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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노아의 예언(2)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3년 05월 19일 (금) 11:18:18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창9:20)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노아의 예언(1)에서 언급했던 대로, 노아의 장자 계열에 주목해 보면, 노아의 장남인 야벳, 야벳의 장남인 고멜, 고멜의 장남인 아스그나스(Ashkenaz)가 장자의 복을 특별히 받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역사에서 고멜의 후손들은 시메리안(Cimmerians)이라고 불리웠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족적들을 남겼다. 성경에도 고멜이라는 동일한 이름들이 등장함으로 자손 대대로 잊혀지지는 않았으니 이 또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야벳의 장남인 고멜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고멜의 이름에서 파생된 시메리안들은 지금의 튀르키예와 코카서스 전 지역에 걸쳐서 맹위를 떨쳤으며,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지금의 러시아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심지어 고멜의 후손 즉 시메리안들은 현재의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여러 곳에서도 그들의 자취들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야벳을 향한 노아의 예언적 축복이 얼마나 차고 넘쳤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성경과 역사에서 장자가 아닌 여타의 아들들이 장자의 권리를 탐낼만하지 않았겠는가!

   
 아르메니아 츠바르놋츠 대교회에서 바라 본 아라랏산. 츠바르놋츠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천상의 천사’라는 뜻이다. 아르메니아 조지아는 노아의 장자인 야벳을 포함한 장자권 계승자들이 중심이 되어 생육하고 번성해 가는 큰물줄기의 출발점이자 원천이며 근간이었다

노아의 장손이자 야벳의 장남인 고멜이 시메리안이라는 이름과 큰 영향력을 성경과 역사에 남긴 것은 장자 계열의 특권이자 축복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야벳의 지경이 넓혀지는 노아의 예언적 축복이 놀랍게도 아르메니아 조지아로부터 기인하고, 발전하고, 확대되었다는 점을 유념하자. 더 나아가 노아의 증손이자 고멜의 장남인 아스그나스(Ashkenaz)가 미친 영향력은 가문의 그 어떤 이가 이룩했던 위대한 업적들을 모두 덮고도 남을 정도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다음번 글인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자세하게 소개할 것이지만, 성경과 역사에 등장하는 아스그나스의 발자취들은 상상을 초월하며,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신비에 감춰진 내용이 많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아르메니아 조지아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스그나스(Ashkenaz)는, 초기 단계에서 볼 것 같으면, 지금의 튀르키예 전체와 코카서스 일대를 주름잡으며 야벳 계열의 대표자처럼 인식되었다. 아스그나스 사람들은 노아의 막내 아들인 함(Ham), 함의 막내인 가나안(Cannan), 가나안의 둘째 아들인 헷(The Hittites)족속이 세워서 큰 나라를 이룬 히타이트 제국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창10:15). 그들은 히타이트 제국 이후에 등장한 앗시리아 제국과 신 바벨로니아 제국 등과도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경쟁하였다. 물론 이들 제국들이 워낙 강대하고 파죽지세로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스그나스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위축되고 그들의 영토가 좁아지기는 했으나, 그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직전에(B.C) 고대 근동을 호령하던 강대국들의 틈새를 헤집고 들어가서 대제국을 건설키도 하였다. 주님이 오신 후에는(A.D) 로마 제국의 확장과 신생 페르시아 제국의 대립 속에서 지금의 코카서스 지역과 아르메니아 하이랜드, 즉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경계가 정해졌다. 중세시대 중반부인 주후 1,000년을 전후하여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티드 왕조가 상당 기간 동안 실크로드를 호령하며 부와 명예를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하였다.

   
▲ 노아의 장손인 고멜을 중심으로 시메리안들(Cimmerians)이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최초로 정착했던 유적이다. 고멜의 후예들은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러시아를 거쳐서 유럽 각 지역에 발자취를 남겼다

아스그나스 사람들의 용맹함과 위협적인 명성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지정학적 영토가 이전보다 위축되었던 관계로 아스그나스라는 이름이 잊혀지는 듯하였다. 왜냐하면 이 당시 아스그나스라는 이름보다 아르메니아나 조지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더 알려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국들의 뇌리에서 자취를 감춘 듯 보였던 아스그나스(Ashkenaz)가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창세기 10장 2절부터 5절까지 야벳의 자손들을 언급했던 대로 이들이 유럽의 각 지역들에 흔적을 남겼던 기록들이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었는데, 유럽의 주요 지역들을 망라한 유럽 자체를 가르키는 명칭으로 ‘아스그나스’가 등장한 것이었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아스그나스(Ashkenaz)가 어떻게 유럽 전체를 일컫는 명칭이 될 수 있었을까?

첫 번째로, 아스그나스 사람들이 노아가 야벳에게 베풀었던 예언적 축복을 이루어가는 자연스러운 와중에서 점차적으로 동유럽과 러시아를 거쳐서 유럽의 곳곳으로 지경을 넓혀 갔을 것이다. 당대의 역사가들 조차도 아스그나스의 확장에 대하여 거의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중세기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유럽에서 성지를 탈환하려고 몰려드는 십자군들을 가르켜 ‘아스그나스’(Ashkenaz)라고 부른 기록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희미하게나마 아스그나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두 번째로, 유대교의 역사와 관련하여, 중세시대의 중반 이후로 아스그나스 유대인(Ashkenazi Jews)들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유대교 추종자들로 알려졌다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유대인 하면 아스그나스 유대인일 정도로 이들이 전체 유대교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스그나스 유대인 그룹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세파라드 유대인(Sepharadic Jews)이 전체의 20% 전후를 차지하는데, 세파라드는 스페인을 가르키는 말로서 거기서 유래한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스페인이 세라파드로 불렸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오바댜 1:20).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스페인에서조차도 세라파드 내지는 아스그나스(Ashkenaz)로 나라 이름을 지칭했다는 사실이다. 참고적으로, 1939년경 유럽에는 약 1,200만 명 정도의 아스그나스 유대인(Ashkenazi Jews)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이 정도의 아스그나스 유대인들이 존재한다. 이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 하면 아스그나스라는 말이다.

세 번째로, 아스그나스라는 명칭을 유대인들이 대명사처럼 쓰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의 북왕조를 구성했던 10개 지파가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 상당수가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즉 아스그나스로 유입되었고, 남조 유다 왕국의 2개 지파에 속한 유대인들 중 다수도 아스그나스(아르메니아 조지아)로 이동하여 토착화 된 후, 상황과 여건에 따라 유럽의 각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견해라고 본다. 아스그나스의 본 고장인 아르메니아 조지아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 중에 사도들의 선교로 기독교인이 된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아스그나스 유대인 만큼이나 아스그나스 기독교인(Ashkenazi Christians)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많은 수의 아스그나스 유대인이나 세파라드 유대인들이 유럽 곳곳에 계속 남아 있었지만, 아스그나스의 본토인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 남은 유대인 포함 후예들이 주축이 되어 각각 세계 최초(주후 301년)와 역사상 두 번째(주후 326년)로 기독교 국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유럽의 다른 이름인 아스그나스(Ashkenaz)도 대륙 전체가 기독교를 수용하였고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한 신앙 혁명을 이룩하였다. 더 나아가 아스그나스(유럽)의 후예들이 신대륙으로 흩어져서 지경을 넓혔으니 이 얼마나 귀한 예언적 축복의 성취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엄청난 일들이 아스그나스의 땅, 아르메니아 조지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 중세시대 유럽의 아스그나스(Ashkenaz)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유럽이 곧 아스그나스 라고 알려지게 되었고, 유럽에 사는 유대인 다수가 아스그나스 유대인이었다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창9:27)

노아의 장자인 야벳이 받은 예언 중에 가장 난해하고 민감한 것이 이 구절이다. 이 구절 하나로 함(가나안)의 후예들은 역사상 중요한 순간마다 아르메니아 조지아로부터 시작된 아스그나스 유대인 중심의 선민사상이나, 아스그나스로 불리는 유럽 등에서 백인 우월주의 내지는 백인 우파, 백인 리버럴(The White Liberals), 그리고 근본주의적인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성경적, 사상적 근거로 악용되었고 왜곡되어 왔다. 필자도 소시적부터 이 구절을 대하면서 인종차별적인 편향된 시각을 가졌던 적도 한때나마 있었다. 일시적으로 그랬는지 지금도 그러는지 속단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그리 가르치고 설교하니 순진한 청소년들이나 성도들이 ‘아멘’(?)으로 맹종할 수밖에. 필자는 이 구절에 대하여 세 가지로 문제제기를 하며 답을 찾아 보았다.

첫 번째로, 노아의 막내 아들인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과도하게 드러내어 큰 잘못을 저지른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왜 노아는 함이 아니고 가나안에 대하여 저주를 하였고, 이 부분이 전부인 양 두드러져 보이게 되었을까? 일부 성경학자들은 아버지 함과 함께 그의 막내인 가나안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그런 주장이 일리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령님의 감동으로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에게 영감을 주셔서 기록된 말씀임을 전제하면서,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의 상황이 가나안 정복이라는 중차대한 과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은 저주를 받은 민족이기에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의도도 다분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 일대에 흩어져 살던 아스그나스 유대인들의 모습이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즉 고대 아스그나스는 전체 유대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아스그나스 유대인 그룹을 탄생시켰다. 더 나아가 아스그나스의 후예들은 아르메니아를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조지아를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이자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나라가 되는 축복을  누렸다

두 번째로, 함(가나안)이 장남 야벳과 차남 셈의 종이 된다고 노아가 예언을 했다면, 함의 족보를 아예 빼든지 크게 축소해야 맞지 않았을까? 창세기 10장에 언급된 함의 자손들을 무슨 노예들의 명부처럼 보아야 하는가? 창세기 10장에 나타난 열국들의 테이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아의 장남인 야벳에게 베풀었던 예언적 축복들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 점에 비해서 기록된 족보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야벳의 족보는 단 네 개의 구절로 마무리 된다.(10:2-5) 반면 저주를 받았던 함(가나안)의 족보는 14개의 구절인 데다 구체적인 설명까지 곁들여 있어 크게 비교된다(10:6-20). 심지어 11개 구절을 할애하여 언급된 셈보다도 분량이 더 많다(10:21-32). 어떤 사람들은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구속사적인 견지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부터 저주와 정죄를 넘어서는 사랑으로, 그리고 열국을 포기하지 않고 품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로 간파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세 번째로, 필자가 성경과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며 유심히 찾아보아도 함(가나안)의 후예들이 셈(이스라엘과 유대인)의 후예들에게 종의 종이 되는 경우가 출애굽 후 가나안 정복이 대표적으로 보이는데, 그 외에 다른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는가?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 유대인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함(가나안)의 후예들보다 히브리 민족이 먼저 애굽 땅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했다. 심지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도 그 족속들을 완전히 축출하지도 못했다. 함의 막내 아들인 가나안이 낳은 둘째 아들 헷은 히타이트 제국을 건설하여 가나안 땅을 비롯한 고대 근동 일대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이집트 제국도 오랫동안 고대 근동의 맹주로 군림하며 셈의 후예들과 야벳의 후예들에게까지 지배력을 행사하며 필요하면 노예로 부리기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야벳의 후예들로서 아스그나스(Ashkenaz)로 불리던 유럽인들이 식민지 통치를 하며 함의 후예들을 노예로 부리지 않았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식민사관이다. 일본이 한일합병 후에 한반도의 근대화 등 모든 면에서 발전의 기회를 주었다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입장과 같은 것이다. 함의 후예들이라고 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킨 것은 엄연히 국제법상 침탈행위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같은 인간에 대한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 그래서 노아의 예언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은 받들어 섬겨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용하거나 악용하는 자의적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상과 같이 두 편의 글을 통해 살펴본 대로, 아르메니아 조지아(아스그나스)는 노아로부터 시작된 신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과정에서 신인류의 장자권을 가진 장자의 나라가 되는 특권과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성경의 구속 역사를 볼 때, 셈의 혈육들이 받았던 영적 장자권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일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 넘쳐났다. 하지만, 타락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 문제였다.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 유대인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을 제대로 간직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패망하였고 제국들의 땅으로 끌려가 또다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이스라엘의 유대인 중 다수가 노아로부터 장자의 특권과 축복을 받고 있었던 조지아 아르메니아, 즉 아스그나스에서 토착화 된 후, 아스그나스 유대인들(Ashkenazi Jews) 또는 아스그나스 기독교인들(Ashkenazi Christians)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는 노아의 장자 계열인 아스그나스가 노아의 둘째 아들 세대와 막내 아들 계대까지 품고 아우르는 대역사였다.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는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하며 무조건 송축과 찬양과 영광을 그분께 돌릴 수밖에 없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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