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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 8
2023년 05월 23일 (화) 10:50:41 오총균 목사 skoh1112@hanmail.net

오총균 목사/ 시흥성광교회 담임, 한국특화목회연구원장,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목회전문 박사, 시흥시서구기독교연합회부회장

   
 오총균 목사


  8. 세상 속에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워라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을 설립하고 빈민을 돕는 일에 지경을 넓히며 영역을 확대해온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세계 각국에 있는 빈민들을 돕는 일을 확장함은 물론, 세계 최강국 미국에 있는 빈민들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정책을 펴나갔다. 미국에서 은행 계좌를 갖지 못한 빈민 2,800만 명과 일부 제한적인 금융 서비스를 받고 있는 빈민 4,470만 명에게 무담보 대출을 확대하였다. 빈곤국의 일원으로서 최강국인 미국의 뉴욕시민들까지 경제적 재활을 도움으로써 남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큰일을 해내고 있다. 데모스테 네스가 한 말처럼 작은 기회로부터 위대한 일이 시작됐던 것이다. 작게 시작한 일이 점점 확대되어 자국민 빈민 재활은 물론, 세계 곳곳에 사는 빈민들까지 돕는 거대한 사업으로 성장하였다. 이로써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위대한 일을 수행한 세계 유일의 독보적 존재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불가능한 일도 큰 뜻을 품고 도전한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와 같이 목회자들도 목회의 작은 부분과 분야에서 자신만의 목회 노하우를 살려 강점을 강화하고 이를 점점 확대하여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목회의 핵심사역과 자신만의 재능사역을 탁월하게 수행하여 목회역량을 확장하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 인물로 성장하여 세상 속의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① 교회의 존재 목적을 프레임(Frame)하라

종교학자이며 미국 버클리 대학 교수인 로버트 벨라(Robert Neelly Bellah)는 종교적 상징체계가 사회변동을 촉진하는 양상에 주목하면서 다음 세 가지 패턴을 제시하고 있다. 곧 Ⓐ 융합(融合-fusion/여러 종류의 것이 녹아서 하나로 합침)과 Ⓑ 소격(疏隔-disjunction/서로 사귀는 사이가 멀어져서 왕래가 막힘)과 Ⓒ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서로 연결된 분위기가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를 생산함)이다. 융합(fusion)의 대표적인 예는 조선시대의 유교이고, 소격(disjunction)의 대표적인 예는 국가 정치와 분리되어 기독교적 가치가 현실사회와 단절됐던 근대 기독교적 편향주의이다. 그리고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의 예는 기독교적 사상과 가치를 현실 사회에 실현하면서도 사회문화에 융합하지 않고 긴장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프로테스탄티즘(반항과 구별되는 합리적 저항)이다. 루터와 칼빈으로 이어지는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운동은 세계 교회사에서 보여주는 ‘창조적 긴장’의 구체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일제 식민지 하(下)에서 발생했던 삼일절(1919.3.1.) 만세운동은 한 국가 안에서 이루어진 ‘창조적 긴장’의 구체적 예이다. 나아가 행2:22-3:26에서 베드로가 행한 설교는 ‘창조적 긴장’의 또 다른 실례로 평가된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에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세운 예수를 거역하여 법 없는 로마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였다(행2:23).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죽인 예수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고(행2:24),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를 그들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하였다(행2:36).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려 아파하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회개를 통한 죄 사함과 패역한 세대에서의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행2:40). 이때 3000명의 유대인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행2:41), 부활을 증거 하는 사도들의 설교에 기인하여 믿는 무리가 5000명이나 증가하기도 하였다(행4:4).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면서 세력을 얻은 초대교회는 강력한 힘을 지닌 공동체로 그 기초를 공고히 하였다. 그 후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의 증인(행3:15)’이라는 프레임(frame)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체계화하면서 세계 복음화에 시동을 켰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복음의 점령군으로 정착하였다. 여기에서 목회자들에게 창조적 긴장을 통해 새로운 통합 세계를 열어갈 시각과 관점이 확인된다. 그것은 곧 현재 살고 있는 역사현장과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현실적인 문제와 미래의 비전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사명과 가치 실현의 과제를 소유하고 있는지를 설정하고, 그 과제를 성취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화하여 실행해 나가는 남다른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프레임」에서 ‘프레임’(frame)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 말했다. 그에 의하면 ‘프레임’이란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새로운 통찰을 일깨우는 관념으로 이해된다. 프레임(frame)이란 인간이 성장하면서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생각의 처리 방식을 공식화하는 것을 뜻한다. 목회자가 세상에서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워가려면 자신이 처한 시대 상황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을 착안해 내야 한다. 이때 착안한 교회의 존재 목적은 시대 상황과 목회의 핵심가치가 융합하여 교회 구성원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착안해 낸 ‘교회의 존재 목적’을 신도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시대적 사명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과 시대적 사명설정’은 역사와 시대를 보는 안목과 통찰을 지니고 있어야만 그 정립이 가능하다. 시대가 처한 긴장된 상황 속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을 명료하게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무교회에서 그 구성원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 ‘교회의 존재 목적’ 정립은 교회 구성원들 간의 유대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원동력이 된다. 현시대 및 정치적 상황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과 시대적 사명을 찾아낼 수 있는 목회자의 디테일(detail)한 시각은 신도들과의 신뢰원천이 되며, 목회 리더십과 밀착하는 원소(元素)가 된다. 결국 특화목회에서 지향하는 3대 핵심가치 즉, 「ⓐ 생존-자립 ⓑ 자유-부요 ⓒ 공헌-생산」의 실현을 위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시무교회 존재 목적을 프레임(frame)해야 하는 이유는 목회자가 자신만의 목회현장에서 독창적인 특화교회를 세워가기 위함이다. 이는 교회 안정화와 선교 역량 극대화의 추진을 통한 교회의 발전적 미래를 담보하는 기초가 된다. 예컨대 교회의 부패와 타락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시대 상황의 경우, 교회의 존재 목적을 ‘생존’을 위한 도덕성 회복에 두어야 한다. 생존의 위협은 삶의 부정적 속성도 드러내지만, 반대로 창조적 긴장을 더 해 주기도 한다. 이때 시대적 필요성에 초월적 권능이 필수적 요소로 가미되면 생존을 위한 신앙심의 발로가 급상승하고 구성원 간의 친밀감과 유대감이 증대되고 공동 목표를 향해 나가는 연대감이 강렬해진다. 그리하여 이것이 교회 에너지로 승화되고 주의 몸 된 교회가 가동되는데 모터(발동기-an engine) 역할을 한다. 초월적 능력인 성령의 권능이 지속적으로 임재하여 온 교회에 충만하게 되면(엡3:19) 그 교회는 주께서 운행하시는 강력한 신앙 공동체로 변모하게 된다(행9:31).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세상의 구원에 있다(요3:16-17).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자 만물의 주관자이시다(엡1:21-22). 교회와 세상은 그 특성으로 인해 구분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 연결된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그리스도)의 충만함이다(엡1:23). 교회가 지닌 강점은 한갓 건물이나 제도, 모인 사람들의 숫자 혹은 행하고 있는 행사들에 그치지 않는다. 기이하고 신비롭게도 교회는 세상을 채워가는 그리스도의 충만함 그 자체이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으로서 세상 안에서 세상을 충만하게 하는 그분의 충만함이다(엡3:19). 세상은 그 자체로 충만함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함을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그의 충만함을 세상 안에 드러내신다(엡3:20). 교회를 세상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며, 교회가 자신을 위하여 존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존재한다(16:31). 그러므로 교회는 그 존재 자체로 이미 선교적(Missional)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선교(Mission of God)에 있는 것이다.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이 계획과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실현된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이에 따라 교회에는 극복해야 하는 주요한 과제가 주어진다.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으로부터 교회 안으로 도피케 하여 교회 안에 단순히 머무르게 하는 수준을 넘어 세상 속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사명을 진지하게 수행하도록 하게 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교회 안에서 행하는 종교적 행위로만 규정지을 수 없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세상 속에 존재하는 현장 교회로서 선교적 사명과 역할을 다하며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과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는 단순한 ‘융합’(融合-fusion)과 ‘소격’(疏隔-disjunction)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역동성을 지녀야 한다. 세상 속의 교회로 존재하면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시위해야 하며(엡3:20), 그 충만함으로 세상을 압도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불신앙과 어두움을 정복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그 권세의 풍성함과 충만함을 시위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능력에 감싸여 구원의 방주(方舟)로서 존재함은 물론, 세상을 구원하는 구조선(救助船)으로 세상 속에 특화되어 존재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n of God)를 실현하고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한다.
 

② 3중 특화에 성공하라

예장 통합교단 헌법에서는 ‘교회(敎會)’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7조). “하나님이 만민 중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여 그들로 무한하신 은혜와 지혜를 나타내신다. 이 무리가 하나님의 집(딤전3:15)이요, 그리스도의 몸(1:23)이며, 성령의 전(고전3:16)이다. 이 무리는 과거, 현재, 미래에 있는 성도들인데 이를 가리켜 거룩한 공교회교회(敎會)’라 한다.” 교회는 개인들이 모여 구성되는 공동체이며, 일정 지역의 지교회들이 결집하여 하나로 연결된 연합체이다. 또한 교회는 서로 연결되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상생하는 생명체(生命體)이다. 공교회(公敎會) 중, ‘지교회’란 예수를 믿는 무리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저희의 원하는 대로 일정한 장소에서 성경의 교훈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결하게 생활하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선교 공동체인 것이다(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9조 제1항). 최소한 세례교인 수가 15인 이상 확보돼야 교회설립이 승인되어 정식교회로 인정된다(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10조). 참고로 예장 합동교단의 경우에도 신자 15인 이상이 있어야 미조직교회 신설립이 가능하며(합동교단 헌법 제5장(헌법적 규칙) 제1조), 감리교에서는 입교인 12인 이상이 있어야 개체교회 설립이 가능하다(기감/교리와 장정-제3편(조직과 행정법) 제5조 제1항).

신약성경에서는 무엇보다도 ‘지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행6:1-6,9:31). 예수님 생존 당시 세워진 ‘지상교회’는 이상적인 교회로 구비해 갔고(눅8:1-3), 예수님 승천 후 성령의 임재 속에 진행된 예루살렘 교회는 지교회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잡아 갔다(행1:15). 교회가 핍박을 받으면서 흩어진 성도들은 복음 전파의 주역이 되었고, 가는 곳곳마다 지교회를 세웠다(행8:1). 지역에 세워진 지교회는 독립성을 띠며 나름의 조직체계를 구성하였고 교회로서의 본분을 성실히 감당해 나갔다. 특히 빌립과 사울(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사역은 역사를 바꾸는 빛나는 금자탑을 쌓아 세계복음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들에 의해 여러 곳에 지교회가 세워졌는데, 안디옥교회, 빌립보교회, 고린도교회, 에배소교회, 골로새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마게도니아교회, 로마교회 등이다(행13:1,16:15,18:11).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진 지교회 마다 독창적인 특화가 이루어졌다. 하나님 말씀의 세력화, 성령의 임재와 감화 속에 선교의 열정이 폭발하면서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되었고 그 결과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독창적인 지상교회로 이름답게 세워졌다. 목회자 특화, 평신도 특화, 공동체(교회) 특화가 성취된 것이다. 특화목회의 하이라이트(highlight)는 이 3중 특화(specialization)에 있다. 특화목회는 다음 3중 특화로 요약된다.
 

ⓐ 목회자 특화

세상 속의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우기 위한 첫 번째 전략은 ‘목회자 특화’이다. ‘목회자 특화란 목회자가 자신만이 지닌 능력과 재능을 강점 중심으로 개발하고 고품격 사역을 수행하는 목회자로 몸값을 상승시켜 그 기능과 역할을 명품화(名品化)’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목회자 특화의 길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로 어떻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목회자들이 언제나 진지하게 던지는 관심 주제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다가오게 하려면 ①관용과 용납의 분위기, ②필요를 채워주는 능력, ③기대에 부합하는 신뢰 등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질병, 가난, 분쟁, 절망, 번뇌, 방황, 통제, 억압, 부채, 설움, 원한, 비참, 죄악, 노예, 죽음 등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열망한다. 자신을 얽어매고 지배하는 온갖 고난과 악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자신의 요구와 필요를 채워줄 대상이 어디 있는지를 찾는다. 언제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아픔과 절망, 멸망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평안과 안정과 자유와 행복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필요가 채워지고 만족을 얻게 될 때 사람들은 원하는 바가 성취되는 그곳으로 모여든다. 누군가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바를 적중시켜 채워준다면 사람들은 그곳으로 구름떼처럼 몰려온다. 먹잇감 있는 곳에 새들과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듯이 말이다. 이 같은 사람들의 요구와 갈망에 부응하기 위하여 목회자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부합하는 ‘맞춤형 목회자’로 자신을 특화(特化)시킬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목회자의 핵심 업무를 특화하고 목회자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특화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필요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이 지닌 천부적 자질과 재능을 최상으로 개발하고 꾸준히 향상시켜 특화하여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데모스테네스는 “작은 기회로부터 종종 위대한 업적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에 목회자는 작은 것부터 특화하는 일에 시동을 걸고 자신에 대한 부가가치(附加價値) 상승을 추진하면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특화(特化)된 목회자로 구비해야 한다.

예수님은 12제자와 함께 생활하시며(막3:14) 이들에게 권세 있는 설교를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셨다(마7:28). 성령의 능력으로 가르치셨고 그 결과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셨다(눅4:32). 또한 각색병과 불치병도 고치셨다(눅5:17).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셨다(요8:15). 오직 공평과 정의로 대하였고(요7:24), 언제나 용납의 분위기를 조성하셨다(마19:14,막10:14,눅18:16). 어린아이, 여성, 병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 억압에 눌린 자 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품으셨기에 이들이 늘 함께 하였다(막2:3, 눅6:17). 반면 사회적 인사들도 예수님을 찾았다(요12:42). 때로는 큰 무리가 예수님을 찾기도 하였다(마8:1, 눅8:4). 어떤 때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하였다(눅12:1). 예수님은 각계각층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하게 아셨다(마9:35). 찾아오는 그들을 실망시키시지 않고 자신을 내어주셨고, 긍휼과 자비로 그들의 원하는 구원과 생명을 주셨다(요10:11). 예수님의 관심사는 온통 의원을 필요로 하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영적, 육적, 심리적 병자들이었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손길을 펴셨다(요4:34). 그들에게 건강과 자유와 평안을 주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셨다(요10:10).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기를 원하였다(요4:40). 예수님은 사람들이 몰려오도록 하여 자신에게 머물게 하시는 특화(特化)된 목자장이셨다(벧전5:4). 이 모든 일을 성령과 하늘의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아 행하셨다(행10:38). 예수님을 통해 배우는 목회 공식은 간단하다. 목자장(牧者長) 되시는 예수님처럼 죄와 사망과 고통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특화(特化) 목회자(牧會者)’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요14;12) 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목회자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목회 안정화를 통한 선교 확장이다. 이를 원치 않는 목회자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목회자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특화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는 일이다. 목표는 방향성을 잡아주고 어디론가 향하여 가도록 추진력을 가동시킨다. 그리고 목표한 바를 달성함에 최강의 정신력을 갖도록 무장시킨다. 그리하여 극한의 경쟁 구도 속에서도 자신을 객관화하여 목표와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깨버리며 어제의 자신과 싸워 이기게 한다. 머뭇거리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빅토르 위고의 지적처럼 많은 목회자들이 부주의하게 시간을 낭비하여 짧은 인생을 더욱 짧게 만든다. 모든 위대한 성취는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목회자의 특화 여부는 목회자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다. 모든 목회자는 자신을 특화할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모든 목회자들은 자신 안에 잠자고 있는 자신의 잠재능력과 특유의 재능을 사장(死藏)시키지 말고 과감하게 드러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목회자는 예수님처럼 설교, 교육, 치유 등, 3대 사역에서 자신을 특화할 필요가 있다(마4:2,9:35). 특히 목회자는 자신의 설교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자신을 최고의 설교가로 여기고 자신의 설교능력과 역량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내며 매 주일마다 강단에서 표현해야 한다. 매일 매일을 중단 없이 그 날을 이겨내야 한다. 더 나아지지 않으면 더 나빠진다. 때문에 날마다 특화된 진보를 보여주어야 하며 또한 실제로 그 진보를 이루어 가야 한다(딤전4:15). 베드로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하고, 바울처럼 사명만 붙잡고 사람들을 구원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고전10:33). 이를 위해 자신만의 강점이 극대화된 특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괴테가 말한 것처럼 더 많은 것을 갖고 싶다면 먼저 그런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목회자가 자신만의 말씀선포 능력과 개인적 재능, 즉 강점(强占)을 꽃피우고 열매 맺도록 특화하여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적중사역’에 성공한다면 사람들이 찾는 귀하신 몸이 될 것이다. 그의 이 같은 목회가 탄력을 받으면 시무교회를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인물이 될 것이며, 시무교회는 목회 안정화를 통한 선교 역량의 극대화가 견고하게 정착될 것이다. 이 일은 목회자가 자신의 특화(特化)에 성공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구성원들의 신앙이 질적 완성을 이루어 막강한 영적 파워를 지닌 세상 속의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로 세워지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 평신도 특화

세상 속에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우기 위한 두 번째 전략은 교회 구성원들 즉, ‘평신도들의 특화’이다. 교회(Church)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헌신하며 세워가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목회자와 교회를 구성하는 멤버들(Member's)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고전12:12)으로 존재한다. 몸(body)으로서의 교회는 통일성(統一性)과 다양성(多樣性)을 지닌다. 교회는 하나의 몸이면서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된 살아 있는 유기체(有機體)이다(롬12:4-5).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각 지체 간 교호작용(交互作用)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교회 구성원들이 결합하고 하나 되어 서로 상생(相生)해 나간다. 몸 안에서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부족한 지체에 귀중함이 더해진다(고전12:22,24). 약한 지체들의 존재와 역할로 몸 전체가 살아 생존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진다(엡4:16). 여러 지체가 하나로 결합되어 서로 상합함으로 성장을 이루고 건강한 교회로 나아간다. 몸으로서의 교회는 구성원들이 연합함으로 서로 도움을 얻어 자라게 된다(엡4:15). 구성원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지체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활발하게 움직일 때 스스로 세워가는 역동성을 지닌다(엡4:12). 교회의 위기 극복과 선교능력 확장은 기본적으로 몸인 교회의 양적, 질적 성장과 관련이 있다. 아울러 평신도들의 특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목회안정화를 통한 선교확장’을 위한 평신도의 특화교회 모델은 일명 눅8:1-3의 예수사랑교회’이다. 갈릴리 지방의 ‘예수사랑교회’는 예수님(담임목회자)과 차세대목회자(12제자)들과 소수 정예화된 평신도 그룹(여인들)이 있었다. ‘예수사랑교회’에 소속한 주의 제자들은 복음 사역에 전념하였고, 평신도 그룹은 이 사역자들을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다. 이들은 주로 여성들이었는데 교회 재정 모두를 담당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였고, 요안나와 수산나도 함께하였다.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막15:40), 그리고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눅24:10)도 함께하였다. 그 외에 다른 무명의 여성들도 있었다. 10여 명 여성 교회 구성원들이 교회의 핵심 멤버가 되어 받은 은혜에 기초하여 자발적으로 헌신하였다. 충성도(忠誠渡)는 최상급이었고, 결속력(結束力)은 단단하였으며 교회에 대한 공헌도(貢獻渡) 역시 절대적이었다. ‘예수사랑교회는 목회자만 특화된 교회가 아니었다. 10여 명의 평신도 정예 멤버들 역시 목회자와 동일하게 특화(사역자화)되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먼저 이들(여성들)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셨다. 그리고 저들이 지니고 있던 불치병과 다른 질병들을 고치셨다(눅8:2). 저들이 원하는 바를 헤아려 건강, 구원, 생명, 자유, 평안, 만족 등 그들의 요구에 적중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먼저 저들을 성공적 인생으로 만드셨다. 이들 여성 평신도들이 헌신을 아끼지 않고 충성할 수 있는 헌신적 신앙심의 소유자로 특화시키셨다. 특화된 평신도들은 자신들의 위치에서 목회 사역자들이 목회의 핵심사역에 전념하도록 이들을 뒷받침하는 섬김 사역에 헌신하였다. 이들은 서로 유기적 관계에서 100%의 복음 사역 효과를 창출하였다.

주목할 것은 ‘예수사랑교회’의 평신도 그룹 10여 명의 섬김이 ‘교회 안정화 및 선교 역량의 극대화’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예수님을 통해 특화된 이들은 비록 당시 소외계층에 속한 여성들이었지만, 자신들만의 특유의 재능과 은사를 개발하여 섬김 전문사역에 헌신하였다. 그 결과, 자생적(自生的) 교회 성장이 이루어졌다(눅8:4). 결국 무리가 점점 더해지는 교회가 되었고(눅8:42, 9:11, 9:37), 수만 명까지 몰려오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눅12:1). 목회자의 특화에 이어 평신도들이 동반 특화되어 전문 사역한 결과였다. 이와 같이 지교회의 선교 확장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신도들의 특화가 필요하다. 이 일은 교회의 크기(size)와 상관없이 크든 작든 모든 교회가 이루어 내야하는 과제이다. 이 과제 앞에 충실히 응답하지 못하면 권세 있는 교회를 이룰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 안의 지체들이 소유한 재능과 은사들은 교회를 세워 가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자원들이다(롬12:6-8,고전12:4-11,벧전4:10-11). 목회자는 교회의 지체인 평신도들이 지닌 이 영적은사와 재능을 묻어두지 말고 이 자산을 깨우치고 개발하는 일에 도전하여 이들을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목회자는 평신도들의 재능과 은사를 개발하여 특화멤버를 만드는 사역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교회 모든 구성원들을 성공시켜 개개인의 은사와 능력을 개발하고 그들의 가치를 상승시켜 특화시키는 진전(進展)이 필요하다. 예수사랑교회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여성들(눅8:1-3)과 제일초대교회의 바나바(행5:36), 빌립보교회의 루디아 여인(빌16:14) 고린도교회 아굴라와 부리스길라(행18:1-4) 등은 각자가 지닌 은사와 재능이 특화된 일꾼들이었다. 목회자는 평신도들을 특화시킴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여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는 아름다운 결과를 창출해야 한다.

‘평신도 특화’는 발전적 순기능을 가동시켜 교회 내적 힘의 소모를 억제하는 동력이 된다. 교회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역기능을 차단하고 교회의 순기능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1:250 전략으로 성공한 민족으로 유명하다. 1명을 만족시키면 250명이 더해져 함께하게 된다. 반면 1명이 불만족하면 있던 멤버마저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 ‘평신도 특화 전략’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긍정적인 핵심 대상인 평신도들을 특화하여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강점을 살려 사역하게 함으로써 ‘레버리지(leverage)’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곧 교인들의 은사와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하여 목회안정과 선교 역량 극대화에 기여하게 하는 전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을 몸인 교회의 일원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게 하고 그분의 눈이 있는 곳을 함께 바라보며 그 비전을 함께 이루어 가도록 만든다. 주님과 함께하는 이들이 특화되어 자신들만의 전문 사역에 헌신하게 된다면 특화된 이들은 교회의 그루터기(사6:13-root stock)가 된다. 이 남은 자들이 지교회를 든든히 받치는 버팀목이 되고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사역의 주체가 된다(눅14:25). 지교회 구성원들이 특화되어 이들이 행복 속에 충성하게 되면 목장이 세상 속의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로 세워져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완성해 가는 놀라운 진전을 보게 될 것이다.
 

ⓒ 공동체 특화

세상 속에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우기 위한 세 번째 전략은 ‘공동체(교회) 특화’이다. 전통적 교회는 2분법적 교회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목회자는 홀로 뛰며 골을 넣는 만능선수이다. 이 구조에서 교회 구성원들은 관중의 자리에 위치한다. 때로 이들은 목회자가 수행하는 사역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신기하게도 비전문가가 전문가의 사역을 평가하고 비평하는 비효율적 구조를 지닌다. 그 결과 교회 공동체가 왜곡되고 굴절되는 비정상적 현상을 낳는다. 이에 반해 선교형 교회는 공동체(community)로서의 통합 교회 구조를 지닌다. 이 구조에서 관중으로 존재했던 교회 구성원들은 꼴을 넣는 선수들로 활약한다. 기존 교회 구조에서 개체(個體)였던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 구조의 주체(主體)로 전환된다. 반면 선수였던 목회자는 선수로 전환된 교회 구성원들을 지도하고 훈련하는 코치(감독)가 된다. 명실공히 목회자와 교회 구성원들 모두가 전문 주역 사역자가 되어 교회 안정화와 하나님 나라의 선교에 기여하는 사역자로 활약하게 된다.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회 구조가 등장하면서 교회의 비효율성은 사라진다. 교회 안정화 및 선교 역량이 극대화되기 위한 교회의 효율적 구조는 구체화되고 서서히 성장 동력이 탄력을 받게 된다.

‘목회안정과 선교 역량 확장’을 위한 효율적 교회(공동체) 모델은 일명 행1:12-14의 제일초대교회’이다. 예루살렘 ‘제일초대교회’는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예수님 승천 이후 재정비 과정을 거쳤다. 베드로가 담임목사였고, 부목사인 사도들과 120명의 회중이 있었다(행1:15). 이들은 기도하여 성령을 체험(행2:3)하였고 내재해 있던 두려움을 극복해 냈다. 마틴 루터 킹은 “인생은 두려움의 홍수에 버티기 위해서 끊임없이 용기의 뚝을 쌓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들은 하나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용기의 뚝을 쌓았다. 말씀과 기도로 결집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교회 공동체로 거듭났다(행2:42). 무소유(無所有)의 청지기적 삶을 실천하며 청빈한 삶을 살아 대외적 신임도를 높였다(행2:43-47). 정규적으로 모여 재물의 유무상통을 실천하며 교회 구성원들의 결핍을 해결하였다(행4:35). 또한 이들은 구원 사역에 저항하는 세력에 맞설 방어 체계도 구축하였다(행4:19). 그리고 불신과 박해에 당당히 맞섰다(행4:29-31). 이 긴장과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초대교회 공동체는 세상을 구원하는 점령군으로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였다(행5:12-16). 그 어떤 세력도 이들의 기세를 제한하지 못했다(행5:26). 거대한 힘의 작동은 계속되었고 교회 구성원들의 결집된 팀워크(teamwork)는 확고해졌다(행5:42). 교회는 매 순간 겪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치단결하여 더욱 결속된 조직 시스템을 구축하며 전진을 이어갔다(6:6). 강력한 조직 시스템의 작동으로 질주를 계속한 제일초대교회는 어느새 ‘특화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세(勢)를 더하여 말씀의 실행 능력이 극대화되었고 복음의 극렬한 반대자(제사장들)까지 복종시키는 초강력 위력을 지니게 되었다(행6:7).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세상(이방인)을 정복하며 지칠 줄 모르는 쾌속질주로 쉴 틈 없이 진군하는 ‘특화 공동체’(행9:31)를 그 어느 강력한 저항 세력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

특이한 것은 ‘제일초대교회’에서 공동체가 특화되면서 교회의 효율이 극대화되고 교회의 가치도 역대 최상으로 상승되었다는 점이다. 제일초대교회는 더 이상 개인(사람)의 힘에 의해 진행하는 조직체(시스템)가 아니었다. 성령의 능력에 감싸여져 거대한 하늘의 세(勢)에 의해 공동체 전체가 하나로 움직여가는 특화 공동체였다. 공동체의 특화는 내적 능력을 향상시켜 그 힘으로 구성원들이 지닌 영적능력을 향상시켰고, 미약했던 개인들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 출중한 능력자로 변신하였다. 강력한 세(勢)를 업고 비범한 인물들이 재생산되었다. 제련소에서 고가의 금이 생산되듯이 말이다. 바나바, 스데반, 빌립, 사울, 고넬료, 마가요한, 누가, 실라, 야고보(예수님 동생) 등은 특화 공동체가 만들어 낸 고가의 특화 인물들이었다. 특히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아리스다고, 마가(바나바의 생질), 유스도(예수) 등 비범한 영적 인물 3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역사했던 특화된 인물들이었다(골4:10-11). 이들의 사역을 통해 주변의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위로를 받았다. 반면 교회 공동체의 세(勢)와 가치의 상승은 공동체(교회)의 세(勢)를 더 크게 끌어 올렸다. 공동체가 지닌 위력의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가 나타난 것이다. 이로써 놀랍게도 유대인, 수만 명이 결실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다(행21:20). 이 모든 것이 교회가 특화 공동체(행4:33)가 되어 예수 부활 능력을 힘입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한 결로 나타난 결실이었다(행9:31). 제일초대교회는 성령으로 무장하기 위해 기도부터 시작하였다(행1:14). 그리하여 교회 구성원들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위로부터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기 위한 특허(特許)’를 받아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세(勢)를 지닌 초월적 조직(교회 공동체)이 운행해 가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가장 효율성 높은 명문교회 구조로 교회 공동체가 구비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면 교회 공동체 특화는 필수 요건이다. 공동체의 특화로 목회의 안정 및 하나님 나라의 선교가 탄력을 받게 될 것이며, 세상 속에 영향력 있는 지교회로 멋지게 세워질 것이다. 교회 안에 공동체 특화가 실현되면 경사진 곳을 구르는 커다란 통나무와 거대한 돌(바위)처럼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작동되게 된다. 강력한 복음의 물결 쓰나미(earthquake)가 몰려오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악과 죄를 집어 삼키기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히11:38) 거대 산맥을 이루게 된다. 이 저력(底力) 앞에 세상은 놀라게 될 것이며 교회의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어 그 위용(偉容)을 드러내며 그 권세와 힘을 시위하게 될 것이다.

세상 속에 독창적인 특화교회를 아름답게 세우는 방법은 위에서 제시한 3중 특화에 있다. 3중 특화는 목회안정을 통한 선교역량의 극대화를 위해 없어서는 아니 되는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다. 그리고 본 특화목회론이 주창하는 최대 목표이기도 하다. 3중 특화가 이루어지면 목회의 핵심가치, 곧 「ⓐ 생존-자립 ⓑ 자유-부요 ⓒ 공헌-생산」이 달성된다. 모든 목회자들이 시무교회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하고 3중 특화를 이루어 목회정착에 성공한다면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같이(잠26:14),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교회의 구심점을 순기능으로 통제하며 목회의 절대 경지를 경작하게 될 것이다. 법치(法治)를 근간으로 정서법(情緖法)도 고려하여 핵심 멤버와 서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며 결집된 힘을 선교에 집중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독창적 교회로 정착되고도 남을 것이다. 지교회의 안정과 성장은 하나님 나라 확장의 기초가 된다. ‘자립’, ‘부요’, ‘생산’의 구조가 가동되고, 생존, 자유, 공헌의 가치가 공전하는 ‘특화교회’의 출현이 가시화되게 된다. 자신이 시무하는 지교회가 특화목회의 현장이 되어 소속 교단 내 전체 교회를 점진적으로 특화시키는 사역에 지축을 이룬다면 하나님 나라 선교에 공헌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친 자랑스러운 교회로 세상과 역사 속에 터를 잡게 될 것이다.
 

③ 치리회(治理會)에 정통하라

목회자는 목사 안수를 받는 순간부터 자신이 속한 교단(대표적인 5개 교파-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의 정치 조직에 몸담게 된다. 장로교 목사의 경우에는 목사가 치리회(당회, 노회, 총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목사의 소속은 노회이며, 목사는 소속 노회의 회원으로 존재한다(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74조 제1항). 목사가 속한 치리회는 헌법의 통치 아래 존재하며, 치리회가 지닌 행정권과 권징권을 법에 따라 행사한다(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62조 제2항 및 제4항). 따라서 해당 교단 소속 목회자는 장로교의 정치 조직인 치리회(治理會)를 바로 알고 이에 정통해야 한다. 이는 선택 사항이 아니며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다. 오늘날 각 교단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혼란의 원인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부주의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장로교의 경우, 각급 치리회 회원들의 치리회(治理會)에 대한 이해 빈곤이 오히려 치리회의 갈등과 혼란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원칙을 벗어난 굴절된 의사결정을 통해 치리회의 고통과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따라서 법치에 근거한 치리회 운영을 위하여 해당 교단 소속 목회자들은 장로회 정치의 근간인 치리회(治理會)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목회자들은 소속 교단의 헌법 또는 장정이 어떻게 제정됐는지, 헌법(장정) 제정을 통한 교단 내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장로교 ‘치리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며 3심제(당회, 노회, 총회)로 연결된다. 직무와 기능은 독립적으로 부여되며, 치리회가 처결한 결정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상하관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기관처럼 독립적으로 3권이 분립된 체재는 아니며, 각 치리회가 3권을 행사하는 통합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 웨스트민스터 헌법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의 뿌리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헌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 정부 주관으로 120명 목사와 30명 장로들이 1643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예배당에 모여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그 후 영국 각 노회와 대회의 수의 과정을 거쳐 5년 반 동안 심혈을 기울여 웨스트민스터 헌법이 완성됐다. 이때 헌법 제정을 위해 활동했던 위원들은 뛰어난 신학자들이었고 목회 권능이 출중했던 목회자들이었다. 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화평과 유익을 위하여 헌법 제정에 헌신하였고, 주님의 뜻만을 이룬다는 일념으로 기도하며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헌법 제정 위원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17년 제6회 총회에서 이 헌법에 기초하여 제정된 미국 북장로교 헌법을 대부분 채택하여 헌법을 제정하였다. 결국 장로회 헌법은 성경에 근거하여 제정되었고 헌법에 의해 치리회가 만들어졌다. 사도행전 제15장에 나오는 당시 교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예루살렘 공의회가 장로교 치리회의 모토가 되었다. 단순히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모아 그에 근거하여 교단 헌법이 제정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하여 헌법에 명시된 치리회가 설계된 것이다. 모든 목회자는 자신이 속한 교단의 헌법이 ‘성경’에 근거하여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고 헌법이 규정하는 정신과 원리에 따라 목회 사역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 목사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장로회 정치는 주권이 교인들에게서 나온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에 근거한다. 이때 치리권(治理權)은 목사 및 장로로 조직된 치리회(治理會)를 통해 행사된다. 곧 성직과 교인의 평등이 전제되는 공화정치(共和政治) 성격을 띤다. 치리회는 위계질서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각 치리회가 범할 실오(失誤)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기 관할 구역 내의 전권, 곧 ‘자치권(自治權)’과 타 치리회에 대한 ‘타치권(他治權)’ 및 상회의 ‘공동감시권(共同瞰視權)’이 인정된다. 장로회 정치는 분명한 조직을 통해 투명하게 공동체가 운영되는 대의민주주의정치(代議民主主義政治)를 채택하고 있다. 역사가 확인해 주듯이 성직자 중심의 감독정치 하에서는 사제들의 막강한 권세가 부패를 낳는 원인이 된다. 반면 회중중심의 자유정치 제도 하에서 역시 평신도들의 막강한 권세가 부패의 온상이 된다. 따라서 장로회 정치는 이 같은 중앙집권 체제인 감독정치의 약점을 보완하고, 자유정치 체제인 회중정치의 약점을 보완하여 양 정치체제의 강점만을 도입한 이상적인 정치제도이다. ‘교회’의 대표인 ‘목사’와 ‘교인’의 대표인 ‘장로’로 구성되는 당회가 ‘기본 치리회’로 존재하고, 소속 목사와 총대 장로로 구성되는 ‘중심 치리회’인 노회와, 목사와 장로 동수로 구성되는 ‘최고 치리회’인 총회가 삼심제로 존재한다. 이러한 삼심제의 치리회 제도는 구약의 모세시대(출30:16,18:25-26,민11:16)와 사도시대(행14:23,18:4,딛1:5,벧전5:1,약5:14) 때부터 존재했던 역사적 제도에 기초한 제도이다.
 

ⓒ 성직자의 ‘치리권’과 평신도의 ‘기본권’은 정치조직의 기본이다

장로회 정치는 성직자의 ‘치리교권(治理敎權)’과 평신도의 ‘기본교권(基本敎權)’이 최대한 인정되고 보장되는 제도이다. 장로회 정치는 이 양() 권한의 장점을 정치제도에 도입하여 서로 동등하게 하고 상호 보완 협력함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이다. 16세기 이전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진행된 교황정치는 성직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는 반면, 오히려 그 장점이 교회를 부패시키는 요인 되었다. 또한 16세기 이후의 회중중심의 독립교회나 조합교회는 평신도들의 주체적 신앙생활이 이루어진다는 장점을 지니는 반면, 오히려 그 장점이 교회를 타락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자신들의 성경해석에 따라 천태만상의 신경(信經)이 생겨났고, 교회 안에서의 사사로운 감정과 이해관계를 따라 교파가 난립하게 되었다. 평신도의 기본권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위축되기 쉬운 특성을 지니는 반면, 성직자의 치리권은 그대로 두면 저절로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성직자들은 평신도의 기본교권(基本敎權)을 육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평신도들은 성직자의 치리교권(治理敎權)이 신뢰받도록 적합한 풍토를 조성하여야만 한다. 이 양(兩) 권세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상호 협력을 통해 교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양 권세가 순기능으로 작동하면 교회의 건전한 발전과 부흥을 계도(啓導)하고, 교회의 ‘신성’과 ‘질서’를 유지하며 교회에 덕을 세워나가게 된다.
 

ⓓ 공교회의 치리권은 삼심제가 원칙이다

공교회를 치리함에 있어 정치조직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원리의 핵심에 있어서 공교회의 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공적으로 구성된 치리회에 있다는 점이다. 즉 삼심제로 이루어지는 당회, 노회, 총회에 치리권이 있다. 당회는 ‘기본 치리회’로서 상회인 노회에 지교회를 세우는 일과 목사의 임면과 관련된 청원권을 행사한다. 이에 노회는 ‘중심 치리회’로서 하회의 청원에 대한 ‘승인(承認) 허락권’을 행사한다. 동시에 노회는 원만한 노회 운영과 관련하여 총회에 필요한 청원권을 행사한다. 이에 대하여 총회는 ‘최고 치리회’로서 노회의 청원에 대한 ‘승인(承認) 허락권’을 행사한다. 이때 모든 안건 처결은 법대로 조직된 치리회가 행사하며, 모든 결의는 법대로 처리됨이 원칙이다(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62조 제2항 및 제4항). 지교회의 교회설립 청원 하에서 노회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노회의 허락 하에서 교회설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회에 목사의 임면권(任免權)이 있다 할지라도 지교회의 청빙이 없으면 시무목사로 임면할 방도가 없고, 노회가 특정 교회의 장로를 늘리고 싶다 해도 지교회의 청원이 없이 장로 선거나 고시를 허락할 수 없다. 노회가 분립 청원을 한 사실이 없는데 분립 청원 없는 노회의 분립을 총회가 허락할 수 없고, 노회의 분립 청원에 대해 총회의 허락이 없는데 노회가 분립을 단행할 수 없다. 곧 치리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결정은 하회의 적법한 청원권 행사와 상회의 합법적 허락권 행사가 수반되어야 한다. 실체법과 절차법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때 공교회의 모든 의사결정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 오실(誤失)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치리회가 처결(處決)한 결정도 완전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오실(誤失)을 줄이기 위해 단일체계가 아닌 위계적 삼심체계를 두게 된다. 삼심제가 필요한 이유는 발생한 사안을 동일한 사람들에게만 맡겨 처리하지 않고 그 처결 사안을 다른 치리회원들로 구성된 상회에 맡겨 재심의(再審議)하기 위함이다. 초심이나 재심으로 끝내는 것보다 삼심까지 진행하면 오실(誤失)을 줄일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무한심제를 채택하여 정함과 종결 없이 언제까지나 마냥 끌고 갈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오히려 혼란과 무질서가 파생될 수 있다. 삼심제도 도입 이유는 고유 자치권(自治權)’이 상회의 타치권(他治權)’에 의해 다른 치리회 회원들의 감시와 심의(심리)를 받음으로써 치리회의 위계적(位階的) 조직 내에서 공정성과 공평성을 계도(啓導)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회(下會)에 오류가 있다 할지라도 상회(上會)는 하회 치리회 고유권한을 침해함 없이 하회에 지시하여 해 치리회로 발생한 사안을 바로 잡도록 처리함이 원칙이다. 하회의 결정을 상회가 직접 변경 조치할 경우, 하회의 고유한 특권이 침해되어 하회의 자율성이 위축된다. 이 같은 조치는 하회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하여 상회가 하회에 군림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상회의 월권과 권한남용은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하고 삼심제의 적절한 운영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무지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공교회 운영을 실현해야 한다. 이로써 오실(誤失)을 최소화하여 최상의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가치(價値) 있는 목표를 달성해 나가야 한다.
 

ⓕ 각급 치리회의 권한은 동등하며 위계질서도 분명하다

모든 치리회는 사도행전 20:17,28, 디도서 1:5-7 등의 성경에 근거할 때 그 권세가 동등하다. 당회의 권세는 하위(下位)이고, 노회는 중간이고, 총회는 최상(最上)일 수 없다. 그 권위는 동등하고 역할과 기능만 다를 뿐이다. 목사가 해당 치리회 회원이 되면 치리권 행사 권한이 주어지고, 장로가 해당 치리회 회원이 되면 치리권 행사 권한이 주어진다. 목사와 장로가 지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목사도 장로도 자기 권한 이상으로 높아질 이유도 없다. 총회원 된 목사와 장로도 높아 봤자 목사, 장로이다. 총회원이라 할지라도 당회원, 노회원과 다를 바 없는 치리회원이다. 다만 큰 단위의 치리회를 치리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차이뿐이다. 그러나 그 치리회 치리권 행사의 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반면 장로회 정치는 사도행전 15:1-31에 근거하여 삼심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위계(位階)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상회의 지도 및 감독 기능을 통해 하회의 오류를 수정할 기회를 얻게 되기에 삼심제도 하에서의 위계질서의 필요성은 분명하게 요구된다. 삼심제는 보다 발전적인 공동체 향상을 위해 그 필수성이 요구된다. 다만 치리회 간의 행정적인 결의 등이 상충될 경우에는 상회의 결의(지시)에 따름이 마땅하다(교단 헌법 정치 제63조 제7항). 상회가 처결한 사안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그 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류가 수정되지 않는다면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공의대로 처리해 주시기를 기도하고(행21:14), 그분의 처분에 맡겨야 한다.
 

ⓖ 각급 치리회가 지닌 고유권한은 침해 불가하다

지교회가 위임목사 청빙을 하려면 당회 결의와 공동의회 의결을 거쳐 노회에 청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청빙절차 없이 교인 중 어느 한 사람이 개인 의사(意思)가 담긴 문서를 노회에 전달했다 하여 그 개인 의사(意思)를 따라 위임목사(담임)를 파송하여 시무케 할 수는 없다. 또한 노회가 지교회 시무목사 청빙에 관하여 승인할 권한이 있다 하여 지교회가 청빙절차(당회결의 및 공동의회 가결)를 밟은 일에 상관하여 결정 및 취소를 결정할 수는 없다. 이는 하회의 기본권(基本權)을 무시하는 상회의 월권이다. 시무목사 청빙에 관한 절차를 취하는 여부는 전적으로 당회에 부여된 고유권한이다. 한편 노회가 지교회 당회의 정당한 시무목사 청빙에 대하여 허락하는 여부는 전적으로 노회가 행사할 고유권한이다. 그런데 하회에 대한 직접 치리권 행사 권한이 없는 총회가 지교회 시무목사 임면(任免) 여부에 직접 상관하여 결정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노회의 원기본권(元基本權)을 침해하는 위법행위이다. 교단 헌법이 그 같은 직무를 수행할 권한을 총회에 부여한 사실이 없다. 노회를 거치지 않은 당회나 개인의 헌의는 총회가 직접 받을 수 없다. 상회권 발동은 하회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소송장이 상회에 접수된 때로 국한된다. 만일 법적 기간 내에 합법적 소송장이 상회에 제출된 사실이 없다면 상회가 ‘간접 치리권’을 행사할 권한은 전혀 없는 것이다.
 

ⓗ 노회는 치리회의 중심이다.

치리회는 각급 치리회마다 고유한 특권이 있다. 예컨대 지교회 교인을 다스리는 권한은 당회에만 있다. 노회도 총회도 교인에 대한 ‘원치리권(元治理權)’이 없다. 다만 분쟁 발생 시 수습권 발동과 소송과 헌법해석을 통한 ‘간접 치리권’ 행사만 가능하다. ‘노회가 가지는 고유한 특권은 목사에 대한 원치리권(元治理權)이다. 목사가 지교회 당회장이 되는 것은 목사에 대한 노회의 임면권 행사로 가능하며 당회는 물론 총회도 목사에 대한 임면의 원치리권(元治理權)을 행사하지 못한다. 다만 당회는 시무목사 청빙권의 행사가 가능하고, 고소 및 고발 건 상소(재항고 및 상고)건이 접수된 경우, 총회는 목사에 대한 간접 치리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총회는 노회의 설립, 분립, 합병, 폐지 등의 권한과 헌법 해석권과 헌법의 제정 및 개정안 제안 권한이 있다. 총회는 교단 최고 치리회다. 총회가 지닌 권한은 노회나 당회가 침범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각급 치리회의 고유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권한과 당회를 조직케 할 수 있는 권한은 당회에 있지 않고 노회에 있다. 그러기에 장로회 정치에 있어서 ‘중심 치리회’는 ‘노회’이다. 당회를 ‘지교회’라 부르는 것도 노회를 중심하는 호칭이다. 엄밀히 말해서 하회의 결정을 감독 조정할 수 있는 상회가 없는 지교회는 장로교 정치 하의 교회라 할 수 없다. 치리회는 노회를 중심으로 상하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에 목회자는 이 원리를 이해하고 교회 정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 각급 치리회의 작은 결정도 전국 교회에 통용된다

각급 치리회는 각립(各立)한 개체가 아니라 서로 연합된 공교회성을 띤 유기체(有機體)이다. 따라서 어느 치리회에서 처결(處決)된 사안이든 그 결정은 전국 교회의 결정으로 통용된다. 당회, 노회, 총회의 결의는 전국 교회에 미친다. 예컨대 A교회에서 어떤 교인을 장로로 장립할 경우 A교회에서 임직한 것이지만 그 장로는 어디를 가도 A교회 장로로 인정을 받는다. B교회, C교회가 우리교회가 세운 바 없으니 장로로 부를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노회가 목사를 임직한 경우, A노회의 결정에 따라 그 목사는 전국 어느 노회를 가도 목사로 인정된다. B노회도 C노회도 우리는 결의하여 임직한 바 없으니 그를 목사라 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동등한 권한을 가지는 치리회의 결정은 그 효력도 동등하기에 관할 치리회의 결정일 뿐만 아니라 동등하게 전국 교회에 효능이 미치는 전국 교회의 결정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안에서의 결정이기 때문에 그 지체만의 결정이 아니라 온 몸에 영향이 미치는 결정이 된다. 발이 앞으로 나가기로 결정한 후 비록 발이 앞으로 나갈지라도 이는 온 몸 전체가 나가는 것이다. 각 치리회의 결정은 이와 같이 전체 교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치리회의 사소한 결정도 전국 교회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전국 교회 통용에 손색이 없도록 치리권 행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 치리회장(의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많은 목회자들은 치리회장(의장)이 되는 일에만 애착을 보일 뿐, 정작 치리회장(議長)의 자격을 갖추고 준비하는 일에는 무관심해 왔다. 그 결과 전문성을 갖춘 치리회장 배출에 실패하여 입헌주의(立憲主義)와 법치주의(法治主義)의 계승이 멈춰졌다. 그리고 이 같은 결과는 소속 교단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치리회장(의장)은 치리회 운영과 의사결정을 하는 중심에 서 있다. 통합교단에서 제정한 「장로회 각 치리회 및 산하기관 등의 회의규칙」에 의하면 회무의 표결 처리 시, 의장이 미리 가부를 표명해야 한다(동 회의규칙 제12조 제2항). 규칙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의장이 먼저 규칙에 관하여 설명해야 한다(치리회 회의규칙 제11조). 안건 처리 도중 규칙상 문제가 발생하면 안건 처리 전에 의장이 먼저 규칙 위배 여부를 해결하고 표결에 들어가야 한다(동 회의규칙 제26조). 그만큼 치리회장(의장)의 위치와 역할은 중요하다. 조직의 운영과 의사결정을 주재하는 의장(議長)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목회자들은 언제 어느 때에 치리회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사전에 치리회에 대한 근원과 권한 행사 및 직무에 관한 지식과 회의 법을 바르게 습득해 놓아야 한다. 평소 치리회 운영에 관한 준비를 철저히 한 자만이 치리회 운영을 원만하게 이끌 수 있고 준비된 치리회장만이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에 의한 치리권 행사를 구현할 수 있다(잠17:15,호4:6-7,딤후2:5). 치리회 운영에 관한 바른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치리회장(의장) 원만한 임무 수행이 어렵다. 모든 목회자는 어느 때에 치리회장이 되라도 그 임무를 거뜬히 수행해 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특화목회(特化牧會)는 장로교의 경우, 정치 체계의 중심인 치리회에 정통함으로써 특화를 실현한다. 그리고 지교회가 3중 특화를 이루어 의사결정 기구인 치리회(治理會)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소속 교단과 여러 타 교회에 공헌한다. 이는 모든 교파에 속한 목회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화목회의 최대 목표는 목회자가 세상에서 유일한 독창적 특화교회를 세우는 데 있다. 이 기반을 토대로 특화교회가 지닌 힘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 그리하여 주변 지상교회를 살리는 지도자 교회로 공헌하게 한다. 나아가 교파를 초월하여 기독교 전체에 선한 영향을 주어 공교회(公敎會)를 바르게 세워가게 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선도(先導)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마5:16,고전10:31). 궁극적으로 ‘특화목회’의 목표는 각 교단 지교회의 통합체인 기독교(基督敎)가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강력한 선교 공동체로 존재하며 세계 역사 속에 빛나는 유산과 유일한 소망으로 우뚝 서게 하는 데 있다(창1:4,10,18,21,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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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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