많은 글과 시와 노래에 등장하던 나무, 한때는 가로수의 대명사였고 열정과 낭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던 그 플라타너스가 점차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훌륭함, 즉 국민 가로수로 낙점받게 하였던 그 장점들이다. 빨리 자라 많은 그늘을 만들어 주던 무성함이 농촌에서는 작물 생육을 방해한다며 원망을 듣고, 도시에서는 간판을 가린다며 미움을 받는다. 잎 뒷면의 보송한 솜털이 알레르기 유발인자로 밝혀지며 죄인이 되어버렸고, 겨우내 조롱조롱 달랑이다가 봄이 되면 바람 씨앗이 되는 그 귀여운 열매들도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 낙인 찍혀 버렸다.
 

플라타너스는 슬픈 나무가 되었다. 수시로 손발이 잘리고, 조그마한 이유에도 가차 없는 축출을 당했다. 그동안의 수고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부전로 거리에 늘어선 저 나무들의 장래도 어둡기 짝이 없다. 아니 미래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도로확충공사와 시민공원이 만들어지는 도시계획 속에 이들이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없다. 아마 둥치가 베어지고 뿌리는 파내어져 각종 폐자재와 함께 이름도 모르는 낯선 곳에 버려지고 묻힐 것이다.
 

마지막을 앞둔 플라타너스들이 처연하게 서 있는 길, 많은 사람이 많은 생각을 하며 오갔을 길, 이 길에는 나의 어린 시절 기억도 묻어 있다. 싼 장거리를 찾아 부전시장을 가곤 했던 엄마, 버스정류장 네댓 개를 지나야 하는 길을 차비가 아까운 엄마는 늘 걸어 다녔고 나는 그런 엄마를 곧잘 따라 다녔다. 그때 나는, 자꾸만 엄마에게서 뒤처졌다. 보폭이 작았기도 했지만, 엄마의 짐을 줄여주려 못난이 감자 봉지를 안고 있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길에 줄지어 있는 애견가게, 그 유리창 속 강아지들에게 눈을 빼앗겼던 탓이다.
 

초등학교 삼학년의 어느 봄날, 순종 코카스파니엘이었던 우리 집 개 ‘돌이’가 아랫동네 스피츠를 만나 새끼를 아홉 마리나 낳아버렸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서양 출신의 예쁜 개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속 외딴집인 우리 집에 있었다. 큰 귀가 늘어지고 은색 털이 곱슬대던 돌이, 이름과는 다르게 너무나 우아했던 돌이는 외딴집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귀도, 주둥이도, 털도 어중간한 모양을 하고 태어난 돌이의 아홉 자식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엄마는 부전로의 어느 가게에 강아지들을 맡겨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강아지는 없고, 커다란 눈망울의 돌이만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날, 나무들은 보았을 것이다. 울면서 길을 달리는 아이를, 애견가게 유리창마다 이마를 박고 들여다보던 아이를, 되찾은 강아지들을 시장바구니에 담아 낑낑대며 들고 가는 어린아이를, 눈물 그렁한 얼굴에 웃음을 물고 제 허리 아래로 차박차박 걸어가던 작은 계집아이를… 아마, 나무들은 그 아이를 아직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기억하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마지막 여름을 맞고 있다. 이제는 내가 플라티노스가 되었다. 쌍둥이 오라비의 죽음을 슬퍼하던 플라티노스처럼 나도 나무의 죽음과 길의 사라짐에 마음 아파하는 플라티노스, 나이 든 플라티노스가 되었다. 이 여름이 지나면 저 나무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Pixabay.com

그 길을… 지나간다. 이제는 어릴 때처럼 걸어가지 않는다. 차를 타고 휭하니 스쳐 간다. 하지만 길이 파헤쳐지고부터는 천천히 지나간다. 공사 중이라 차가 밀리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도 속도를 늦춘다. 차창 너머로 오랜 친구와 눈을 맞춘다. 웃는다, 플라타너스가 하얗게 웃는다. 가 보아야겠다. 저들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가 보아야겠다. 그들의 겨드랑이 아래를 걸어봐야겠다. 그리고, 오랜 친구의 허리를 하나하나 안아 주어야지. 그리고 또 말해주어야지. ‘햇볕이 따가운 날은 푸르게 그리워하마. 오랜 수고를 잊지 않으마. 어디에 있게 되든지 늘 평안하라.’ 하고. 
 

   
전성옥 집사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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