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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은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서덕종 집사의 안식일 분석 34
2023년 11월 22일 (수) 15:22:47 서덕종 집사 webmaster@amennews.com

서덕종 집사/ 이단연구가(안식일 분석 전문). 이태원대성교회

 
▲ 서덕종 집사

 김디모데의 주장

주의 날(계1:10)을 일요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예수님이 특정한 날에 대해서 주인이란 말씀을 하신 것은 안식일밖에 없다. 인자는 안식일(일곱째 날)의 주인이지 일요일(첫째 날)의 주인은 아니다. 따라서 주의 날이 어떤 날인지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안식일밖에는 없다(계명과 유전 p.70).
 

[반론]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주인”(막 2:28) 이라고 하셨다. 일곱째 날 하루만 주인이라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모든 날을 만드신 주인이기 때문이다. 또 본문의 “주의 날”(계 1:10)에 대해서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는데 절대로 안식일은 아니다.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계 1:10)된 날이 제 칠일이었으면 그냥 안식일이라고 기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안식일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사람이 “주의 날”이라고 기록한 것은 안식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의 날”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사도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사도 요한은 세베대와 마리아(막 16:1).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열두 사도 중에 최초로 순교한 야고보의 형제이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극진히 섬겼다고 한다. 야고보와 함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막 3:17)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런 사람이 신앙적으로 완숙한 노년에 기록한 요한복음, 요한 1서, 2서, 3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며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는 매우 섬세하고 기억력도 탁월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사건과 숫자와 시간까지 기록했다.
 

즉,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시간이 “열 시쯤”(요 1:39)이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시간은 “여섯 시쯤”(요 4:6)이요, 왕의 신하의 아들이 살아난 시간은 “어제 일곱 시”(요 4:52) 라고 기록했다. 또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 6:9”의 떡의 종류와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요 6:13)라는 것과 5,000명의 식비가 “200데나리온”(요 6:7)이라는 금액까지 기록했다.
 

물론 성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사도 요한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삼대 제자이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갈 2:9)으로 불렸으며 초대교회의 장로다(요삼 1:1).
 

그런 사람이 요한계시록에 “주의 날”이라고 기록했다. 이 명칭은 요한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로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계 1:1)을 기록했다. 따라서 “주의 날” 곧 ‘주님의 날’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신비롭고 중요하고 특별한 날이다. 예수님께 특별하고 사도 요한에게 특별하고 온 인류에게 특별한 날이다.
 

예수님의 탄생도 특별하고 십자가 사건도 특별하지만 부활 사건은 더욱 특별한 사건이다. 사람이 죽으면 썩는데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썩지 않고” (딤후 1:10)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증거이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롬 4:25) 증표가 된다. 이러한 전후의 사정을 살펴볼 때 성경에 기록된 “주의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곧 안식 후 첫날이다.
 

그 증거는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 당일에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친히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그날이 “안식 후 첫날”이다(요 20:19). 사도 요한은 그 예배에 참석했던 산 증인이다(눅 24:33). 그때부터 다른 사도들과 함께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와 야고보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안식일 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다가 마지막에 순교한 것이다. 거기에 더욱 확신을 주는 것은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과 이그나티우스다. 그들은 안식일을 거부하고 주일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Magnesians 9:1~3). (성서대백과 제5권 p.125, 기독지혜사)

요한계시록의 “주의 날”이란, 그동안 요일에 대한 명칭도 없이 애매하게 ‘안식 후 첫날’이라고 부르다가 “성령의 감동”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 그 후로 “안식 후 첫날”이라는 명칭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주의 날”은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 후 첫날”인데 오늘날에는 주일이라고 한다.

   

안식일은 행실을 심판하는 표준

신계훈의 주장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로 거저 베푸신 구원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믿음의 진실한 여부를 드러내는 열매, 곧 행실(마 7:16~21)을 심판하는 표준임에는 틀림없다 (약 2:8~13)(오직 성경만이 판단기준이다 p.67).

 

[반론] 위의 내용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본다.

먼저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는 말은 옳은 말이다. 실제로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없다.
 

두 번째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구원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의 반응과 구원에 대한 반응은 정반대다.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반대였다.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안식일 주의자로 있을 때 살기가 등등하여 기독교인들을 잡아 때리고 죽이던 것이 안식일의 대한 반응이다. 또 안식일 주의자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죽이면서 마귀와 함께 기뻐한 것이 안식일과 십계명에 대한 반응이다. 반대로 구원에 대한 반응은 바울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을 말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구원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려고 한다. 베드로는 120명과 함께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는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 ” (행 2:14)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말하다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 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한다.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행하시고 … ”(행 2:22) 또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행 2:23-24)다.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1-32)라고 외치면서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바로 이 모습이 구원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믿음의 진실한 여부를 드러내는 열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세 번째,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행실을 심판하는 표준이라고 한다. 안식일 주의자들에게 조사하고 심판한다는 교리가 있다. 안식일을 포함한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은 천국으로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낸다는 교리다. 안식일은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느 13:18)라고 한다. 안식일에는 진노가 있다. 안식일에 십계명을 포함하여 행실을 심판하는 표준으로 삼게 되면 더 큰 진노가 있을 것이다. 안식일을 포함하여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갈 3:10) 않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고후 5:10)게 될 것이다. 그 심판의 결과는 지옥이 될 것이다.
 

위에서 신계훈 씨가 인용하는 마태복음 7장 16절 이하에는 가시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롬 3:23)으로 그 열매는 “사망”(롬 6:23)이다. 그토록 나쁜 나무라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좋은 나무에 가지를 접붙이면 된다. 이는 세상의 방법과 반대다. 세상에서는 나쁜 나무에 좋은 가지를 접붙여 좋은 열매를 맺는다. 예를 들면, 나쁜 감나무에 품질 좋은 단감나무의 가지를 접붙여서 단감을 얻는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뿌리가 거룩한즉 나무도 거룩하다”(롬 11:16). 또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롬 11:17)다고 한다. 예수님은 뿌리요 참 감람나무다. 돌감람나무와 같은 나쁜 가지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그 뿌리의 진액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사람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은 “가지”(요 15:5)다. 즉, 나무인 예수님께 붙어서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


그러나 안식일 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스스로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을 심판의 표준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서 심판에 대한 표준은 안식일이 아니다. 십계명도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지의 여부를 통해서 심판이 결정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요 5:24)다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니라 이미 얻어서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졌다. 예수님은 “생명”(요 14:6)인데 안식일에는 생명이 없다. 아무리 안식일에 목숨을 걸어도 마지막은 사망이다. 따라서 심판의 정죄를 받지 않으려면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롬 8:1)
 

그런 사례가 있다.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왔다. 유대인 안식일 주의자들은 그 여인에게 모세의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하신다. 그 말씀에 안식일 주의자들이 모두 떠났다. 안식일 주의자들은 모두 죄인이었다.
 

안식일 주의자들이 떠나고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만 남았다. 재판장과 죄수만 남은 것이다. 재판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죄수인 여인에게 “너를 정죄한 자가 어디 있느냐”(요 8:10)고 묻는다. 그 여인이 주변을 살핀 후 아무도 없다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요 8:11) 라고 말씀하신다. 그 여인은 간음한 죄인인데 정죄함 받지 않았다. 죄가 있는데 심판을 받지 않았다. 그 여인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앞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식일 주의자들은 모두 가버렸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대신 안식일을 찾아 떠났다.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심판의 표준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고 한다.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으로 심판을 받아 보라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롬 2:5). 받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큰 죄, 곧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즉 지옥에 가는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예수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심판의 표준이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심판에 이르지 않기를 축복한다.

 
  서덕종 집사는 이단연구가이자 안식일 분석 전문가다. 그는 최근 <안식일을 버려라>(서덕종, 한사랑가족상담연구소, 2023)를 출간했다. 안식일주의자들과 직간접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발견된 그들의 비성경적인 내용은 물론,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 원고 시리즈는 서 집사의 책 내용을 요약 간추린 것이다(상담 전화 010-7706-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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