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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세상을 이렇게 방치(?)하시나요?
김성일 단상
2024년 04월 08일 (월) 14:58:28 김성일 집사 webmaster@amennews.com

김성일 집사/ K&Lab 대표이사, 배우(탈랜트), 집사

▲ 김성일 집사

 요즈음 뉴스를 듣다보면, 어렵고 힘든 사람들 등쳐먹는 사기꾼들이 많다. 부모를 살해하고, 힘없는 어린 생명을 모진 학대 끝에 살해하는 등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흉악무도한 자들의 악이 가득하다. 더 나아가 온갖 비리를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도 권력과 자신의 패거리를 이용해서 미꾸라지와 같이 빠져나가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권력자와 정치인들도 너무 많다.
 

그런데 위와 같이 추악하고 참담한 세상사를 바라보면, 그런 짓을 저지르는 범죄자도 싫지만,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하나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원망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발견(?)한 가치 중에 가장 지고지순한 ‘최고의 선’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을 실행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만일 기계적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양날의 검일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올바로 선하게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그렇지 않아서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최고의 “선”인 “사랑”이 존재하려면 “사랑”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 자유의지가 또한 뜻하지 않았던 다른 사건들을 끌고 올 수 있다는 말이다.
 

   
@pixabay.com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극악무도한 범죄를 방치하시는 이유가 뭐냐” “그런 하나님은 증오의 존재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자유의지가 있다는 반증이 되기에 그런 질문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그런 극단의 상황에서 그것 자체를 멈추거나 바꿔 달라고 강청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값있는 “자유의지”를 파괴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그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온갖 흉악한 범죄와 처참한 비극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보고 견디기 힘들어하고 더 나아가. ‘만일 하나님이나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또한 묵과되느냐’는 의문과 함께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존재에게 엄청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런 험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며 가장 아름답고 선한 사랑으로 온 세상을 고치고 치유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최종 심판을 하실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지금의 그 상황을 왜 허락하셨는지 알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때 가서 비로소 극악무도한 현세의 일들의 전말과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위엄과 심판을 보게 될 것이다.
 

부연하면 “공의”란 "공평한 추"를 가리키며(잠 16:11) 의인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정의(justice)를 의미한다. 만일 의인을 구원하시지만 악인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평과 정의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난다. 어느 것이 정의이고 어느 것이 악이라는 것을 ‘드러냄’이 바로 ‘공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악형을 당하셨고, 그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 또한 대부분 순교까지 하였다. 그러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구속 제물이 되신 것과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허락된 사도들의 고초와 희생 때문에,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현세에서 주님을 위한 고난과 순교를 당하면 천국에서 그에 대한 보응이 있다. 하지만 현세에서 그 보상이 절대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현세에서 즉시 보응이 있게 된다면, 기독교인들은 현세에서 모두 부유하고 건강하게 장수를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현세의 기복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심히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최종적 심판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라고. 모세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신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신 32:4)라고. 또한 사도행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31).
 

어차피 타락한 세상이라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욱 악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참 성도는 이 세상에는 희망을 별로 품지 않게 된다. 요즘 자칭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조차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오해해서 참람한 말로 서로와 세상을 빈정거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에게까지 가한 말을 쏟아내는 모습들을 보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썩어지고 비틀어진 이 세상에서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비참한 환경에서 억울하게 착취당하고 허우적거리다 죽어 자빠지는 모습을 볼 때에, 치미는 분노와 연민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그 심정은 천 번 만 번 이해가 된다. 정작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오늘날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정제되지 않은 자기 방식대로 세상과 주변에 표출하는 것을 볼 때 그저 안타깝고 불쌍할 따름이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진심은 아래와 같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부디 우리 모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현 세상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에 대하여 오직 긍휼한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순종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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