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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 6
2023년 05월 09일 (화) 11:05:40 오총균 목사 skoh1112@hanmail.net

오총균 목사/ 시흥성광교회 담임, 한국특화목회연구원장,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목회전문 박사, 시흥시서구기독교연합회부회장

   
 오총균 목사


   6. 성경과 헌법에 기초한 법치목회를 수행하라

  목회자가 항상 ‘성경’과 하나 되어 삶을 살아가고 시대정신을 반영한 ‘진리’에 기초한 예술적 설교를 해야 함은 앞에서 주지한 바와 같다. 그런데 이와 곁들여 반드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소속 교단에서 제정한 ‘헌법(혹은 장정)’을 가지고 목회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해야 하는 이유는 교단에서 제정한 헌법(장정)이 목회자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고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예장 통합교단 총회규칙 제2조에서는 ‘성경’과 ‘교단 헌법’에 입각하여 모든 사업을 실행하는 것을 총회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통합교단 권징법 제4조 제3항에서는 ‘재판의 원칙’을 “성경과 헌법(헌법시행규정)”에 의해 공정하게 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각급 치리회에 부여된 행정권징의 권한 행사가 성경과 헌법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목회자들이 치리회와 기관의 권력과 운영권을 잡게 되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지고 교단 내 의사결정을 자의적으로 행사한다는 데 있다. 일관성이 배제된 채, ‘법치’보다는 ‘정무적 판단’에 의해 경우에 따라 치리권이 행사되면서 고무줄처럼 법을 적용하고 있다. 적법과 위법이 이익에 따라 상호교차 작동되면서 내 편에게는 관대한 법적용이, 상대에게는 엄격한 법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써 공정성 시비가 끊임없이 발생하며 주요 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정·반(正·反)의 논리와 대립된 주장이 생성되고 있다. 그 결과 교단 내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반목과 증오와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이 모두가 공익(公益)이 아닌 사익(私益)을 추구한 결과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며, 법치(法治)와 무관하게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여 평판을 얻으려는 조급증의 결과물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법치에 대한 성경적, 헌법적 원리에 무지하고 이를 도외시한 결과에서 온 폐단이라 할 것이다. 급히 먹는 음식이 체하듯이 법치를 벗어난 사태 모색은 불행과 혼란의 씨앗이 된다. 원칙을 무시한 사태 수습은 후에 더 큰 화를 불러온다. 따라서 목회자는 모든 일에 성경과 헌법을 근거로 모든 사안을 판단하고 모든 사건을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목회를 수행함에 있어서 목회자는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헌법’을 들고 법치(法治)에 근거하여 목회를 수행해야 한다.
 

⓵ 법치의 중요성과 본질

현대의 정치제도인 ‘민주주의’는 ‘법치’를 기본으로 한다. 법치(法治)란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합의로 만들어진 법을 통해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과 폭력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배격하고 합리적이며 공적으로 제정된 법의 지배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공정사회를 이루며 정의를 실현함을 목표로 한다. 사람들 간에 다툼이 발생하거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 ‘법(法)’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죄와 벌을 결정한다. 이때 사회규범인 ‘법’을 적용하여 사회와 집단의 문제들을 판단하고 해결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재판은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 구성원들을 통합시키고 공동체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행동의 기준이나 원칙이며, 사회 구성원들이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법을 잘 지키면 심리적 안정, 양심과 사회적 지지, 모범인 선정, 포상 등 각종 보상(報償)이 주어진다. 그러나 법을 어기면 그에 따른 일정한 제재(制裁)가 가해진다. 상황에 따라 심리적 부담, 양심의 가책, 사회적 비난, 신체적 처벌, 법적 규제 등이 내려진다. 이와 같이 ‘법’은 보상(報償)과 제재(制裁)를 통해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

신기하게도 인간의 심리나 정신세계는 총체적 사회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법이 안정되고 존중되며 준수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와 강한 결속력을 지닌다. 이때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 대체로 만족한다. 이 같은 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안정되고 타 구성원과의 갈등은 낮아진다. 그러나 법이 부재(不在)하거나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법이 무시될 경우, 아노미 현상(Anomie-규범과 가치관이 무너져 혼란과 무질서 상태에 빠지는 것)이 나타나면서 개인과 사회의 결속력은 약화되고 개인의 만족도는 낮아진다. 사회적 통합 정도가 낮고 개인의 사회적 결속력이 약하거나 깨질 때 사회 구성원들은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독감에 시달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법치(法治)는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기반이다. 모든 국가와 집단이 지향(指向)하는 원칙이며 사회와 공동체의 통합적 질서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치에 의한 사법부의 판결은 사회 안전망 확보를 위한 최후 보루가 된다. 따라서 ‘법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법치(法治)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법치(法治)는 기독교집단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원이 되고, 헌법에 의해 설계된 ‘치리회’를 존속시키는 원인이 되며, 각 치리회가 처결한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법이 종이 위에 고정된 문자들의 총합으로 끝나고 실제 ‘법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 법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쓸모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만다.

법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처음 만드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지 말라는 법을 주셨다(창2:17).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선민에게 십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주셨다(출15:25, 레18:5). 성경은 법의 근원을 밝혀준다. 이에 교회(교단)와 헌법(장정)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 각 교파에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헌법 혹은 장정을 제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공동체를 운영한다. 이 때 교단의 헌법(장정)은 수권(授權)적 조직 규범성을 지닌다. 교단을 어떤 형태로 구성할 것인지, 어떤 기본적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통치기구와 조직구성 및 통치 작동의 원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성경에 기초하여 전체 구성원의 합의하에 법규범 형태로 제정한다. 예장 통합교단의 경우, 교단 헌법은 성경의 본질에 기초하여 정치원리를 설정하고 조직을 설계하여 거기서 구성원들이 의사를 결정한다는 차원에서 민주주의 원리라는 옷을 입혔다. 이에 따라 통합교단 내 각급 치리회(당회, 노회, 총회)는 해당 교단의 최고법인 ‘헌법’에 의거하여 조직된다. 그리고 각급 치리회는 교단 헌법에서 규정한 ‘행정’과 ‘권징’이라는 ‘치리권’을 행사한다. 이때 각 치리회는 헌법에 의해 위임된 권한을 행사해 나간다. 만일 각급 치리회가 헌법에서 위임한 바 없는 권한을 행사하여 권력을 남용한다면 이는 공동체의 질서를 문란 시키는 위험한 행위가 된다. 치리회가 ‘법치(法治)’를 거부할 경우, 헌법의 기능이 상실되어 헌법이 설계한 치리회 구성 및 직무의 기능이 사라지고 치리회의 존립 자체가 소멸되는 원인이 된다. 성경은 ‘법치의 본질’을 이렇게 조명해 준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신1:17).” 이 말씀에 의하면 치리회가 치리권(행정과 권징)을 수행할지라도 이 치리권 행사는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장 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5조에서는 ‘치리권 행사’를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섬기고 전달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치리권 행사’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행되어야 함을 명백히 하고 있다.
 

⓶ 법치가 의무인 성경적 이유

성경은 ‘법치’의 기초가 되는 ‘공정’에 대하여 이렇게 천명하고 있다. ①“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19:15).” ②“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신1:7).” ③“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 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신1:16).” ④“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신16:19).” ⑤“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신24:17).” ⑥“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대하19:7).” ⑦“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잠25:23).” 이상에서 성경은 재판할 때 귀천의 차별을 두지 말 것과 세력 있는 자라도 낯을 봐주지 말 것과 뇌물로 재판관을 매수하여 진실을 왜곡하지 말 것을 명(命)하고 있다. 성경 역대하19:6에서는 재판관들에게 이런 ‘특명’을 내리고 있다.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개역).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이상의 말씀에서 보듯이 재판은 하나님의 일로서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 신25:1은 이렇게 말씀한다.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재판에서 진실의 왜곡, 즉 의인과 악인을 둔갑시키는 패역은 금지된 철칙이다.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잠17:15).”라고 하셨고,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잠18:5).”라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와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잠25:26).”는 말씀에 의거하여 진실과 거짓이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성경은 신17:10-13에서 무법(無法)을 경계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그들이 네게 말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

성경은 무법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제거해야 할 악으로 보고 있다. 예수께서도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마5:17),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물리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마7:23). 사도들은 예수께서 무법한 자들에 의해 무고히 희생되셨음을 설파하고 있다(행2:23). 사도 바울도 성도가 은혜 아래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율법이 죄가 되지 않으며(롬7:7),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롬7:12). 또한 법대로 경기해야 승리의 관을 얻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딤후2:5). 그만큼 성경은 무법(無法)을 경계하고 법치(法治)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장 통합교단 헌법에 의하면 법조문 신설 없이 ‘총회결의’로나 혹은 법원의 ‘판결’이나 ‘명령’으로 교단 헌법과 헌법시행규정의 시행유보, 효력정지를 할 수 없다(헌법시행규정 제4장 제7조). 국헌문란(國憲紊亂) 행위는 중죄에 해당되며 국법에서는 이를 내란죄에 해당하는 범죄로 엄하게 처벌할 것을 규정 하고 있다(국가 형법 제91조). 무엇보다도 재판의 종국판결에 대하여는 그 판결을 내린 재판국이 속한 치리회장과 최종적으로는 총회장에게 판결집행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교단 헌법 권징 제119조). 이상에서 명시한 중대한 의무를 불이행하는 행위는 책벌의 대상이 되는 죄과(범죄) 행위가 된다(교단 헌법 권징 제3조 제2항). 적어도 각급 치리회장은 죄과가 있는 자들로 다시는 범죄 하지 않도록 엄히 심판하고 꾸짖어 법치의 준엄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딤전5:20). 치리회가 법집행을 거부하고 무법(無法)으로 갈 경우, 헌법의 기능이 마비되어 헌법이 설계한 치리회 구성 및 직무의 기능이 사라지고 치리회의 존립 자체가 소멸되는 원인이 된다. 이에 목회자는 성경이 명하는 ‘법치원칙준수 의무이행’에 충실하면서 목회 직무수행에 임해야 한다.

이상에서 보듯 성경은 법치(法治)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목회자가 법치의 의무를 따라야 하는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공동체의 신성과 평화 및 성결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며(통합교단 헌법 정치 제62조 제1항 및 제63조 제2항), ⓑ외인으로부터 악하다는 비방(벧전2:12)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기 위함이다(딤전3:7). 그리고 ⓒ교회에 위임된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에 누(累)가 되거나 장애가 발생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고전9:12,살전2:9). ⓓ더 나아가 하나님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마5:16). 따라서 목회자는 ‘법치목회’가 분명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치리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⓷ 법치가 무너지는 원인과 회복 방안

1938년 9월 제27회 예장 총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전국 27개 노회 목사 86명, 장로 85명, 선교사 22명, 합계 193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장은 가(可)만 물어 만장일치로 가결을 선포했다. 이에 선교사 20여 명은 “불법이오.”, “항의합니다.”등의 고함을 지르며 저항했다. 선교사들은 신사참배 가결을 무효화하기 위해 “신사참배 가결은 하나님 말씀의 위반이요, 장로회 헌법과 규칙의 위반”이라며 항의서를 긴급 동의안으로 총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총회는 해당 항의서를 토론에 붙일 기회마저 주지 않고 기각 처리했다. 총회원 26명도 “이번 총회결의는 하나님의 계율과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에 위배 될 뿐만 아니라 회원에게 발언권도 허락하지 않고 강제로 회의를 진행한 것은 위법”이라며 항의서를 총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항의서 역시 거절됐다. 총회 폐회 3개월 후, 총회장은 각 교회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행위에 대하여 엄벌할 것을 서한으로 발송했다. “총회결의를 경멸하는 행동은 주님의 뜻에 위배되는 행동이며, 총회결의를 불이행하는 자는 결코 신민과 교인으로 인정될 수 없으며, 반대 행동에 대하여는 마땅히 처벌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교단 제27회 총회는 성경과 법에 반하는 총회결의를 주님의 뜻으로 왜곡시키며 인간 죄악의 극치를 역사 속에 남겼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과 정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숫자의 힘으로 밀어 부처 다수의 횡포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똑똑하게 보여 주었다.

정치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다수가 숫자로 정의를 결정하고 왜곡하는 것을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 정의했다. ‘다수의 폭정이란 어느 군중이 특정사상에 대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고 그것을 절대적 정의라 주장하며 자신들의 사상에 찬동하지 않는 소수집단을 비판하고 억압하는 집단의 악을 말한다. 어느 집단에서 법치(法治)와 무관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이유는 다수를 자극하는 ‘감성(感性)’과 ‘편 가르기’ 때문이다. 다수의 폭정이 시작되면 근면하고 성실하게 법과 약속을 지키는 자들이 사라지고 선동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 득세하며 이들이 권력을 휘두른다. 이때 다수 그룹에 속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은 자들이 겁에 질려 침묵하거나 원치 않는 폭력을 대행하거나 이를 방조하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다수의 폭정이 계속되면 ‘원칙’과 ‘룰(rule)’은 사장(死藏)되고, 강자에 의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야만사회(野蠻社會)’가 된다. 약탈(착취) 능력이 강한 사람이 지배하는 야만사회는 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문명과 유리된 별개의 사회이지만,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여전히 현존하는 사회형태이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종교집단이 도덕률(道德律)에 못 미치며, ‘법치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법’이라는 디케(Δίκη)와 ‘정의’라는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는 맥락을 같이한다. 로마어의 ‘법’이라는 유스(Jus)와 ‘정의’인 유스티치아(Justitia)도 맥을 같이한다. 법이 없으면 정의도 없고 정의가 없으면 법도 없다는 의미다. 법치(法治)가 무너지면 조직(공동체)의 안정과 질서도 함께 무너진다.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 청사 입구에는 “오로지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때때로 등장하는 매 사건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만 공동체의 구심력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법과 원칙이 강자나 약자 모두에게 동일하고 정확하게 적용되고 확실하게 집행될 때 그 사회는 구심력을 유지하게 된다. 아울러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될 때 사회의 공정성이 보장되고 정의는 그 설 땅을 잃지 않게 된다. 설령 힘과 권력이 진실을 왜곡할지라도 언젠가 그 진실은 밝혀진다(에6:3)는 점을 명심하고 목회자는 매사에 ‘법치’를 세우고 ‘원칙’을 지켜가야 한다.
 

⓸ 법치실현을 위한 3대 원칙

ⓐ 입헌주의(立憲主義)

입헌주의(立憲主義-constitutionalism)헌법에 의한 정치를 말한다. 헌법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규정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국가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않도록 국가권력을 헌법에 구속(拘束)하는 통치원리를 의미한다. 국가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권력의 행사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입헌주의는 이 헌법 규정에 따라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치제도이다. 국가 헌법 제20조 제⓶항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국가와 종교단체에서는 각각 ‘헌법’을 제정하고, 최고법인 헌법에 따라 통치(운영)한다. 그 이유는 통치권자의 자의(恣意)적 권력남용을 막고 통치 권력의 자의(恣意)로부터 국민(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국가와 종교단체가 ‘입헌주의’를 채택하는 이유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정치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국민(구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입헌주의법치주의실현을 의미하며, 그 핵심은 국민(구성원) 다수에 의해 제정된 헌법의 규정에 따라 통치(운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입헌주의는 단순히 ‘헌법’으로 통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 권력의 자의(恣意)로부터 국민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방지하는데 그 중심 목적이 있다. 이에 따라 입헌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체 성격의 정치형태를 띠며 공평과 정의를 실현한다. 입헌주의는 「실질적 입헌주의」와 「외견적 입헌주의」로 나뉜다. 이 가운데 ‘헌법’에 의해 실질적인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시민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외견적 입헌주의」로는 진정한 ‘입헌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진정한 입헌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엄격한 권력분립과 헌법재판 제도, 탄핵 제도 등과 같은 권력통제 제도의 실질적 가동이 필요하며, 시민의 기본권이 완전하게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의 완비뿐 아니라, 실제 권력통제 장치의 가동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은 입헌주의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현존하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킬 수 없다. 국가법(國家法)에서는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을 국헌문란(國憲紊亂)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91조 제1항). 이 국헌문란(國憲紊亂) 행위는 내란죄(內亂罪)에 해당되며(형법 제87조), 행위 주동자와 참가자는 아주 엄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87조 제1항 및 제2항). 대통령이라도 국헌문란 행위에 대하여는 재직 중에 형사상 소추 대상에서 면제되지 않는다(국가 헌법 제84조). 마찬가지로 예장 통합교단 역시 ‘입헌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법조문 신설 없이 헌법과 헌법시행규정의 시행유보 및 효력정지를 총회결의만으로 할 수 없다(헌법시행규정 제4장 제7조). 예장 통합교단은 이 입헌주의(立憲主義) 원칙을 채택하여 명문화하고 헌법에 의한 교단 운영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 어느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행사할 수 있는 치리권 행사의 남용을 막고, 치리권자의 자의(恣意)로부터 구성원들이 입게 될 기본권 침해 발생의 예방에 기여해 왔다. 이 ‘입헌주의(立憲主義)’에 기초한 교단운영 기조(基調)는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1921년 제10회 총회가 헌법 제정을 완비한 이래, 100여 년 넘게 사수해 온 교단의 빛나는 전통과 자랑스러운 교단 칼라, 즉 교단 헌법의 권위와 엄중함을 사수하는 ‘입헌주의’를 오고 가는 세대 속에서 소중히 지켜 법치(法治)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the principle of legality)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근대 형법(刑法)의 기본 원리이다. 국가의 과도한 형벌권의 행사와 남용으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근대 인권 사상의 요청으로 등장한 원리이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려면 범죄와 형벌이 반드시 법률로 정해져 있어야 하며, 비록 사회적으로 유해(有害)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일지라도 법률에서 미리 범죄라고 규정해두지 않는 한은 범죄가 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원리이다. 나아가 법률에 의해 범죄로 규정한 행위라도 미리 법률에 규정된 형벌 이외의 형벌로서 형벌의 양을 초과하여 처벌할 수 없다는 원리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법관(재판국)의 자의(恣意-제 멋대로 하는 판단과 처분)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뿐 아니라, 입법권의 자의(恣意)로부터도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법률에 정한 형벌과 다른 형벌을 부과할 수 없게 함으로써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죄형 법정주의’는 ①관습 형법 금지의 원칙 ②소급효 금지의 원칙 ③명확성의 원칙 및 적정성의 원칙 ④유추 적용 금지의 원칙 등의 4가지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선 법률로 정하지 않은 범죄와 형벌은 인정하지 않는 ‘관습 형법 금지의 원칙’, 행위를 할 때 범죄로 규정하지 않았던 행위를 나중에 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소급효 금지의 원칙’, 또한 무엇이 범죄이고 각각의 범죄에 어떤 형벌이 부과되는지가 명확하게 적정돼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과 적정성의 원칙’, 형벌 법규에 처벌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그것과 유사한 성질의 것이더라도 유추하여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유추 적용 금지의 원칙’ 등, 이상 네 가지 법리원칙(法理原則)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같은 기반위에서 범죄와 형벌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법률’로 제정하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이 ‘범죄’이며 그 ‘범죄’에 대해 어떤 ‘형벌’이 부과되는지를 성문법(成文法) 형식으로 정확하게 알게 함으로써 일반 국민도 손쉽게 그 내용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은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 헌법 제13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장 통합교단 역시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 권징 제85조(책벌판결에 명시될 이유)에서 “책벌의 선고를 하는 때에는 헌법 또는 규정의 적용을 명시하여야 한다.”라는 이 명문 규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국가 형법 조항이 370여 개 조항으로 범죄와 그 범죄에 대한 양형규정이 명확한 데 비해, 통합교단 헌법이 죄과로 규정한 권징사유는 15개 항에 불과하며, 책벌 부과에 대한 양형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아 실질적으로 ‘죄형법정주의’가 실현될 토대는 상당히 빈곤한 실정이다. 그나마 중요 분쟁사건 처리 시,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따르기보다 정무적(政務的)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법리부서(재판국) 구성원 중 법률적 전문성을 지닌 인물은 소수이다(교단 헌법 권징 제10조 제2항, 제16조 제2항). 다수 법리부서 구성원들(목사, 장로)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며 법리 업무를 처리한다. 법리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법리부서에 전문성이 결여된 비전문회원을 공천하여 법무업무를 관장케 한다는 것은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다. 이 같은 구조는 다음 두 가지 폐단을 낳는다. 우선 해당 법리부서 업무가 법조인 구성원의 의견과 판단에 의존하게 한다. 그러나 이 때 만일 이들의 판단 실수가 발생할 경우, 결국 법리부서 전체의 오류 판단, 판결 결과로 귀결(歸結)된다. 반면에 그나마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건을 표결처리할 경우, 법리부서 내(內) 법조인의 힘이 수적(數的)으로 미약하여 전혀 ‘죄형법정주의’에 근거한 판단과 동떨어진 처리(處理)결과를 내놓게 된다. 법리부서(재판국) 판단과 심판 후의 혼란 가중과 분쟁의 심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모든 목회자들은 언제 어느 때에 법리부서에 투입되더라도 해당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실력과 역량을 구비해 놓아야 한다. 법을 모르면 아무리 법리부서에 배치되더라도 해당업무를 정확하게 수행할 수 없다. 오직 이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된 자만이 법치를 실현하는 데 공헌하며 합당하게 쓰여지는 것이다.
 

ⓒ 권징절차법정주의(勸懲節次法定主義)

「형사소송법」에 의하여 국가 형벌권을 실현함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근대 법치국가에서는 피의자(被疑者)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형벌권 행사의 적정을 도모하기 위해서 형사절차를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하여 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형사절차법정주의-detective procedure by law』 또는 「형사절차법정의 원칙」이라 한다. ‘형사절차법정주의는 형사절차에 적정의 방식이 요구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법률에 규정된 형사절차가 공정한 재판의 이념에 일치하는 적정절차에까지 요구된다는 원칙이다. 실제로 국가 형벌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인신(人身)에 대한 강제력의 행사가 불가피하고, 또 종국적으로는 형사적 제재(制裁)를 가하게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에 형벌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국가형벌권 실현이라는 가치와 개인의 인권보장이라는 이익이 충돌하면서 개인의 인권이 과도히 침해받지 않도록 이를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이때 법령이 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해당 책벌 대상자의 인권보장에 주의하면서 재판과정이 일정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행하여져야 함이 요청되는데, 기독교 단체에서는 이를 『권징절차법정주의(勸懲節次法定主義)』라 한다. 이 원칙에 근거할 때 재판진행은 공정한 재판의 이념에 일치하도록 반드시 적정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재판장의 소송지휘권도 재판장 임의로 행사할 수 없고 오로지 법에 정해진 절차 범위 내에서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재판부마다 재판진행의 절차가 들쭉날쭉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고 재판에 대한 예측가능성과 공정성을 해치게 된다.

대한민국은 ‘형사절차법정주의(刑事節次法定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 헌법 제12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장 통합교단 역시 권징(형사)절차법정주의(勸懲節次法定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 권징 제6조 「책벌의 원칙」 제1항에서 죄과를 범한 자(은퇴자 포함)의 책벌은 재판절차를 거쳐서 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없이 권징(책벌) 없다’는 ‘권징절차법정주의’를 교단 헌법 권징 제6조 제2항에 명시함으로써 ‘절차가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교단 헌법시행규정 제80조 제5항에서 ‘권징절차법정주의’라는 문구를 실제 명시함으로써 법을 적용하는 기관이 자의(恣意-제 멋대로 하는 생각과 판단)로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절차가 헌법 또는 규정에 위반되면 무효가 되어 기소 제기가 되어도 기소기각으로 판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교단 헌법 권징 제88조 제5항). 따라서 모든 교단 내(內) 각급 치리회에서는 ‘권징절차법정주의’에 기초한 재판을 진행하여 재판 진행에 따른 하자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어느 노회 기소위원회가 부존재(不存在)하여 피고소인 조사(교단 헌법 권징 제57조의 1)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을 재판부가 원고인의 청구(총회 재항고건)를 받아들여 피고인을 책벌하는 것은 불고불리원칙(不告不理原則-형사법상 검사가 공소하지 않는 한 법원이 사건에 관하여 심리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교단 헌법이 기소 제기 없는 사건도 재판할 수 있도록 한 예외규정(헌법시행규정 제67조 제6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어디까지나 기소위원회 존재 시(時)로 국한된다. 재판부가 기소위원회 부재(不在)로 피고인의 진술권(교단 헌법 권징 제29조 제1항)이 박탈된 경우까지 불기소 간주(교단 헌법 권징 제64조 제2항)로 판단한 것은 노회의 유책(有責)사유를 피고인에게 전가시키는 과도한 법적용 남용에 해당된다. 또한 재심에서 교단 헌법 권징 제128조 제1항 즉, 의견청취 규정 절차도 거치지 않고 표결에 부쳐 기각 처리하는 것은 재심 청구권자의 변론 기회(교단 헌법 권징 제29조 제1항)와 그 이익 되는 사실을 진술할 기회(교단 헌법 권징 제74조)마저 박탈하는 「권징절차법정주의」절차 위반 재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미란다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즉,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경찰이나 검찰이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기 전에 반드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와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배한 재판이 되는 것이다(국가 헌법 제12조 제5항). 법률 절차는 중요하다. 그 이유는 소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힘 있는 다수는 절차가 무시되어도 피해를 입지 않지만 힘없는 소수자에게 절차까지 무시되면 약자의 입장을 항변할 기회를 잃게 되어 인권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약자의 보호차원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반드시 보장될 필요가 있다.

각 교단 헌법혹은 장정은 신앙 공동체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논리적 결과물이지만, 성경에 기초한 경험적이고 정치적인 산물이다. 숭고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성원의 합의에 의하여 제정되기에 하나님의 뜻 실현을 위한 구체적 지침이 된다. 교단 헌법 혹은 장정은 성경의 교훈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 의해 민주주의 방식에 따라 합의제로 제정될 수밖에 없으며 성경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헌법(장정) 내용이 규정되고 모든 구성원들이 이를 지키고 따르는 관계로 ‘법치(法治)’는 교회로 더욱 교회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목회의 최후 보루는 성경헌법이다. 이는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만이 지니는 독특한 특성이다. 그러므로 치리회에 속한 모든 목회자는 성경의 교훈대로 교단 헌법을 제정하고, 바른 입법(立法)을 전제로 성경적 원칙을 준수하며 법치(法治)를 실현해 가야 한다. 법치목회를 위해서는 법 위에 굴림(rule of law) 하지 말고, 법에 의해(rule by law)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목회자가 ‘무법세계’로 나가는 과오를 예방하고 ‘법치실현’을 생명처럼 여기며 법치목회 사역을 수행할 때 목장은 평강과 안녕이 보장되고 안정된 목회기반이 확보된다. 이러한 목회자를 위하여 목회의 풍성한 열매가 예비 되어 있는 것이다. ‘특화목회’는 생존과 자유를 뛰어넘어 역사적 ‘공헌’을 궁극적 가치로 설정하고 실현한다. ‘공헌목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목장의 안정과 교회성장이 필수 요건이다. 이 특화목회의 요건을 구비하는 확실한 토대가 바로 ‘법치목회’이다. 더딘 것 같으나 빠른 것이 법치목회이며, 모진 것 같으나 집단의 안녕과 질서를 확고히 하는 것이 법치목회인 것이다. ‘특화목회’는 성경과 헌법에 기초를 둔 ‘법치목회’를 지향한다. 이 방향을 따라 목회자가 ‘법치목회’에 성공한다면 평화와 질서가 하수 같이 흐르고 선교의 효과를 극대화되는 늘 푸른 목장을 이루고도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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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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