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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9-10
2023년 05월 30일 (화) 10:13:58 오총균 목사 skoh1112@hanmail.net

오총균 목사/ 시흥성광교회 담임, 한국특화목회연구원장,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목회전문 박사, 시흥시서구기독교연합회부회장

   
 오총균 목사


  9. 영원을 지향하는 역사적 인물이 되라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84년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1987년에는 방글라데시의 독립기념일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미국의 세계 식량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요르단 후세인 왕의 인도주의 상을 받는 첫 번째 수혜자가 되었다. 그 후 2006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에 「서울평화상」도 수상했다. 그 외에 1995년 아시아 위크지가 뽑은 위대한 아시아인 20인에 선정되었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교육 및 문화, 개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자에게 수여하는 「월계관상」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 경력만큼이나 인류사회에 공헌한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그 이름을 온 세상에 떨쳤다. 그는 현재 전 세계 부모들이 자녀들로 본 받게 하고 싶은 인물 제1순위에 올라 있다. 최근 2023년 2월에는 약자와의 동행 대담 프로그램을 오세훈 서울시장과 진행한 바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을 살리는 값진 일에 헌신하는 것처럼 감동적인 일도 없다. 남들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때 창의력을 발휘하여 다수의 이익을 위해 공동비전을 실천하는 사람처럼 위대한 사람도 없다. 그는 자신의 삶을 특화시켜 이웃의 유익에 헌신한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그도 한때 정치적 탄압에 대응하여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입문하려 하였다. 그러나 선하고 순수한 사람이 진입하기에 정치라는 벽이 너무 험난했기에 생각을 바꾸었다. 역사 속에는 자기만의 특정분야에서 일생을 몸담고 헌신하며 성공을 일궈낸 후, 여러 이유에서 다른 분야에 도전했다가 이제까지 쌓은 공든 탑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리는 불운의 사람들이 있어 왔다.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도 한순간의 선택으로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으나, 끝까지 자기만의 길을 간 사람으로 남게 된 것은 대단히 잘한 선택이라 판단된다. 이제까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온 것도 중요하지만 본래 자신의 좋은 모습을 끝까지 지키는 일도 그동안 위대한 일을 해온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1%의 물 때문에 물이 넘치는 법이다.

목회자들도 이 부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목회(牧會)가 인류를 사랑하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성취로 이해될 때, 이 사역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을 포괄하는 우주적인 사역(使役-employment)에 해당된다. 따라서 사역의 특성상 이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목회자로서는 중도에 탈선하거나 변질됨이 없이 시종(始終) 초지일관(初志一貫)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목회자들이 소위 ‘목회성공’을 일궈낸 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는 줄도 모르고 탐심의 욕망이라는 덧에 걸려들어 탈선의 길로 간다는 데 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초심(初心)에서 벗어나 본질과 다른 것을 추구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감각(의식) 없는 자가 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엡4:19). 목회자 자신이 자기 관리에 실패하여 불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공 이후 사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에 모든 목회자는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에게서 소중한 통찰을 얻어야 한다. 목회자는 순수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보호하여야 한다. 중도에 탈선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또한 실제로 변질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오직 사도 바울처럼 목숨보다 사명을 우선순위에 두고(행20:24)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며(딤후4:7) 사명의 본질에만 충실해야 한다(행26:18). 비록 목회자의 길이 좁고 협착한 길이라 할지라도 죽은 영혼(생명)을 살리는 사명길이라는 점에 기초하여 그 가치를 알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위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르심의 상만 바라보며 외길 인생을 걸어가야 한다(수1:7, 빌3:14, 히12:2). 모든 목회자는 지교회 시무목사, 기관목사, 전도목사, 신학자, 선교사, 특수 목회자, 원로목사 등, 자신만의 특정 분야에서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지켜가는 거룩한 고집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목회 본연의 직무를 완주한 목회자로 역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길이 남겨야 한다.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일에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셨던 것처럼 말이다(요19:30).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이탈함 없이 목회자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일은 목회자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명령이다(딤후2:15). 목회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말고 구심력(求心力)을 유지하여야 하며 자신의 사명 길에만 집중하며 직분자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우리 생명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골3:4)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세로(엡6:24), 주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끝까지 지키고 이루어야 한다(골4:17). 목회자는 주의 부르심을 받고 한 시대를 수놓았던 인물 중, 마지막까지 사명을 완주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3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① 천국 면류관 수상자를 꿈꾸라

특화목회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천국을 지향한다(골3:1-3). 그런데 목회 세계에 편만해 있는 보편적인 패턴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보다 보이는 현실 세계에 더 연연한다는 점이다. 모든 목회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패턴이 교계(敎界)의 문화(文化)로 고착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목회자가 교회를 설립하여 개척목회를 하든, 아니면 기존교회에 청빙을 받아 기성목회를 하든, 처음에는 순수하고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한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목양 입지가 확보되고 목회가 안정되어 교세가 어느 정도 되면 그때부터 교회정치에 눈을 돌린다. 처음 가졌던 ‘교회사랑, 주님사랑’은 목회의 안정과 함께 서서히 퇴색되고 공동체 조직 내에서 목회자 자신의 사적(私的) 비전과 꿈을 이루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세상 영광이 주는 매력에 서서히 매료(魅了)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 순간부터 한 자리를 얻기 위한 에너지가 가동되고 노회 임원(노회장 포함)과 총회 총대가 되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진다. 결국 총회 임원을 거쳐 교단 ‘총회장’에 오르는 것이 목회자의 최대 목표로 설정된다. 심혈을 기울여 목회자로서의 스팩(경력)을 쌓은 후 교단장이 되는 것이 성공한 목사의 척도로 대체된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단체의 장(長) 자리(한기총, 한교총, 한기연) 얻는 것으로 목회자의 성공이 귀결된다. 결국 주님을 향한 충심(faithful)과 헌신의 초심(one's original intention)이 어느 순간부터 목회자의 명예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민22:31). 목회의 종착역을 향해 가면 갈수록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께 충성한 신령한 보상과 그에 따른 상급을 생각하는 일이 강하게 부각되어야 함에도 이 일은 잊혀진 지 오래다. 오로지 현세에서의 영예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교계에서 성경의 권위로 말하는 회원들의 발언이 등장한지 오래고, 진지하게 주님의 임재 속에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분명하게 관철하려는 의지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만큼 목회자의 소명과 주의 사역의 본질이 퇴색되어 버렸다. 오로지 교계 지도자들 마음에 자리 잡은 사익(私益) 추구가 은밀하게 공동체 저변에 흐르면서 그 욕망을 관철하고자 하는 의도가 교계의 문화로 자리 잡아 버렸다. 의와 진리를 따라 주님의 뜻을 꽃피워야 하는 의사결정 현장이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여 가는 인본주의 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유1:11).

() 자리는 주의 종 된 신분 자체보다 가치 있게 평가될 수 없다. 그것은 주의 종 된 신분을 전제로 잠시 주어지는 인센티브에 불과하다. 주의 종 된 신분보다 결코 앞선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없다. 성경은 주의 종 된 신분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헌신한 충성은 너무 복되고 귀하여 하늘의 상급으로 예약해 주고 있다(계2:10). 그러나 조직 내 구성원들의 표로 확보한 자리까지 상급이 주어질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도리어 조직의 장(長)으로 재직하며 수행한 잘못된 활동 내력 때문에 지금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행하여 왔던 목회 본질사역의 발자취와 상급에 손실을 입게 될지 모른다. 주님을 위해 충성하기보다 조직을 위해 일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요일2:17).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1년간 유지하는 장(長) 자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약4:14). 그 자리가 대단한 것인 양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자리 앉은 자를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하여 띄우는 문화는 분명, 진실을 과장한 측면이 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처럼 우정승, 좌정승 자리다툼하면서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지를 모르고 높아지려 했던 그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것이다(마20:22). 교인들에게는 명예, 영광 반납하고 오직 하나님 영광위해 살라고 설교하면서 정작, 목회자 자신들은 조직 내에서의 한자리 얻는 데 열중하고 있다. 종교단체라는 조직 내에서 누릴 각종 이권과 자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이익을 챙기고자 표심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노벨상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 주시는 하늘의 상급(고전3:14)에 관심을 두기보다 자신을 부르신 분과는 별도로 존재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영광을 취하는 데 집중하며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성경에서는 ⓐ법대로 끝까지 달려간 자에게 주시는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9:24), ⓑ달려갈 길 다 마친 자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딤후4:8),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약1:12),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계2:10), ⓔ주의 뜻을 따라 목회한 자들에게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벧전5:4) 등을 말씀하고 있다. 당연히 목회자는 자신을 불러주시고 세우셔서 능하게 하신 주님(딤점1:12)이 수여해 주시는 천국 메달을 얻고자 달려가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고통을 참으신 예수님처럼 앞으로 열리게 될 많은 열매를 바라보며 아버지 뜻을 이루는 것을 양식 삼고 헌신해야 한다(요4:3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우며(골1:24)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기까지 해산하는 고통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도 바울처럼 앞에 있는 상급을 바라보며 충성해야 한다(갈4:19). 모든 목회자는 천국의 면류관을 열망하며 천국 면류관 수상을 꿈꾸어야 한다. 히브리서 제11장에 등재된 믿음의 영웅들처럼 상 주심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한다(히11:6). 목회자는 적어도 쇠하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상급을 추구해야 한다(벧전1:4). 주변 사람들이 장(長) 자리를 권해도 그 자리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오로지 주의 종(servent)된 신분으로 만족하고 주의 종으로서 지닌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며 더 큰상을 바라보며 일평생 본질만 붙잡고 충성해야 한다(고전4:2).

그러나 공교회와 연합회 안에서 정치조직을 운영하는 일도 광의적 차원에서 주의 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공동체가 운영되려면 누군가가 리더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장(長) 자리를 얻어 수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탐심의 노예로 부역하는 것처럼 매도해서도 안 된다. 공동체의 질서와 화평과 유익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분명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특화목회는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딤전3:1). 만일 목회자가 이 일을 수행할 역량이 구비되어 적임자로 발탁된다면 겸손히 그 부르심에 응답할 필요도 있다. 목회자는 자신의 뜻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경우, 기꺼이 그것도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조직의 수장(임원 포함)이 되는 일이 주의 종 된 본질적 신분보다 앞설 수는 없다. 목회자는 절대로 자신의 명예와 이권을 위해 조직 내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주님께만 영광 돌리고(엡4:21, 빌4:20, 딤후4:18),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룸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함에 모든 것이 귀결되어야 한다(마6:10, 갈6:2). 시종(始終)을 하나님의 공급을 대행하는 선한 청지기답게(벧전4:10) 사랑과 섬김으로 봉사해야 한다(벧전4:11). 부여된 권한과 권세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해야 하며 희생과 봉사로 이웃을 내 몸처럼 섬겨야 한다(마5:13-14). 초점은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이며 주께 드리는 헌신이어야 한다(계2:10). 비본질(사익 추구)에 집중하는 것을 사양하고 목회의 본질에 충성하듯이 조직 내 리더의 임무를 하나님 앞에서 ‘신전의식’을 가지고 수행한다면 이보다 더 값진 일도 없을 것이다(마6:1). 부차적인 것(명예, 이권)에 눈이 어두워 이득을 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주의 부르심과 소명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출18:21). 본질적인 것(소명에 따른 사명)을 희석시키면서 까지 ‘비본질(각종 이권)’에 매달리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살면서 경험하는 바와 같이 인생에는 결국 끝까지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젊음, 재물, 명성, 명예, 자기만족, 쾌락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것들은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결국 놓아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결국엔 끝까지 붙잡고 있을 수 없는 그것을 붙들고 그것에 애착을 보이며 집착한다. 사실상 진상(眞像)이 아닌 허상(虛像)을 잡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과 영원한 구원곧 영생(永生)의 소망이다(요6:68). 이것은 사람이 꼭 붙잡아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다. 세상에는 결코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을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위해 바치는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바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다. 영원히 놓쳐서는 안 되는 그것(영구한 구원)을 위해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결국 지나가 버릴 것들)을 투자하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마10:39). 이것은 인생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요12:24). 끝까지 붙들 수 없는 것들을,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위해 당연히 바쳐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 실천은 말대로 쉽지 않다. 헛된 탐욕과 욕망이 진짜처럼 가장되어 바른 선택에 장애를 주기 때문이다(요일2:16). 이에 목회자는 영원히 가치 있는 것들을 얻기 위해 결국엔 없어질 것들을 과감히 투입하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눅16:8-9).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필요한 곳’과 ‘필요로 하는 때’에 지체 없이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잠3:27-28). 선을 행할 적중 시기(時機)를 놓치고 나면 결국 붙잡고 있던 것들도 놓치게 되고 영원을 소유하는 실효성도 잃게 된다. 그만큼 ‘때’와 ‘곳’은 중요하다. 목회자는 이 를 살려 자신의 장래를 위한 좋은 터를 쌓아야 하며 참된 생명을 취해야 한다(딤전6:19). 자신이 소유한 자원과 자산을 가치 있는 일에 과감히 투입하는 결단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행20:24). 그래서 영원을 지향한 그 목표를 달성하고 천국 면류관 수상자 됨을 성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말과 행실이 따로 분리된 바리새인의 모습에서 떠나야 하며(마23:3), 성경적 표준으로 돌아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모습처럼 온전해야 한다(마5:48). 더 이상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과 지교회의 평신도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목회자다운 진정한 실전 모습을 반드시 존치(存置)해야 한다(벧전5:4). 결국 내려놓아야 할 것을 포기하는 선택을 필수사항으로 승화시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목회자로 남아야 한다.
 

②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고 겸손히 그 분 뒤로 물러나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은 전형(全形)이었다(고전11:1).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 고생도 마다 않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으며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딤후4:7).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며(골1:27), 주를 위한 헌신과 충성을 아끼지 않고 다 쏟아부었다. 바울은 자신의 갈 길을 다 달려가고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과 충성을 다 쏟아부은 후(빌2:17),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것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였다(고전15:10). 바울은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이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원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과 능력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사도 바울을 능하게 하신 분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셨다(딤전1:12). 바울이 겸손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교훈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에 기인한다(고전11:1). 예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셨다(마11:29). 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빌2:5).’고 권면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마음은 자기를 비우는 마음이며 죽기까지 낮추시고 복종하는 마음이셨다(빌2:8).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져 자신의 뜻은 접고 아버지 뜻을 수용하는 마음이었다(눅22:42). 그 결과,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그 발아래 꿇게 하시고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빌2:11).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고,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사도 바울은 이식(移植) 받았다(고후5:13).

사람들은 그 사람의 재산이나 지위, 그의 가정이나 지식, 옷이나 얼굴, 인종과 언어에 따라 외모로 그 사람됨을 평가한다(약2:1). 사람을 많이 모으고 큰 조직, 큰 제도, 큰 건물을 세우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이 같은 것들을 추구하고 여기에 가치를 부여하며 자기 이름을 내고 자신들이 지닌 힘을 과시한다(창11:4). 목회자를 평가하는 기준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교회 사이즈(size)와 교세(敎勢)로 목회자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한다. 교세(敎勢)’가 있는 교회 목회자는 높임선망의 대상이 되고, ‘교세가 약한 교회 목회자는 초라함측은함의 대상이 된다. 이 같은 평가에 의해 ‘열등감’과 낮은 ‘자아 존중감’에 시달리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이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성경적 가치 평가 기준은 세상의 평가 방식과 전혀 다르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1:27)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고전8:11)과 성도는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는 사실(고전3:16)에 기초하여 사람을 평가한다. 성경은 사람을 외모와 외형을 근거로 평가하지 않고(약2:1)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받는 사랑에 의해 평가한다(요일3:1). 이 같은 성경적 평가 방식에 근거할 때 사람은 형태나 외형과는 무관하게 존재 자체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이다(시16:3).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보유함과 동시에(마6:26) 천하보다 귀한 주의 사랑을 받은 자체로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한 자이다(요일4:9-10). 바울은 이 같은 평가 방식에 근거하여 자신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평가하였다(딤전1:15). 성경적 평가 방식에 근거하여 죄인 중에 죄수였던 자신(딤전1:15)과 사도라 칭할 자격 없던 자신(고전15:9)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바울 되게 만들었다(고전12:24). 성경적 가치관이 바울로 바울 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성경적 가치관을 토대로 특화된 목회자상을 구축하는 일은 누군가의 조언 한마디나 지나가는 한순간의 생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에 장기간의 묵상과 집중적인 몰입 시간을 투입하여 ‘의식혁명’을 이루어 낼 때 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 목회자 자신을 살리고 위대하게 만드는 요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의 요인에 기인한다. 이 말은 목회자 자신이 자기를 만드는 주체가 된다는 뜻이다. 목회자가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의진실도 그것이 절대가치를 지닌다 할지라도 피나는 노력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저절로 관철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관철하는 자의 몫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성경적 가치관을 내적 의식으로 단단히 고정시키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의도적 노력’을 지속하여 성경적 가치관에 근거한 의식개혁에 성공해야 한다. 이때 도전 앞에서도 마음의 무너짐 없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향해 나갈 용기를 소유하게 될 것이며, 의지력을 활성화시켜 진리와 정의를 관철할 용기를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성경적 가치관에 기초한 마음과 중심을 단단히 고정하고 의식화할 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동력화가 일어날 것이며 저항하는 어떤 세력과 환경에도 지배받지 않는 불변하는 형세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크든 작든, 많든 적든, 교회의 크기(size)와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가 수행해야 하는 사역이다(막16:15). 개인이나 공동체나 모양과 크기와 용량과 별개로 항시 수행해야 하는 주의 지상명령이다(마28:18-20). 사도 바울은 이 같은 관점에 기초하여 어느 환경에 처하든 심리적 위축 없이 사역에 임했다(고후6:3-7). 비록 작고 비천한 곳에 머물러 있어도 질그릇에 담겨있는 보배 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을 소유한 자답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사역할 수 있었다(고후5:7-9).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견고한 진(陣)을 복음의 능력으로 파하는 자(고후10:4)로서 가난함과 연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열등감에 지배받지 않고 부요와 승리의식으로 충만한 가운데 사역할 수 있었다(고후6:9-10). 도리어 약함과 작은 것과 궁핍과 능욕을 기뻐하고 자랑하며 거기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온전함을 지녔다(고후12:9). 하나님의 나라는 크고 거창하다 하여 임하지 않는다(왕상19:12, 고전10:5). 많고 크고 거창한 것은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대단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평범한 일상(一相)에 불과하다.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티끌과 먼지뿐임을 기억하신다(시103:14-15).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은 없으며 크신 하나님의 눈에는 세상의 큰 것도 큰 것이 아니며 한낱 미물(微物)에 불과하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의 크기(size)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던 세상 방식을 과감히 내던지고 성경적 가치관에 근거하여 자신을 평가하는 방식을 장착해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크기와 상관없이 고통과 아픔이 있는 현장에 임한다(출2:23-25, 눅11:20). 몇 사람 안 되는 작고 소박한 곳에 그분의 나라가 임한다(마18:20). 따라서 아픔과 상처가 있는 현장을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다(살전5:14). 사도 바울이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빌3:3), 유익하다고 여기고 추구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며(빌3:8), 자기 자신을 주의 손에 맡겨 최상의 존재로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했던 이유가 바로 이 같은 ‘가치관’의 변화에 있었다(딤후1:9). 사도 바울이 본받았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낮고 천한 곳에 임하셨던 겸손한 마음이며(빌2:7-8), 약함을 통해 크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주님의 역설적인 마음이었다(고전1:27). 모든 목회자는 바울이 터득하여 설파한 이 실체적 진실과 동일화하여 그와 같은 마음과 생각을 소유해야 한다(고전11:1). 낮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정성 다해 주의 뜻 따라 섬기고 난 후, “우리는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면서 ‘servent()’로서의 무익한 종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눅17:10).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고(고후10:17), 겸손한 마음으로 나로 나 되게 하신 그분 뒤로 물러나 앉아야 한다(마23:10). 하나님보다 앞서거나 하나님 자리에 자신을 대체시키는 과오와 오류를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한다(마24:15).

목회자는 주안에서만 자랑할 뿐, 절대 목사 자신을 포함한 그 어떤 사람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고전3:21). 오직 다윗처럼, 모든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았으며(대상29:12-14),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려 헌신하고 수고하였을 뿐이라며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해야 한다(고전15:10). 바울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전3:7)고 선언하며 자기는 낮추고 주님만 높여야 한다. 목회자는 항상 어린아이처럼 겸손(謙遜)해야 한다(마18:4). 특히 물러날 때 욕심을 버리고 아름다운 마감과 내려놓음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목양에 참여하여 사역한 봉사의 종(servent) 됨의 징표이다. 목회자는 물러난 후에 깨끗한 자가 되어 더욱 존귀한 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자신이 누려왔던 부와 귀와 힘을 연장하여 자신의 영달과 목적을 위해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자력의 힘으로 얻은 양, 착각하지도 말아야 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탐욕주의(貪慾主義)의 노예도 되지 말아야 한다(고전4:7). 나의 나됨과 이제까지의 사역, 충성, 헌신 등 이 모두가 다 은혜였음을 고백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은 힘들다. 그리고 정상을 지키는 것은 훨씬 더 힘들다. 그러나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은 사실상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는 주의 종이기에 정상에 머무르지 말고 그곳에서 내려와야 한다(벧전5:5). 종(servent)은 끝까지 종(servent)으로 남아야 한다. 토마스는 겸손이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목회자는 주의 일이 나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고, 또 하나님의 힘으로 수행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슥4:6). 그래서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고 겸손하게 그분 뒤로 물러나야 한다. 최근 한국교회에서 애창하는 ‘은혜’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이제까지의 목회사역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고전15:10).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나(잠16:18),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잠15:33). 겸손해야 생존하고 존귀해진다. 따라서 목회자는 앤듀류 머레이가 말한 것처럼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잠18:12).
 

③ 하나님이 제공해 주신 영원한 자기 자리에 앉으라

하나님의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이 욕심내어 이룬 것, 사람의 표로 인정받아 세워진 자리와 인기는 허구성을 지닌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다(롬8:24). 다 지나가 버릴 것들이다(고전7:31, 요일2:17). 허상(虛像)은 보이는 것에 의해 실제처럼 여기게 하는 착시(錯視)현상이다(고전4:18).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후5:7).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고후4:18). 예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들이 서둘러 높은 자리 택하는 것을 보시고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눅14:2)고 말씀하셨다. 자기 자리가 아닌 남의 자리는 그 자리가 아무리 높고 화려해도 나와 무관한 자리이다. 내게 주어진 진상(眞像) 같은 자리 같으나 실상은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화려한 나의 자리 같지만 휘발성 강한 자리이며 곧 증발해 버릴 자리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보면 그 허구성에 놀라게 될 것이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산(山) 정상에 오른 자가 그 정상에 계속하여 머무를 수 없다. 정상에 계속 머무르려 해도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때가 온다. 결국에는 물도 식량도 바닥나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도 한 번 높은 자리에 올라 그 맛을 본 자는 거기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자리임에도 항구적인 자기 자리로 착각하고 그 자리를 지킬 욕심을 부려 보지만 결국에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 내려올 수밖에 없다.

목회자는 언제나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살전2:5).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3:5). 우상숭배의 대상에 사람이 첫 번째로 들어 있다는 것(1:23)은 사람이 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탐욕은 그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다(엡5:3).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갈5:24). 탐욕은 소유할 때 잠깐의 즐거움을 안겨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심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 자신을 짓누른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가 아닌 남의 자리에 앉아 있는 때, 그 어색함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마22:12). 나보다 높은 사람이 다가와 내가 앉은 자리를 내어달라 요구할 때, 그때의 낯 뜨거움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눅14:7). 그러므로 목회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기 자리에 앉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앉을 자리에 앉을 때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고 편하다(대상14:2). 남의 자리를 욕심내서 꿰차고 앉아보아야 불편하기만 하다. 사역과 역할에 대하여는 나다움을 가장 많이 밝게 드러내며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최선을 다한 후, 물러날 때에는 있던 자리에서 깨끗이 내려와 내게 주어진 영구적인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목회자가 남의 자리에 미련을 가지고 계속하여 그곳에 머물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것처럼 추한 모습도 없다. 그 자리에 있는 날도 신속히 지나고 곧 쇠하고 마르게 되어 더 이상 보전할 수 없게 되는 현실을 얼마 안 가서 실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회자에게는 세상에서의 영광 받을 자리가 없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는 주님께 돌아갈 몫이며 그분만이 홀로 받으셔야 한다(엡3:21, 빌4:20, 딤전6:16). 이 자리를 탐내거나 취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어 큰 손실을 입는다(행12:23). 이 세상에서 좋은 것 다 받고 온갖 좋은 것 다 누린 목회자는 천국(天國)에서 누릴 것이 없다(눅16:25). 갚을 것이 없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어 이들로부터 갚음이 없을 때 천국에서 큰 보상이 주어진다. 세상에서 이미 다 받았다면 천국에서 더 이상 받을 몫은 없다. 이 땅에서 받은 보상이 없을 때, 의인들의 부활 시에 주께로부터 받는다(눅14:12-14). 목회자가 받을 상은 이 세상에서 누릴 영광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그 자리를 찾아 그 자리에 앉는 것, 그것이 목회자가 받을 상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항상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 좌정(坐定)하면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일도 없다. 가난한 자는 협박 받을 일도 없다(잠13:8). 목회자는 예수께서 하늘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심같이 천한 곳까지 낮아져야 한다(눅2:7). 사도 바울이 천사와 사람 앞에 구경거리가 되고, 만물의 찌끼같이 여김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고전4:9-13). 목회자는 그런 자리를 영광스럽게 여기고 그런 자리에 앉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주께서 주신 자리라면 그 자리가 비록 십자가 지고 가는 자리라 할지라도 그 자리를 영광으로 알고 거기 앉아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것! 이것이 특화목회의 최종 종착지다. 목회자는 주께서 주신 그 자리를 고수(固守)하는 거룩한 고집을 지녀야 한다. 언젠가는 그런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주실 것이며(빌2:9), 존귀로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며(시103:4), 가장 존귀한 자로 영원히 역사 속에 남는 인물 되게 하실 것이다(삼하7:9). 이때 목회자는 자신의 삶이 주안에서 결코 헛된 삶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고전15:58). 아울러 목회자로서의 일생의 삶이 하늘의 별과 같이 이름답게 영원토록 빛날 것이다(단12:3). 이것이 특화 목회자가 누릴 영원한 영광(榮光)이며(고후3:9), 영원한 기쁨이며 자랑스러운 영광의 면류관인 것이다(빌4:1).

특화목회는 현직에서의 목회사역도 특화시키지만 퇴임 후의 목회자도 특화시킨다(벧전5:4). 그리고 영원을 지향하는 역사적 인물로 특화시킨다. 어떤 의미에서 현역에서의 사역보다 물러난 후의 삶을 더 빛나게 만든다. 물러난 후에 그냥 존재하고만 있어도 중아(重痾)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천국에 입성하여 있을 때에도 이 세상 역사 속에 살아서 필요한 때마다 등장하여 선한 영향력을 여전히 끼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죽어도 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약동하는 역사적 인물이 되는 것은 특화된 목회자만이 누릴 영광이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게 하고, 심장 뛰게 하고, 마음 설레게 하는 일인가? 예수님과 같이 사명을 다 이룬 목회자는 최고의 역사적 인물이다. 크기와 상관없이 이 땅에 존재했던 자체로 황홀함과 흥분됨을 감출 수 없게 한다. 특화 목회자들은 세상에서 살만한 삶을 살아가는 가장 행복한 자임에 틀림없다(신33:29). 이 모든 일에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 갈길 다 간 특화 목회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인생의 진정한 승자'인 것이다(롬8:37,고전15:57).
 

10. 결론

이상에서 본 연구자는 특화목회 관점에서 목회자가 어떻게 목회의 핵심가치를 구현하고 실현해 나가야 하는지를 제시하였다.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이 있다. 이에 더하여 세계사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가 있다. 문제는 「특화목회론」이 단순한 이론으로 끝나지 않고 목회자들의 목회현장에 심겨져 ‘어떻게 성장하고 꽃피고 결실하게 하는가?’이다. 머릿속으로 구상만하고 구체적인 실행이 없다면 그 이론은 의미가 없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훈하고 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전11:4). 현실 분석만 하고 구체적인 실행이 없다면 실제로 아무런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 이론만을 너무 많이 배운 지식인들에게서 때론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고 지식의 포화에 무쳐 실행력을 잠재우는 경우가 있다. 이드리스 샤흐는 “단순하게 살라. 쓸데없는 절차와 일 때문에 얼마나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가?”라고 지적했다. 지나친 확대는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실천력을 감소시킨다. 목회자는 삶을 단순화하여 집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기를 멈춘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C. S. 루이스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꿈을 꾸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특화목회 시행 과정에서 실제 목회 현장과의 실전 교류를 통해 피드백이 실행되고 목회역량이 발전하고 증진되어 목회 사역의 꾸준한 진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반목회’가 아닌 ‘특화목회(特化牧會)’에서 강조되는 점은 목회의 ‘독창성’과 ‘역동성’이다. 목회자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성경 신학적 바탕에서 정립하고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에 기초하여 목회현장 상황에 맞는 밑그림을 독창적으로 설계하여 나다운 목회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이다. 무엇보다도 목회자가 지닌 재능과 장점 개발을 위해 핵심가치 선정과 목회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나아가 목회자가 지닌 창의력의 개발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목회자가 지닌 재능능력강점을 발휘함이 중요하다. 목회자는 목회의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과 통제력(power of control)을 가지고 자신만의 나다운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정적 감정을 정복하고 숨겨진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 특유의 노하우(know-how)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대체 불가한 ‘목회전문고수’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수행한 목회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특화목회』를 통한 목회 추진과 도전은 놀랍게도 목회자의 심리적 안정감을 향상시킨다. 그리고 목회자의 자신감을 증대시킨다. ‘특화목회’는 목회 추진 혼선을 막고 목회의 질을 향상시키며 안정된 기반에서의 목회를 촉진시킨다. 따라서 특화목회는 모든 목회자들이 이루어 내야하는 실제적 과제이다. 인적, 물적 자원이 열악한 목회 환경 속에서나, 자원이 풍성한 목회 환경에서도 목표를 달성해 내기 위한 대안이다. 이 대안을 가지고 생존(生存)의 벽을 넘고 자유(自由)를 성취하고, 공헌(貢獻)을 실천하는 3대 핵심가치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긴 여정과 목회 실전에서 특화목회로 빛나는 금자탑을 쌓았으면 한다. 하나님께서는 목회환경은 다르지만 모든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달란트와 위대한 목회사역의 역사를 써 나갈 균등한 기회를 주셨다. k. 버넷은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웬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들은 어떠한 기회에서도 난관을 보지만, 낙관론자들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기회를 본다”고 말했다. 목회자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그들 앞에 놓여 있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목회자 고유의 역량을 발휘하여 목회를 화려하게 꽃피우고 열매 맺었으면 한다. 목회 안정성 확보와 역량 발휘를 통해 목회의 아름다운 결과물들을 반드시 생산해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목회의 핵심가치 실현을 통해 수많은 열매를 맺는 목회를 반드시 성취해 낼 수 있어야 한다.

특화목회의 최종 목표는 지상에 독보적인 특화교회를 세워 빈곤을 신속히 정복하고, 자유목회를 성취하여 선교와 인류공영(人類共榮)에 이바지하는 공헌목회를 실현하는 데 있다. 눈물로 씨를 뿌린 목회자들에게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시126:5-6).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반드시 거둘 것이다(갈6:9). 목자장되시는 우리 주님이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벧전5:4)은 모든 목회현안을 극복하고 최후의 영광과 승리를 쟁취한 자에게 주어진다. 목회자는 최상의 헌신(롬12:1)과 온전한 충성(계2:10)을 주께 드려 부르신 소명에 최선으로 응답하여 주를 기쁘시게 한 자로 인정을 받아야 하고 이때 최고의 상급을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특화목회를 실현하는 것은 결코 헛된 수고가 아니다(고전15:58). 처음엔 미약하게 출발하였으나 그 창대함을 시위하고, 풍성한 목양 결실로 열매 맺게 될 것이다(욥8:7). 주께서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들 안에서 반드시 목표하는 바를 이루실 것이다(빌2:13, 살전5:23). 목회자들이 주안에서 수고하고 애쓰는 모든 노고에 아낌없이 칭찬해 주시리라 확신한다(마25:21). 이미 이루었다고 방심할 필요도 없다. 다만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 목표만 보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힘차게 전진하면 된다(빌3:14). 특화목회자로서 앞에 있는 선교의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하여 처변불경(處變不驚)과 종용유상(從容有常)의 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호시우보(虎視牛步) 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1979년 4월 안양에서 파트사역을 필두로 목회를 시작했다. 모 대학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장신대 대학원에서 M. A.학위(기독교교육학 전공)를 취득했다. 그리고 동 대학 신대원에서 M. Div 과정(3년)을 마치고 장로교 통합 측 목사가 되었다. 1992년 5월 8일 「서울동노회」에서 남부교회 청빙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고, 부교역자로 7년을 시무한 데 이어 위임목사로 2개 교회에서 시무했다. 현재는 경기도 시흥시에 소재한 ‘시흥성광교회’에서 20년 가까이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2001년 미국 풀러(Fuller) 신학대학원에서 「신개발지역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 리더십에 관한 연구」라는 학위 논문으로 목회전문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으나, 목회에 적용하지는 못하였다. 필자의 나이 60(회갑)이 되던 해, 2018년 1월 1일, KBS에 출연했던 연세대 모 명예교수의 강연을 듣고 ‘피갈회옥’(被褐懷玉-겉에는 거친 베옷을 입었으나 속에는 옥을 품고 있다는 뜻)하기로 결심하였다. 인생의 황금기가 60세에서 75세라는 사실을 백세 사신 분의 강연을 통해 접하면서 건강을 이유로 폐기처분했던 목회인생을 다시 꺼내 들었다. 광야를 지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모세’라는 인생은 죽고,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했던 ‘여호수아’로 다시 산다는 각오로 ‘와신상담’(臥薪嘗膽-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이르는 말)하며 본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같은 저술 배경 하에서 본 연구는 특화목회 이론을 본인의 목회현장에 접목하고자 필자의 미국 풀러(Fuller) 신학대학원 목회전문 박사학위 취득 이후의 Post Dr. Corse 과정으로 연구한 내용물이다. 2018년부터 5년간의 장시간 연구 끝에 완성한 필자만의 독창적 학습 결과물이다. 본래 본 「특화목회론」을 비공개로 보유하려 하였으나,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인생을 산 분야에서 전문서적 한 권 정도는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어느 강연자의 말을 듣고 전격(電擊) 공개하게 되었다.

본 연구를 지도해 주신 영남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이신 안승오 박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늘 용기를 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원로목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본 연구를 연재로 기사화 해주신 「교회와신앙」의 양봉식 목사님과 언론사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동안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정헌교 목사님과 전세광 목사님께도 본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 밖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신 이승열 목사님과 때때로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셨던 한민희 목사님, 박범혁 목사님, 강흔성 목사님, 김수원 목사님, 이용혁 목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본 글을 교정해 주신 주재현 목사님께도 크게 감사드린다. 김임두 목사님, 박균태 목사님, 박상기 목사님, 강군우 목사님, 최진수 목사님을 포함하여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필자 소속 서울서남노회 노회원 목사님들과 최순영 목사님, 김선일 목사님, 박요한 목사님, 조상구 목사님, 조충희 목사님을 포함한 시흥시서구기독교연합회 목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이 분들의 격려와 사랑이 있었기에 본 연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차후 본 연구의 보완 작업은 계속될 것이며, 생명 다하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특화목회’의 전문성 개발과 ‘특화목회’의 구체적 실현이 확산되어 발전적이고 독창적인 ‘특화목회’의 장이 한국교회에 활짝 열리기를 소망한다.

이미 필자가 시무하는 시흥성광교회에서는 「특화목회연구원」이 운영 중에 있다. 목회자들이 지닌 소중한 자산과 가치를 일깨워 주는 「한국목회자후원센타」도 그 운영이 가동되고 있다. 미래 세대 꿈나무들의 재능과 달란트를 개발해주는 「정왕영재교육원」도 10년 넘게 운영 중이다. 본 시흥성광교회의 특화목회 시행령은 아주 강렬하다. ①하나님 믿고 진행한다(고후5:7). ②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4:17). ③큰 교회보다 더 큰 일을(14:12). 이라는 내용이다. 특화목회라는 특성만큼이나 그 포인트가 선명하고 분명하다. 필자의 시무교회에 심겨진 ‘특화목회’가 이제 첫 걸음을 디딘 것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모소대나무처럼 급속히 성장하여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도한다. 본 연구를 마치면서 확인된 바, 이미 한국교회 안에는 나름의 특화목회를 시행하고 있는 소중한 목회자분들이 너무 많다. 이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모든 목회자들이 어느 장소나 환경에서 목회를 하든 특화목회로 목회의 한계가 극복되고 행복한 목회자로 사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들이 자기만의 특유의 목회분야에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 인물로 평가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제 앞에서 서술한 「특화목회론」의 핵심 내용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목차 형식으로 요약하는 것을 끝으로 본 저술을 마치고자 한다.
 

1. 서론

2. 목회의 핵심가치를 선정하고 태도를 그 방향으로 설정하라
목회의 핵심가치를 이렇게 선정하라
불변하는 형세를 단단히 구축하라
자기대화로 내면을 긍정화하라

3. 나만의 목회 역사를 써 나가라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라
두려움과 의심을 정복하라
잠재 능력을 키워 보여라

4. 자신만의 목회 노하우를 개발하라
가치실현에 부합하는 목회상황을 설계하라
목양의 기본업무에 충실하라
기본업무 외의 일은 레버리지(leverage)하라
결정적 위기 순간에 해내는 목회자가 되라
현명하게 착한 목회자가 되라
유대인의 1:250 전술로 목회 승부를 걸라

5. 대체 불가한 ‘목회전문고수’가 되라
도전적 시행착오로 내공을 축적하라
글쓰기를 통해 지식체계를 통합하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골든 서클(Golden circle) 중심 설교를 하라
교인성공 프로젝트를 상설 운영하라
자신만의 특유 재능을 발휘하라

6. 성경과 헌법에 기초한 법치목회를 수행하라
법치의 중요성과 본질
법치가 의무인 성경적 이유
법치가 무너지는 원인과 회복 방안
법치실현을 위한 3대 원칙

7. 국가법과 교회법에 능통한 전문가가 되라
국가법과 종교법
종교의 자유 범위 이해
국가법과 교회법과의 관계
지교회와 교단과의 관계
기초적인 법률 상식
통합교단 권징법 핵심요약

8. 세상 속에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워라
교회의 존재목적을 프레임(Frame)하라
3중 특화에 성공하라
치리회(治理會)에 정통하라

9. 영원을 지향하는 역사적 인물이 되라
천국 면류관 수상자를 꿈꾸라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고 겸손히 그 분 뒤로 물러나라
하나님이 제공해 주신 영원한 자기 자리에 앉으라

10. 결론

     관련기사
· 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 1· 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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