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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되고 싶다
장경애 사모 컬럼
2023년 05월 04일 (목) 11:07:51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은 왔다. 푸르름의 5월은 가정의 달로 누구나 다 아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부부의 날까지, 가정과 연관된 날이 많다. 이렇게 5월이 되어 어린이날이 오면 나 어릴 적 어린이날이 생각난다. 요즘은 어린이날이 되면 온통 어린이 천국이 되고, 나라 전체가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어진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의 어린이날은 지금처럼 공휴일이 아니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고 수업을 단축하는 정도였다. 그런 시절임에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남산 어린이 놀이터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놀게 했던 일이 기억에 아물거린다.

그리고 며칠 후에 있는 어머니날(지금은 어버이날)이 되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껏 만든 카네이션이라고 말해야 카네이션처럼 보이는 꽃을 마치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으스대면서 엄마 가슴에 달아드렸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어머니 은혜를 생각하면서 어머니께 편지를 쓰게 했다. 나는 이제부터 엄마 말씀 더 잘 듣고, 동생들을 더 잘 돌보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항상 썼지만, 항상 그렇게 살지 못했던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 후 시간은 흘러 나 역시 내 딸에게서 어버이날이면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세월이 흘렀건만 내가 어릴 때 썼던 내용과 흡사하다. 그런데 내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에게 쓴 편지 서두에 어디서 배웠는지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머니 전상서’라는 말을 써서 한바탕 웃던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바로 어제의 일 같은데 내가 어른 중에서도 어른인 노인이 되었다.

   
 

세상 노인 중에서 노인이 되고 싶어 노인이 된 노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로 돌아가 어린이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진 노인은 있을 것 같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다. 나라에서 노인이라 정한 나이를 훨씬 지났으니 내가 노인은 노인인가 보다. 옛 노인들이 자주 말하던 ‘나이는 먹었으나 마음은 아직도 젊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제대로 인생을 살아왔다면 지금쯤 지혜와 덕과 자애로움과 인자함 등이 넘쳐야겠건만 그것보다는 아직도 어린아이만도 못한 욕심과 아집으로 가득하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가 맑고 투명한 눈망울의 손녀를 보며 내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그 시절이 그리워짐과 동시에 어린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분명 나도 어린이였을 적이 있었는데 왜 갑자기 어린이가 되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어린이가 되고프기보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천진스러워지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지금 이 나이에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일까?

내 손녀는 이제 막 첫 돌을 보냈으니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어린이 중의 어린이인 영아(嬰兒)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 아기의 옹알이 속에서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표정이 있다. 나의 손녀가 어느 날, 1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옹알이를 하는데 그 표정과 그 몸짓이 예사롭지 않았다. 너무도 예쁘고 귀엽고 우스워서 그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어 지인들에게 은근 자랑질을 했다. 그것을 본 어떤 목사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이 아기는 언제, 어디서 안수를 받았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아했다. 그리고는 이내 알아차렸다. 그 이유인즉, 손녀의 옹알이하는 표정과 몸짓과 말투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진지하고 심각한 모습이 마치도 성도들을 일깨우는 목사님의 설교 모습과 흡사하여 너무도 귀여운 나머지 장난끼를 섞어 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안수는 하늘나라에서 받은 것 같다고. 그리고 저 아기가 하는 말은 하늘나라의 말이라서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 방언으로 설교하는 것이라고 신나게 부풀려 재미있게 응수했다.

이 일이 너무도 흥미로워 손녀의 엄마인 내 딸에게 말했더니 “목사님 같은 것이 아니라 부흥사가 호통치는 것 같은데!”라고 한술 더 떠 말하여 박장대소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못 알아들어도 자기 나름의 말을 하는 것은 분명하니까 정말 진지한 옹알이의 뜻이 알고 싶었다. 마음이 청결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어쩌면 천국의 말이 이런 아기들의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린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때 묻은 어른이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하고 기상천외한 오직 어린이만 생각할 수 있는 말들이 많다. 가끔 생각나서 혼자서 웃기도 하지만 참으로 의미 있게 느껴지는, 재미있는, 나 혼자 알고 있기에 아까운 의미심장한 말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유익이나 무슨 목적을 가지지 않은 천진스러운 말속에는 어른이 본받아야 할 말들도 많이 있음을 느낀다. 어린이가 하는 말이라고 무시하거나 간과해 버리지 말고 진솔한 아이의 말을 통해 자신을 반추해 볼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면 나의 과한 생각일까?

그리고 나니 내 딸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목사인 자기 아빠가 이따금 한숨을 쉬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보고는 딸 자신은 ‘하나님 할아버지’라고 큰소리로 외치듯 말하였다. 자기 아빠에게 아버지면 자기에게는 할아버지가 맞는 칭호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 얼마나 순수한 생각인가?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운다.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보면서 “네가 무슨 걱정이 있겠니?”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종종 한다. 그 말에는 앞으로 살아야 할 세상살이에 대한 어른들의 기우도 있고, 또 삶이 힘듦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보다는 순진하게 웃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너무도 행복하게 보여 부럽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세파에 물들지 않고 세상살이 걱정이 필요 없는 순진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때 묻지 않은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나이만큼 세파에 물들게 된다. 그렇게 새하얀 백지 같았던 마음에 지울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그려진다. 세월은 순수는 없어지고 천진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이렇게 싱그럽게 푸르른 5월이 오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갖가지 추억이 떠오르면서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그때가 그립다. 그런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면서 어린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는데 그런 사랑을 받을 어린이 같은 어른으로 살고 싶다. 아니 어린이가 되고 싶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어른이 될 수는 없을까? 아니, 부분적으로라도, 순간만이라도 어린이 같은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천진한 어린이 같은 어른으로 살 수는 없을까?

천진한 어린이 같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어린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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