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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
송요한 목사의 이단 문제 분별법(13)
2024년 05월 31일 (금) 15:38:10 송요한 목사(중화권 선교사, 이단연구가, 백석) webmaster@amennews.com
   

3-6절 구원론

구원론에서 정통 개신교회는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이신득구(以信得救),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을 전제로 한다.
 

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사역

인간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말미암는다. 타락한 인간을 향한 구원 계획은 성부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졌다. 이에 따라 성부는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神人)으로서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 그러한 구속 사역의 효과를 인간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이가 성령 하나님이시다.
 

나. 구원의 성격

우리가 얻는 구원의 성격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의가 주입되어 그 존재가 순식간에 완벽해지는 개념이 아니다. 사람은 여전히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받아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한편 칭의를 말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경우도 의가 주입되는 개념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그분의 십자가의 희생과 순종으로 이룬 의)가 믿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짐으로 인해, 죄인인 여부나 어떤 공로와 상관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에서 사람은 결코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따름이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는 영적으로 구원받은 상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세상에서 성화의 길을 걸어가게 되며,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부활의 몸을 입고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 구원의 서정에 대한 각 교단의 견해

구원의 서정을 말할 때 용어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명: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으로의 부르시는 사건

회심(신앙):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참 신앙을 가지는 것

회개: 회심과 관련한 회개는 단회적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생활의 회개가 반복적으로 요구된다.

중생: 죄인의 영혼이 성령을 통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건

칭의: 죄인이었던 사람이 죄 사함 받고 의롭다 칭하심을 받는 것

양자: 죄인이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여김을 받는 것

성화: 성도가 실생활에서 거룩함을 점차적으로 이뤄가는 것

견인: 구원받은 성도의 구원이 유지되는 것

영화: 궁극적 구원의 상태, 구원의 완성
 

1) 로마가톨릭교회

로마가톨릭의 구원관은 성례전과 관련되어 있다. 첫째는 영혼이 거듭나는 세례, 둘째는 세례받은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견진, 셋째는 그 안에서 성찬의 떡을 뗌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 자체를 나누는 성만찬, 넷째는 그것에 의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혜택이 세례받은 후 정도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시여되는 회개, 마지막은 죽음을 앞둔 사람을 준비시키고 그의 남은 죄를 깨끗하게 하는 종유식이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구원의 서정은 3단계 혹은 4단계로 요약 가능하다.

① 3단계: 구원의 준비단계--> 칭의--> 선행에 의한 공로 만족

② 4단계: 충족은혜--> 주입은혜--> 협력은혜--> 연옥 혹은 천국
 

충족은혜는 교회 밖에서 들어온 신자가 세례를 받기에 흡족한 은혜가 되게 하는 초보적인 은혜를 의미한다. 주입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의 죄를 사함 받고 양자로 칭함 받는 은혜를 의미한다. 이 주입은혜는 성례와 고백성사를 통해 점차적으로 채워진다. 협력은혜란 하나님의 은혜로 양자 된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여 선행을 쌓아가야 한다. 선행이 없는 대죄는 주입은혜를 상실할 수 있다. 연옥은 이 세상에서 사함 받지 못한 죄를 마저 처벌받는 곳이다. 이 곳에서 죄를 해결하고 천국으로 올라간다.

이는 한마디로 행위 구원관이다. 정통 개신교회는 위와 같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원관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2) 루터파

신앙이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회심이 중생보다 앞서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람의 응답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루터파의 경우도 알미니우스주의처럼 인간의 구원이 상실될 가능성을 인정한다. 루터파 구원의 서정 중 또 다른 특징은 성화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성화는 칭의에 포함된 개념으로 본다.

소명-> 조명-> 회심-> 중생-> 신앙-> 칭의-> 신비적 연합-> 갱신-> 보존-> 영화
 

3) 칼빈주의

칼빈주의는 절대 예정, 제한 속죄, 견인을 전제로 구원의 서정을 전개한다. 그러나 그 보수성의 차이에 따라 학자마다 순서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회심이나 신앙보다 중생을 앞에 두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절대 예정과 무조건적 선택에 기초하여 믿음도 하나님이 믿도록 해주셔야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일반적 견해: 소명-> 중생-> 회심(회개와 신앙)-> 칭의(양자)-> 성화(견인)-> 영화

* 하지(A. Hodge)의 견해: 소명-> 중생-> 신앙-> 그리스도와의 연합-> 회개 -> 칭의-> 양자-> 성화-> 성도의 견인

* 벌콥(Louis Berkhof)의 견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 외적 소명-> 중생과 유효적 소명-> 회심-> 신앙-> 칭의-> 성화-> 성도의 견인

* 아브라함 카이퍼의 견해(A. Kuyper): 중생-> 소명-> 칭의-> 신앙-> 성화

* 박형룡의 견해: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
 

4) 웨슬리-알미니우스주의

예지예정(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신앙과 순종을 미리 예견하심을 통해 이뤄진다고 보는 견해)과 보편속죄(하나님의 선행 은혜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음. 그런데 인간의 태도 여하에 따라 구원이 변할 가능성도 인정함)를 전제로 한 구원의 서정이다. 웨슬리-알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 구원의 서정은 다음과 같다.

선행 은총의 역사-> 회개를 포함한 믿음-> 칭의-> 신생(중생)-> 성화-> 완전 성화-> 영화
 

라. 칼빈주의 구원관

1) 칼빈주의 5대 강령

칼빈주의 5대 강령에 의하면 칼빈주의의 구원관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여 구원관도 절대 예정을 전제로 전개된다.

①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자기 능력으로는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②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의지대로 신자들을 무조건 선택하신다.

③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죽으셨다.

④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able Grace): 구원으로 선택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항거할 수 없이 그 은혜를 입게 된다.

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하나님이 한번 선택하신 사람은 궁극적 구원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주신다.
 

2) 회심보다 앞서는 중생
 

칼빈주의는 구원의 서정에서 중생이 회심 앞에 온다고 본다. 예정으로 선택받은 택자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그를 중생시키시고, 믿고 회개하게 하시고,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생이 회심보다 앞에 놓이는 이유는 구원이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비 칼빈파 교단들은 회심을 중생 앞에 둔다.
 

3) 인간의 선택과 유기

절대 예정을 전제로 구원받을 자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선택(Election)하신다. 이는 미리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정하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도 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위함으로 제한적이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유기(Reprobation)되었다. 유기된 자들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이 이론은 ‘이중예정’이라고도 한다.
 

4) 칼빈주의 구원관의 변화

칼빈주의 5대 강령에 기초한 교리들은 많은 반론을 낳았으며 후대에 이르러서는 칼빈주의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특별히 미국의 대각성운동을 전후하여 ‘제한 속죄’를 완화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등장하였다. 곧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흐름의 대표적인 실례가 미국 북장로교단이 1903년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개정판>을 발표한 모습에서 드러난다. 개정의 내용은 선택과 유기의 이중예정의 문구를 매우 부드럽게 완화하고,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심(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조항을 추가하였다. 이와 같이 칼빈주의의 완화된 경향을 일컬어 ‘온건 칼빈주의(Sober Calvinism)’, ‘수정 칼빈주의’라고 부른다. 오늘날 세계의 대다수 장로교회와 칼빈주의 신학을 받아들이는 일부 침례교회 등 여러 교단들이 이런 온건한 경향을 수용하고 있다. <pp. 참조> 한국 장로교단 중에는 통합, 백석, 고신 등이 이 문서를 채택한다. 수정하지 않은 1647년의 초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그대로 지지하는 교단은 합동, 합신 등이다. 특정 교단의 색채를 따지지 않더라도 칼빈주의 교단이라고 하면서 선교나 교회에서의 봉헌과 섬김, 성화의 삶을 강조한다면 온건 칼빈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알미니우스주의이면서도 전적인 타락이나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면 개혁적 알미니우스주의(Reformed Arminianism)라고 할 수 있다.
 

마. 오늘날의 알미니우스주의
 

17세기의 초창기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대륙의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많이 위축된 상태로 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미니우스주의를 표방한 침례교회들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세기에 이르러 알미니우스의 사상은 영국의 웨슬리에 의해 받아들여지며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고 웨슬리가 알미니우스의 사상을 그대로 차용한 것은 아니다. 알미니우스주의의 예지예정과 보편구원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칼빈주의의 제한 속죄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전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 타락 등 일정 부분을 수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웨슬리의 신학을 알미니우스주의라 하지 않고 웨슬리-알미니우스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웨슬리의 구원관은 알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의 중간에 서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오늘날 알미니우스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는 미국 등 서구의 침례교회와 회중교회, 오순절 계통 교회에서 많은 데, 그렇다고 17세기의 구(舊)알미니우스주의를 고집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타교파의 좋은 점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를 꾀한다. 그래서 웨슬리주의는 물론 칼빈주의까지 폭넓게 흡수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알미니우스주의가 배척을 받던 시절 그들은 결국 율법주의로 흘러가고 말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알미니우스주의에는 그런 면모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건전한 복음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일부는 자유주의로 흘러간 경우도 있고, 또 한편 너무 세속화한 모습도 있다.
 

칼빈주의 입장에서 알미니우스주의는 천주교와 다를 바 없는 행위구원론 주장자들로 매도된다. 반면 알미니우스주의와 비칼빈파 입장에서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무자비한 폭군으로 여기도록 하는 결정론적 이론이며, 전도와 선교마저도 필요 없도록 한다고 매도된다. 두 진영은 그런 비난들에 대해 여러 가지 논리로 방어하는 입장이지만, 상대방은 그 논리를 잘 수긍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서로 간 신학적 견해 자로 인함일 뿐 양자간의 신앙이 달라서는 결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칼빈주의도 신앙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며 전도와 선교의 필요성을 부르짖는다. 알미니우스주의도 신앙으로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고백한다. 결국 각자 주장하는 강조점은 달라도 믿음 안에서는 이미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간 장점들을 바라보며 좋은 점을 존중하고 인정함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서로 간 약점만 바라보면 반목과 분쟁만 있을 뿐이다. 오늘날 두 진영은 도르트회의 때의 갈등을 뒤로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호 포용과 관용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바. 웨슬리-알미니우스주의 (Wesleyan Arminianism) 구원관
 

1) 구원을 위한 예비 은총으로서의 ‘선행 은총(先行恩寵, Prevenient Grace)’
 

웨슬리는 ‘이신칭의’와 ‘만인구원(Salvation for All)’, 곧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신다(딤전 2:4)는 말씀을 기본 전제로 구원론을 전개한다. 그러면서 선행은총을 말한다. 선행은총이란 먼저 주어지는 은총(grace that goes before)을 뜻한다. 즉, 우리가 구원받기 전 죄인일 때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은총이다(롬 5:8). 이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골고루 주시는 만인을 위한 은총(Universal Grace)이다. 타락한 사람은 선을 행할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구원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시는데, 이 선행은총에 응답할 때 성령을 통해 구원으로 인도받는다.
 

2) 자유의지와 신인 협동
 

칼빈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적이고 특수한 데 비해, 웨슬리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선행은총에 의해 부분적으로나마 회복된 자유의지(혹은 생래적 양심: 양심이 선행은총으로 구원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된 상태)를 가지게 되었기에 구원의 부름에 응답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칼빈주의에서는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주어지므로 인간에게는 구원의 책임이 없으나, 웨슬리 신학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거나 거역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의지 사이의 조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복음적 신인 협동설'(Evangelical Synergism)이라 부른다.
 

일각에서는 신인 협동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과 사람이 절반씩 나누어 협력한다거나, 하나님 100%, 사람 100% 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웨슬리의 관점은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으되 사람은 그에 응답하는 구조이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강조된다. 곧 인간의 의지가 성령의 역사에 수동적으로 협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의 역사에 전적으로 이의 없이 협동하는 것을 말함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구원은 결국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다만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받아들이는 믿음의 응답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해 주는 사람의 손을 꽉 잡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3) 칭의 이전의 회개를 포함한 믿음
 

웨슬리에 의하면 ‘믿음은 구원의 문(door) 이요, 회개는 구원의 현관(porch)이요, 성결(성화)은 구원의 안방’이다. 칭의의 유일한 조건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믿음이다. 그런데 이 믿음은 반드시 회개를 포함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 교리는 회심의 체험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합당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칭의를 얻는데, 칭의는 또한 새로운 탄생(신생, 중생)을 동반한다.
 

4) 신생(중생)
 

웨슬리는 설교에서 중생(regeneration)이란 단어보다 새로운 출생이란 의미인 ‘신생(the new born)’이나 ‘다시 태어남(be born again)’을 즐겨 사용하였다. '칭의'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적인 변화라면 ‘신생’은 인간 전인의 실제적인 변화이다.
 

웨슬리는 중생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죄악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경건한 삶인 성결을 위해서는 먼저 거듭나야만 한다. 둘째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과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셋째 중생은 천국에서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하다.
 

또 한편 웨슬리는 중생의 표적을 세 가지로 봤는데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이다. 중생한 사람의 삶에는 믿음, 소망, 사랑의 열매가 맺힌다.
 

5) 성화(Sanctification)와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pection)
 

중생(신생)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면 성화는 실제적인 삶의 성장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중생한 신자는 어린아이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해야 마땅하다. 이 성화는 개인의 노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과 공급하시는 능력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성령과 동행할 때 성화는 점차적으로 이뤄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순간적으로 완전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모든 신자가 완전 성화를 신앙생활의 목표요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완전 성화에 이르러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신자는 이미 칭의의 단계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칭의를 받은 신자는 자기의 삶 속에서 구원의 행복을 누리는 성화의 길(구원의 안방에서의 삶), 즉 실제적인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화에는 단계와 정도 차가 있기는 하다.
 

웨슬리는 소수의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지만 신자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화의 삶을 살 때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완전 성화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것은 신적 거룩이나 천사의 거룩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전제로 한 제한된 완전이다. 완전 성화에 이른 신자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행동에 온전히 순수함을 가지며,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를 모방함으로 되찾아 죄를 극복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사. 구원의 수단에 대한 견해들
 

구원의 수단이 무엇이냐에 대한 견해에 따라 그 교단이 추구하는 구원관이 명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① 로마가톨릭: 믿음 외에 수단만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곧 교회가 제공하는 세례와 성찬 그리고 여러 성사를 수납함을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② 루터교회: 믿음을 통한 수단을 말한다. 곧 믿음을 고백하는 신자가 세례와 성찬을 수납함을 통해 구원 얻는다고 한다.

③ 칼빈주의: 수단이 없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유효한 은혜(구원에 이르게 하는 특별한 은혜)에 의해 구원 얻는다.

④ 웨슬리-알미니우스주의: 수단이 없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일반적 은혜(선행 은총)를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얻는다.
 

아. 구원론 이단들

① 펠라기우스: 사람은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 그리스도는 하나의 모범일 뿐이다.

② 안식교: 토요일 안식일 준수와 여러 가지 율법적 조항을 지켜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③ 여호와의 증인: 공로 사상이 강하다. 행위의 비중에 따라 내세의 위상이 결정된다.

④ 류광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죽어야만 할 인간을 대신한 죽음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속전을 치르는 행위(사탄 배상설)로 이해한다.

⑤ 예정론을 전면 부정하는 경우: 정통 개신교회는 예정론에 대한 견해차가 있을 뿐 예정론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칼빈주의는 절대 예정을 지지하며, 비 칼빈주의 진영에서는 예지 예정을 지지한다.

⑥ 기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통한 구원을 부인하는 자들, 성령의 구원 사역을 부인하는 자들, 자기나 특정 단체를 일컬어 믿거나 가입하여야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자들, 공로 구원을 강조하며 금전을 내게 하거나 억지로 헌신을 강요하는 자들은 모두 이단이다.
 

자. 구원론 이단의 특징들
 

① 이신칭의 사상을 거부하거나 제한한다.

② 지나친 방종이나 지나친 율법주의 경향이 있다.

③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거부하거나 왜곡, 혹은 제한한다.

   *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형벌 대속 사상을 거부 혹은 제한한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거부 혹은 제한한다.

   * 기성교회의 방법은 구원에 이르기에 부족하며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 특별한 지식을 가져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 특별한 구호나 내용을 입으로 말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 구원을 위한 의가 사람에게 주입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 사탄 배상설을 주장한다.

④ 특정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부족한 구원 사역을 완수하는 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⑤ 세속적 구원에만 치중하든지 내세적 구원에만 치중하든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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