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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3)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3년 06월 05일 (월) 11:26:48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땅에 기를 세우며 열방 중에 나팔을 불어서 열국을 예비시켜 그를 치며 아라랏민니아스그나스 나라를 불러 모아 그를 치며 대장을 세우고 그를 치되 사나운 황충 같이 그 말들을 몰아오게 하라”(예레미야 51:27)
 

2. 예레미야의 예언에 등장하는 민니(Minni, Mannai, Mannea, Mannaeans)

예레미야가 말한 북방의 고지대에는 반 호수(Lake Van)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아라랏(우라투) 왕국이, 우르미아 호수(Lake Urmia)를 끼고는 마네안(민니)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네안(민니) 왕국은 영산인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동남부에 위치하였다. 마네안(민니)이 역사의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대략 주전 828년 경이었다. 당시 앗시리아 제국의 살마네세르 3세(Shalmanesser III)가 통치한 지 30년 째 되는 해였다. 아라랏 왕국의 기록에서도 앗시리아와 비슷한 시기에 마네안(민니)이 언급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란의 하산루(Hasanlu)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볼 것 같으면, 마네안(민니)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마네안(민니) 왕국의 건축물이 웅장해 보인다. 우르미아 호수를 중심으로 튼실한 말을 목축하여 군사력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무역을 통한 영향력도 확대하였다

고대 근동과 주변 지역에서 전쟁이 빈발해지면서 말을 기반으로 하는 기병대와 전차부대의 중요성이 비등하였다. 이는 곧 튼실한 말을 기를 수 있는 최적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마네안(민니)들의 땅이었던 우르미아 호수 주변은 비옥한 토양과 최상의 목초지였기 때문에 양질의 말을 길러낼 수 있었다. 마네안(민니)들은 이를 기반으로 국력을 축적하고 주변국들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들은 초강대국인 앗시리아 제국과 무시할 수 없는 강소대국인 아라랏 왕국과 필연적인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은 마네안(민니)의 왕들, 즉 우알키(Ualki), 아자(Aza), 울루수누(Ullnusunu), 아세리(Ahseri), 우알리(Ualli), 에리시니(Erisini) 등이 주변의 강대국들과 경쟁했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양질의 군마가 필요했던 앗시리아 제국은 주전 714년 경 사르곤 2세가 마네안(민니)의 영토를 침략하여 그 수도인 이지르투(Izirtu)를 함락시켰고 파르수아(Parsua)에 군대를 주둔시켜서 체계적으로 말을 조달하였다. 주전 681년에 앗시리아 제국의 산헤립이, 폐위된 비운의 황태자인 아드라멜렉과 그의 동생에게 암살을 당한 후, 에사르핫돈이 정적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대내외적으로 제국의 혼란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네안(민니)들은 이 틈을 이용하여 앗시리아 주둔군을 물리치고 자주권을 되찾았다. 그런 다음 마네안(민니) 왕국은 강대국들과의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군사적 충돌을 피하면서 주변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하였다. 마네안(민니) 왕국은 앗시리아 제국과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 등이 차례로 패망하는 동안에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견지하고 있었다.

   
▲ 우르미아 호수 근처의 하산루(Hasnalu)에서 발굴된  금으로 도색된 그릇이다. 마네안(민니) 왕국이 교역을 통해 부와 명성을 널리 알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레미아 선지자가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의 몰락과 패망을 예언하면서,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열국들 가운데 마네안(민니) 왕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어떤 학자들은 하 민니(HAR Minni)로부터 파생되어 아르메니아(Armenia)가 되었을 가능성을 주장하였으며, 더 나아가 게르마니아(독일)의 일부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마네안(민니) 왕국에 대한 일련의 역사적 흔적들은 그들이 우르미아 호수(Lake Urmia) 주변을 넘어서 보다 광활한 지역으로 확장해 갔다는 말이 된다. 태생적으로 기마민족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마네안(민니) 왕국이 태풍처럼 몰아치는 기동력으로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리는 북방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것이 어찌 보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3. 예레미야의 예언에 등장하는 아스그나스(Ashkenaz, 스키타이 Scythian)

고대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두고 열강들이 각축을 벌여 왔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전후하여 볼 때, 그들은 이집트 제국, 앗시리아 제국,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 그리고 고대 페르시아 제국 등이었다. 이런 강력한 제국들에게도 항상 위협이 되어 왔던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북방의 열방들이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등장한 아라랏, 민니, 아스그나스 등이 오래전부터 강인하고 진득하게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대제국들에게조차 순간순간마다 공포심을 주기도 했다. 영산인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맹주로 군림했던 아라랏(우라투) 왕국도 앗시리아 제국을 밀어붙여서 위축되게 만들었다. 마네안(민니) 왕국도 대제국들과 북방의 신흥세력들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며 각 나라의 기록에 빈번하게 언급될 정도로 맹위를 떨쳤다.

   
▲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중인 아스그나스(스키타이)의 조각품이다. 금으로 장식된 이  기마상은 마상 전투를 자유자재로 하는 그들의 호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필자가 이전 글들을 통하여 아스그나스(스키타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언급했으므로 독자 제위가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은 갖게 되었으리라 사료 된다. 노아의 아들 야벳의 장남인 고멜은 시메리안(Cimmerians)으로 알려지며 북방의 여러 왕국들 뿐만 아니라 대제국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시메리안들이 아라랏 왕국, 마네안(민니) 왕국, 그리고 주변 여러 나라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대제국들의 멸망과 신흥 제국의 등장에 있어 나름대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다가 시메리안들이 일순간 가뭄에 콩 나듯이 기록에 등장하다가 어느 시점에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잊혀졌던 그들의 흔적이 유럽의 여기저기서 발견되어서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마네안(민니)의 경우도 시메리안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 주었다. 북방에서 맹위를 떨치던 세력들이 갑자기 사라진 경우를 볼 것 같으면, 각 민족 별로 현재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지역을 거쳐서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러시아를 통과한 후 유럽의 여러 곳으로 흩어졌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연유로 유럽의 곳곳에서 북방 민족들의 흔적들이 보여지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북방 민족들에게 가장 큰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세력이 아스그나스(스키타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실제로 메뚜기떼처럼 쇄도하여 각 왕국들을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일쑤였다. 마네안(민니) 왕국 자체의 역사조차 기록이 빈곤한데도 불구하고, 마네안(민니) 역사에서 아스그나스(스키타이)가 비중 있게 기술된 것으로 볼 때, 그들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야벳의 장손이자 고멜의 장남인 아스그나스(스키타이)는 큰 세력을 이루어 점차적으로 북방지역을 아스그나스의 땅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아스그나스(스키타이)는 대제국들의 혼란기나 권력 이양기 등 힘의 공백을 파고들며 천하를 향해 포효하였다. 앞서 살펴본 대로, 아스그나스(스키타이)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황충, 즉 무시무시한 메뚜기 떼처럼 순식간에 몰아쳐서 닥치는 대로 초토화시키는 위엄을 보였다. 이집트 제국조차도 파라오가 직접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대량의 조공을 바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 흑해 연안에 남아있는 아스그나스(스키타이) 제국의 유적이다. 그들은 말과 활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고, 금을 이용한 금속세공 기술도 탁월하였다. 역사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아스그나스(스키타이)가 유럽을 총칭하는 용어로 등장하고 기독교를 통한 구속사의 큰 흐름이 된 것은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역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북방이 아스그나스의 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그 영향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마네안(민니)들과 시메리안들의 흔적이 유럽 곳곳에 남아서 다양하게 회자되는 듯싶었는데, 유럽에서조차도 이상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아스그나스라는 이름만 남고 다른 것들은 사라졌다. 아스그나스의 영향력이 유럽까지 확대되면서 그나마 명맥이 남아 있던 여타의 북방 민족들의 흔적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말이다. 아스그나스(스키타이)의 저력이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파급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진 것이 아니듯이, 아스그나스(스키타이)도 마찬가지였음이다. 중국의 북방에서 초원지대를 장악한 몽골이 파죽지세로 몰려들 때, 당시 중세의 기독교인들이나 이슬람 신자들이 각자의 신이 내리는 심판으로 해석할 정도로 대단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중세기 몽골의 확장보다 거의 2천 년 정도 앞선 시점에서 아스그나스(스키타이)가 야기했던 공포감은 몽골이 안겨준 공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세계정세에 대하여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전 글들에서 언급했던 대로, 예레미야는 1장과 6장을 통하여 이미 아스그나스(스키타이)의 엄청난 기동력과 파괴력을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예언이 성취되었던 동시대에 살면서 직접 경험키도 했다. 즉 그가 역사의 목격자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예레미야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하여, 예레미야서 51장 27절 후반부의 표현, 즉 ‘사나운 황충 같이’(like a swarm of locusts)라고 정확한 비유를 들어 그가 예언했다고 볼 수 있다. 대영박물관에서 아스그나스(스키타이)를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가장 먼저 언급한 특징이 ‘무서운’ ‘공포스러운’ ‘두려움을 주는’ 전사들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등장 자체만으로도 열국들을 얼어 붙게 만들었음이다. 필자는 예레미야가 아라랏(우라투), 민니(마네안), 아스그나스(스키타이) 등 북방 민족들의 호전성을 정확하게 알고 예언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예레미야의 학식이 탁월한데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가 직접 체험한 내용까지 어우러져,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예언했기 때문이리라. 또한 예레미야의 예언 속에는 구속사의 큰 물줄기가 이스라엘(유대인)에서 아스그나스(유럽)로 옮겨 갈 것이라는 복선도 깔려 있어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에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구속사의 흐름을 통해 볼 때, 아스그나스 땅에서 아르메니아는 주후 301년에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우뚝 섰고, 조지아도 세계 최초의 여성자 조명자 국가이면서 주후 326년에 역사상 두 번째로 기독교 국가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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