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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의료 선교사, ‘다말 드류’(3)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4년 05월 07일 (화) 14:38:02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Ph.D), IME Foundation 이사장,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AGSI)와 남장로교 연구소(SPSI) 대표, 버클리 연구교수

최은수 교수

앞서 발표한 바 있는 ‘다말 드류’(1, 2)를 통하여 점입가경의 감동과 환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반향을 여전히 불러오고 있는 중이다. 1편의 글을 통해서 그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드류 의사 선교사의 감동적인 모습을 보게되어 그 자체로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2편의 글을 통해서는 한층 더 충격이 큰 것은 물론이거니와 점입가경의 감격이 휘몰아쳤다.

드류 선교사 부부의 마지막 순간들은 그 어떤 드라마 보다도 극적이고 인간의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이미 밝혀낸대로, 드류 선교사 부부는 군산 선교지에서 얻은 종합적인 질병으로 인하여 눈물을 머금고 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평생토록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셋집을 전전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부르심의 땅, 군산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가 질병으로 인하여 선교지로 복귀하지는 못했어도, 그는 어디에 있든지 호남 최초의 의료 선교사였고, 그런 선교사의 정체성을 심화시켜 가며 여전히 선교사의 직무를 다하였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선교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다말 드류’(2)를 통해서, 드류 선교사 부부가 당시에도 흔하지 않았던 화장을 선택했다는 놀라움과 경외심을 넘어서, 두 부부가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해부학용으로 자신들의 시신들을 기증했다는 사실에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이 땅에서 자신들이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서 조용히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던 것이다. 드류 선교사의 해부학용으로 사용된 시신은 화장되어, 일부는 바다에 뿌려져 흘러흘러 군산의 선교지로 가고자 하는 염원을 이루었고, 바람에 날려 선교지의 사랑하는 영혼들에게로 가고자 했던 것이다. 화장된 재의 나머지 일부는 오클랜드의 추모관에 모셔져서 사랑하는 가족과 그들의 삶과 신앙을 동경하는 후대들에게 훌륭한 모델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재까지 필자만큼 드류 선교사의 삶과 신앙에 대하여 학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드류 선교사는 양파와 같이 껍질을 벗겨내면 낼수록 무엇인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서 필자조차도 놀라움과 함께 기대감을 감출수가 없다. 여기서는 필자가 ‘다말 드류’(2)를 발표한 이후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에 대하여 기술코자 한다.

   
1893년 9월 버지니아 댄빌(Danville)에서 드류 선교사와 루시 선교사가 결혼식을 올렸고, 남장로교 최초의 의료선교사가 되었다.

첫 번째로, 드류 선교사 부부를 미 남장로교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호남에 파송했던 체이스 시티 장로교회는 현재의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글에서 사진에 나와 있던 교회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교회는 그 자리를 처분하고 현재의 교회당으로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가 사역했고, 드류 선교사의 추억이 담겨 있던 체이스 시티 장로교회의 옛 교회당터

두 번째로, 드류 선교사의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는 체이스 시티에서 다양한 섬김과 봉사에도 솔선수범 하였고, 자원하여 명예 소방대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당시의 정황상, 목사는 사회의 지도층이었기 때문에, 사회, 경제, 정치, 교육,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활동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심지어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는 체이스 시티에 놓여지는 철도 가설을 위한 위원회에서도 중요한 활동을 하였다.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는 체이스 시티를 위하여 다양한 섬김의 모델이 되었다.

세 번째로, 버지니아 체이스 시티에서 드류 선교사와 관련하여 당시를 기억하는 기록들과 사람들은 그가 화재 현장을 목격하고 주민들에게 피해 정도를 알려주는 모습을 기억하면서, 존경받는 목사의 아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출하였다.

   
드류 선교사의 파송교회는 원래 이름이 크리스찬스빌 장로교회였다. 후에 체이스 시티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네 번째로, 드류 선교사의 또 다른 고향교회이자 영적인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클락스빌 장로교회(Clarksville Presbyterian Church)와 드류 선교사의 가족이 미국 이민 초기부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는 클락스빌에서 여성교육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던 서니사이드 여학교(The Sunnyside School for Girls)에 호르텐스와 에바를 입학시켜서 기숙하며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이 당시 서니사이드 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클락스빌 장로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주일이나 기타 필요한 경우 이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학생들로 하여금 주일학교 교육을 받도록 했다.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도 클락스빌을 방문할 때마다 서니사이드 여학교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체류하며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최근에 세워진 서니사이드 여학교 표지판

다섯 번째로, 체이스 시티에 드류 길(Drew Street)과 호르텐스 길(Hortense Street)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호르텐스 애베뉴(Hortense Avenue)도 있을 정도로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와 여동생 호르텐스가 미친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호르텐스는 체이스 시티를 넘어서 여성교육의 선구자요 활동가로서 훌륭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호르텐스 드류의 비문에는 ‘기독교인, 학자, 교육자, 철학자’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정도다.

   
호르텐스 스트리트와 호르텐스 애베뉴가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여섯 번째로,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가 클락스빌 장로교회로 청빙될 당시, 당회가 제시한 청빙 조건을 기록한 문서가 아직도 존재하며, 그가 부임한 후, 구예배당을 매각하고 현재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당시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는 체이스 시티에 거처가 있었기 때문에, 클락스빌에 있던 목사관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 처분하였다. 현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에 사용했던 구 예배당은 침례교회에 매각하여 그 교회에서 현재까지도 예배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드류 선교사의 고향교회인 클락스빌 장로교회의 옛 교회.
지금은 침례교회가 사용중.

일곱 번째로, 드류 선교사가 미국으로 이민온 후 신대륙에서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집터를 최초로 밝혀 내었다. 그의 집터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체이스 시티 장로교회의 교인들이 준 정보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드류 선교사의 생가 집터는 드류 스트리트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 근처에 호르텐스 스트리트와 에베뉴도 있으며,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드류 선교사의 집이 있었던 장소

여덟 번째로, 드류 선교사의 또 다른 고향교회인 클락스빌 장로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그 교회의 교회 역사 담당 장로님과 더불어 연구를 하는 과정을 통해 실로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드류 선교사가 1908년에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파송교회인 체이스 시티 장로교회를 방문하여 한국을 소개할 때, ‘떠오르는 동방의 태양’이라고 표현한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역사 연구의 과정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클락스빌 장로교회의 영적인 흐름을 보면서, 130년 전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자의 왕국인 한국땅에 미 남장로교 최초의 의료 선교사를 파송하며 뜨겁게 기도했을, 그 불타오르는 열정과 구체적인 헌신을 지금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드류 선교사를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파송할 당시의 영성이 하루 아침에 조성된 흐름이 아니고 면면히 흐르는 역동적인 전통이었음을 알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드류 선교사의 역동적인 영성은 현재도 클락스빌 장로교회에서 대단히 확발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다. 드류 선교사의 선교적 열정과 정신은 클락스빌 장로교회를 통하여 생생하게 살아움직이고 있음이다.
 

   
부친 토마스 드류 목사가 건축한 현재의 예배당.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교회의 전통으로 이어받고 있음.

아홉 번째로, 드류 선교사를 연구하면서 필자가 최초로 그의 가족들의 존재를 밝혀냈다. 드류 선교사 부부는 모두 네 명의 자녀를 두었고, 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있었다. 필자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드류 선교사의 후손들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난항을 겪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드류 선교사의 고향교회인 체이스 시티 장로교회를 통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한 인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분은 체이스 시티 장로교회의 구성원도 아니고, 단지 그 교회 교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교회 행사를 돕곤 하던 인물이다. 예기치 않은 연락을 받고 필자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후에, 필자가 파악한 드류 선교사의 가족은 군산에서 출생한 장녀, 즉 첫째 딸 루시(Lucie)의 후손들이었다. 현재 드류 선교사의 장녀를 기준으로 손녀인 엘리자벳(Elizabeth, 1930년 출생, 현재 94세)이 건강하게 생존해 있으며, 세 명의 증손주들이 살아있고, 그 증손주 중에 한명인 도널드(Donald)와 필자가 연락을 주고 받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그동안 미 남장로교회 관련 역사문화유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호남을 비롯한 곳곳에서 수많은 문제를 야기시켜 왔던 Y씨에 대하여 강력한 주의를 당부하였고, 도널드와 주변의 관계자들이 Y씨의 행태에 대하여 분개하며 경계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1894년 한국에서 출생한 드류 선교사의 첫째딸인 루시 다말 드류 반즈의 묘비.
   
올해로 94세가 된 엘리자벳의 결혼식 사진. 그녀는 드류 선교사의 외손녀다.

열 번째로, 필자가 드류 선교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풀리지 않는 숙제가 두 개다. 하나는, 드류 선교사와, 목사이자 의사로서 호남 땅에서 헌신하다 죽음을 맞이 했던 오웬 선교사와의 관계다. 드류 선교사는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이름을 클레멘트 오웬 드류라고 할 정도로 각별함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에 필자는 필자의 안내로, 동행한 다른 두 명과 함께 오웬 선교사의 출생지 및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고향집을 최초로 찾아냈다. 버지니아주 할리팍스 카운티에 있는 마요(Mayo)가 그곳이다.

할리팩스 카운티와 메클렌버러 카운티가 인접해 있어서 지리적으로 실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여튼 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드류 선교사의 여동생 중에 에바(Eva)의 존재가 아직도 불투명하다. 드류 선교사 관련 기록에서 갑자기 사라진 후 아무런 근거가 없다. 체이스 시티의 역사에 대하여 정통한 사람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모른다고 한다. 연구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주제다.

   
버지니아 마요(Mayo)에 있는 오웬 목사 의사 선교사의 출생지 및 어릴적 추억이 담겨 있는 집터. 건물 뒤쪽 숲속에 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다. 오웬의 출생지는 현재 매물로 나와 있고, 대략 8천9백만원 정도 한다.

현재 필자가 드류 선교사의 후손들과 연결되어 교류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풍성한 사실들이 드러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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