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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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서 벗어났습니다(1)
이단탈퇴자 간증(1)
2024년 05월 29일 (수) 10:31:16 김천일 webmaster@amennews.com
 
   
 

 

이단탈퇴자들의 간증문을 시리즈로 싣는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왜 이단에 미혹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탈퇴할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간증은 그 어떤 이단 경계, 대처, 배격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간증자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게재하는 것은 아쉬움이다. 간증문은 안산 상록교회(진용식 목사) 이단상담소를 거쳐 탈퇴한 분들의 간증을 모아 출판한 책에서 발췌했음을 밝힌다. 

- 편집자 주 -  

김천일

 

저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약 6년간 신천지에서 활동하다가 상록교회를 통해 회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졌다고 하면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장로교 합동교단에서 목회하시는 부모님을 통해 모태신앙으로 살아왔고, 학창 시절에는 큐티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나름대로 신앙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수능시험을 마친 2004년 12월경, 입학 예정이던 한동대학교의 선배를 소개받아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신천지의 교리를 가르치는 공부였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왔던 저였지만 처음 신천지를 접하게 되었을 때 이를 분별하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체계적이고 매우 성경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개월 배움을 이어 나가는 동안 저는 어느새 신천지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이후 6년간 저는 진리를 찾았다는 감격에 젖어 신천지에서 요구하는 모든 모임과 예배와 봉사 및 전도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였고, 이를 삶의 최우선 순위로 두었습니다. 당연히 학생의 본분인 학업과는 멀어져갔고 휴학도 하게 되었으나 부모님을 속이며 신천지 활동에 열중하며 전 과목 F학점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직 신천지에 진리가 있다는 생각에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저의 중요한 것을 신천지를 위해 희생했다는 생각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특전대 팀장과 포항지역 청년부 전도 교육 및 업무를 책임지는 복음방 교관으로 지내며, 수개월간 하루 평균 3시간 정도만 자기도 했으나 제가 신천지에서 탈퇴하던 날까지 이러한 삶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건축이나 신천지 교육 장소인 센터설립 등 건축 관련 업무가 추가되면 온종일 전도 업무 외에 공사 일에 투입되어 늦게까지 막노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노예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평 없이 오히려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낸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에서는 몸을 다치거나 아프면 그것마저 죄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신천지에서 “아픈 것도 죄다”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고, 또 같은 말로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프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0년 3월의 어느 날, 신천지 활동을 하던 중에 교통사고로 몸을 다쳐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까지 신천지 업무를 보다가 늦게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에 큰 타박상을 입어 반깁스를 하였고, 헬멧을 쓴 채로 땅에 쓸려 얼굴이 타박상과 함께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목발을 짚고 전도 활동을 다녔습니다. 매일 같이 아픈 것이 죄라고 가르쳤던 제가 다쳤다는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고, 전도 책임자로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담임 강사로부터 듣게 될 질책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에겐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하는 목마름이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교 교목실에서 신천지 활동을 하던 저의 정체를 인지하고 부모님께 연락을 드린 것입니다. 결국 휴학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간 저는, 신천지 믿음을 지키기 위한 부모님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신천지를 버리느니 차라리 부모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선택할 만큼 신천지에 미혹되어 있었고 여섯 차례나 가출을 시도하였습니다.
 

이 기간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역시 끔찍하고 답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과의 갈등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신천지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 신천지 활동에 전력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대오 지파의 섭외부장을 통해 한 가지 특명을 받았습니다. ‘상록교회 진용식 목사를 폭행 테러하고 상담 사역을 방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폭행해야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당시 저의 상황에서 신천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으로 착각하며 감사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수차례에 걸쳐 상록교회에 찾아가기도 하고, 목사님의 세미나에 참여해 난동을 부리기도 하는 등 테러를 시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저의 시도가 매번 실패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목사님과 저를 보호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테러까지 감행했었다면, 원활히 상담 교육을 받고 회심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번은 진용식 목사님이 제 모교인 한동대학교에 이단 세미나를 인도하러 오셨습니다. 당시 정보를 입수한 신천지에서는 목사님을 향한 테러 작전을 세웠습니다. 원래 계획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폭행하여 창피를 주자는 것이었으나, 계획적인 범행이 알려지면 처벌이 무거울 수 있으므로 세미나 중에 신천지인임을 밝히고 공개토론을 요청, 언쟁 중에 우발적으로 폭행하는 계획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토론은 커녕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질질 끌려 나가게 되었고, 그 와중에도 뿌리치고 달려 나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였지만 가까이 있던 사람들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 일로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말았습니다.
 

놀랍게도 당시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였습니다. 진용식 목사님께서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선처를 부탁하셔서 벌금도 물지 않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막상 목사님에 대해 ‘사탄의 자식이 왜 저런데?’라는 의아한 마음을 품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일이 차후 목사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에도 진용식 목사님에 대한 몇 차례의 테러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그쳤고, 부모님과는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제 앞에서 칼을 들고 위협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이 이야기를 듣자 다음에 또 그러시면 칼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스스로 찔리라고 조언했습니다. 칼에 찔리면 부모님이 병원에 데려갈 것이고 칼에 찔린 상처는 의사가 의무적으로 경찰에 신고하게 되어있으니, 이를 빌미로 법적 접근금지 처분을 받아 부모님의 방해 없이 신천지 활동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천지는 저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보다 신천지 일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가면서도 절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마지막으로 “상담소에서 상담 교육만 받는다면 이후에는 너의 원대로 해주겠다”며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상담하면서도 고집불통에 듣는 것에도 둔하고 교만했던 저는 몇 주가 지나도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오히려 상담하시는 분들 앞에서 왜 신천지가 옳은지 내가 가르쳐주겠다면서 펜을 빼앗아 신천지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억지스러운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천지 말씀에 일점일획의 오류라도 있다면 내 목을 걸겠다’고 자신하던 저도, ‘신천지가 틀렸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엔 고대하던 진용식 목사님이 반증 교육을 위해 오셨습니다. 원래 진용식 목사님을 만나면 주위의 머그잔이라도 들어 폭행할 계획이었으나, 신천지에 대한 불신감이 들어오면서 목사님을 폭행하는 것이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신천지가 틀렸다면 저의 행동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그저 흉악한 범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강의를 들으며 테러 여부를 결정하리라 생각하며 강의에 임하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잘못된 신념은 하나씩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말씀을 통해 제가 회심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폭행죄로 구속되고 목사님께서도 크게 다치셨을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때조차 저를 보호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교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의 말씀을 들은 후에도, 저는 다시 믿음을 가질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오히려 신앙을 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번 잘못된 믿음으로 크게 데이고 난 터라 다시 무언가를 믿고 신앙을 갖는다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그때까지도 신천지에서 믿던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리지 않아 하나님께 다가가기도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수개월을 방황하며 지냈던 저는 교회에 가더라도 상담해 주신 분들과 마주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상록교회에 갈 때마다 그들은 저를 매우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특히 제가 버릇없이 반말하며 힘들게 했던 배○○ 권사님은, 제가 신천지에서 이탈한 것만으로 아주 기뻐하시며 볼 때마다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아직도 제 손에 자주 쥐어 주시던 어린이용 영양 캐러멜이 생각납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분들의 모습을 보며, 이분들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의 과거 잘못을 무작정 벌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고, 점차 하나님께 나아갈 작은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들었던 복음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는 순간, 제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내가 이미 다 용서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둘째 아들’ 이야기가 저에 대한 말씀처럼 느껴지며, 그동안 들었던 구원론의 말씀들이 모두 믿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흉악한 신천지에서 건지신 지도 어느덧 9년이 되어갑니다. 더불어 한때 흉악한 대적자였던 저를 부르셔서 신학을 공부하게 하시고 상록교회에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벌써 3년째 상록교회 이단상담소에서 과거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상록교회의 귀한 청소년들과, 이단에서 회심한 새신자들을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저를 택하셔서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으며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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