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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2)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3년 05월 30일 (화) 15:23:48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1)’에서 살펴본 대로, 예레미야 1장/6장과 스바냐 2장의 예언들이 아스그나스(Ashkenaz) 즉 스키타이(The Scythian Empire)의 등장을 가르킨다고 밝혔다. 아스그나스 군대가 태풍처럼 몰아치며 고대 근동 전체와 특별히 팔레스타인 해안을 따라 이집트까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음도 보았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아스그나스(스키타이) 군대는 정말 신기하게도 남조 유다 왕국을 공격하지 않았고 엄청난 공포심만 남긴체 그냥 스치듯 지나갔다. 필자는 이런 모습을 대하면서 아스그나스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섭리적 인연’ 또는 ‘역사적 복선’이라고 표현코자 한다. 이전 글들에서 여러 번 밝힌 대로, 향후 이스라엘의 다수가 아스그나스(아르메니아 조지아)의 땅으로 이동하여 토착화 된 후, 그들이 유럽으로 흩어져서 아스그나스(유럽)의 대륙으로 불리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역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며 신묘막측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수치와 고통을 안겨주었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솔로몬의 성전을 파괴하였던,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열방들의 면면을 보자. 다음은 예레미야의 예언이다:

‘땅에 기를 세우며 열방 중에 나팔을 불어서 열국을 예비시켜 그를 치며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그나스 나라를 불러 모아 그를 치며 대장을 세우고 그를 치되 사나운 황충 같이 그 말들을 몰아오게 하라’. (예레미야 51:27)

   
▲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은 유럽의 최고봉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유구한 교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영감이 넘치며 신령스럽다. 노아의 아들 야벳의 직계들이 이 산맥을  넘나들며 지경을 넓혀갔다


1. 예레미야의 예언 속에 등장하는 아라랏(Ararat, 우라투 Urartu)

아라랏은 창세기 8장 4절에 처음 언급되었다. 물로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고 노아의 방주만이 일정 기간 동안 떠돌다가 아라랏산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에덴동산의 위치가 고대 아르메니아 지역에 있었다고 가정하면, 창세기 1장에서 5장은 물론이거니와, 노아가 등장하는 창세기 6장과 7장을 포함하여, 아라랏산이 나오는 창세기 8장부터 10장까지 전부가 아라랏산 주변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의 전 세계 사람들이 가능성 차원에서 이해할 때, 아르메니아 조지아는 가능성과 함께 그것이 실제였다고 믿어와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역사적, 신앙적 자부심은 제3자의 눈치 따위는 개의치 않고 엄청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자손대대로 그들에게 아라랏산은 영산이자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암살

역사적으로 노아를 중심으로 하는 신인류가 아라랏산 주변으로부터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창세기 10장에 나온 대로 열국들을 이루었다. 이후에 노아의 아들인 야벳의 직계로 구성된 아라랏(Ararat)은 열왕기하 19장 37절과 이사야 37장 38절 등에서 앗시리아 제국과 남 왕국인 유다 왕국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쟁과 연관하여 성경 기록에 등장하였다. 필자는 아라랏(우라투)의 등장과 직결되는 산헤립 왕의 암살 배경에 대하여 먼저 다루려고 한다. 앗시리아 제국의 산헤립(Sennacherib) 왕이 주전 701년에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는 와중에, 히스기야의 기도로 천사가 나가서 185,000명이나 되는 앗시리아 군대를 몰살시켰다. 이런 사실은 열왕기하와 이사야서에만 찾을 수 있다. 앗시리아 기록이나 그리스 역사가들은 산헤립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고대 근동의 주요 지역들을 복속시켰다는 내용만을 다루고 있다. 특히 앗시리아는 자국의 군대가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패배의 기록을 남겼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주전 701년 예루살렘의 포위 사건 이후 산헤립이 약 20여 년을 권좌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생략한 체, 성경은 앗시리아 군대의 패퇴 후 곧바로 그 연장 선상에서 산헤렙이 수도인 니느웨의 한 신전(아마도 씬Sin을 숭배하는)에서 그의 아들들에게 암살당했다고 기록하였다. 이때가 주전 681년 10월 20일이었다고 앗시리아 역사는 연월일까지 정확하게 기술하였다. 산헤립의 암살 사건은 앗시리아 제국 내부의 치열한 권력 다툼에서 기인한 비극이었지만, 열왕기서의 저자는 북 왕국을 멸망시키고 남 왕국인 유다 왕국까지 침략한 앗시리아 제국의 왕인 산헤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라는 뉴앙스를 갖도록 기술하였다.

   
▲ 아라랏산은 아라랏(우라투) 왕국의 정신적 지주이자 민족적 자긍심이었다. 아라랏 왕국은 강소대국의 면모를 과시하며 북방의 맹주로 군림하였다

사실 이 당시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에서는 산헤립 왕의 후계를 둘러싼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일찍이 첫 번째 아들인 아쉬르 나딘 쉬미(Ashur Nadin Shumi)가 태자로 봉해졌다가 갑자기 기록에서 사라지며 처형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다음 태자로 봉해진 아들이 아르다 물리수, 즉 아드라멜렉이었다. 역사는 그가 앗시리아 제국의 신민들에게 상당한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앗시리아 역사는 산헤립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에사르핫돈의 모친이 대단한 여걸로서 국왕과 신하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아르다 물리수, 즉 아드라멜력을 폐위시키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강제로 폐위된 아르다 물리수(아드라멜렉)는 억울함, 분노, 조바심, 권력욕이 한데 어우러져 부친을 암살하고 말았다.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조차도 아르다 물리수의 극단적인 행동에 대하여 무척이나 당황하였고 심지어 등을 돌리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불행을 예감했었는지 산헤립 왕은 혹시 모를 변고에 대비하여 새롭게 태자가 된 에사르핫돈에게 군대를 맡겨서 수도인 니느웨 외곽에 주둔케 하였다. 산헤립의 예상이 적중하였고 자신이 새롭게 태자로 옹립한 에사르핫돈이 암살 사건을 주도했던 정적들을 제압하고 보위에 올랐다.
 

   
▲ 아라랏(우라투) 왕국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과 기술을 앞세워 북방의 황금기를 누리기도 했다


암살자들이 아라랏(우라투)의 땅으로 도주

주후 681년 10월 20일에 산헤립은 태자로 봉해졌다가 폐위당했던 아르다 물리수(Arda Mullisu)와 그의 동생 나부 샤르 우수르(Nabu Shar Usur)에 의해 살해되었다. 성경은 아르다 물리수를 아드라멜렉으로, 나부 샤르 우수르를 사레셀이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그 암살자들이 아라랏 땅으로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를 통해서 고대 우라투(Urartu) 왕국 또는 제국의 이름이 아라랏과 동일하다고 언급했었다. 성경에서는 아라랏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역사에서는 주로 우라투(아라랏)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당시 앗시리아 제국이 천하를 주름잡던 대제국이었는데, 암살자들이 아라랏의 땅, 즉 우라투 왕국으로 피하는 것이 안전했는가? 한 마디로 그렇다이다. 왜냐하면 노아의 땅에서 신인류의 직계로 살아오고 있었던 아라랏, 즉 우라투 왕국은 앗시리아 제국과 일진일퇴를 하면서도 절대 밀리지 않았고, 산헤립이 암살당했던 주전 681년 당시 우라투(아라랏) 왕국이 앗시리아 제국을 패퇴시키며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영국대영박물관에서소장중인아라랏(우라투)의 유물이다. 예레미야가 예언한대로 아라랏 왕국은 기마대를 활용한 기동성이 탁월했다. 아울러 마상 전투 기술이 월등하여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하였다. 이런 기마대가 메뚜기떼처럼 몰려온다고 생각하면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라랏(우라투) 왕국의 황금기

우라투 왕국의 아르기쉬티 2세(Argishiti II, 주전 714-680 재위)는, 앗시리아 제국에서 위대한 왕 중의 한 명이라고 하는, 산헤립 왕을 몰아쳐서 영토확장 뿐만 아니라 이에 위협을 느낀 앗시리아 제국으로부터 평화 협정 제안을 받아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산헤립을 죽인 역도들이 안심하고 도피할 수 있는 곳이 아라랏, 즉 우라투 왕국이야말로 최적임지였던 것이다. 앗시리아 역사는 권좌를 물려받은 에사르핫돈(Esarhaddon)이 부왕 산헤립의 암살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처형하는 대대적인 피의 숙청을 벌였다고 기술하였다.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에 남아 있던 다른 왕자들도 거의 대부분 처형되었다. 우라투(아라랏) 왕국으로 도망쳤던 아드라멜렉과 사레셀만 생존하였다. 앗시리아나 그리스 등 그 어떤 역사 기록에도 앗시리아 제국에서 두 명의 암살자들을 잡으려고 추격대를 보냈거나 군대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없다. 그만큼 우라투(아라랏) 왕국은 대제국조차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라랏(우라투)의 이름으로

그 이후 아라랏(우라투) 왕국은 앗시리아 대제국의 패망(주후 609년),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의 확장과 패망(주후 539년), 그리고 이란 계열의 메데와 고대 페르시아의 등장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예레미야가 51장 27절을 통해 예언할 당시에 메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는 할찌라도, 예레미야가 아라랏(우라투)라는 이름을 정확히 구분하여 기술한 점과 북쪽에서 휘몰아치는 북방 연합군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그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아라랏(우라투)의 존재감은 여전했다고 볼 수 있다. 북 왕국인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켰고 남 왕국 유다를 공격하였던 앗시리아 제국은 아스그나스(스키타이) 제국의 도전과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의 결정적 한 방을 얻어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또한 유다 왕국을 멸망시켰고 예루살렘과 솔로몬의 성전을 파괴하였던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은 창업한 지 미처 한 세기도 채우지 못하고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Cyprus)를 중심으로 한 북방 연합군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예레미야 선지자 등은 이런 역사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예언하였고 그대로 성취되었다.

영산이자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아라랏산의 정기를 받고 번성하던 아라랏, 즉 우라투 왕국을 하나님께서 시의적절하게 역사적인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 우연이 아니라 매우 잘 예비 된 계획이라는 생각이다. 다음 글인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3)’을 통해 민니와 아스그나스를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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