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신학자의 신학이야기 | 최은수 교수의 교회사 이야기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의 중요성 2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3년 05월 08일 (월) 09:56:39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의 중요성 1편’에서 필자가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이 있어서 먼저 다루고 다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조지아에 예수님의 옷을 가지고 왔던 엘리야도 유대인이고, 아르메니아 조지아 역사에서 양국에 황금기를 가져왔던 중세시대 바그라티드 왕가도 다윗왕의 직계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오순절 성령 강림 역사의 현장에도 적지 않은 조지아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물론 조지아 아르메니아가 노아의 직계이자 신인류의 무대였기 때문에 영적인 잠재력만으로 보아도, 유대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충분히 설명은 가능하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조지아 아르메니아에서 토착화되어 살아왔던 유대인들에 대하여 주목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그 이유는 세 가지다.

   
▲ 실크로드의 거룩한 도성이자 동방의 예루살렘, 애니(Ani)의 전성기를 재현한 것이다. 애니에 1001개의 교회들을 건립했던 중세시대 바그라티드 왕조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역사에 모두 등장하며 양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북왕조가 앗수르(앗시리아) 제국에게 주전 722년(B.C.722)년에 멸망한 후 북왕조를 구성하였던 열 개의 부족들이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앗시라아 제국에 의해 강제로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앗시라아가 주전 609년(B.C.609)에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하는 혼란의 와중에 아르메니아 하이랜드, 조지아, 그리고 코카서스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남조 유다 왕국이 주전 586년(B.C.586)에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의 느브갓네살 2세에 의해 멸망하였고, 수많은 남왕국의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 주전 539년(B.C.539)에 강력했던 신생 바벨로니아 제국이 건국 후 한 세기도 채우지 못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사이러스)에 의해 패망하였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이스라엘 남왕국의 유대인들도 다수가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로 이동하였다.

셋째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스라엘의 남과 북 왕조 출신의 유대인들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로 이주하여 토착화되었다. 이는 에덴동산과 노아 방주의 배경이 되었던 창세기 11장 까지의 역사를 간직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사람들과 더불어, 아브라함 이후인 창세기 12장 이후의 역사 가운데서 생존했던 유대인들이 절묘하게 뒤섞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에서 목격되었던, 이러한 조화가 향후 전개될 양국의 교회 역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풍성한 결과들을 도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교회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성지순례

   
▲ 이스라엘의 북왕국과 남왕국이 차례로 멸망하면서 두 왕국의 유대인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였고, 앗시리아 제국과 신생 바빌로니아 제국이 차례로 패망하는 혼란기에 사라졌던 이스라엘 북왕국의 10지파와 남왕국에 속한 2파의 많은 유대인들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로 유입되었다

이상과 같은 성경과 역사의 맥락 속에서, 조지아 아르메니아 성지순례의 교회사적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아르메니아 조지아는 사도 직계 교회(Apostolic Church)로서 여타의 동방교회 또는 동방정교회와 구별된다. 천주교 즉 로마가톨릭교회와도 여지없이 전혀 다른 전통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1)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와 조지아 사도 교회(Georgian Apostolic Church)라고 부르는 것이 정통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성경적 배경을 가진 독특한 흐름 속에서 사도들이 직접 양국을 두루 다니면서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2) 양국의 사도 교회는 천주교와 전통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용어 사용에도 구별을 분명히 함이 좋겠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성당’은 천주교를 떠올린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교회들을 부를 때는 ‘교회’ 또는 ‘대교회’(Cathedral)라고 불러서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교회는 엄격히 말해서 동방 정교회와도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와는 더욱더 다르기 때문이다. 3) 아르메니아 조지아 사도 교회뿐만 아니라 동방 교회 전체는 16세기 종교개혁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들 지역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교회의 뿌리가 되는 16세기 종교개혁은 천주교 즉 로마가톨릭교회와의 연관성 속에서 개혁의 주체가 되어 탄생한 전통이다. 그러므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신앙 공동체인 것이다.

   
▲ 아르메니아 보다도 조지아에 유대인 인구가 더 많았고 역사도 길기 때문에 유대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도 인기다. 사실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가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그들이 세운 회당이었다. 당시 회당에는 회심한 이방인들도 많았다. 이미 구약의 오실 메시야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미 오신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아르메니아 조지아에서도 그런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둘째로, 아르메니아와 조지아가 역사상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는데, 특별히 조지아는 세계 최초이자 전무후무하게 여성 조명자에 의해 대역사가 이루어졌고, 더군다나 수 많은 여성들이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하고 헌신하여 기독교 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간혹 북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가 조지아보다 먼저 기독교 국가(왕국)가 되었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엄연히 잘못된 정보이다. 아르메니아는 조명자 그레고리에 의해 301년에, 조지아는 여성 조명자 니노에 의해 326년에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특히 로마 제국이 313년에 박해를 종식시키고자 서방의 황제인 콘스탄틴과 동방의 황제인 니시니우스가 합의한 밀란 칙령을 국교로 선포한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심지어 동방의 황제인 니시니우스는 밀란 칙령의 합의를 깨고 기독교에 대하여 박해를 지속하였다.

   
▲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순교자들.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을 목격하였다

교회 즉 에클레시아는 시작부터 어머니 교회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며 수많은 여성 헌신자들의 수고와 희생을 토대로 성장해 왔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도 수 많은 여성들이 교회의 밑거름이 되었다: 여성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가야네, 그 구성원이자 황족이며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흐릅시매, 코스로비듀크트 공주, 조명자 그레고리를 대피시켰던 무명의 두 여인, 조명자 그레고리가 갇혀 지냈던 코르비랍에 음식을 제공했던 무명의 여인, 그리고 가야네 여성 공동체에 속한 30여 명의 순교자들. 조지아의 여성 조명자인 니노는 가야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순교자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으나, 그녀가 가진 비전을 존중하고 후원한 지도자의 탁월한 배려로 니노는 한 국가의 조명자가 되어 기독교 국가를 탄생시켰다. 당시 미리안 왕의 왕비였던 나나도 니노를 도와서 이런 엄청난 과업을 이룩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나나는 므츠헤타의 삼타브로 교회에 남편과 함께 안장되어 거국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셋째로,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 주후 404년 경에 메스롭 마쉬톳츠의 주도로, 조지아도 비슷한 시기에 자국에 맞는 고유의 문자를 갖게 되었고,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신앙을 고백하며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한글이 주후 1443년에 창제되었으니 약 천 년이나 앞서서 이들은 고유의 문자를 소유하였던 것이다. 중세 천주교 즉 로마가톨릭교회가 예배에서 라틴어만을 고집하다가 유럽 민족주의의 발호로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도전을 받는 과정에서 종교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은 각자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을 기준으로 해도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약 천 년이나 앞서서 자신들의 언어로 예배도 드리고 각종 서적들을 편찬했음이다. 성경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되어서 각 나라의 일반 기독교인들이 원문으로 성경을 읽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대중들의 언어로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유익이었겠는가!

   
▲ 조지아의 여성 조명자인 니노를 도와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던 나나 왕비

넷째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교회들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직후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통하여 신앙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정체성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르메니아의 조명자 그레고리나 조지아의 조명자 니노 모두 교육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이교적인 요소들을 속전속결로 혁파하고 교육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함양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 조명자들은 대중들의 삶 속에 녹아들지 않는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빛을 발하며 민족 신앙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확립시켰다.

다섯째로, 조지아 아르메니아가 처했던 지정학적 위치가 이슬람 제국들과 기독교 제국들의 완충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침략, 압력, 내정간섭, 그리고 불합리한 요구 등으로 수시로 위기를 맞이했지만, 흔들릴지언정 뿌리가 뽑히지 않았고, 정복당할지라도 굴복하지 않는 신앙의 강인함을 견지하였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천재 신약학자인 브루스(F.F. Bruce) 교수가 말한 대로 그들도 ‘초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역사’를 몸소 체득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짓누르고 억압하고 박해를 가해도 그들의 신앙적 지조와 민족정신을 말살할 수는 없었다.

여섯째로, 아르메니아 조지아 기독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슬람 신자들 가운데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이들 중에는 공식적인 순교자 반열에 오른 인물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환난이 많았던 조지아 아르메니아 기독교는 자국민들이 집단으로 포로가 되어 이슬람권으로 잡혀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도하였다. 그런 와중에서 양국의 교회들은 비인간적으로 대우를 받으며 종처럼 학대를 받았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심장부에서 신앙을 지키며 더 나아가 큰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 또한 증거하고 있다. 트빌리시 순교자의 다리에서 100,000명 이상이 처참하게 난도질을 당했지만 고상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이란의 영토에서 명멸해 갔던 이슬람 제국들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갔던 양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란의 기독교 역사를 이어가리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아르메니아 알파벳 공원의 모습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창제되었던 아르메니아 조지아 문자는 기독교적 민족주의를 함양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일곱째로, 중세시대 1001개의 교회를 건설하여 실크로드의 거룩한 도성이자 동방의 예루살렘인 애니(Ani)를 천하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바그라티드 왕조의 희생과 헌신을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양국에 걸쳐 중세 황금기를 이끌었던 바그라티드 왕조의 사람들은 아라랏산이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듯이 그들도 하늘이 내린 인물들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필자가 이 왕조의 사람들과 그들이 이룬 업적들을 알면 알수록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고 존경심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진정성 있게 우러나오는 것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다.

이외에도 조지아 아르메니아 성지순례의 중요성을 설파할 요인들은 차고 넘친다. 이번에 성경과 교회사적 중요성 때문에, 출발이 확정되어 마감된, 한 순례팀과 함께하며, 필자가 현장에서 강의 및 설명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순례팀은 두 가지 의미(Meaning)를 가지고 있어 특별하다. 하나는, 코카서스 조지아의 1호 선교사로 오셔서 불철주야로 헌신하다 소천하신 고 정정옥 선교사님을 추모하며 기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중요성을 간직한 현장들에 직접 참여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득함으로 참가자 각 사람의 삶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것이다. 필자가 주창하는 모토 대로 ‘생명은 생명을 낳고, 역사는 역사를 낳기’ 때문이다.

본 지면을 빌어 감사를 전하고 싶은 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창동 집사님 부부김종성 집사님(서울 레스토랑) 부부 제위다. 이분들을 위시하여 교인들이 고 정정옥 선교사님으로부터 현재까지 트빌리시 한인교회(문정배 목사)를 신실하게 섬겨오고 계시며, 이 지역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각자의 분야에서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고 정정옥 선교사님의 뒤를 이어 조지아 한국문화센터를 섬기고 계신 김의택 선교사님문정배 선교사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끝으로, 남편인 고 정정옥 선교사님을 이어서 중단없이 사역하고 계시는 곽현숙 선교사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최은수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통합4)“세습 금지법 세계교회
검찰, 정명석 성범죄 공범 혐의
예장 합신, ‘예수 보살’ 손원영
(고신3) 다니엘기도회 ‘경계’
(통합7) 이대위 손원영, 정은수
대법원 “교회 전도사, 근로자가
김의식 총회장, 교단 모욕하는 무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