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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름 생겼어
율리 작가의 사색(3)
2024년 06월 21일 (금) 10:21:25 전성옥 집사 webmaster@amennews.com
   

blog.naver.com/s5we/220837420559 사진 캡처

전성옥 집사 / 부산 거성교회

 

오래전부터 실타래처럼 수르르 풀려나오는 이름들이 좋았다. 이름이 고우면 사람도 고와 보였다. 그러나 이름을 갖는 것에 내 선택권은 없다. 내가 아닌 타인이 나의 유일한 것을 결정하는 까닭이다. 대부분 부모나 조부모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것은 평생 내 것이기는 하나 평생 타인이 사용한다. 타인에 의해 존재하는 나의 것이다.
 

여학교 시절 이른바 시리즈 이름이 있었다. 미자, 옥자, 정자 하는 자자 돌림, 미순, 경순, 영순 하는 순자 돌림 그리고 미옥, 순옥, 진옥… 하는 옥자 돌림 등이다. 나 역시 그 돌림 중 하나에 들어간다. 장담컨대 이런 이름을 가진 친구 중에서 제 이름을 기꺼워했던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끔 있는 고운 이름, 세련되고 우아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소현이, 근주, 윤미, 정향이… 내가 부러워했던 이름들이다.
 

그 마음은 나뿐만 아니었던지 시리즈 이름을 가진 친구 중 몇몇은 학교가 아닌 곳에서는 이름을 변형해서 사용하기도 했었다. 예민한 시절이고, 이쁜 것이 좋던 나이였으니, 더욱이 현실적인 문제들도 더러 생기곤 했으니 왜 아니 그러랴.
 

‘정자’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한 반에 육십 명이 넘게 있다 보니 일반에서 구반까지 아홉 개 학급에 거의 정자가 있었다. 이 정자들은 생물 시간이면 곤욕을 치르곤 했다. 생물 교과의 김건유 선생님, 아마추어 성악가 이기도 해 목소리가 기차 화통 같던 이 선생님은 훌쩍 큰 키에 노래도 잘하고, 수업도 재미있게 해서 인기 일등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장난기가 많아 짓궂기도 일등이었다.
 

동식물 수정에 관한 부분을 공부할 때면 질문이나 발표를 유독 정자만 골라 시키곤 했다. “이 반에 정자 있제?”, “정자 대답해 봐라”, “아무개 정자 읽어봐라” 등등. 그러다 보니 그 진도가 가까워지면 모든 정자들은 학교 가기가 싫다 했다. 그 정자들 중에는 내 친구도 한 명 있었다. 오십이 훌쩍 넘은 몇 년 전, 기어이 개명을 하고 “한 많은 그 이름 ‘정자’에서 벗어났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평생 불렸던 이름값을 지우려면 다른 이들이 많이 불러줘야 한다며 하루에 백 번씩 새 이름을 불러달라 했다.
 

나도 내 이름이 그리 탐탁하지는 않다. 형제 많은 집의 막내로 태어나다 보니 그저 돌림자 하나에 적당한 무엇 하나를 붙여서 만들어진 듯도 하고, 바로 손위 둘의 이름자에서 한자씩 따 얼렁뚱땅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도무지 내 정체성이 없다. 거기다 발음도 어렵다. 그러잖아도 ‘전’이라는 성부터 받침이 들어있는데 이름 두 자 역시 받침이 콱콱 붙어 있으니, 발음이 적잖이 불편하다.
 

애로사항이 종종 생긴다. 이름을 말할 때, 특히 전화로 말할 때는 단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잘 없다. 사람들은 성부터 ‘전’과 ‘정’을 헷갈려 했고, 또 성이라는 가운데 글자는 ‘승’이나 ‘선’으로 알아듣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자씩 또박또박 다시 말하거나, 전두환 할 때 그 전이구요, 성공할 때 성입니다 하는 서술적인 풀이를 덧붙여야 했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내가 이런 고충을 토로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무슨 혐오감이 들거나 어감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별스럽다는 반응이고, 그만하면 무난하고 괜찮은, 심지어는 예쁜 이름이니 그냥 있으라 한다. 무엇보다 집안 반대에 부딪힌다. 부모님이 지어줬고 이제껏 그 이름으로 살아왔는데 자랑스럽게 생각지는 못할망정 개명이라니. 그리고 이름을 바꾸려면 절차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각종 관계기관의 서류와 은행, 카드회사 기타 등등 복잡하고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니 그냥 살던 대로 살아라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니 호니 아호니 하며 운치 있는 이름을 여럿 가질 수 있었던 옛사람들이 부러웠고 현실에서도 필명이니 화명이니 하며 또 다른 멋들어진 이름을 사용하는 유명인들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필명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내가 뭐 그리 대단한 글쟁이라고, 세상 사람 누가 알아준다고 거창하게 필명씩이나… 무엇보다 필명이라고는 하나 내 손으로 짓기도 무안하고 웃어른에게 부탁하자니 마땅한 분도 안 계실뿐더러 설혹 부탁한다고 하여도 주제에… 하면 어쩌나.
 

그런데 이제 마음에 드는 새 이름이 생겼다. 그것도 내 손으로 만든 살가운 이름.
 

경주 김 씨 우리 엄마, 엄마는 구십을 넘기고도 비교적 건강하셨다. 그런데 두어 해 전부터 눈에 띄게 기력이 소진되어 갔다. 마치 주둥이 풀린 풍선에서 공기 빠져나가듯 그렇게. 엄마를 기억하고 싶다. 자식이 일곱이나 되는데 나 하나는 엄마 성을 따라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법적으로도 허용이 되는데.
 

“엄마, 나 김 씨 할까? 엄마 성 따라서?”

“니… 김 씨 할래, 참말로? 경주 김 씨… 그라믄 나는 좋지 아주 좋지.”
 

엄마의 눈꼬리가 가늘게 쳐지며 눈빛이 따뜻해졌다. 목소리도 나직하고 은근했다. 진심이 가득한 반응이었다. 의외였다. 무슨 쓸데없는 말이냐, 전 씨가 뭐 어때서 이런 대답이 당연할 줄 알았다.
 

나는 경주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돌이 되자 떠나온 지라 그곳의 기억은 아무것도 없다. 대신 내 고향은 부산하고도 연제구의 화지산 중턱, 밤나무골이다. 그곳은 내 유년의 기억이 온통 있는 곳이며, 정서의 토대가 되어주고 문학적 감성을 심어준 진짜 고향이다. 그 소중한 내 고향에서 밤 ‘율’ 자, 마을 ‘리’를 얻어 엄마의 성 뒤에 붙였다. 비로소 정체성 있는 이름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하다. 거기다 발음도 얼마나 쉽게 되는지 그냥 수르르~ 풀린다.
 

나를 아는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은 이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몰라도 괜찮다. 나만 아는 내 이름으로도 충분히 충만하니까. 이 이름으로 엄마를 더 선명히 기억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법적으로 복잡함이 생기지 않는 곳에서는 살짝살짝 쓸 수도 있으니까. SNS 닉네임, 카카오톡 프로필 등등.
 

“띵똥, 택배 왔어요.”
 

백화점에서 주문했던 무거운 물건이나 수선된 옷, 신발 등이 이 이름으로 도착한다. ‘받으시는 분, 김율리’

 

   
전성옥 집사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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